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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로 형제를 함께 부르신 이유?(겔 37:15-23; 고후 9:1-9; 마 4:18-25)주현절 여섯째 주일/신학교육주일(2월13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02.10 21:07

1. 신학교육주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오늘은 주현절 여섯째주일이자 신학교육주일입니다. 최근 사역을 하려고, 또한 목회자가 되려고 결단하고 사명을 받는 이가 많지 않아 신학교와 신학대학원의 입학률이 저조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신학교육도 변하는 시대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갈수록 힘들어져 가는 목회 현장에서, 많은 목회자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변화된 상황 속에서 올바로 선포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학적 수준은 물론, 시대를 읽어내는 예언자로서 제대로 된 영적 지도자, 생명의 말씀을 제대로 읽고 해석하여 올바로 증명하는 말씀의 종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신학교육의 부실 때문입니다. 오늘 신학교육 주일을 맞아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많은 이들이 생명의 말씀을 제대로 증언하는 훌륭한 목회자로 소명 받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늘 신학교와 목사 후보생을 위해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주현절 여섯째주일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며 제자로 삼으시는 말씀입니다. 신학교육주일에 적합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구약 말씀은 분단된 이 땅에서 신학교육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서신서 말씀을 통해서는 신학교육을 위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 두 형제를 제자로 삼으시는 말씀입니다.

▲ 두초 디 부오닌세냐의 <베드로와 아드레아를 부르심>(1311)과 세베대의 두 아들을 부르심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 4:18-20)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제자로 삼으신 이들은 형제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죠? 제자로 형제를 함께 부르셨습니다.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 4:21-22)

이번에도 아버지인 세베대를 부르시지 않고, 그 아들 형제를 부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부른 것이 아니라, ‘형제’를 함께 부르셨습니다. 왜 형제를 부르셨을까요? 그 이유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제자로 삼으십니다. 그들은 생업과 가족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천국 복음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마 4:23-25)

병든 자, 귀신 들린 자 등 고통 받고 아파하는 이들이 예수님이 전하시는 천국 복음을 듣고 치유를 받습니다.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라는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시고 세우시는데, 형제를 먼저 부르신 것입니다.

2. 한 임금 아래 두 막대기가 하나가 되다!

현재 우리 민족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과 북은 한 형제죠? 그렇다면 오늘 신학교육주일을 맞아 한국교회와 목회자들, 또한 목사 후보생들에게 이 분단된 땅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아니,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은 도대체 우리 민족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 걸까요? 구약 에스겔 말씀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시기에 환상을 봅니다. 따라서 에스겔을 ‘환상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또한 에스겔은 구약 최고의 조직신학자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전 선지자들의 핵심 메시지의 핵심을 조직적으로 잘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은 제사장으로 유다의 19대 왕인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이것은 2차 포로인데, 여호야긴의 아버지인 유다의 18대 왕인 여호야김 때가 1차 포로입니다. 이때 바벨론에 끌려간 인물 가운데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니엘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바벨론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죠?

이렇게 다니엘이 바벨론 궁정에서 예언할 때, 예루살렘에서는 예레미야가 예언합니다. 유다 백성이 70년 동안 바벨론의 종살이를 할 것이라고 눈물을 머금고 예언하죠?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 ‘환상의 선지자’인 에스겔은 바벨론에 있는 유다 포로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환상을 예언하였습니다. 물론 이 환상은 예레미야와 달리 희망적인 것으로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는 환상(겔 37:1-14) 다음에 이러지는 환상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겔 37:15-17)

▲ 에스겔의 두 막대기 환상

환상의 내용은 유다라고 쓴 막대기와 이스라엘이라고 쓴 막대기를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손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통일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 사후,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이 되었습니다. 이후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되었고(기원전 722년),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기원전 587년). 그런데 그 파괴되고 멸망된 나라가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두 나라의 회복을 넘어 다시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그 환상의 의미를 묻거든,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렇게 답하라고 합니다.

“네 민족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겔 37:18-19)

놀라운 소망의 말씀입니다. 현재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 남북한이 주님 손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는 환상입니다. 이를 위해 한 왕을 세우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나라가 나누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 글 쓴 막대기들을 무리의 눈앞에서 손에 잡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잡혀간 여러 나라에서 인도하며 그 사방에서 모아서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겔 37:20-22)

이것은 우리 민족의 하나 됨을 위해 에스겔, 아니 우리 한국교회와 목사 후보생들을 들어 쓰신다는 뜻입니다. 물론 에스겔서 본문 말씀의 맥락에서는 메시아를 뜻합니다만, 메시아이자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국교회를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에 미혹되지 않고, 또한 불의한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정결하게 하시며 영원토록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37:23)

3. 형제를 부르신 이유?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그리고 목사 후보생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지만, 아시아를 대표하는 전문 미래학자이자 목회자인 최윤식・최현식 목사님의 책 『빅체인지 한국교회: 팬데믹 이후, 하나님이 세상을 빅체인지 하신다』(생명의말씀사, 2021)가 있습니다. 이 책은 빅체인지, 곧 거대한 변화의 시대에 한국교회가 최우선으로 진행해야 할 새로운 사역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소개하고 제안합니다.

