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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날과 주의 날, 그리고 하나님 나라!(욜 2:1-11; 살전 5:1-11; 막 4:21-34)성령강림 후 다섯째주일(6월27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1.06.25 15:20

1.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8월 마지막 주일까지 이어지는 성령강림절기가 올해는 열넷째 주일까지 있는데, 오늘이 다섯째 주일이니, 이제 1/3의 정도 지나갑니다. 날씨도 점점 더 더워지며 7~8월의 뜨거운 태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령강림의 그 놀라운 역사가 이제 더워지는 무더위와 함께 더욱 불타오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난주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또한 이 땅에 사랑과 화해의 영을 부어주시어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하나이며,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민족, 모든 이들이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남과 북, 남과 여, 동과 서, 세대와 세대가 하나가 되고, 화해의 성령께서 이 땅을 지배하는 나라가 바로 여호와의 날이자 주의 날,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 본문 말씀은 하나님 나라(여호와의 날, 주의 날)에 관한 말씀입니다. 먼저 구약 요엘서를 통하여 ‘여호와의 날’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는데, 이것은 놀랍게도 심판과 관계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서신서인 데살로니가 전서를 통해서 ‘주의 날’이 올 때까지 믿는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 말씀을 통해서 주의 날이 올 때까지 덕을 세운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같은 이들을 등경 위에 놓인 등불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들은 겨자씨와 같죠? 결국 예수님께서는 겨자씨 한 알과 같은 하나님 나라를 소개해 주십니다. 이렇게 심판의 날이자, 구원의 날인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성령과 함께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인 요엘서를 볼까요? 요엘서는 크게 두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2장인 첫째 단락은 메뚜기 재앙과 가뭄을 다루고, 3~4장인 둘째 단락에서는 재앙과 가뭄이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다는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략한 말씀이지만, 여호와의 날, 곧 하나님 나라의 핵심에 관한 결정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요엘이 말하는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적한 이스라엘 백성과 또한 열방에 대한 심판의 날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자들에게는 장차 복이 주어질 것이라고도 예언합니다. 말씀의 배경을 먼저 살펴볼까요?

▲ 분열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 남과 북 왕국으로 분열(기원전 930년)된 지 약 100여 년이 지난 시기입니다.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왕국 사이의 정치적 갈등은 거의 해소되었으나, 종교적으로는 두 왕국 모두 정치적, 종교적으로 부패와 반역의 역사를 거듭하던 시기였습니다(물론 신학적으로 요엘의 배경을 바벨론 포로 이후의 상황으로 보기도 합니다만). 이런 시기에 남 유다 땅에는 엄청난 ‘메뚜기 재앙과 가뭄’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 이후의 상황이나 마찬가지죠? 물론 지금 코로나 팬데믹의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도 같습니다.

▲ 메뚜기와 메뚜기 떼

아무튼 이를 계기로 요엘 선지자는, 뜻하지 않은 이 엄청난 재앙의 원인을 찾아냅니다. 곧 남 유다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일차 징계이며 나아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남유다 왕국의 멸망을 초래할 무서운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이라 선포합니다. 지금 임한 메뚜기 재앙과 가뭄은 심판에 대한 경고로, 하나님을 떠난 유다 백성들에게 주신 심판의 예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엘은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선포하게 됩니다.

물론 요엘은 희망적인 말씀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하는 은혜도 주시는데, 그 회복의 날이 되면 하나님은 대적들을 쳐부수고 신실한 자들에게 비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합니다. 곧 요엘서 1장에서 메뚜기 재앙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한 요엘이 이제 메뚜기 떼의 습격을 침략군의 침공에 비유합니다만, 만약 유다 백성들이 신속하게 마음을 찢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욜 2:12-14).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은 거기까지 말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심판의 경고까지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욜 2:1-2)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이렇게 심판의 날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요엘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 메뚜기 떼의 습격을 침략군의 침공으로도 동시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 그것을 피한 자가 없도다. 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그들이 산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그 앞에서 백성들이 질리고,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욜 2:3-6)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많고 강한 백성들, 곧 메뚜기 떼들이 침략군처럼 자기의 길로 나아가며 심판을 진행합니다. 들판의 거대한 메뚜기 떼, 우리 부산과 같은 해안가로 치면, 거대한 해일이 몰려드는 그런 모습입니다. 물론 이것은 적의 침략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성과 백성들의 집에 메뚜기 떼, 곧 적들이 쳐들어옵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들이 용사 같이 달리며 무사 같이 성을 기어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되 그 줄을 이탈하지 아니하며 피차에 부딪히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며 무기를 돌파하고 나아가나 상하지 아니하며 성 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에 달리며 집에 기어오르며 도둑같이 창으로 들어가니,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욜 2:7-10)

