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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룻 1: 8-18; 갈 3:23-29; 요 4:7-26)성령 강림 후 넷째주일(6월20일) 6·25민족화해주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1.06.18 16:27

1. 6·25민족화해주일

오늘은 교단 총회가 지정한 6·25민족화해주일입니다. 70여 년 전인 1950년 6월 25일 벌어진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이 민족 화해라는 평화의 날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우리는 오늘 이 주일을 민족화해주일로 지킵니다. 전쟁 이후, 1951년 7월 10일 휴전회담을 시작했고, 1953년 유엔(UN)에서 인도가 한국전쟁 휴전협정 체결을 제안하여 중국군, 북한군, 유엔군 사령관이 서명하여 정전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남한군은 빠졌죠? 전쟁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6·25전쟁 이후 평화협정(Peace treaty, 종전협정 또는 강화조약)은 체결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아직도 남북은, 아니 북미는 전쟁이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법적으로는 평시(平時)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시(戰時) 상황도 아닌, 유례없이 긴 휴전이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준전시(準戰時)라는 특수한 대치 상황입니다.

대법원 판례 역시 지금이 ‘전시’인지 ‘평상시’인지 명확하게 입장을 내린 적이 없고, 사안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국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과 ‘남북관계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국가보안법도 그렇습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반국가단체입니다. 따라서 남북한 간에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은 늘 있었고, 현재 우리나라에 징병제가 유지되는 등 아직도 전쟁은 유효한 상태라는 것을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니 그러니까! 민족 화해가 필요하며 평화협정 체결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북미 간의 이야기죠? 우리가 휴전협정 체결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평화를 열망하는 우리는 북한과 미국을 대화와 평화협정 테이블로 이끌고 나와 평화협정을 맺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힘에 의한 평화인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평화, 곧 샬롬이 이 땅에 성령 안에서 참 평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화해와 평화, 그리고 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길에 한국교회가 예수의 이름으로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하나 됨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요, 또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하나이며,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민족, 모든 이들이 하나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먼저 서신서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라고 이야기합니다. 복음서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처럼 갈라진 남쪽 유대인과 북쪽 사마리아인의 하나 됨을 위해, 또한 남과 여의 차별을 극복하고, 모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아가 구약 룻기 말씀은 이방 여인인 룻과 유대인 나오미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오늘 세 본문 말씀처럼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 민족이, 남과 여로 갈라진 우리 사회가, 원주민과 이주민으로 구분된 우리나라가 다시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

서신서 말씀부터 볼까요? 오늘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한 헌장’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습니다.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의 자유에 대한 바울의 성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에 일부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이 찾아와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율법과 할례의 노예로 바꾸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잘못된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의 잘못된 율법의 행위로서의 복음을 반박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움의 우월성을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갈라디아서 3장은 먼저 믿음과 율법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합주의 경향을 보이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하고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이신득의(以信得義)’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초등교사라고 못 박아버립니다. 말씀을 볼까요?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 3:23-24)

그러나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갈 3:25)”합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갈 3:26-27)”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이야기한 후에, 바울은 하나 됨을 선포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8-29)

혈통적 아브라함의 자손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죠? 하나님의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믿음 안에서 피부색이 다르다고, 나라가 다르다고, 성 정체성이 다르다고,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고 차별하고 분열합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서 말씀은 그 모든 차이와 다름을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 되게 하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화해의 해법입니다.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3.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사실 복음서 말씀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유대 지방에 체류하시다가 갈릴리 지방으로 가시던 도중, 사마리아 지방 수가 성을 지나가실 때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야곱의 우물가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는 생수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사마리아 지방의 한 여인과의 만남을 넘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참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하나인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살펴볼까요?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요 4:7-9)

▲ 안니발레 카라치,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물론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가나안 정복 전쟁에 함께 참여했던 이들입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뿌리 깊은 적대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는 사마리아가 기원전 721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자, 일부 주민들이 추방당하고 이방인들이 사마리아 땅에 들어와 살게 됩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혼혈족이라는 이유로 배척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두 번째입니다. 곧 남유다 왕국과 북이스라엘 왕국의 골 깊은 반목과 갈등이 근본적인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뒤, 통일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었다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따라서 남 유다 사람들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좋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분파주의자라고 여긴 것입니다. 이 갈등이 아주 큽니다.

