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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와 정직 사이채수일 목사의 성경 인물 탐구 17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 승인 2020.07.28 17:23

< 1 >

다윗(통치기간 주전 1000-961년 경)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베들레헴 출신의 목동, 돌 맹이 하나로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물리친 소년, 사울 왕의 시기와 살해위협을 피해 도망간 블레셋의 용병대장,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를 셀 수도 없이 헤매던 용맹스런 군인, 뛰어난 정치력으로 남북 왕국을 통일한 통일군주, 음악가이자 시인, 부하 장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의 불륜의 사랑 때문에 심판을 받아 온 가문이 칼부림 속에서 살아야 했고, 자식들이 권력투쟁으로 서로를 죽이고,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예루살렘에서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실로 비운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통일 군주로서 40년 재위 기간에(왕상 2,11) 국토를 서쪽으로는 지중해, 남쪽으로는 시나이 사막, 동쪽으로는 요단 지역, 북쪽으로는 유프라테스에 이르기까지 확대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계약궤를 옮겨옴으로써 예루살렘을 통일 왕국의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종교적, 정치적 수도로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날 것으로 믿었으며, 다윗 왕조의 회복을 이스라엘 민족의 이상향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라고 고백함으로써, 다윗을 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역사를 잇는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했습니다.

< 2 >

다윗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8명의 아들 가운데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사울 왕을 이을 새로운 왕을 찾기 위해 베들레헴의 이새에게 갔습니다. 이새의 맏아들로서 준수하고 키가 큰 엘리압을 보았을 때, 사무엘은 속으로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시려는 사람이 정말 주님 앞에 나와 섰구나.’ 그러나 주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삼상 16,7).

사람을 보는 하나님의 판단은 다르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십니다. 마음 바탕을 보신다는 것이지요. 겉모습은 얼마든지 꾸밀 수 있어도, 마음 바탕은 꾸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새의 나머지 아들들을 차례로 불러 살펴보고 마침내 막내인 다윗을 발견합니다. 다윗은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습니다(삼상 16,12).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고, 그 후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고 합니다(삼상 16,13).

그런데 한 편, 사울 왕은 아주 갑작스럽게 심한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심한 감정의 기복과 우울증은 야훼의 영이 사울을 떠난 후, 불안으로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음악이 악령을 쫓아낸다고 믿었던 신하들은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찾았고, 이 때 다윗은 사울 왕의 궁정음악사로 궁전에 들어갑니다(삼상 16,17-21). 다윗은 “수금을 잘 탈 뿐만 아니라, 용사이며, 용감한 군인이며, 말도 잘하고, 외모도 좋은 사람인데다가, 주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삼상 16,18). 다윗은 뛰어난 음악적 재능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성서 안에 있는 시편 150편 가운데 73편의 시들은 다윗이 지은 것이거나 다윗과 관련된 시들인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시편 23편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블레셋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사울도 이스라엘 군대를 소집하여 테레빈 나무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진영에서 갓 출신의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나왔는데, 키가 거의 3미터에 이르는 거인이었습니다. 골리앗을 본 사울은 물론 모든 이스라엘 군대가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이 때 참전한 형들에게 식량을 가져다주려고 진지에 온 다윗이 소문을 듣고 사울 왕의 허락을 받아 골리앗과 대결합니다. 실전 경험이 많은 거인 골리앗에게 소년 목동을 보내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사울은 말립니다.

그러나 다윗은 말합니다: “누구든지 저 자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떼를 지켜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 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 가면, 저는 곧바로 뒤쫓아가서 그 놈을 쳐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 내곤 하였습니다. … 제가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 저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찌 그대로 두겠습니까?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주신 주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주실 것입니다”(삼상 17,32-37).

이 후의 이야기는 여러분 모두 다 잘 아십니다. 사울은 자기 군장비로 다윗을 무장시켜주지만, 다윗은 장비를 모두 벗어버리고, 목동의 지팡이 한 개, 무릿매와 돌 다섯 개만을 가지고 골리앗에 맞섭니다. 홍안의 소년 목동을 골리앗은 우습게보지요: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로 나오다니,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는 것이냐?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삼상 17,43-44).

그러자 다윗이 말 합니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삼상 17,43-17).

그리고 돌멩이 하나를 무릿매로 던져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블레셋을 물리쳤습니다. 승전한 다윗이 군인들과 함께 돌아올 때,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소구와 꽹과리를 들고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며 환호성을 지르면서 사울 왕을 환영합니다. 그런데 그 때 여인들이 춤을 추면서 부른 노래가 사울을 몹시 언짢게 했습니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삼상 18,7).

