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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의 시작, “그대가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민 9:1-14; 고후 1:3-11; 마 28:11-15)부활절 둘째 주일(4월24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04.22 12:01

1. 그대가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 수처작주(어느곳에서든 주인이 되라!)와 임제 선사

중국 당나라 때 선불교 승려 중에 “할(喝)”로 유명한 임제 의현(臨濟 義玄), ?~867) 선사가 있습니다. 그의 제자인 삼성 혜연 선사가 펴낸 『임제어록(臨濟語錄)』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하여, 입처개진(立處皆眞)하면, 경래회환부득(境來回換不得)이라. 종유종래습기(縱有從來習氣)하고,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도 자위해탈대해(自爲解脫大海)니라.”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대가 머무는 곳마다 주인(주체)이 되면, 바로 그곳이 진리의 세계가 되나니, 어떠한 경계에서도 잘못 이끌리지 않을 것이다. 가령 지난날 지은 나쁜 습기(習氣)가 있어 무간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스스로 해탈의 큰 바다로 변한다.”입니다.

이 말의 뜻은 자신 밖에서 부처를 구하지 말고, 자기 마음이 곧 부처임을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어느 곳에서나 항상 주체(주인)가 되면, 그 어떤 경계에도 얽매이지 않는 해탈의 삶, 곧 자유인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공자와 맹자의 유교는 극기(克己)와 수기(修己)를 통해 나를 누르고, 닦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노자와 장자의 도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통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라고 합니다. 불교의 본래의 흐름은 이와 달리, 무아(無我)를 주장합니다. 곧 나 자신을 초월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선불교의 임제 선사는 ‘나’인 ‘주체’를 ‘주인’으로 강조합니다.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무아의 경지를 이룰 수 있고, 참된 깨달음, 곧 해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임제와 같은 이러한 ‘나-주인 됨’의 사상은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인 됨’은 임제와 같은 정신적인 깨달음의 영역이 아니라, 피 끓는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도산 안창호의 사상입니다. 도산은 나라를 잃고 종살이를 하는 한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를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켜 독립과 통일 운동에 앞장서게 한 ‘나’ 철학자였습니다.

▲ 형무소의 안창호, 함석헌, 도산철학과 씨알철학

씨알연구소 박재순 소장에 따르면, 이렇게 ‘나’를 역사의 주체로 세우는 도산의 ‘나’ 철학이 남강 이승훈을 거쳐 유영모와 함석헌의 씨알 철학으로 계승·발전되었다고 합니다. 곧 도산의 ‘나’ 철학은 나를 사랑하듯, 타인도 사랑하라는 애기애타(愛己愛他)의 정신으로 표현이 되었고, 이것이 방탄소년단의 <러브 마이셀프>, <러브 유어셀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유영모와 함석헌의 씨알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산의 사상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 박재순 소장의 생각입니다. 『도산철학과 씨알철학』(동연, 2021)은 이러한 고민과 성과의 산물입니다. 박재순 소장의 말입니다.

▲ 방탄소년단의 <러브 마이셀프>, <러브 유어셀프>

“도산은 어려서는 조·부와 서당 훈장으로부터 한문과 유학을 배우고, 17살 때 서울에서 구세 학당에 다니며 기독교와 과학과 신문명, 민주주의를 배워 동서 정신문화를 융합해 ‘나’ 철학을 확립했다. 그런 도산의 사상은 고대 노예제·봉건사회의 시대적 제약에 갇혀 있는 공자·소크라테스·플라톤의 사상을 훨씬 능가하며 이성주의와 과학주의의 포로가 된 서양 근현대 정신세계보다 훨씬 깊고 풍부하다.”

이렇게 민족과 개인의 수난과 고난 속에서 체험적으로 피어난 도산과 함석헌의 철학을 박재순 소장은 ‘생명철학’으로 규정합니다. 도산이 일제 말기 상당수의 지식인이 친일로 돌아선 때에도 ‘절대 희망’, ‘절대 낙관’을 잃지 말라고 독려한 것이 바로 이러한 맥락입니다. 또한 함석헌이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 직후에 광주에서 ‘절대 승리’, ‘절대 희망’을 주제로 강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체험적 생명철학이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지난주에 말씀드린 애굽의 바로 왕과 로마제국, 그리고 부패한 종교지도자들과 같은 오버도그 세력들이 다시금 씨알의 생명을 좀먹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 희망’, ‘절대 낙관’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생명이 죽임을 이기고 절대 승리를 일구어 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어떤 상황이 와도 절대 희망을 꿈꾸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그리고 참된 부활 신앙의 시작은 ‘나-주인 됨’, ‘씨알의 주인 됨’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은 “그대가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박재순 소장은 이렇게 부연해 설명합니다. “각자가 저답게 살며, 주체적으로 민주 공화정을 이루는 도산과 씨알의 생명철학으로 세계 정의와 평화라는 새 문명의 패러다임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부활 신앙은 온 세상을 뒤흔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오늘은 부활절 둘째 주일인데, 부활의 주님을 만나 여러분이 머무는 그 어느 곳에서도 주인이 되어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우리가 잘 때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우리는 지난 부활주일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 부활의 의미를 잘 살펴보았습니다. 부활은 사망 권세를 깨뜨린 것인데, 이것은 죽임의 능력과 그 결과인 무덤이 예수님을 없애거나 가둘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온전한 의미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도산과 함석헌 선생의 말씀으로는 ‘절대 희망’, ‘절대 낙관’을 가지고, “러브 마이셀프”, “러브 유어셀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러브’할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사망 권세를 휘두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누구인가요? 오늘 복음서 본문 말씀이 바로 이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획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또 그들과 결탁한 로마제국입니다. 이들이 바로 사망의 권세입니다. 지난주에 이들의 모습이 예루살렘 성전 체제라는 종교 체제와 로마제국의 정치 체제로 혼합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죠? 따라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이러한 종교・정치의 혼합체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신 곳, 이방의 땅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볼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서 본문 말씀에 나오는 이들인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은폐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힘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뒤흔듭니다. 그 결과 흔들리는 세상의 사망 권세는 부활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마 28:11-15)

