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Sermonday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출 14:15-31; 계 1:10-18; 눅 23:50-24:12)부활절(4월4일) 씨뿌림주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1.04.02 16:02

1. 부활주일과 씨뿌림주일

오늘은 우리 주님 예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부활주일입니다. 특별히 씨뿌림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은 2005년 9월, 제90회 총회에서 ‘씨뿌림주일’을 총회제정주일로 정해 매년 4월에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함께 예배드리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씨앗을 뿌린다.”라는 행위 속에 담긴 신앙적 성찰과 고민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농부가 씨앗을 뿌린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인간이 바로 그 창조 섭리 안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참여한다는 적극적인 신앙고백과 결단, 실천의 의미입니다. 관련된 시편 말씀을 볼까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올해는 부활주일과 씨뿌림주일이 같은 주일인데, 새삼 그 의미가 새롭게 와 닿습니다. 지난 사순절기 동안, 아니 작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흘렸던 고난과 눈물의 씨앗이 저 황량하고 거친 들판에 뿌려져 오늘 부활주일을 맞아 복된 곡식단으로 변하여 기쁨으로 가지고 돌아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특별히 생명과 부활의 씨앗이 뿌려져 이 땅이 다시 회복되고, 하나님의 평화와 사랑이 가득 차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사실 씨 뿌림과 추수 등과 같은 자연의 순리는 인간의 삶과 동 떨어질 수 없습니다. 주기적인 계절의 변화처럼 우주 그 자체도, 또한 인간의 삶도 반복되는 여러 단계의 주기성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달, 해, 계절과 천체의 변화와 관련된 의식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통과의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죽음과 부활(재탄생)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씨뿌림주일은 우주 천체의 순환, 파종과 수확이라는 곡물의 생장과 더불어 인간과 공동체의 삶의 주기 속에 들어있는 심오한 생명 과정과 연결된 의미 있는 주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부활주일을 맞아 씨뿌림의 핵심을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으로 새롭게 경험하게 됩니다. 씨뿌림 주일은 농사의 축복과 더불어 현대의 메마른 삶을 치유하는 놀라운 생명력이 깃든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의미도 씨뿌림과 연결해 보면, 심오한 생명 과정의 순환 속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또한 부활 사건은 생명의 사건으로 구약 시대부터 복음서, 그리고 종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먼저 구약 시대 부활의 모습은 애굽으로부터 압제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생명의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신약 복음서는 이러한 부활의 생명 사건을 믿는 자가 있고, 또 의심하거나 놀라기만 하는 이들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선택과 결단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 끝날 날에 우리는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생명과 심판의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2.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 도다!

▲ 코시모 로셀리, <홍해를 건너다> (1481-1482)

구약 말씀부터 볼까요? 먼저 ‘생명의 사건’으로서 부활은 압제에서의 해방으로 옵니다. 말씀을 볼까요? 오늘 출애굽기 14장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상황입니다. 출애굽 이후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당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경험했으면서도 두려워하여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로 홍해를 건너가는 데 성공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출 14:15-18)

하나님께서 바다를 갈라지게 하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바다 가운데 마른 땅으로 지나가게 하고, 쫓아오는 애굽의 모든 군대와 병거와 마병은 바닷물에 잠기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는 말씀입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 하였더라.”(출 14:19-20)

쫓아오는 애굽 군대를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으로 막아 이스라엘 사람들을 돕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손을 바다 위로 내밉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 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출 14:21-23)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큰 동풍으로 바닷물을 가르게 하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안전하게 건너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애굽 사람들이 쫓아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출 14:24-25)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을 어지럽게 하여 병거가 제대로 달리지 못 하게 하셨죠? 그러자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돕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출 14:26-28)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오는 바로의 군대를 다 물리치셨습니다. 생명을 앗아가는 어둠의 세력들은 물리치고 억압받는 이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그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출 14:29-31)

이것은 생명의 사건이자, 공의의 심판입니다. 구약에는 이렇게 부활 사건이 소개됩니다. 어둠의 세력은 물리치고 억압받는 이들을 구원하는 사건, 이것이 바로 부활의 새로운 의미입니다.

