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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면서 못 걷게 된 이가 구걸했던 이들의 성전으로 들어가다!(겔 47:1-12; 행 3:1-10; 막 1:29-39)성령강림 후 열한째 주일(8월8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1.08.06 16:29

1. 못 걷는 이, 못 듣는 자, 눈먼 이, 각종 질병 걸린자들이?

지난주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자기희생적인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와 개인의 놀라운 기적 사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러한 가르침과 권위, 곧 기적의 사건은 귀신 들린 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초대 교회의 이러한 자기희생적인 삶의 새로운 전통은 이제 현실 세계를 넘어 영적인 세계, 신비의 세계, 마침내 MZ세대의 메타버스 세계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부터 계속되는 세 본문 말씀도 동일한 말씀입니다. 성령강림절기 마지막까지 이러한 치유의 사역이 계속해서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네 주간의 세 본문 말씀을 미리 살펴보면, 그 치유의 부분이 각각 다릅니다. 이번 주는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를 고치는 사건이 중심이 됩니다. 다음 주인 성령강림 후 열둘째 주일은 ‘못 듣는 자’의 귀가 열리고 맺힌 혀가 풀리는 기적이 나옵니다. 그리고 열셋째 주일은 ‘눈먼 이’가 다시 보게 되는 기적이 이어집니다. 맹인들에게 광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성령강림절기의 마지막인 열넷째 주일에는 삼위일체교회력 첫째 해의 마지막이라, ‘각종 질병 걸린 자들’을 고치는 기적으로 끝납니다. 엘리사가 아람의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치고, 예수님께서는 무덤 사이에 있는 더러운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러한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으로 성령강림절이 끝나고, 삼위일체교회력 첫째 해가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주제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 인간을 불쌍히 여기사 고치시고 치유해주시는 은총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사건이, 또한 하나님의 은총이 오늘 이 땅에, 지금 우리들에게도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먼저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귀신들을 내쫓으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말씀은,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된 이를 고친 사건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약의 말씀은 에스겔이 본 환상으로, 새 예루살렘 성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모든 만물을 치유하는 환상입니다. 이것은 치유와 회복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서 말씀은 지난주 복음서 말씀에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나온 다음의 일입니다.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막 1:29-31)

여기서 시몬은 나중에 예수님으로부터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는 수제자 베드로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다고 전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열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아마도 이때 베드로의 장모는 물론 그의 아내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5절에 나오는 바울의 말에 의하면, 베드로는 그의 전도 여행에 아내와 동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 사건을 본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막 1:32-34)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은 이렇게 각종 병든 사람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귀신이 예수님을 앎으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아직 때가 아니라는 말씀이죠. 따라서 그때까지 예수께서는 자신의 할 일을 하십니다. 바로 ‘전도’의 사명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치유의 사역을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막 1:35-39)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때는 언제, 어떤 때일까요? 예수님의 전도사역, 곧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실현이자 치유사역이 완성되는 때가 아닐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완성이 되고, 동시에 부활과 승천, 그리고 교회의 탄생에서 시작되는 때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아 자기희생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면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 안에 이뤄진 하나님 나라를 살며 땅끝까지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며 치유 사역을 행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그랬습니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했고 치유의 기적이 넘쳐났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말씀이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말씀을 볼까요?

2.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행 3:1-2)

▲ 헤롯 성전 모형과 미문의 위치, 그리고 현재 미문의 모습

미문(美門)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문입니다. 고린도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양식은 기원전 5-6세기 동안 그리스 고린도에서 발달한 대표적인 그리스의 건축 양식입니다. 기둥 끝에 지중해 연안 지방에서 자생하는 가시가 있는 다년생 식물인 아칸서스 잎을 새겨 넣어 화려하게 장식하여 아름답기 때문에 미문이라고 불립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아테네의 제우스 신전이나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을 들 수 있습니다.

▲ 고린도 양식으로 만들어진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과 아칸서스 잎
▲ 그리스 건축 양식 초기 도리아, 이오니아(B.C.6세기), 고린도 양식(B.C.5-6세기)

참고로 그리스 건축의 초기 양식은 도리아 양식입니다. 이방인인 아리안 계통의 도리아인들이 그리스로 남하하여 지금의 그리스 본토 지역을 휩쓸고 다녀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을 무너뜨립니다. 철기 문명으로 무장했던 잔인한 도리아인들은 그리스 본토 주민들을 말살하는 정책을 펼칩니다. 이로 말미암아 미케네인들 일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버리고 척박한 그리스 산악지대로 피신하거나, 배를 타고 에게해를 넘어 아나톨리아 반도(지금의 터키)로 달아나 그곳 해안가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 바로 호메로스입니다. 그는 오래전 미케네 문명의 옛 영화를 그리워하여 읊조리듯이, 최초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후대에 소개하였습니다.

