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보다 바라바를 놓아줄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 ⓒGetty Image

성경에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고 이상하게 보이는 얘기들이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13장의 유다 출신 예언자 이야기도 그중 하나일 것이 분명하다. 민심이탈을 두려워한 여로보암 왕이 벧엘에 금송아지를 두고 제단을 쌓았을 때 유다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은 이 악행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쉬었다 가라는 왕의 호의도 매몰차게 거절한다. 이곳에서는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그토록 단호했던 그가 혼란에 빠지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번에는 벧엘 출신의 노년의 선지자가 돌아가는 길의 그를 불러 세워 자기 집에서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왕에게 말했던 것과 똑같은 말로 거절하려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벧엘의 선지자는 예상 밖의 이야기를 전한다. 자기 역시 당신을 집으로 초대해 먹고 마시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안심하여 선지자의 집에 들어가 먹고 마시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벧엘의 선지자는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며 저주를 선포한다. 네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징벌로 죽음을 맞은 하나님의 사람. 벧엘의 선지자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자기가 죽거든 그와 함께 장사해달라고 아들들에게 부탁한다.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벧엘의 선지자는 그를 자기 집에 들이고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듣지도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일까? 이야기 어디에도 이런 암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시험하기 위해 벧엘의 선지자에게 거짓 계시를 내리신 것일까? 하지만 이에 대한 암시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받은 상반된 계시가 모두 사실일까? 둘 다 사실이라면 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대체 무엇일까?

이와 비슷한 상황이 신약에도 등장한다. 사도행전 20-21장 나오는 예루살렘으로 떠나려는 바울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바울은 이미 예루살렘에서 맞게 될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잘 알고 있었다. 성령께서 알려주셨기 때문이다.(행 20:23)

그는 자신이 애정과 헌신을 담아 섬겼던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누고 예루살렘을 향해 떠난다. 두로에 상륙한 그에게 그곳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만류한다. 가이사랴에서도 일행들과 그곳 신자들은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말린다. 그들이 사적인 이유로 그랬을 리 없다. 단순히 바울의 체포를 염려하여 그랬을 리도 없다. 그들은 모두 교회를 위해서라면 순교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교회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바울을 말린 것일 터이다.

그러나 모든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간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도 역시 위의 벧엘의 하나님의 사람과 같은 딜레마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두로에서 제자들이 바울을 만류할 때 성경은 이렇게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히 말하였다.”(행 21:4)

성경은 그들이 ‘성령의 지시’를 받아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한다.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막으라는 것은 성령의 지시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예루살렘 행을 강행한 바울은 결국 성령의 지시를 무시한 셈이지 않은가?

하지만 바울 역시 자기 고집만으로 예루살렘으로 갔을 리는 없다. 그 역시 성령의 지시를 받지 않았겠는가? 그렇다면 이 상반되는 성령의 지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는 말일까? 성령의 이름을 걸고 들리는 두 종류의 목소리, 전혀 상반된 두 종류의 목소리 가운데 과연 어떤 목소리를 따라야 한다는 말일까? 결론적으로 바울은 바깥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따랐다.

그러나 저 구약의 하나님의 사람은 어떠했던가? 그는 바울과는 반대로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바깥으로부터 전해져오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다. 결과는 극명했다. 바울은 성공했고 하나님의 사람은 실패했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내면(內面)의 소리와 내 밖에서 들려오는 외면(外面)의 소리. 신앙에 관한 것이라면 대체로 두 소리는 서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나를 향해 주변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신앙의 조언이나 권면, 성경에 대한 해석 같은 외부로부터의 소리와 나 자신의 확신에 근거한 내부로부터 소리가 크게 다른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 하나님의 사람과 바울에게처럼 두 소리가 치명적으로 다른 순간이 있다. 두 소리가 일치하지 않는 갈등의 순간, 신앙의 결단이란 결국 어떤 소리를 따를 것인가의 문제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소리들이, 성령의 지시라며 외치는 수많은 소리들이 이 나라의 공기 속에 폭발적으로 시끄럽게 메아리치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유력한 신앙 지도자들의 커다란 목소리는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확대된다. 세상의 합리적 비판은 아랑곳하지 않고,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합리적 문제제기 역시 무시되고 짓밟힌다.

교회를 지키자고, 나라를 구하자고 외치는 소리들이 교회와 사회를 뒤덮는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소리들을 온갖 매체를 통해 전달하느라 여념이 없다. 전달받은 수많은 메시지들과 영상들이 넘쳐난다. 혐오와 증오를 담은 외침들이 큰 소리를 낸다. 아주 먼 옛날, 이런 종류의 큰 소리들이 커다란 승리를 쟁취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구 우기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큰 소리로 요구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소리가 이겼다.”(눅 23:23)
 
예수를 혐오하고 증오하며 십자가에 못박으라 악을 쓰며 외쳤던 소리들은 결국 분명히 존재했을 다른 작은 소리들을 짓밟고 이겼다. 그렇게 다른 소리들을 짓밟으면서 아니러니하게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고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 우리 곁에도 그때와 비슷한 수많은 소리들이 있다. 혐오와 증오의 외침들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상반되고 모순되는 소리들이 모두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언되는 이때에 과연 어떤 소리를 듣고 따라야 할까?

바울은 이런 때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명한 본을 보여준다. 혼란스런 소리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따라야 한다고. 다른 사람에게 하시는 성령의 명령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비록 다른 이들에게 주어진 명령과 다를지라도 나는 내게 주시는 성령의 목소리만 따르면 될 일이다.

바울은 성령으로 전하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충고와 권면을 듣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따랐다. 호렙 산에서 엘리야가 들었던 하나님의 소리는 크고 엄청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미한 소리’(왕상 19:12), 즉 귀를 기울여야만 겨우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하나님으로부터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는 그런 종류의 것이리라. 그것은 밖으로부터의 모든 소리를 차단해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일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더 이 내면의 세미한 소리를 듣고 따르려 애써야 할 때가 아닐까.

이진경 교수(협성대학교)  peacechurch20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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