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2 Faith and Order Commission meeting in Lima, Peru ⓒWikipedia

가시적 일치: 세례, 성만찬, 직제의 상호인정과 하나의 신앙고백

교회의 가시적 일치는 신앙과 직제위원회가 처음부터 추구한 목표였으나, 1964년의 모임에서 ‘일치의 본질, 즉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지상에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하나됨의 실제적인 표현이 무엇인가를 더 강도 있게 연구할 것’을 제안한 후, 1973년의 신앙과 직제위원회 살라망카 보고서(일치의 개념들과 하나됨의 모델들), 1974년 가나의 아크라에서 채택된 보고서(교회의 일치: 그 목적과 방법), 1978년 인도 뱅갈로에서 모인 신앙과 직제위원회 보고서(소망에 대한 공동 설명) 등을 통해 입장을 정리해갔다.

인도 뱅갈로 모임에서는 교회가 가시적 일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본적인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그것은, 첫째, 사도적 신앙에 대한 공동의 이해, 둘째, 세례, 성만찬, 그리고 직제에 대한 충만한 상호인정, 셋째, 가르치고 결정을 내리는 일에 있어서의 공동의 방법들에 대한 일치 등이다.(1) 이 세 가지 요건들 가운데 교회의 일치를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세례, 성만찬, 직제에 대한 충만한 상호인정일 것이다. 세례, 성만찬, 직제에 대한 이해의 차이는 교회분열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원인이었으며 지금도 성만찬적 교제에 장애가 되고 있다.

그래서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처음부터 세례, 성만찬, 직제 문제를 연구해왔고, 그 논의와 연구의 최종적인 결과가 1982년 이른바 ‘리마 문서’(BEM)로 알려지게 되었다.(2) 리마 문서는 약 33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45만부 이상 인쇄되었으며, 수천의 그룹들에서 토의되었고, 공식적으로 로마가톨릭교회를 포함하여 180개 이상의 교회들이 응답하였다.(3) 리마 문서는 1927년 로잔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위원회 제1차 세계대회 이후 50년간의 연구과정의 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리마 문서에 실린 성만찬 예식은 1982년 이후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서 지속적으로 실천되었으며, 지역교회들의 가시적 일치를 위한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개신교 내부 사이에서, 특히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 세례와 성만찬과 직제에 대한 충만한 상호인정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유감스럽지만 현실이다.

하나의 신앙을 공동으로 고백하는 것 역시, 교회의 가시적 일치의 표징으로 이해한 신앙과 직제위원회가 처음부터 추구한 노력이었다. 성서와 전통에 대한 연구, 신조들의 역할에 대한 연구와 토의가 이런 과정의 일부였는데, 이 논의는 BEM 문서가 완성된 직후부터 계속되었다. 특히 로마가톨릭교회가 사도적 신앙의 공동고백과 관련하여 기여했는데, 그것은 세계교회협의회와 로마가톨릭교회 사이에 JWG(Joint Working Group)이 조직되는 것을 계기로 시작된 것이었다.(4)

그 후 1980년 조인트 워킹 그룹에 보고된 보고서(Towards a Confession of the Common Faith)를 비롯하여 일련의 연구결과물들이 ‘오늘의 사도적 신앙: 연구를 위한 소책자’로 1981년 출간되었고, 1982년부터 1990년까지는 ‘오늘의 사도적 신앙의 공동고백을 향하여’ 나아가기 위한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연구결과는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Confessing the One Faith: An Ecumenical Explication of the Apostolic Faith as It is confessed in the Nicene-Constaninopolitan Creed(381)’로 1991년에 출간되었다.(5) 이 연구결과는 BEM 문서가 확정된 후 10년만의 결실이다.

사도적 신앙의 공동고백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신앙과 복음적인 삶과 선교 차원에서의 코이노니아를 나누기 위해서 요청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연합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에 이미 가지고 있는 동일한 사도적 신앙을 인정해야 하고, 말과 삶으로써 이 신앙을 증거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세계교회가 고백해야 할 하나의 신앙고백’을 출간했고,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연구하고, 세례와 성만찬 예배 시에 공동으로 고백할 것을 권고한다.(6)

지금 한국의 개신교는 대부분 이른바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있는데, 이 사도신경은 로마에서 기원하여 서방교회에 의해서만 받아들여졌고 사용되었지만, 니케아 신조는 동-서 그리스도교의 모든 부분들을 하나로 묶는 고백된 일종의 공의회 신조이다. 한국교회가 니케아 신조를 다시 이해하고 공동으로 고백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위해 중요한 도전이 될 것이다.

이 연구 문서의 목적은 니케아 신조로 표현된 사도적 신앙의 근본 요소를 어느 정도로 그리고 어떤 형태로 함께 이해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냐에 대한 질문에 응답하려는데 있다.(7) 그렇다고 이 문서가 가시적 일치를 위한 전제이거나 완전합의문서, 혹은 수렴문서의 성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 문서는 교회들로 하여금 사도적 신앙에 초점을 맞추고, 이 사도적 신앙을 함께 숙고하도록 돕는 도구로 자신을 이해한다.

