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칼럼
로마 제국 멸망의 와일드 카드와 위드 코로나 시대 종교의 길세계 멸망의 키워드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1.12.22 16:08

1. 로마 제국의 멸망을 보는 두 가지 시선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 제국 쇠망사』(민음사, 2010, 전6권 세트)에서 로마의 멸망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의 쇠퇴는 무절제했던 위대함이 맞닥뜨리는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번영은 무르익으면 쇠락하는 게 원칙이며, 정복한 범위가 넓을수록 몰락할 원인이 배가된다. 시간 혹은 우연이 부자연스러운 지지를 거두는 순간, 거대한 조직체는 자신의 무게에 굴복하고 만다.”

그러나 오클라호마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카일 하퍼는 로마 멸망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습니다. 곧 기후와 질병입니다. 『로마의 운명』(더봄, 2021)에서 하퍼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연은 어둠을 틈타 기습하는 군대처럼 인간 사회를 붕괴시키는 또 다른 무시무시한 장치를 가동했다. 그것은 바로 감염병이었다. 로마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생물학적 변화가 물리적 기후 변화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물론 기후 변화와 감염병은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연관되어 서로 겹쳐서 일어나지만 동일한 현상은 아니다. 다만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우리가 관심을 두고 탐구할 수 세기 동안, 기후 변화와 질병은 서로 어우러져 로마 제국의 운명을 결정했다.”

사실 로마 제국의 몰락은 ‘하나의 도시 안에서 세계가 멸망한 사건’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인 기원후 400년으로 시간 여행을 해 볼까요? 이 당시 로마에는 28개의 도서관과 856개의 대중목욕탕, 그리고 4만 7,000개의 아파트 블록이 있었고, 7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당시 로마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였고, 지구 인구의 4분의 1의 삶을 지배하는 제국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만에 이 놀랄 만큼 번창하던 제국은 무너졌고, 로마 시의 인구는 2만으로 줄어 들었습니다.

사실 로마인들은 홀로세(Holocene世, 현세, 곧 18천년 전 또는 2만년 전부터 현재까지)라 불리는 역사적 기후 시대의 특정한 순간, 지중해 전 지역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이때는 급격한 기후 변화가 지연되던 시기였습니다. 아무튼 이 당시 로마인들이 이미 알려져 있던 세계를 가로질러, 열대의 변두리까지 뻗어나가 도시화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따라서 오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예측하지 못한 자연의 역습을 받게 됩니다. 로마인들은 어리석게도 바이러스가 폭발적인 진화를 시도할 수 있는 질병 생태계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로마는 다른 제국이 아니라, 신종 전염병이라는 적에 포위되어 멸망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인간의 야망에 대한 자연의 승리였습니다. 하퍼의 말입니다.

“로마 제국은 서기 160년대에 신종 감염병의 진화와 마주쳤다. 그것은 운명적인 만남이었으나, 불가피한 것은 아니었다. 역병은 성장이 과도할 경우에 예측할 수 있는 역효과는 아니다. 그러나 전염병의 발생이 순전한 우연도 아니었다. 제국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서식자에게 적합한 환경을 갖추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밀집된 도시 거주지, 지형의 끊임없는 변화, 제국 내부와 외부로 강력하게 연결된 교역망, 그 모든 것이 특정한 미생물이 번식하기 좋은 생태계 형성에 기여했다.”

2. 로마 제국 멸망의 첫 번째 와일드 카드, 질병

▲ 쥘엘리 들로네 <로마의 흑사병>(1869)

이렇게 카일 하퍼는 제국 로마의 전성기인 2세기부터 정치적으로 분열되고 경제적으로 황폐해져 몰락해가던 7세기까지를 주도면밀하게 추적해 나가며 최첨단의 기후학과 유전학적 발견을 통해 거대한 역사적 서사를 놀랄 만한 솜씨로 엮어나갑니다. 그리고 로마의 운명이 단지 황제의 정치력이나 야만인들의 침략에 의한 것이 아니라. 화산 폭발과 태양의 주기, 불안정한 기후 그리고 파괴적인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의해서 멸망하였음을 보여줍니다. 팬데믹의 여파로 나타난 기근에 관해 하퍼는 이렇게 기록을 찾아냅니다.

