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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다!(신 8:1-20; 롬 13:1-7; 마 22:15-20)성령강림 후 여덟째주일(7월18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1.07.16 17:49

1.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이 땅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은?

지난주까지 우리는 3주에 걸쳐 주의 날, 곧 하나님의 나라를 주제로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종말의 때와 연결이 되는 심판의 날이자 구원의 날이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종말의 임박성을 말씀하셨지만, 사도 베드로는 유예된 종말론을 이야기합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벧후 3:8)다고 시간 개념을 확장합니다.

이렇게 시간 개념을 확장한 이유, 곧 종말을 유예한 이유를 우리는 사도 바울에게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인가요? 사도 바울은 종말의 때에, 창세 전에 택함 받은 모든 피조물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통일)가 되어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그런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라는 것(엡 1:10-12)도 알았습니다.

자, 다시 성령강림절기 말씀들을 정리해 볼까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께서 강림하시고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각자가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지난 성령강림후 일곱째 주일까지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주 성령강림후 여덟째주일부터 성령강림절기 마지막인 열넷째 주일까지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이 땅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에 관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성령강림 절기 전반부는 미래의 빛에서 현재를 이렇게 살아가라 하는 말씀이고, 후반부는 현재의 빛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9월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교회력의 시작인 창조절기까지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지금부터 시작되는 성령강림절기 후반부 말씀은 바로 그런 말씀들로 이어집니다. 특별히 오늘 세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율법)에 따라 살되, 현재 살고 있는 사회와 국가에 관해서도 최선을 다하라고 권면합니다. 먼저 구약 말씀을 통해서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이스라엘의 신세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또한 서신서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은 위에 있는 권세, 곧 통치하는 이들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조세와 관세를 바치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세금의 문제에 관해 복음서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세금을 인정합니다. 이 땅의 질서를 인정한 것이죠? 특히 복음서 본문이 마태복음 22장 20절까지인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후의 말씀은 하늘의 질서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은 끊어지는 부분을 유의하여 읽어야 합니다.

2. 내가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라!

먼저 구약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말씀은 모세가 120세가 되어 이스라엘 신세대들에게 행한 고별 메시지입니다. 3부분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신명기의 원래 의미는 ‘두 번째 율법’, ‘율법의 반복’인데, 레위기의 율법이 제사장과 레위 지파를 위한 설명이라면 신명기의 율법은 일반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살아남은 신세대들에게 그들 부모 세대의 쓰라린 본보기에서 배워야 할 것을 ‘순종’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8장 본문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의 은혜를 절대로 잊지 말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먹고살 만해졌을 때, 출애굽의 은혜를 망각하고 불신앙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과 또 그런 이들에게 내려질 형벌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1-2)

여기서 그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주신 만나는 육의 양식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입니다. 이렇게 먹이시고 입히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신 8:3-6)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신 8:7-10)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어떻게 될까요? 모세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1-14a)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먹고살 만해졌을 때, 교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때로는 시험이 있을 것이나, 그것은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라고도 부연 설명합니다.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14b-16)

그리고 이 복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과 맺은 언약의 결과입니다. 특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죠?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 8:17-18)

그럼에도 이 언약을 파기하고 불순종하여 그릇된 길로 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반드시 멸망시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신 8:19-20)

3.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자, 이렇게 신앙인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언약, 율법에 순종해야 하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세상의 법과 의무도 따라야 합니다. 따라서 로마서 13장에서 바울은 국가와 사회권력에 대한 성도의 의무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성도가 국가권력을 무시하거나 사회질서를 문란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2)

바울이 로마교회에 쓴 편지가 로마서죠? 요한계시록에서는 로마 제국을 ‘음녀 바벨론(계 17:5)’이라고 비판하는데, 그 제국의 권세에 복종하라고 하니,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본문은 많은 독재자가 인용한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2차 세계 대전 전에 독일 교회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충성을 다 하는 것을 이 본문을 통해 정당화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한때 박정희 정권의 실세였던 김종필 씨가 이 본문을 가지고 “박정희 정권이 하나님의 정권”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전두환 씨도 군사 쿠데타에 성공하고 난 다음, 예장통합 교단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 우리 기장 교단의 총회장을 지닌바 있는 초동교회 조향록 목사를 비롯한 중요한 교회 목사들이 자발적으로 전두환 정권을 합리화하려고 꺼낸 구절이 바로 이 본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당시 로마교회의 상황을 잘 살펴보아야 이 말씀이 이해됩니다. 당시 로마의 상황은 로마 황제를 이해할 때, 가장 잘 파악이 됩니다. 먼저 로마 황제 계보를 살펴볼까요? 로마 최초의 황제는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에 천하에 호적령을 내렸던(B.C. 8년) 가이사 아구스도(B.C.27-A.D.14년)였습니다(눅 2:1). 그의 본명은 옥타비아누스였고, 원로원과 협상해서 공화정을 철폐하고 초대 황제가 된 인물입니다. 아우구스투스가 나이 들어 죽자, 그의 부인 리비아의 친아들로 양자가 된 티베리우스(A.D.14-37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 1~6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살아있는 황제에게도 제사를 지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따라서 황제에 대한 제사 거부는 곧 반국가적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만 예배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탄압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티베리우스가 자연사한 후 황제의 자리는 티베리우스의 조카 게르마니쿠스의 아들 칼리굴라(A.D.37-41년)에게 돌아갔습니다. 칼리굴라는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했던 황제입니다. 국고를 바닥냈으며 자신을 신이라고 착각해,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의 신상을 세울 것을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칼리굴라는 폭정을 일삼다 암살당합니다.