3. 어찌하여 살아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러나 신약 복음서는 이러한 부활의 생명 사건을 믿는 자가 있고, 또 의심하거나 놀라기만 하는 이들이 있다고 전합니다.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오늘 누가복음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예수님의 장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눅 23:50-54)

▲ 예수님의 시신을 옮기는 아리마대 요셉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으로 공회의 뜻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의 뜻을 알았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빌라도에게 가서 시신을 가져다가 바위에 판 무덤에 옮깁니다. 장례는 치루지 못했는데, 이는 안식일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예수님을 따르던 남성 제자들은 모두 다 도망갔으나,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이 무덤으로 찾아옵니다. 장례를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눅 23:55-56)

여인들은 시체를 확인하고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끝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무덤으로 갔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눅 24:1-4)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이렇게 여인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대”(눅 24:5-7)

▲ 빈무덤을 발견한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예수께서 말씀하신 부활에 관한 말씀이죠? 그제야 여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또한 주님의 부활을 믿고 이 놀라운 사건을 사도들에게 전합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눅 24:8-10)

여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믿고 부활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믿지 않습니다. 다만 베드로만이 놀랍게 여겼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말씀을 볼까요?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눅 24:11-12)

이처럼 부활 사건은 받아들이는 이가 있고, 또한 믿지 않고 그저 놀랍게 여기는 이도 있습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드렸지만, 부활 신앙은 선택과 결단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부활의 때에 구약 말씀처럼 심판을 받는 이가 생깁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이러한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사건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4.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먼저 본문 말씀을 볼까요?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계 1:10-12)

창세기가 시작의 책이라면 요한계시록은 종결의 책입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결실을 봅니다. 씨뿌림의 결과를 보는 것이죠? 특히 오늘 본문 말씀은 마지막 날에 오실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곧 인자의 등장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 인자 같은 이

“그 일곱 등경(촛대) 한가운데에 ‘사람같이 생긴 분(인자 같은 이)’이 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또는 눈같이 희었으며 눈은 불꽃 같았고 발은 풀무불에 단 놋쇠 같았으며 음성은 큰물 소리 같았습니다. 오른손에는 일곱별을 쥐고 계셨으며 입에서는 날카로운 쌍날칼이 나왔고 얼굴은 대낮의 태양처럼 빛났습니다.”(계 1:13-16)

많은 상징이 나옵니다. 먼저 ‘일곱 금 촛대’는 교회를 가리킵니다(계 1:20). 일곱이니,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말합니다. ‘발에 끌리는 옷’은 대제사장의 예복(출 28:4 ; 레 16:4)과 왕복(사 6:1)을 의미합니다. 길고 발에 끌립니다. 이것은 존귀와 위엄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가슴에 금띠 역시 대제사장(출 28:8 ; 29:5)과 왕의 차림으로 권세와 정의를 뜻합니다. 인자 같은 이(사람같이 생긴 분)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다고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흰색은 성결(시 51:8 ; 사 1:18)을 상징합니다. 또한 눈이 불꽃 같다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말합니다. 심판주이신 예수님의 존귀와 위엄, 권세와 정의, 성결과 통찰력을 설명한 것이죠?

발이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놋쇠) 같다는 것은 원수를 발로 짓밟는 것을 의미합니다. 음성이 큰물 소리 같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권위를 뜻합니다. 그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이며(계 1:20) 오른손은 권능의 손으로 모든 교회가 인자 같은 이의 장중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입에서 날카로운 쌍날칼이 나왔다는 말씀은 말씀을 통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며, 얼굴이 대낮의 태양처럼 빛났다는 말씀은 말라기에 나오는 ‘공의로운 해’와 ‘치료하는 광선’을 뜻하죠? 심판의 공의와 회복을 뜻한다는 말씀입니다. 참고로 말라기 말씀을 살펴볼까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1-2)

이렇게 심판 주이신 예수님을 뵈었을 때, 요한은 그 발 앞에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내가 볼 때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7-18)

▲ 사망과 음부의 열쇠

무슨 말씀인가요? 예수께서 전에는 죽었지만, 이제는 부활하시어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합니다. 사실 열쇠는 많은 상징을 가진 말입니다. ‘이집트 자물쇠’라는 말이 있습니다. 풀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뜻하죠? 이것은 고대로부터 귀한 물건을 보관하는 자물쇠는 구조적으로 복잡하고 까다로웠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망과 음부의 자물쇠’는 우리 인간이 열 수도 또한 깨뜨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우리 주님께서는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과 부활의 열쇠입니다.

독일의 법률용어 가운데 ‘열쇠의 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상적인 가정생활에서 주부가 남편의 동의 없이 돈을 쓰고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주부권을 넘겨줄 때, 허리에 찼던 열쇠 꾸러미를 풀어주는 것으로 넘겨주었습니다. 결국 우리 주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하신 분, 죽음을 극복하고 이기신 분으로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이자, 동시에 천국의 열쇠를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기가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마지막 심판 날에 영광의 부활로 우리를 초청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공의의 심판으로도 임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불의한 바로와 그의 군병들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빈 무덤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믿고 부활의 신앙을 받아들인 세 마리아와 같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것인지 오늘 우리의 결단과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생명의 부활을 믿고 의의 씨를 뿌리시어 마지막 날에 기쁨으로 거두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1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