사울 왕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을 돌렸으니, 이제 그에게 더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밖에 없겠군! 하고 투덜거렸습니다”(삼상 18,8). 그리고 그 때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울 왕의 우울증도 심해지기 시작했고(삼상 18,10), 사울 왕은 때로는 정략적인 혼인 제안으로 다윗을 회유하는가 하면(삼상 18,20이하), 연회석상에서 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고 했고(삼상 18,10-12), 도망친 다윗을 추적하기도 했습니다. 목숨을 겨우 건지고 도망친 다윗은 이스라엘의 적인 블레셋의 용병 대장이 되어 목숨을 부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3 >

그러나 사울 왕이 길보아 산의 전투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참패하고 자살한 후, 사울의 군대사령관이었던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들 가운데서 생존했던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으로 데리고 가 왕으로 세웠습니다(삼하 2,8-10). 일종의 망명정부를 세운 것이지요. 그러나 왕위 세습은 당시 구속력 있는 것으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스보셋이 단지 사울의 아들이라는 것이 자동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그에게 충성을 바치게 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는 동안 다윗은 그의 부하들과 가족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가서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삼하 2,1-4). 다윗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블레셋인들의 동의를 얻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도망 다닐 때, 이스라엘의 적인 블레셋의 용병대장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을 압니다.

블레셋의 봉신이었던 다윗을 유다의 왕으로 세운 것은 블레셋의 전통적인 ‘분할하여 통치한다’는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블레셋은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는 것을 바랬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알고도 유다백성이 다윗을 환영한 것은 같은 지파에 속한 다윗이 그들을 방어해 줄 수 있는 강력한 군사 영웅이었고, 블레셋 사이에서 중재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다윗은 자신의 사병 덕분에 이미 사유영지를 가진 봉건영주이자, 이방 강대국의 봉신이었다는 점이 백성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을 이은 이스보셋이 재위 2년 만에, 군 지휘관들에게 암살당합니다. 이스보셋을 암살한 두 명의 군 지휘관은 그의 머리를 잘라 다윗에게 가져갑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이 “잠자는 어진 왕을 침상에서 죽였다.”며 크게 격분, 부하들을 시켜 그들의 손과 발을 모조라 잘라 낸 다음에 그들의 주검을 헤브론의 연못가에 달아매었고, 이스보셋의 머리는 가져다가 헤브론에 있는 아브넬의 무덤에 묻었다고 합니다(삼하 4,7-12).

다윗은 관용과 포용의 정치력으로 북 이스라엘 백성의 신임을 얻고 북쪽 이스라엘을 통합하여 명실상부한 통일왕국의 왕이 되었는데, 그 때 그의 나이 서른 살이었습니다(삼하 5,4). 헤브론에서 7년 동안 남쪽 유다를 다스리고, 33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통치한 사십년 동안(1010-970 BCE)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서의 치적을 쌓았습니다.

① 무명의 목자, 다윗이 마침내 통일군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충분히 정치적이고 전략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왕권을 솔로몬에게 안정되게 넘겨주기 위해 평생을 함께 한 부하 장수 요압과 자신이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한 게라의 아들 시므이도 처형하게 합니다. 다윗은 왕좌를 위협할 잠재적 위험세력을 사전에 제거함으로써 왕권을 견고하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왕상 2,5-9).

▲ Eug&#232;ne Siberdt(1851-1931), 「The Prophet Nathan rebukes King David(예언자가 나단이 다윗 왕을 꾸짖다)」(1866-1931) ⓒWikimedia Commons

②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 잔꾀를 부리고 악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왕궁의 옥상에서 다윗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신하를 보내 알아보니 그녀는 부하 장수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밧세바와 정을 통했습니다. 밧세바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전장에 나가있던 우리야를 불러 휴가를 줍니다.

그러나 우리야는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장막을 치고 지내며, 저의 상관이신 요압 장군과 임금님의 모든 신하가 벌판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만 홀로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나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임금님이 확실히 살아 계심과 또 임금님의 생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삼하 11,11)며 집에 가지 않습니다.

당황한 다윗은 다음 날 우리야를 불러 술에 취하게 했지만, 우리야는 또 집에 가지 않습니다. 마침내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편지를 써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에 배치하여 전사하게 합니다. 모든 것은 다윗의 숨은 계획대로 되었습니다. 이제 남편이 없는 과부가 된 밧세바를 다윗은 합법적으로 자신의 후궁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이 한 일은 아주 악한 것이었습니다. 작은 악을 감추기 위해 더 큰 악을 저지르는 것이 사람이지만, 그러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악은 없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예언자 나단을 보내어 다윗을 책망합니다: “어찌하여 너는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 너는 헷 사람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사람의 칼에 맞아서 죽게 하였다.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하여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다가 네 아내로 삼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비록 몰래 그러한 일을 하였지만, 나는 대낮에 온 이스라엘이 바라보는 앞에서 이 일을 하겠다”(삼하 12,9-12).