“갈레노스(Galenos, 129~199, 로마의 허준이라 불리는 고대 의학의 완성자로 해부학과 생리학, 진단법과 치료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침)는 ‘로마에 복속된 많은 나라에 수년 동안 기근이 지속되고 있다’라고 기록했다. 굶주린 도시 거주자들이 시골로 내려가 ‘그들이 평소처럼 일 년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많은 밀을 확보했다.’ 그로 인해 밭은 초토화되어, 시골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가 나뭇가지와 풀로 연명했다. 이것은 고대 로마 제국이라는 집단적 경험에서 대규모 기근에 대한 가장 생생한 증언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런 상황이 팬데믹의 여파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역병으로 인해 병사들 모집도, 또한 위기 극복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퍼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국의 운명은 260년대에 저조기를 맞이했다. 인구도 바닥을 쳤다. 복구작업은 훨씬 느려졌다. 키프리아누스 역병과 광범위한 위기로 방향을 잃었다. 평화에 익숙하던 내륙 지역은 잔인하게 침범당했다. 오래 이어져 내려온 사회의 지배계층이 무너졌다. 서로마 제국 전체에서 농촌의 거주지 유형에 균열이 생겼다. 도시는 결코 예전과 같아지지 않았다. 가장 건강했던 고대 후기의 도시들조차 이전보다 규모가 더 작아졌고, 복구된 후에도 전체적으로 주요 도시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병사들을 쉽게 모집할 수 있던 옛날은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하퍼는 로마 제국이 팬데믹과 엄청난 생태환경의 변화를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주지만,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을 또한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마침내 사면초가에 처한 로마 제국은 ‘소빙하기’와 ‘페스트(흑사병)’의 반복되는 재발 공세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몰락합니다. 하퍼의 말입니다.

“페스트는 극히 이례적이고 상대를 가리지 않는 살해자이다. 천연두, 인플루엔자 또는 필로바이러스와 비교하면,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는 무기를 장착하고 서서히 움직이는 거대한 미생물이다. 일단 한번 추동력을 얻으면, 페스트는 생물학적으로 강력한 세력이 된다. 6세기에 들어서자 미생물 진화의 역사와 인간의 생태계가 어우러져 자연재해를 일으켰다. 그 강도와 지속성으로 볼 때 2세기와 3세기의 역병이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페스트 팬데믹은 바다 위로 위태롭게 돌출된 마을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는 허리케인과 맞먹을 만한 자연재해다. 자연의 야성과 제국이 건설한 생태계가 모의하여 일으킨 의도치 않은 음모였다.”

결국 질병이 로마 제국이 멸망하는데 쓰인 ‘와일드 카드’였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렇다면 기후 변화는 어떨까요? 하퍼는 이 책에서 로마의 시대 구분을 기후로 설명합니다. 곧 ‘기후 최적기(기원전 200~서기 150)’, ‘후기 로마 과도기(서기 150~450)’, ‘고대 후기 소빙하기(서기 450~700)’입니다.

특별히 하퍼는 후기 로마사를 세 개의 팬데믹으로 다시 구분합니다. 서기 165년에 시작된 안토니누스 페스트(천연두) 시대, 249년부터 262년까지 로마를 휩쓴 키프리아누스 페스트(에볼라 바이러스) 시대, 541~543년에 발생하여 749년에 이르기까지 수차 례 제국을 할퀸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흑사병) 시대입니다.

▲ 로마의 허준, 갈레노스와 카르타고의 주교인 키프리아누스

먼저 첫 번째 팬데믹인 천연두 시대를 살펴볼까요? 하퍼는 당시 사람들의 저술을 통해 그 시대를 보여줍니다. 천연두 시대는 페르가몬 출신의 의사 갈레노스입니다. 그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로마 제국의 인구는 7,500만이었습니다. 당시 여성은 출산 기계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노처녀는 없었습니다. 기후는 사람이 살기 좋은 최적기여서 아틀라스산맥에 코끼리가 살았고 북아프리카는 비옥한 곡창지대였습니다. 그러나 천연두로 인해 인구의 10%인 700만~800만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두 번째 팬데믹인 에볼라 바이러스 시대에 관해서 하퍼는 카르타고 주교인 키프리아누스의 저술을 살펴봅니다. 로마의 환자들을 분석한 키프리아누스의 저술 속에 기술된 증상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로마 사람들은 필로바이러스(에볼라도 필로바이러스에 속함)에 감염되었다고 추측합니다. 에볼라는 2014년에 다시 발생해 주목을 끌었죠? 아무튼 이러한 팬데믹은 국경 지역의 반란과 군인황제 시대의 등장, 그리고 기독교의 폭발적인 성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로마 당시는 역병이 기독교의 성장을 이끌었다면,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는 기독교의 멸망을 앞당기고 있나요? 좀 더 살펴볼 일입니다).

