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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을 지켜주는 길”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20.03.04 17:50
13 그 때에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가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습니까?” 하고 말하면서 말렸다. 15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습니다.” 그제서야 요한이 허락하였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 때에 하늘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하였다.(마태복음 3:13~17)

겨울 속 나목을 어찌 도울 수 있을까요. 거름과 물을 주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당장 변화는 없습니다. 자칫 일찍 잎이 돋아나면 오히려 해가 될 뿐입니다. 겨울 나목은 함께 있어줄 수 있을 뿐입니다. 봄을 믿어주고 함께 기다려주는 길 뿐입니다. 사람도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해결하기 힘든 문제 속에 빠졌는데, 돕겠다고 와서 건져주려 합니다.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그렇게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된다 등등. 선한 의도는 고맙지만, 때론 더 외롭게 합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지 못하고, 쉬운 해결책이 없다는 점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력감을 견디지 못하고 섣부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런 해결책은 자칫 거리감과 고립감을 각인시키기 쉽습니다. 그래서 함께 있어주고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 Isabel Miramontes (Spain 1962)

내려다보듯 문제 밖에서 던져주는 충고가 아니라 문제 속에 함께 견디며 곁을 지켜주는 동행! 바로 주님의 모습이 아닙니까. 세례를 받고 드디어 메시야로 등장하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오실 메시야를 한껏 치켜세웁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주님, 그분의 신조차 들고 다닐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주님의 등장은 죄인들과 똑같이 세례를 받는 모습입니다. 세례 요한이 오히려 주님께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찌 이러시느냐 묻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이 의를 이루는 길이라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아 이루시는 의가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는 수직적 충고가 아니라 수평적 참여로 시작하셨다는 점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시며 지휘하시고 충고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인간의 죄악 된 실존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함께 문제를 짊어지십니다. 회개하는 자리로 들어오셔서 함께 세례를 받으십니다. 곁으로 다가오시는 참여, 주님께서 구원을 이루시는 출발점입니다.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자신 위로 내려오는 것을 보십니다. 비둘기는 랍비들의 비유에서 물 위에 움직이는 하나님의 영(창1:2)으로 쓰입니다. 또한 노아의 방주에 육지를 알려준 새이기도 하죠. 둘 다, 새 창조, 새 세상의 시작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특히 마태복음에서는 3인칭 주어 ‘이는’을 넣었습니다. 즉, 모두에게 선포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새 세상, 새 창조를 시작하는 아들은 이사야42장의 고난 받는 종의 모습으로 선포됩니다. 하나님 택하시고 영을 부어주신, 마음으로 기뻐하는 종의 모습입니다.

고난 받는 종, 사랑하고 기뻐하는 그 아들이 새 세상, 새 창조를 시작합니다. 죄악된 인간 실존의 한복판으로 들어와 함께 세례를 받고 돌이키는 회개가 그 첫 걸음입니다. 주님을 따르려는 신앙인 모두 그 출발점에서 함께 시작할 수 있습니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염병 중에도 예배로 모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자기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보다 주님의 길을 따릅니다. 언제 주님께서 안식일이나 율법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치셨습니까. 그렇게 가르치신 적이라도 있습니까. 주님을 따른다면, 불안에 떠는 이웃들 곁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이웃의 마음에 함께 하고자 가정에서 예배하지 않겠습니까.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주님의 길을 따라 이웃의 곁을 지키지 않겠습니까.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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