이렇게 어수선한 정국에 근위대가 나서서 게르마니쿠스의 동생 글라우디우스를 황제로 지명했습니다. 칼리굴라의 삼촌이죠? 그러나 글라우디우스가 생각보다 빨리 죽었는데, 부인에 의해 독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후 글라우디우스의 뒤를 이은 5대 황제가 바로 그 유명한 네로였습니다. 글라우디우스의 네 번째 아내의 아들이며 16세의 어린 나이에 황제에 오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과 관련해서는 먼저 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Claudius, B.C.10년~A.D.54년, 통치기간 41-54년)부터 살펴볼까요? 이스라엘과 관련된 부분만 살펴본다면,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49년에 로마에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강제로 추방하는 반유대주의 정책을 실시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당시 약 2만 5천 명의 유대인들이 어쩔 수 없이 그리스의 고린도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때 나중에 바울의 선교 동역자가 되는 로마 귀족 브리스길라와 유대인 남편인 아굴라 부부도 로마에서 추방되어 떠나 고린도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들은 로마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고린도로 이주하여 생업이 같은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행 18:2-3).

아무튼 바울은 로마서를 55~56년 경, 3차 선교 여행이 끝날 무렵 고린도에서 썼습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은 다음이죠? 다음 황제인 5대 네로는 우리가 잘 알듯이 폭군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초창기에는 전임자와는 달리, 보다 친대중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기득권을 가진 원로원과 대립각을 세웠던 황제입니다. 로마 엘리트들이 경멸했던 직업인 배우가 되어, 친히 무대에 서기도 했고 노래를 작곡하여 부르기도 했습니다. 유능하고 영특한 황제였습니다.

특히 네로는 제전(祭奠, 모든 제사)과 검투를 포함한 축제를 대폭 늘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축제를 통해 대중들에게 많은 음식과 여흥을 베풀었고 이를 통해 대중은 잠시나마 귀족들과 부자들의 향락적 생활에 동참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원로원과 귀족들에 대항하는 네로의 치밀한 정치적 계획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기득권 세력인 노론들 틈바구니에서 정약용 등 남인들을 등용하여 개혁정책을 펼치려 했던 정조 왕 때와 비슷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행보 덕분에 네로는 대중적 지지도가 높았습니다. 얼마나 인기가 높았느냐면 네로가 살해된 후, 로마의 속주에 있는 대중들 사이에는 네로가 살아 있고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네로 부활설’이 널리 퍼졌습니다. 이렇게 네로 황제는 ‘대중적 메시아’로 기억될 만큼 초창기 정책은 민중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네로는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추방당한 유대인들을 로마로 돌아오도록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네로 황제 때, 다시 로마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에 돌아온 그리스도인들은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의 경험을 가지고 반 체제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엘리트 출신들이 많았습니다. 부유하고 학식이 높았고, 반체제적 활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통해 이러한 로마의 사정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가령 전임 황제 클라우디우스와 현재 황제인 네로의 도시 정책과 원로원과의 관계, 대중을 통치하는 능력 등. 그리고 반체제적인 활동을 하는 엘리트 출신 디아스포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활동도 들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특히 예루살렘에서 메시아가 나타나 하나님 나라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이스라엘 중심적 구원 계획’을 실패로 단정했습니다. 이들은 로마의 ‘이스라엘계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이제 구원 계획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로마서에서 바울은 끊임없이 구원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우선성을 언급합니다.

아무튼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바울과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이미 나타나셨고, 지금 자신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떻게 보면 ‘열광적 종말론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반체제적인 성향이 강했습니다. 이들은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로마 황제에게 세금 내는 것을 거부하도록 하고, 도시 축제에 참여하지 않고, 자기들끼리의 종교행사에만 몰두하도록 이끕니다. 자연히 그 사회의 폐쇄적인 집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바울의 권면을 들어 볼까요?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롬 13:3-4)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뭐라고 권면합니까? 선을 행하라고 하죠? 폐쇄적인 집단,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교회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로마 교인들의 양심에 호소합니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 13:5-7)

▲ 짐승의 숫자 666과 일곱 머리의 짐승 위에 올라탄 대탕녀 바빌론(1800년대 러시아)

결국 네로 황제 초기, 통치자가 제대로 통치할 때는 국가와 사회권력에 순종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다만 이후 네로는 변심하여 로마를 망치고, 기독교를 탄압한 인물로 역사에 이름이 남습니다. 네로 황제 당시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하였죠? 원로원에서는 네로를 ‘국가의 적’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짐승의 숫자 ‘666’은 바로 네로를 상징하고 음녀 바벨론은 로마 제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면,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우리는 네로를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4.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러한 바울의 권면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세금 문제에 관해 잘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로마에 세금 바치는 것에 관한 질문을 할 때, 뭐라고 말씀하나요? 말씀을 볼까요?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마 22:15-17)

바리새인들이 세금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마 22:18-20)

이 형상과 글은 로마 황제의 형상과 글이죠? 따라서 가이사의 것입니다. 이후에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여기서 끝이 나죠? 구약과 서신서의 말씀과 연결되려면, 여기서 끊어 읽어야 합니다. 물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예수님께서 언급하시지만, 이것은 또 다른 주제가 됩니다. 땅의 질서와 하늘의 질서죠? 아무튼 오늘 세 본문 말씀의 맥락에서 핵심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합니다. 세금을 내는 것이 온당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은 권력이 민중들을 위해 정당하게 사용될 때라는 것을 우리는 초창기 네로의 통치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네로가 변심하여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때 우리는 요한계시록이나 베드로 전후서를 통해 불의한 권력에 대하여 대항하라는 말씀을 받게 됩니다. 성경 말씀은 이렇게 맥락과 상황 이해 없이 읽게 되면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우리는 이렇게 선한 권력에는 순종을, 불의한 권력에는 저항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또한 각자가 처해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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