▲ 도리아인의 그리스 침입과 본토 미케네인들의 이오니아(터키) 이주

아무튼 이러한 도리아인들이 건축한 건물의 양식이 바로 도리아 양식입니다. 대표적인 도리아인들의 폴리스가 스파르타죠. 이들의 건축 양식은 비교적 간결하고 중후하며 남성적입니다. ‘스파르타식 건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나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이 바로 도리아 양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도리아 양식으로 만든 파르테논 신전과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이후 양식은 이오니아 양식인데,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의 이오니아 지방에서 발달하여 기원전 6세기 이후 그리스 전역으로 전파된 양식입니다. 남성적인 도리아 양식과 달리, 기둥이 가늘고 날씬해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의 아르테미스(아데미) 신전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이 이오니아 양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이오니아 양식으로 만든 에베소의 아르테미스(아데미) 신전과 영국의 대영박물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성전 미문을 ‘여자들의 방에서 윗방으로 통하는 동쪽의 큰 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날은 황금문(Golden Gate)이라 부릅니다. 이 문을 통해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면 바로 감람산이 나옵니다. 특별히 미문은 구약에서는 ‘왕의 문’으로 불렸습니다. 왕이 동쪽 문을 통해 성전에 드나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말씀에 의하면, 나면서 못 걷게 된 이가 미문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을 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행 3:3-6)

구걸하는 그에게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무엇을 주나요? 아니, 그들에게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은과 금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으로 명하여 그를 일어나 걸으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이름에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구걸하던 사람을 일으켜 세웁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행 3:7-10)

할렐루야! 은과 금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이 그를 고쳤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단지, 못 걷게 된 사람이 걷게 된 기적만 보면 말씀의 심오한 깊이를 깨닫지 못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자세히 말씀을 살펴볼까요? 원래 이 사람이 어디에 있었죠? 성전 안이 아니라,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못 걷는 그를 메고 성전 미문 앞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구걸해서 먹고살도록 한 것이죠?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를 걷게 하고, 그가 구걸했던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성전에 함께 들어가 있게 합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예배당 밖에서 구걸하던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 고침을 받고, 예배당 안에 들어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전 안에 있던 사람들은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그 사람이 변한 것을 보고 놀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놀람이 두 번 반복되었으니(with wonder and amazement), 요즘 말로 하면 ‘찐놀람’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예수님의 치유사건이 단순한 치료를 넘어서, 질병에서 회복된 사람이 공동체로 복귀하는 치유의 사건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참된 치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외된 한 사람이 온전히 그가 속한 공동체로 돌아와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치유사건은 궁극적으로 ‘성전’이 제 역할을 감당할 때, 교회가 교회다울 때, 오늘 우리 교회에서도 이뤄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성전 안과 밖을 나누어 밖에 있는 소외된 자, 병든 자, 고통받는 자를 내버려 두고 성전 안에서 거룩한 척, 경건한 척 예배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밖으로 흘러넘쳐 세상을 변화시키고 회복시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구약 말씀이 바로 그 예시입니다.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황량한 땅을 풍성케 하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3.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말씀을 볼까요? 오늘 구약 본문 말씀인 에스겔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사해 골짜기의 황무지로 흘러 그 땅을 기름진 땅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광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나오는 생명수는 하나님의 치유와 구원 사역, 곧 성령의 역사죠? 그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전 우주를 풍성하게 소생시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말씀을 볼까요?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나는 다시 그분에게 이끌리어 성전 정문으로 가보았다. 그 성전 정면은 동쪽을 향해 나 있었는데, 그 성전 동쪽 문턱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물은 제단 남쪽으로 해서 성전 오른쪽 벽에서 뻗은 선을 타고 흘러내려 갔다. 나는 그분에게 이끌리어 북문을 나가 바깥길로 해서 바깥 동문께로 돌아가 보았다. 물이 그 대문 오른쪽에서 솟아나는 것이 보였다.”(겔 47:1-2)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성전 밖, 성벽 아래를 지나고 강둑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 흘러갑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그분이 측량줄을 가지고 동쪽으로 재면서 가다가 천 척(1척은 33.3cm, 곧 330m 정도)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물을 건너라고 하기에 건너보니 물이 발목에 찼다. 그분이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척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물을 건너라고 하기에 건너보니 물이 무릎에 찼다. 그분이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척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건너라고 하기에 건너보니 물이 허리에 찼다. 그분이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척 되는 곳에 이르러보니,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이나 치면 건널까, 걸어서는 건너지 못할 강이 되어 있었다.”(겔 47:3-5)

에스겔이 본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는 점점 흘러갑니다. 물은 점점 불어나는데 천 척 쯤 가서는 발목까지, 다시 천 척을 가서는 강물이 되어 무릎까지, 다시 천 척쯤 가서는 강물이 허리까지, 그 후 천 척을 더 가서는 걸어갈 수 없는 강물로 불어납니다. 이때 에스겔의 환상에 나오는 사람이 에스겔에게 묻습니다.