인류 공동체의 갱신

인류의 일치와 창조세계의 일치에 대한 보다 폭넓은 연구가 모색된 것은 1967년에 열린 브리스톨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서였고, 이 연구결과는 1968년에 열린 세계교회협의회의 스웨덴 웁살라 총회에서 채택된다. 그 후 진행된 일련의 신앙과 직제위원회의 연구들은 1973년 자고르스크에서 모인 신앙과 직제 실행위원회에서 토의된 준비문서로, 그리고 1974년에 열린 신앙과 직제위원회 아크라 회의에서 ‘긴장 속에 있는 일치를 향하여’라는 문서로 일단락된다.

세계교회협의회 웁살라 총회(1968년)가 열릴 때의 세계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가 다시 매우 심각한 분열과 갈등 상황으로 들어선 때였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1964년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 1965년 중국 문화혁명 시작, 1967년 아랍과 이스라엘의 ‘6일 전쟁’,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 1968년 바르샤바 조약기구 군대의 프라하 침공 등 군사적, 인종적, 경제적 갈등으로 점철된 시기가 70년대였다. 제3세계의 빈곤과 외채문제도 심각해 1968년 라틴 아메리카 주교들이 메델린에서 회합을 갖고 외채와 빈곤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8)

신앙과 직제 위원회 문서, ‘긴장 속에 있는 일치를 향하여’는 급진적으로 변화하는 세계질서, 특히 세계적 규모의 경제구조, 대중매체, 과학과 기술의 발전, 국제적 여행 등이 인류의 상호의존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일치가 인류의 적대감과 소외를 더 심화시키는 잘못된 구조를 만들어내고, 종속과 억압, 착취, 인종주의를 구조화시킨다고 지적한다. 문서는 심지어 교회 자체가 이런 잘못된 억압적 일치에 다른 사람들을 종속시키기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비판한다. 인류의 일치의 표징이자 일종의 성례로 이해된 교회의 일치가 분열된 인류의 현실 앞에서 진정성을 의심받는 사태를 우려한 것이다.

교회 일치를 하느님과의 친밀한 연합의 징표로서, 그리고 모든 인류의 일치의 징표로서 일종의 성례로서 이해하면서, 교회가 그런 연합과 일치의 성취를 위한 도구라고 지적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마찬가지였다.(9) 그런데 교회의 일치가 인류의 해방을 위한 투쟁을 오히려 방해할 경우, 그것은 ‘긴장 속에 있는 일치’가 될 것이다. 인종주의, 성차별, 경제체제 문제 등에 있어서 제1 세계 교회와 제3 세계 교회, 혹은 한 나라 안에서도 볼 수 있는 교회들 사이의 갈등과 긴장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이 완성될 때까지 결코 해결되지 않을 지속적인 긴장’일 수 있다.

그러나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이런 교회들 사이의 깊은 불일치를 은폐하는 것을 거부한다.(10) 교회의 일치가 인류의 일치를 위한 하나의 표징이 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일치가 인류의 일치를 위한 선행 조건은 아니며, 또 인류의 일치 가운데서 교회의 일치가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교회의 일치와 인류의 일치는 지속적인 긴장관계에 있다.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에 대한 고백은 “현실의 교회가 진정한 신앙 안에서의 교회인지 아닌지를 측량할 수 있는 기준이기도 하며, 바로 이 점에서 이것은 신앙 안에서의 교회와 현실의 교회 사이의 긴장을 나타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세계성으로 인해 야기된 이중적 대립을 통찰하지 않을 수 없다.”(11) 볼프강 후버는 교회 역시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느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고,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죄된 공동체이며,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일치운동은 분열된 교회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를 고백하도록 돕는 하나의 회개운동이라고 지적한다.(12)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라는 주제로 개최된 웁살라 제4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1968년)도 인종과 민족 간의 분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가 사이의 경제적 예속관계의 심화, 이데올로기 투쟁과 종교분쟁, 인종주의 등으로 피조물의 세계가 탄식하고 고통당하고 있으며(롬 8,22), 인류가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13) 교회가 분열된 세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모든 인간이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에 의해 그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며 새 피조물의 새로운 공동체로서 자신의 몸이 되는 교회를 제정하신 그리스도” 때문이다.(14)

교회가 타인을 위해 존재할 때만 교회일 수 있듯이, 교회의 일치도 그것이 인류의 일치와 관계될 때만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지적한 사람은 세계교회협의회의 전 총무인 필립 포터(Philip Potter)였다. 그는 오이쿠메네를 그 근원적인 의미, 곧 주님에게 속한 전 세계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시편 24,1).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삶과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따라서 인간과 피조물의 세계는 교회의 관심사라고 말한다.

교회는 인류의 일치를 위해 참여할 의무가 있으며, “이것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계급과 인종과 성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협력하는 것을, 그리고 민족과 인종간의 차이를 평화롭게 화해시키고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협조하는 것을 의미한다.”(15)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창조된 세계에 대한 하느님의 진실하심을 생각할 때, 교회는 세계에 봉사하지 않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는 자신을 세계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다. 좋건 나쁘건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인 면에서 상호의존과 예속이 더욱 심화되는 상황으로부터 교회도 벗어날 수 없고, 교회는 이런 예속적 일치를 보다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해 책임을 져야 한다. 하느님의 뜻에 부응한 인류의 일치는 전쟁과 예속성 안에서의 일치가 아니라 정의와 자유와 평화 안에서의 일치여야 한다.(16)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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