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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겔 34:11-16; 히 13:7-10, 20-21; 요 10:1-18)부활절 셋째 주일(4월18일) 장애인주일/4·19혁명기념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1.04.15 20:35

1. 아낌없이 주는 나무

동화작가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시공주니어, 2000)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옛날 한 그루의 사과나무와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언제나 사과나무 그늘에 와서 놀았고, 이 나무는 소년을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나무는 때에 맞춰 소년에게 예쁜 꽃을 선사하고, 잘 익은 사과도 선사하고, 소년이 자신의 기둥과 가지에 올라와 마음껏 노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소년이 점차 성장하면서 도시에 가고 싶었습니다. 나무는 소년과 헤어지기 싫었지만, 자신의 가지에 붙어있던 모든 사과 열매를 소년이 꿈을 펼 수 있도록, 도시에 가는 여비로 마련해 주었습니다. 사과를 한 상자 움켜쥐고 나무 곁을 떠나는 소년의 모습을, 나무는 섭섭함과 행복한 모습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청년이 된 소년은 한 여자를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이번엔 결혼해서 살 집을 짓기 위해, 나무의 가지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무는 소년의 행복을 기뻐하고 축복하며 자신의 몸을 모두 떼어 주었습니다. 이제 이 나무는 아름다운 꽃향기도, 잘 익은 사과 열매도 맺을 수 없는 앙상한 기둥만 남은 초라한 나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이 나무는 소년의 행복을 보며 흐뭇해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장년이 된 소년이 찾아와 초조하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먼 나라에 가고 싶으니 보트를 만들 수 있도록 나무의 기둥을 요구했습니다. 나무는 마지막 남은 자신의 기둥을 베어서 보트를 만들도록 허락했습니다. 이제 아름답던 가지도 튼튼했던 기둥도 잃어버리고 남은 것은 초라하고 못생긴 ‘밑동’만 남았습니다. 그래도 이 나무는 사랑하는 소년의 삶이 행복하기만을 소원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이제 허리가 굽은 노인이 된 소년이 고향에 돌아와 나무 밑동 앞에 섰습니다. 그의 얼굴은 세월의 상처로 가득 찼고, 눈에는 꿈과 희망 대신 깊은 슬픔과 회한으로 그늘져 있었습니다. 당당했던 어깨는 세월의 상처와 흔적에 짓눌려 기백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나무는 사랑했던 소년의 모습을 그리며 눈물을 짓고, 이제 내가 아무것도 줄 수 없지만, 내 평평한 밑동에서, 당신의 피곤한 몸과 영혼이 쉴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고 말하며 비바람에 단련된 자신의 밑동을 소년에게 내놓았습니다.

2.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참 목자와 거짓 목자

오늘 신약 본문인 요한복음 말씀은 이런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모습으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곧 소년인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요한복음 10장은 ‘목자장’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습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를 통해 선한 목자와 삯꾼을 구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을 볼까요? 먼저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 10:1-5)

그러나 사람들은 이 비유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6-9)

여기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누구일까요? 목자보다 먼저 온 자이기에 도둑입니다. 양들의 참 목자가 아닌 거짓 목자, 곧 도둑입니다. 도둑은 양을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그리고 이후 말씀을 통해 참된 목사, 선한 목자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1-15)

▲ 장애인주일, 4·19혁명 기념 주일

오늘은 부활절 셋째주일이자 장애인주일입니다. 특별히 4·19혁명기념주일이기도 합니다. 장애로 인해 불편을 겪고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우리 주님 예수께서 십자가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또한 생명이 생명답게 존중받고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독재와 싸우며 목숨을 잃은 이들도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신 것처럼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장애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세상, 독재가 없고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드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참 세상의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놀라운 사랑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가득 차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볼까요?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음성을 알아듣고 마침내 한 떼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다(요 10:16).” 무슨 말씀인가요?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까지 사랑하시겠다는 예수님의 마음이 엿보입니다.

물론 요한복음의 맥락에서 요한 공동체에 들지 않는 영지주의자들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지만, 오늘 우리 상황으로 적용하면 교회 공동체에 들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에게도 열려 있다는 복음의 보편성, 하나님 나라의 편재성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사랑의 희생이죠? 그러나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역시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그 목숨을 얻게 될 것이다.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 나에게는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 이것이 바로 내 아버지에게서 내가 받은 명령이다.”(요 10:16-18)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에 대한 응답은 예수님의 자발적인 선택이지 강요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발적인 순종에서 시작되어 겸손과 섬김으로 나아갑니다. 따라서 책임과 권리가 따릅니다. 이것은 양들의 큰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바로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인 히브리서 말씀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3.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7-8)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의 본을 받으라는 말씀이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인도하던 이들의 마지막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과 행실의 결말, 곧 결실이 아름다우면 그 믿음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율법주의는 음식에 관한 규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엄격한 율법 준수가 선한 일을 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동번역 말씀이 쉽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음식에 관한 여러 가지 이상한 교훈에 속지 마십시오. 음식에 관한 규정을 지키는 것보다 은총으로 마음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음식에 관한 규정을 지키는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이득을 본 일은 없습니다. 유다교의 천막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사제들은 우리 제단의 제물을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히 13:9-10)

유대교의 제사법은 음식에 관한 규정이 많고 복잡합니다. 그리고 이 음식 규정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로 하나님과의 관계와 구원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당시 유대인 그리스도교인들도 예수를 믿어도 율법과 전통에서 금한 음식을 먹으면 죄가 되고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평화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계약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그러한 규정에 얽매이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셨다고 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영원한 계약의 피를 흘려 양들의 위대한 목자가 되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은 평화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해주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힘입어 당신께서 기뻐하실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영원 무궁토록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히 13:20-21)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피 흘리신 예수님의 희생만이 죄인을 구원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입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형식보다 그 본질적인 내용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죠?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영문 밖에서(히 13:11), 더럽고 외면 받는 땅에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진정한 섬김과 희생의 삶입니다. 그것을 본받지 않고 가식적인 것, 형식적인 것만을 본받는 가짜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된 부활 신앙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 말씀을 통해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신앙인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4.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겔 34:15-16)

잃어버린 자, 쫓기는 자, 상한 자, 병든 자를 구원하고 살진 자와 강한 자는 하나님께서 없애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라고 말씀합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자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아낌없이 주되, 정의대로 심판할 것은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이 나무의 희생적 사랑의 이야기는 비단 어린이를 위한 동화일 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어른들에게도 삶의 교훈을 안겨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시간과 삶을 낭비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도 이렇습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 품어주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신의 욕심과 뜻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결국 돌아와서는 소년처럼 슬픔과 회한으로 가득 차죠? 그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우리를 온전하게 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즐거운 것을 우리 가운데서 이뤄나가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에스겔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겔 34:11-14)

사실 에스겔 34장 말씀은 백성들을 죄로 인도하고 자신들도 범죄한 이스라엘의 거짓 목자들에 대한 책망입니다. 거짓 목자 대신 하나님께서 참 목자가 되시어 당신의 양떼, 즉 선민 이스라엘을 돌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하기를 바랍니다.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 양들의 큰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선한 일을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이 아무것도 줄 수 없지만, 내 평평한 밑동에서, 당신의 피곤한 몸과 영혼을 쉴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고 말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정의 대로 먹이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고 오늘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한 삶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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