③ 그러나 다윗의 인간적 위대함은 그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한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곧바로 그 어떤 변명도 없이 나단에게 자백합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정직하게 자신의 죄악을 자백한 다윗을 주님은 용서하시지만, 그의 죄에 대한 심판은 엄했고, 나단의 예언은 실현되었습니다.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목숨을 잃었고(삼하 12,15-19), 다윗의 통치 말년, 아들들 사이의 권력다툼으로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자 다윗은 예루살렘 성을 떠나 도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삼하 15, 13-16). 반란 진압 중에 아들 압살롬은 다윗의 부하 장수 요압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했고(삼하 18,14-15), 그의 아들 솔로몬도 왕위에 오르기 위해 모든 형제들과 잠재적 경쟁자들을 살해했습니다. 다윗의 집안에 칼부림이 떠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④ 다윗은 말년에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당시 인구조사는 세원 확보와 징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삼하 24,9). 그러나 인구조사를 마친 후 다윗은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아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빕니다. 그러나 진노하신 하나님은 예언자 갓을 보내 세 가지 심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합니다. 하나는 7년 동안 흉년이 드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왕이 원수들에게 3개월 동안을 쫓겨 도망하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3일 동안 전염병이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사람의 손에 벌을 받고 싶지 않고 차라리 주님의 손에 벌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여 3일 동안의 전염병을 선택합니다. 그 날 아침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염병으로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백성 가운데서 죽은 사람이 칠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를 본 다윗이 주님께 아룁니다: “바로 내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바로 내가 이런 악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백성은 양 떼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안을 쳐 주십시오”(삼하 24,17). “제발 주님의 백성에게서는 전염병을 거두어 주십시오”(역대지상 21,17).

지도자 한 사람의 죄악과 그에 대한 심판은 온 백성에게 미치기 때문에, 진정한 지도자는 백성을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신과 자기 집안을 먼저 치는 사람입니다. 백성을 속여 자기 자신과 자기 집안만 챙기는 지도자는 진정한 지도자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나는 몰랐다고, 모두 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라고, 내게는 책임이 없다고, 변명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지도자는 결국 그가 버린 부하, 그가 속인 백성들에 의해 끌려 내려오게 됩니다. 백성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습니다.

⑤ 그리고 다윗은 진정한 용사였습니다. 부하 셋이 블레셋 진을 뚫고 나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와서 다윗에게 바쳤을 때, 그는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주님께 부어드리면서 말했습니다: “주님, 이 물을 제가 어찌 감히 마시겠습니까! 이것은 목숨을 걸고 다녀온 세 용사의 피가 아닙니까!”(삼하 23,17). 다윗은 부하를 목숨 걸고 지킨 용사, 부하의 목숨을 자기 피처럼 생각한 군인이었습니다.

< 4 >

다윗 이야기에서 우리가 감동을 받는 부분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는 골리앗을 돌맹이 하나로 이긴 목동 소년의 용맹에서, 다른 이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의 목숨보다 진한 우정에서, 또 다른 이는 밧세바와의 불륜의 사랑과 정직한 회개에서, 언약궤가 다윗 성에 들어 올 때 기쁨에 넘쳐 왕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춤추며 기뻐한 다윗의 순수함에서(역대지상 15,29), 혹은 군주로서의 뛰어난 정치력과 부하에 대한 사랑과 신의에서, 또는 통일 군주로서의 위대함에서 감동을 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인간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대한 인물로 평가하는 것은 그의 정직함 때문입니다. 그는 베들레헴의 목동에 불과했던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주님에게 고백합니다: “주 하나님, 내가 누구이며, 내 집안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나를 이러한 자리에까지 오르게 해주셨습니까?”(역대지상 18,16). “주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시며, 주님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으니, 사람이 위대하고 강하게 되는 것도 주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 주님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조상처럼, 나그네와 임시 거주민에 불과하며, 우리가 세상에 사는 날이 마치 그림자와 같아서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정직한 사람을 기뻐하시는 줄을 제가 압니다”(역대지상 29,11-17).

다윗은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고,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감추기 위해 온갖 꼼수도 마다하지 않은 비열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죄악을 뉘우치고 회개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용맹한 군인이었지만, 수많은 전쟁과 전투 속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했고, 두려울 때마다 뼈가 마디마다 떨리고 마음도 걷잡을 수 없이 떨릴 정도로 탄식했고(시편 6편), 거짓 증인들과 원수들과 대적자들이 그를 칠 때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한결같은 자비를 의지했고,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사람을 하나님은 용서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시편 32편).

우리는 이것이 성서가 증언하는 다윗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을 잃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 그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고, 젊은 시절에 지은 죄와 반역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님의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으로 자기를 기억하여 달라고 빌었습니다(시편 25편).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길을 잃을 수 있고, 또 누구나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길을 잃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다윗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정직한 영혼을 용서하시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이라고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시편 11,7).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시고(시편 73,1), “정직한 사람의 기도는 기뻐하시는 분”이시니(잠언 15,8), 우리도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면,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으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시들을 남겼지만, 그 가운데 시편 23편이야말로 그의 전 생애와 그의 신앙고백이 압축적으로 표현된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인물탐구 다윗을 시편 23편의 기도로 마치려고 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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