마지막으로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돕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원전 400년경 사마리아 사람들은 북이스라엘의 그리심 산에 유대인들과 경쟁하여 성전을 짓습니다. 그리고 모세오경을 제외한 유대인들의 성경을 거부합니다.

▲ 그리심 산 위치와 현재 그리심 산 정상에 있는 사마리아인들의 회당

사실 유대인들은  포로시기에 역사를 새롭게 이해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역대기 역사입니다. 역대기 역사서는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갔던 바빌론에서 귀환한 후, 민족의 정체성과 동질성, 그리고 자기의식을 세우기 위해 역사를 다시 쓴 것입니다. 따라서 역대기 역사서는 아담 이래, 하나님 백성의 역사 전체를 다루는 광대한 역사서입니다. 역대기 상하, 에스라, 느헤미야가 역대기 역사서에 속합니다. 족보, 서신과 외교문서, 시편, 기도문, 연설문, 남북왕조 실록 등을 참조하여 노골적으로 남 유다의 신앙적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합니다. 이때 역대기 사가들은 북이스라엘 역사를 반란과 분파주의의 역사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외시켜 버립니다.

▲ 사마리아 오경 두루마리

따라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남 유다와 함께 경험한 역사인 모세오경 외에는 다른 성경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사마리아 오경을 말합니다. 이것은 사마리아인의 신앙 기초를 이루는 성경으로, 유대교의 모세 5경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사마리아 오경은 약 1,900군데에서 마소라 텍스트(히브리어 구약성경)보다 70인 역(헬라어 구약성경)과 유사한 면을 보여 많은 학자는 칠십인 역과 사마리아 오경이 같은 히브리어 성서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공통된 역사는 인정하되, 분열 이후의 역사는 서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튼 역대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신학적 주제가 ‘예배’입니다. 이것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종교적 지도층인 제사장들의 신학적 관점입니다. 이들에게는 성전과 예배가 중요하기 때문에, 성전을 준비하고 건설한 다윗과 솔로몬 왕에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고, 신앙이 만사의 핵심이기에 왕들에 대한 평가나 왕위계승의 문제도 역시 정치 사회적 관점보다 신앙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왕정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세워진 다윗 왕조를 전제로 한 것임을 고집합니다.

게다가 분열 왕국 시대의 역사도, 대등한 두 국가 간의 경쟁 관계가 아니라, 신앙적이고 정치적인 정통성을 가진 남 왕국과 부당하게 남 유다에서 일탈한 북 왕국의 행보로 대조적으로 설명합니다. 오늘 우리가 남북 분단 이후 북한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대기 역사가는 북이스라엘, 곧 사마리아의 역사를 평가 절하하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사마리아 여인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었기에, 유대인 남자인 예수님께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민족의 분열을 넘어섭니다. 말씀을 볼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요 4:10-12)

사마리아 여인은 야곱의 전통을 이야기하죠? 사실 북이스라엘의 전통은 ‘야곱-모세’를 잇습니다. 남 유다의 전통은 ‘다윗-솔로몬’ 전통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역사적 전통이 아니라, 미래의 구원, 곧 영생의 샘물에 관해 여인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분열과 차이가 아니라, 여인의 실존적인 문제를 지적합니다. 곧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요 4:13-16)

사실 대화가 너무 비약과 도약이 심합니다. 요한복음의 특성이 바로 이런 ‘화두’ 같은 대화이긴 하지만, 갑자기 여인의 남편을 불러오라니, 이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를 전제로 두고 이 대화를 읽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남편은 사마리아 여인의 남편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마리아가 만났던 이방 세력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게다가 이념적으로 남북으로 갈라져 있던 사마리아의 상황을 여인은 이야기합니다.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요 4:17a).”