대제사장들과 유대 장로들은 로마 군인들을 매수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도둑맞았다고 사람들에게 고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총독에게 잘 말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이들은 사람들을 매수하고, 속이고 거짓을 퍼뜨립니다. 부활의 힘, 아니 그들에게는 부활의 위험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것을 그냥 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활을 부정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존재합니다. 오늘날에도 존재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며 부활을 믿는 이들을 핍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현재의 고난을 견디겠다는 다짐입니다. 불의한 권력, 탐욕적인 종교, 사탄의 세력 등에 의해 고난과 핍박을 받을지라도, 마침내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부활할 것이니, 지금 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니, 그곳에서도 주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서신서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환난을 겪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들여줍니다. 말씀을 볼까요?

3.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후 1:3-6)

바울이 받았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고난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위로와 구원으로 이어지듯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도 동일한 고난을 받겠지만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교인들에게 고난에 참여하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소망의 견고함에 굳게 서라고 권면합니다.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7-9)

이 고난은 살 소망까지 끊어버리는 사형 선고와 같은 고난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셨듯이,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며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리십니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1:10-11)

이렇게 하나님은 큰 사망에서 건지셨고, 건지실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토록 건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믿는 성도들은 서로 돕고 간구하고, 기도하며 감사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이어지는 구약 말씀은 이스라엘을 큰 사망에서 건지신 유월절 사건을 기억하라는 말씀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4. 두 번째 유월절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첫째 달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월절을 그 정한 기일에 지키게 하라. 그 정한 기일, 곧 이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너희는 그것을 지키되,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지킬지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그들이 첫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다 따라 행하였더라.”(민 9:1-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이후 다음 해 첫째 달에, 유월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잘 아시다시피, 출애굽은 애굽에서의 환난을 벗어나 애굽을 탈출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유월절 사건은 이것을 기념하는 행사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 땅에서 노예로 고생하는 백성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바로 왕을 찾아갔으나, 바로는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9가지 재앙에도 불구하고 바로 왕은 강퍅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10번째 재앙이 준비되었습니다. 그것은 애굽 땅의 모든 사람이나 동물의 처음 태어난 장자가 죽는 재앙이었습니다. 이제, 끝까지 하나님을 저항하던 오버도그에게는 멸망의 때가,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인내로 기다리던 언더도그들에게는 구원의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사실 유월절(逾越節, Passover)이란 “넘어간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재앙과 죽음과 멸망이 넘어간다는 것으로 구원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 하나님의 재앙이 그 집을 넘어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구원의 사건인 유월절을 기념해야 하는데, 이를 지킬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때에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날에 모세와 아론 앞에 이르러,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었거니와, 우리를 금지하여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못 하게 하심은 어찌함이니이까?”(민 9:6-7)

부정하게 된 자는 유월절을 어떻게 지키냐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모두 유월절을 지키라고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기다리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어떻게 명령하시는지 내가 들으리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다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둘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민 9:8-12)

▲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은 재앙이 넘어감

한 달이 지난 후에라도 지키라는 것이죠? 이렇게 모든 사람이 구원의 기쁜 소식인 유월절을 지키듯, 예수 부활의 기쁜 소식에 참여하고 부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유월절을 지키지 않은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집니다. 그의 죄를 담당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고 그 영광에 참여하지 않는 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거류민이나 본토인이나 모두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정결하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의 죄를 담당할지며 만일 타국인이 너희 중에 거류하여 여호와 앞에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유월절 율례대로 그 규례를 따라서 행할지니, 거류민에게나 본토인에게나 그 율례는 동일할 것이니라.”(민 9:13-14)

여기서 본토인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그러나 거류민은 자기 고향이나 사는 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잠시 머무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것은 이방인이죠? 따라서 유월절을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하는 것처럼, 부활 신앙도 이방인과 믿는 사람 모두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활 신앙을 가진 이는 그가 머무는 그 어느 곳이든 주님과 동행함으로 참된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코로나 위기의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세계 경제가 다시 휘청거립니다. 또한 정권 교체기에 많은 혼란과 갈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여러분들이 머무는 그 어느 곳에서든지 부활 신앙으로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머무는 그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이 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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