세 번째 팬데믹인 흑사병에 관해서 하퍼는 그리스의 상인 코스마스 인디코플레우스테스의 눈을 빌려 묘사합니다. 사실 흑사병은 제국과 인도양 세계의 경첩에 해당하는 펠루시움(현재 수에즈 운하 근처)에서 발병했습니다. 당시 건조지대에 비가 내리면서 설치류가 폭증했고 이를 숙주로 하는 벼룩이 바이러스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벼룩이 가득한 쥐들이 사람들한테 흑사병을 옮겼습니다. 결국 지중해 바다 위에는 흑사병으로 사람들이 죽어 유령선이 떠돌았고 콘스탄티노플에서는 25만~30만명이 죽었습니다. 시체는 건초더미처럼 쌓였고 발로 짓밟혀 뭉개진 시신은 착즙기 속 포도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도시는 텅 비고 콜로세움은 빵 배급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의 상황과 그리 달라 보이지는 않습니다.

3. 로마 제국 멸망의 두 번째 와일드 카드, 기후 변화

아무튼 이러한 질병과 동시에 기후 변화 역시 또 다른 제국 멸망의 ‘와일드카드’입니다. 왜냐하면 로마가 ‘지중해 기후대’에서 ‘몬순기후(monsoon, 계절풍의 영향을 받는 지역의 기후)’, ‘열대림 변두리’까지 뻗어나가 지구상의 서로 다른 지역을 연결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세밀하게 살펴볼까요? 하퍼는 ‘북대서양 진동’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지중해 서쪽의 ‘아조레스 고기압’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아이슬란드 저기압’ 사이의 기압 차 변동을 뜻합니다. 이렇게 두 기압이 진동하면 기압 차가 큰데, 이때 지중해 서쪽에 비정상적인 가뭄이 발생하고, 완만하면 잔잔한 비를 뿌리게 됩니다. 이러한 기후 요동으로 인해 환경 변화가 촉발되어 질병이 발생합니다.

로마의 문명 인프라인 신전, 공중목욕탕, 상하수도, 원형경기장 등이 보기에는 좋지만, 사실 공중보건은 낙제점이었습니다. 화장실은 긴 벤치에 검은 구멍을 나란히 뚫은 형태로 뚜껑도 없었습니다. 하수도는 폐기물 처리 시스템이 아니라, 폭풍우 때 빗물을 흘려보내는 지하 배수로였습니다. 가정용 화장실은 하수도와 연결되지 않아 주택가는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미생물이 번성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 로마의 화장실

또한 도시 밖에서는 숲을 베어내고 강줄기를 바꾸고 늪으로 도로를 내면서 자연 속 숙주에서 잠자는 미생물과 바이러스를 깨워 도시로 불러들였다.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말입니다. 결국 미생물들은 로마에서 유전자 돌연변이를 실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후 변화와 미생물인 세균이 로마를 이방인들로부터도 지켜 주었습니다.

하퍼에 따르면, 훈족의 융성과 침입을 북대서양 진동에 의해 초원지대에 비가 내린 현상으로, 악명 높은 아틸라(Attila, 5세기에 유럽을 뒤흔들었던 인물로 훈 족의 왕)의 퇴각을 말라리아로 설명합니다. “제국 중심부가 세균 갑옷으로 무장했다.”라는 너스레를 떱니다. 따라서 하퍼는 로마의 새로운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건설은 훈족의 이동에 따른 압력에서 제국의 한쪽을 살려낸 천재적 시도라고 평가합니다. 하퍼의 말입니다.

“로마 제국 해체의 마지막 단계는 박테리아의 승리로만 표상되지는 않았다. 페스트의 충격을 기후의 역사에서 분리해서 측정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의 몰락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반갑지 않은 새로운 기후 체제인 고대 후기 소빙하기의 도래였다. 페스트와 기후 변화가 다 함께 제국의 힘을 소진시킨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으로 인해 살아남은 이들은 시간 자체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오싹함을 느꼈다. ‘세계의 종말은 이제 예견된 사실이 아니라,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론입니다. 하퍼는 로마의 멸망은 로마인들 스스로 이룩한 성공과 환경의 변덕 양쪽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질병과 기후 변화의 희생양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로마의 사례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입니다. 기후 변화와 질병의 숨겨진 세상은 지금 기후 위기와 코로나 바이러스의 역습으로 지금 우리들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로마처럼 멸망당하느냐? 아니면 멸망 이후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느냐가 지금 우리의 선택입니다.

4. 위드 코로나 시대 종교의 길: 생물학적, 사회적 면역체에서 정신적 면역체로!