“‘너 사람아, 보지 않았느냐?’하고 말하며 그분은 나를 강가로 도로 데리고 갔다. 되돌아와 보니 강을 끼고 양쪽에 나무가 무성한 것이 보였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이 물은 동쪽으로 가다가 메마른 벌판으로 흘러내려 사해로 들어간다. 이 물이 짠 사해로 들어가면 사해의 물마저 단물이 된다. 이 강이 흘러 들어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온갖 생물들이 번창하며 살 수 있다. 어디로 흘러 들어가든지 모든 물은 단물이 되기 때문에 고기가 득실거리게 된다. 이 강이 흘러 들어가는 곳은 어디에서나 생명이 넘친다.” (겔 47:6-9)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가에 이르니, 강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않고 열매가 끊이지 않습니다. 달마다 새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흐르는 이 물은 세상을 향해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의미합니다. 복음은 죄로 인해 죽어있는 영혼에게 흘러갑니다. 낮고 낮은 사람들에게 찾아갑니다. 왜냐하면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전에서 흐르는 물은 동시에 성령의 충만을 뜻합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새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아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세상 곳곳으로 흘러들어 천하 만민을 살리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분은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강의 물고기 종류는 지중해의 그것만큼이나 많아서 엔게디에서 에네글라임에 이르기까지 그 언덕에는 어부들이 그물을 쳐놓고 늘어서 있으리라(겔 47:9-10).” 엔게디는 사해 중간에 있고 에네글라임은 사해 북쪽에 있습니다. 사해(死海)는 죽은 바다라는 말이죠? 물이 짜서 사람이 마실 수 없습니다. 생명력이 없고 죽었다는 말입니다. 엔게디의 뜻은 ‘새끼 염소의 샘’이라고, 에네글라임은 ‘두 송아지의 샘’이라는 말인데, 사해 바다 근처에 있는 이 샘들이 새끼 염소와 송아지 같은 어린 가축들이 목을 축일만 한 물밖에 없다는 말로, 그만큼 많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흘러 들어오면 이 샘에서 그물을 치고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만큼 물이 달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볼까요?

▲ 엔게디 위치와 현재의 엔게디 모습

“그러나 수렁이나 웅덩이에 있는 물은 단물이 되지 않고 여전히 짠물로 남아 있으리라. 이 강가 양쪽 언덕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며 잎이 시드는 일이 없다. 그 물이 성소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다달이 새 과일이 나와서 열매가 끊어지는 일이 없다. 그 열매는 양식이 되고 그 잎은 약이 된다.”(겔 47:11-12)

▲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 환상

흐르지 않는 물, 곧 수렁이나 웅덩이에 있는 물은 단물이 되지 않는다고 하죠? 여전히 짠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우리 속담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흐르는 물이 지나가는 곳곳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고 잎이 시들지 않습니다. 열매가 끊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양식이 되고, 그 잎은 약이 됩니다. 왜냐하면 성전을 통하여 생명수가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5. 걷고, 듣고, 보고, 각종 질병에서 나음을 입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에스겔이 본 성전에서부터 흘러나온 물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생명수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성령의 충만으로, 생명 회복과 치유사건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서 말씀처럼 못 걷는 이가 걷게 되어 성전에서, 그가 구걸했던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성령강림절기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못 듣는 자의 귀가 열리고, 눈먼 이가 다시 보게 되고, 각종 질병 걸린 자들이 나음을 입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의 완성은 요한계시록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볼까요?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1-2)

할렐루야! 이렇게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거룩한 생명수는 생명을 살리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닿는 모든 곳이 다시 회복되고 살아납니다. 또한 생명수가 흘러 강을 만드는데, 강가의 과일나무 열매와 잎사귀를 통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면서 못 걷는 이가 걸으며, 열병에 걸린 이들이 나으며, 귀신 들린 자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옵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가 수렁이나 웅덩이처럼 고인 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늘 새로운 물이 흘러들어와 밖으로 흘러나가야 합니다.

이 말씀은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곧 생명수와 과일나무의 치유 역사가 나에게서 멈추지 않고 죄와 사망이 있는 곳으로 흘러가도록 힘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지역에 생명수와 과일나무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이러한 생명수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행진에 성령의 능력과 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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