“① 신중년을 이끌라.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려있다. ② 가정 회복을 이끌라.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있다. ③ 메타버스 영성을 이끌라. 새로운 종교 공간이다. ④ 통일 준비를 이끌라. 한민족의 역사적 사역이다. ⑤ 지구 회복을 이끌라. 창조 대명령의 완성이다.”

여기서 네 번째 통일 준비에 관해 저자는, 통일은 30년 이내에 실현 가능한 미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일찍이 독일의 통일에서 서독 교회가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듯이, 한반도의 통일은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주신 역사적 소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사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남과 북은 한 형제입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실 때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부르십니다. 갈라진 형제가 이제 예수님 안에서 한 제자가 된다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 문화체육관광부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 여론조사’(2018.7.31.)

그러나 성경의 역사를 보면 형제간의 관계는 피의 역사였습니다. 아니 인류의 문명 자체가 형제 살육의 역사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시조가 되는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는 늑대의 젖을 먹고 생존했지만, 나중에 형인 로물루스가 동생을 살해하고 자기 이름으로 나라, 곧 로마를 건국합니다. 형이 동생을 죽이고 세운 ‘피의 문명’이 로마 제국의 발생사적 근거입니다.

▲ 로물루스와 레무스, 가인과 아벨

프랑스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에 따르면, 이러한 형제 살해의 역사가 ‘짝패(double)’ 때문에 일어났다고 봅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에 따르면 ‘깐부’라고 하죠? 아무튼 지라르가 보는 짝패의 핵심은 ‘무차별화’입니다. 말 그대로 양자의 차이가 소멸하는 것입니다. 무차별화는 좋게 보면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짝의 정체성을 제거하는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지라르는 후자의 입장입니다. 따라서 지라느는 이것을 ‘모방 욕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모방 욕망을 통해 짝패간, 곧 형제간 무차별화가 진행이 되면 그 속에서 개별 인간의 주체성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지라르는 성경 속, 최초의 살인 사건인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짝패 관계와 모방 욕망으로 분석합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은 것에 분노하죠? 차별화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가인은 아벨과의 무차별화를 욕망했고, 그 욕망이 비극적이기에, 그 결과 아벨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차별화가 지속되면 개별 인간의 주체성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주체성이 사라진 인간은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따라서 가인의 아벨 살해 사건으로 인해 인간의 인류사적 가치는 죽임당하고 소멸하고, 쉽게 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비록 그 관계가 친형제일지라도 말입니다. 이것이 가인이 인류사에 저지른 최초 살인 사건의 의미입니다. 지라르는 최초의 살인을 ‘초석적 살인’으로 규정하고, 가인의 후예들에게는 이러한 초석적 살인을 모방하려는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가 들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4. 모금 축복

그러나 가인의 후예가 아닌 셋의 후예들, 곧 아담과 하와가 다시 낳은 아들인 셋의 후예들에게는 배려 지향적인 거울 신경세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셋의 아들인 에노스(경건한 신앙 가문의 조상) 때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입니다(창 4:25-26). 오늘 서신서 말씀에 나오는 고린도 교회가 바로 그렇습니다. 고린내가 날 정도로 분쟁과 분란이 끊임없었던 고린도 교회가 가인의 후예에서 셋의 후예로 바뀌어 형제 교회를 위한 모금에 동참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칭찬합니다.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펠로폰네소스 북쪽 지역)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고후 9:1-2)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고린도 교인들이 일 년 전부터 선교헌금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바울은 사람을 보내 그 선교헌금을 받아 예루살렘 교회에 가져다주려고 준비합니다. 혹시 준비하지 못했을까 우려하기도 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9:3-4)

왜냐하면 자기 교회가 아니라, 다른 교회나 이웃을 돕기 위해 물질을 준비하고 연보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연보에 관해 구체적으로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5-7)

이것이 바로 타자를 자기화하려는 가인의 후예와 같은 짝패의 모방 욕망이 아니라, 타자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진정한 셋의 후손의 마음입니다. 곧 하나님의 자녀들의 참다운 모습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어 모든 것이 넉넉할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지난주 말씀처럼 연약한 지체를 위해 선한 일을 하는 것은(고전 12:22-23)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후 9:8-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소망과 의가 남북이 하나님 손안에서 하나가 되는 데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로 형제를 함께 부르신 이유입니다. 또한 오늘 신학교육주일을 맞아, 많은 목사 후보생이 우리 민족의 하나 됨을 위해, 또한 한국교회의 재부흥을 위해 귀히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한 형제요, 자매인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물질적 지원과 후원을 아끼지 않는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 생명의 말씀이 이 땅에 가득하기를 소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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