▲ 페터 슬로터다이크과 그의 책

현재 가장 논쟁적인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비슷한 연배의 철학자 슬라보이 지젝처럼 재기발랄하고 까다로우면서도 생기 넘치는 상상력으로 온갖 방면으로 사유를 펼쳐내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로 세상이 혼란스러운 이때, 슬로터다이크는 인간 이해를 독특하게 하고 있습니다. 곧 인간을 ‘호모 이무놀로기쿠스(homo immunologicus)’, 면역학적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바이러스와 같은 외부 환경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면역체입니다. 19세기 생물학의 발전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슬로터다이크는 이러한 ‘생물학적 면역체(1단계)’라는 인간 규정을 사회와 정신의 영역으로 확장시킵니다. 인간을 ‘사회적 면역체(2단계)’에서 ‘정신적 면역체(3단계)’로 확장시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면역학적 존재인 우리 인간은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을 만들고 ‘연대’를 이룹니다. 곧 법률로 이웃의 가해자를 제지하고 연대로 외부의 침략자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고차적인 면역은 정신의 영역에서 나타났습니다. 죽음이라는 궁극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 죽음을 다스리는 종교적 체계를 만든 것입니다. 슬로터다이크는 이것을 ‘자기수련의 체계’라고 호명합니다.

그렇다면 코로나 팬데믹의 위기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요? 슬로터다이크는 ‘전 지구적 차원의 위기에 대한 자기수련적 공동대응’입니다. 이를 위해 슬로터다이크는 ‘공-면역주의(co-immunism)’를 선언합니다(공-면역주의 곧, ‘코-이뮤니즘’라는 말에서 공산주의 곧, ‘코뮤니즘communism’이라는 말이 공명됩니다). 이것은 지구 온난화라는 미증유의 위험에 맞선 전 지구적 차원의 공-면역 질서를 창출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슬로터다이크는 정신적 면역체계에 관심을 집중하며 종교를 살펴봅니다.

사실 코로나의 위기로 종교의 희미가 퇴색되었지만, 그것은 종교의 형식만 보고 판단하는 오류입니다. 그 내용은 코로나 시대에 더 중요해졌지요? 따라서 하이데거도 언급했지만, 내면세계라는 가상의 온실이 파괴됨을 목격하고 수많은 염려 속에 몰입해 있는 현재 우리에게 종교의 본질적인 내용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튼 슬로터다이크는 기독교·불교·힌두교를 비롯한 동서양의 모든 주요 종교의 초기 형태를 탐사하며 그 실천 양상을 검토합니다. 결국 그 탐사 끝에서 슬로터다이크는 ‘자기수련을 통한 자기극복의 의지’를 발견합니다. 물론 이러한 자기극복의 의지는 우리 인간의 온갖 영역의 활동과 훈련에서도 발견됩니다만(앞서 언급했던 아폴론의 토르소처럼), 종교의 영역에서 가장 빛을 발합니다. 물론 자기수련으로 번역된 아스케제(Askese)라는 말에도 종교적인 ‘고행, 금욕’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슬로터다이크는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인간공학에 대하여』(오월의봄, 2020)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삶을 바꾼다는 것이 이제는 내적 능동화를 통해 정념의 삶, 습관의 삶, 표상의 삶을 능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수행 주체를 양성한다는 것이다. 그다음 이 주체는 그 자신의 탈수동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순전히 형성된 존재에서 형성하는 자 쪽으로 옮겨간다. 윤리학으로 지칭되는 전체 복합체는 할 수 있음으로 전향하는 제스처에서 발생한다. 전향은 하나의 신앙체계에서 다른 신앙체계로 건너가는 것이 아니다. 근원적인 회심은 능동적인 현존재의 양태에 입회하는 것과 함께 수동적인 현존재 양태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것으로 일어난다.”

그렇습니다. 기후 변화, 기후 위기, 온난화라는 전 지구적 차원의 재앙에 맞서려면 자본주의적 과잉생산·과잉소비로부터 후퇴하는 일종의 금욕적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슬로터다이크는 지구 온난화라는 미증유의 위험에 맞선 전 지구적 차원의 공-면역 질서를 창출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코뮤니즘이 보편적인 협력의 자기수련 지평’에서만 실현될 수 있듯이, 온난화라는 재앙에서 인류를 구해 내려면 ‘공-면역주의라는 자기수련의 공동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슬로터다이크는 인간을 ‘면역학적 존재’라고 칭하고, 모든 역사를 ‘면역체계의 투쟁사’고 부릅니다. 나아가 지금 지구가 인류를 향해 ‘공-면역 체계 구축을 위해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절대명령을 내린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슬로터다이크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래는 수련이라는 표지 아래에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종교는 슬로터다이크에 의해 그 본질이 드러납니다. 슬로터다이크도 말했듯이, ‘수행자들의 별인 지구’에서 제대로 자기수련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위드 코로나 시대 종교의 길입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