그러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요 4:17b-18).”라고 말씀하십니다. 대부분의 주석이 여인의 방탕한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와 맥락을 모르고 단지 보이는 상황만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불교의 선문답과 같이 아주 고도로 깊은 영적 대화들이 나옵니다. 따라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 사마리아 여인의 다섯, 여섯 남편인 당시 제국들의 지도

아무튼 다섯 남편이라고 하니, 이것은 아마도 다섯 이방 민족의 침입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있는 남편은, 지금 사마리아를 지배하고 있는 나라, 곧 로마를 뜻합니다. 이전 다섯 나라는 앗수르와 바벨론, 페르시아와 알렉산더 제국입니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제국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5년부터 기원전 30​년까지 이집트를 다스린 왕국)와 셀류커스 왕조(기원전 312년부터 기원전 63년까지 존속했던 서아시아 일대의 헬레니즘 계열 왕국)로 나뉘죠? 바로 이 나라들이 사마리아를 침입하고 지배하여 혼혈정책을 펼치거나, 착취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남성의 여성 착취와도 연결이 됩니다. 여인은 이렇게 남편의 비유로 민족의 처참한 상황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남편의 비유로 물었던 것이죠? 여인은 그 비유의 의미를 알고 지혜롭게 답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대화에서 여인은 자신의 민족적인 상황을 실존적인 상황과 연결해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주 구약 말씀에 나온 호세아서와 비슷합니다. 호세아는 자기 자신과 아내 고멜의 상황을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 그리고 주변의 강대국과 비유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의 상황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주제가 바뀝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대화의 주제를 바꾸어, 예배에 관해 토론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19-21)

여인은 예수님이 선지자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질문으로 수준을 바꾼 것입니다. 저는 이 사마리아 여인을 신약성서 최고의 ‘조직 신학자’라고 성경 공부 때 말씀드렸는데, 이렇게 예배론에 관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예배의 핵심을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2-24)

여기서 예수님은 유대인이라, 유대인의 우선성을 말씀하시죠? 그리고 사마리아인의 예배에 대해 비판합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강대국의 침략에 그 순수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포로로 잡혀갔어도 신앙의 순수성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출발은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갑니다. 예배의 보편성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나 그리심 산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넘어섭니다. 또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라는 민족성도 넘어섭니다. 오직 영과 진리, 곧 우리의 영혼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예배, 우리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사모하는 심령(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또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진리)대로 살아가고자 다짐하는 예배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마침내 깨닫게 됩니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요 4:25-26)

이렇게 사마리아 여인은 민족과 성 정체성을 뛰어넘어, 어디에서 존재하시는 메시아,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예수님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4.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 나오미와 룻, 그리고 오르바

구약의 말씀은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도 뛰어넘습니다. 구약 말씀을 볼까요? 사실 룻기는 사사시대라는 어두운 배경을 무대로 한, 짧지만 주옥같은 사랑과 헌신, 그리고 회복과 구속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임하자 나오미는 남편, 두 아들과 함께 모압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두 아들은 각각 모압 여인인 오르바와 룻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두 아들은 모압 땅에서 죽었고 두 며느리와 나오미만 남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모압 땅에 놔두고 자신만 이스라엘 땅, 곧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룻 1:8-10)

두 며느리가 거절하자 나오미는 한 번 더 권면합니다.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내 딸들아! 되돌아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룻 1:11-13)

따라서 오르바는 자기 민족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룻 1:14-15)

룻은 두 번이나 나오미의 권면을 거절하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룻 1:16-17)

모든 민족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깨달았던 룻의 고백입니다. 결국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룻 1:18)”고 함께 나오미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구원의 새로운 역사가 펼쳐집니다.

5. 예수,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오늘은 민족화해주일입니다. 화해를 위해서는 서로 간의 적대적인 감정을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뜻있는 시민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 행동’을 출범시키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국회 국민동의 청원을 지난 5월에 시작했습니다. 시작한 지 9일 만에 10만 명을 달성했습니다. 이렇게 10만 청원이 단기간에 달성된 건 일제의 잔재이며 반인권, 반민주, 반통일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의 뜨거운 열망과 간절함이 스며든 결과입니다.

▲ 남북 화해의 시작, 민족화해주일

때마침 북한이 남한을 ‘혁명 대상’으로 명시한 조선노동당 규약 속 ‘북 주도 혁명 통일론’ 관련 문구를 지난 2021년 1월 당대회에서 삭제한 사실이 뒤늦게 소개되었습니다. 북한이 북한 주도 남조선 해방 기조에서 벗어나, 공존을 모색하기 위해 노동당 규약을 바꾸거나 삭제한 것입니다. 북한도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함께 변해야 합니다. 오늘 민족화해주일이 그 변화의 기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이러한 남과 북의 변화,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곧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이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민족과 인종, 성별과 국가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또한 이 땅에 이러한 사랑과 화해의 영을 부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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