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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보다 중요한 것우화 한 묵상 8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20.05.15 15:05

굴뚝 청소를 한 두 아이 중 누가 얼굴을 닦을까?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더러운 아이를 보고 닦는다. 식상할 만큼 유명한 탈무드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탈무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나눕니다.

한 젊은이가 랍비를 찾아가 탈무드를 가르쳐 달라고 청하자, “당신은 탈무드를 앞에 펼쳐 놓을 자격조차 없는 듯하오”라며 거절당했습니다. “제게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보고 결정해주십시오”라는 청에 랍비가 질문을 합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한 후에 한 아이는 얼굴에 그을음이 잔뜩 묻었고 다른 아이는 말끔했소. 누가 얼굴을 닦겠습니까?” 젊은이는 너무 쉽다는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그야 당연히 더러운 아이죠.”
“역시 당신은 탈무드를 공부할 자격이 없소.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아이 얼굴을 보고 자기 얼굴도 깨끗한 줄 알고 깨끗한 아이는 더러운 아이를 보고 자기 얼굴도 더러운 줄 알 것이요.” 그러자 젊은이가 다시 대답했습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닦습니다.” 하지만 랍비는 낭패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역시 당신은 탈무드를 공부할 자격이 없습니다.”
낙심하고 지친 표정으로 젊은이가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랍비님 도대체 탈무드에서는 어떤 대답을 가르칩니까?” 그러자 랍비가 대답합니다. “두 아이가 똑같이 굴뚝을 청소했는데, 어떻게 한 아이는 깨끗하고 한 아이는 더러워질 수 있겠소? 탈무드는 바른 대답이 아니라 바른 물음을 알려줍니다.”

▲ R. Eason, 「To Know Joy」 ⓒ하태혁

가나안 농군학교를 세우신 김용기 장로에게 누군가가 물었답니다. “장로님, 행복하십니까?” 논두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장로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감사합니다.” 행복을 묻지만 대답은 감사입니다. 받은 질문을 바꿔서 다른 질문에 답합니다.

어떻게 하면 괴롭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하고 성공할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를 물으면
끊임없이 불만족스런 것이 보입니다.
삶은 괴로운 문제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모든 일에 감사할까를 물으면
불만스런 일에서도 행복을 찾아냅니다.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사랑할까를 물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찾아냅니다.

성경을 답안지로만 여기는 듯 싶습니다.
만일 답안지로만 여기면,
정오답의 채점에 갇히기 쉽습니다.
선함과 악함의 편 가르기에서 끝나기 쉽습니다.

성경은 수많은 물음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물음을 만난다면 어떨까요?
하나님과 이웃과 자신과의 깊은 대화가 움터옵니다.
획일적인 정답의 억압과 폭력에서 풀려납니다.
서로의 차이를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신비 앞에 겸손할 수 있습니다.

정답을 찾기 전에 바른 물음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이 기대하는 평화를 묻지 않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화를 물어야 합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사랑과 평화, 이미 주셨으니
세상이 기대 못한 사랑을 물어야겠습니다.
그 사랑을 늘 새로이 만날 수 있도록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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