메뚜기 떼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떨고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었다고 합니다. 놀랍습니다. 여호와의 날, 곧 심판의 날이 이렇게 두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요엘은 이렇게 묻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욜 2:11)” 아무도 하나님의 이 심판을 막을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심판의 날인 여호와의 날이 도둑같이 임할 것입니다. 요엘도 ‘도둑같이 창으로 들어가니’라고 말하고 있죠? 사도 바울도 요엘과 비슷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서신서 말씀을 볼까요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알기 때문이라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1-3)

요엘서와 같이 주의 날이 갑자기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산모의 해산 날처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엘서 본문 말씀과 달리 데살로니가 전서는 구원의 말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4-8)

깨어 정신 차리라고 합니다.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구원의 소망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날은 우리를 심판하시기 위한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의 13 서신 가운데 제일 먼저 기록된 서신서입니다. 또한 신약성서 전체 중에서도 가장 먼저 쓰였습니다. 분량이 작고 내용은 단순하지만, ‘재림 서신’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아주 중요한 서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혼란한 지식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본 서신을 기록하였습니다. 말씀의 배경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 바울의 2차 전도여행지와 데살로니가교회 유적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고린도에 머물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이때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선교팀이 빌립보 교회를 개척한 이후, 데살로니가에 세이레, 곧 세 주간 머물면서 전도하여 개척한 교회였습니다(행 17:1-4). 마케도니아 지방의 수도로 로마의 정치적, 경제적 요충지였던 데살로니가에 세운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살전 1:3)로 가득한 교회였습니다.

이렇게 신앙이 좋았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 문제, 곧 종말론에 관심이 있어서 디모데를 통하여 바울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당시 교회의 관심사였던 이 문제에 관해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통해 잘 설명해주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은 주의 재림시기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께서 갑작스레 임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빛의 아들들에게는 그날이 갑작스러울 수 없음을 설명하면서 위로를 합니다. 따라서 깨어 근신하면서 주의 재림을 소망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살전 5:9-11)

중요한 말씀이 나오죠?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권면하고 ‘덕을 세우라(집을 세운다는 의미)’고 하는데, 지금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고 있는 그대로 하라고 합니다. 아주 큰 칭찬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잘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하는 대로 서로 덕을 세우고 도둑같이 임할 주의 날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등경 위의 등불과 같이 모범이 되는 교인들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등불의 비유가 바로 이러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번역도 어렵고, 말도 옛날 말이라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3.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 등경 위의 등불

“예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등불을 가져다가 됫박 아래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놓지 않느냐? 감추어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막 4:21-23)

계속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막 4:24-25)

종말의 때까지 어떻게 하라고 하시나요? 스스로 삼가라고 합니다. 헤아리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자기 절제와 이웃 사랑입니다. 이것이 겨자씨와 같은 신앙입니다. 따라서 심판의 날인 여호와의 날이자 구원의 날인 주의 날, 곧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입니다.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막 4:30-32)

사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진리를 비유로 가르치셨기에 오늘 복음서 마가복음 4장을 ‘비유장’이라고 합니다. 먼저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막 4:1-9).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의 앞부분인 ‘등불의 비유(막 4:21-25)’가 나오죠? 그리고 성장하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 비유가 나옵니다(막 4:26-32).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풍랑을 잔잔케 하신 내용이 나옵니다(막 4:35-41). 등불의 비유, 겨자씨 비유는 앞에서 살펴보았으니, 씨앗의 비유를 볼까요?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막 4:26-29)

▲ 스스로 자라는 씨앗

중요한 말씀이죠? 씨앗이 스스로 자랍니다. 자라서 추수 때를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도 구체적인 시기와 날짜는 알 수 없지만, 열매가 익으면 추수 때가 가까운 것을 아는 r서처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마음 밭에 뿌려져 잘 자라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평상시 하던 대로, 서로 권면하고 덕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는 이해하기 쉽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막 4:33-3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쉽습니다. 등경 위의 등불처럼 우리의 선한 빛이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세상을 비춰야 합니다. 스스로 삼가고, 다른 사람을 헤아려야 합니다. 겨자씨와 같이 작은 것이지만,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믿음이 성장하여 씨앗이 자라듯이 잘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요엘이 경고한 여호와의 날, 곧 심판의 날이 도둑같이 임하는 주의 날, 곧 구원의 날,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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