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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의 주체, 약하고 가장 작은 자로부터!(삿 6:11-16; 히 3:1-6; 마 19:13-15)부활절 셋째 주일/교회교육주일/어린이・청소년주일(5월1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04.29 14:43

1. 두꺼비가 새끼를 낳는 방법

오늘은 부활절 셋째 주일입니다. 그러나 교회교육주일이자, 어린이・청소년주일이기도 합니다. 부활과 어린이・청소년주일에 알맞은 예화가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난주 주보 목회칼럼에 인용한 글인데, 다시 한번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두꺼비가 새끼를 낳는 방법입니다. 먼저 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 두꺼비가 새끼를 낳는 방법

뱀은 개구리를 굉장히 좋아해 만나기만 하면 한입에 삼켜버립니다. 반면 개구리와 비슷하게 생긴 두꺼비는 무서워합니다. 평상시에는 두꺼비도 뱀을 두려워하기에 멀리합니다. 그런데 어미 두꺼비가 일단 알을 배고 새끼를 낳을 때가 되면 양상이 달라집니다. 두꺼비가 뱀에게 싸움을 겁니다. 살살 약을 올리며 뱀의 화를 돋웁니다. 그러나 싸움 자체는 싱겁습니다. 뱀이 순식간에 두꺼비를 잡아먹습니다. 허망한 죽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두꺼비를 먹은 뱀의 몸속에서 두꺼비 새끼들이 올망졸망 기어 나옵니다. 뱀에게 먹힌 두꺼비는 뱀의 배 속에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난 두꺼비 새끼들은 뱀의 연한 속살을 뜯어 먹으며 자라납니다. 누가 누구를 잡아먹은 것일까요? 처음에는 뱀이 두꺼비를 잡아먹었지만, 뱀은 처참한 몰골로 죽고 두꺼비는 여러 마리로 살아납니다.

결국 싸움은 두꺼비의 최종 승리로 끝이 납니다. 이것은 기막힌 역전승이자, 부활의 진리입니다.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약하고 작은 것이지만, 결국은 더 많은 것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 신앙의 주체가 누구인지 잘 보여줍니다. 희생하는 어미 두꺼비와 그 희생을 통해 태어난 새끼 두꺼비는 이렇게 부활과 어린이・청소년주일에 아주 적합한 예화가 됩니다.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두꺼비의 허망한 죽음 같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예수님께서 로마 통치자나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당당히 맞서길래, 뭔가 보여주시려나 하고 잔뜩 기대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을 새로운 왕으로, 메시아로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맥없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당신도 아니었구나!”, “우리는 또 다른 메시아를 기다려야 하는구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포기합니다. 절망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시작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비록 어미 두꺼비는 죽었지만, 새끼 두꺼비들이 태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어서 다시 사는 것! 약하고 가장 작은 자 같아도, 그래서 잡아 먹히겠지만, 그것이 결국은 이기는 것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참모습이자, 부활 신앙의 주체입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약하고 가장 작은 자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은 이렇게 약하고 가장 작은 이들인 어린아이가 천국을 소유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구약 말씀은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한 기드온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지파인 므낫세 지파 중에 가장 약하고 작은 자의 아들인 기드온이 미디안 족속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합니다. 약하고 보잘것없는 기드온과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민족을 구할 용기와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약하고 작은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부활 신앙을 갖게 되면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신서 말씀은 이를 위해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라는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을 전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비록 약하고 보잘것없었지만, 또한 박해로 인해 많은 히브리인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에게 예수를 깊이 생각하여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으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이렇게 부활 신앙의 주체는 약하고 가장 작은 자로부터 시작됩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2. 어린아이들을 용납하라!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마 19:13-15)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천국의 소유자로 선포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아이들이야말로 다음 세대의 주인공입니다. 교회의 미래인 것입니다. 이제 지난 2022년 4월 25일부터 2년 이상을 끌어오던 코로나 팬데믹(전 세계적 감염병)이 엔데믹(풍토병)으로 전환하여 ‘1급 감염병(신종감염병 증후군)’에서 2급 감염병으로 등급이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으로 교회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예배와 친교 모임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교회학교의 위기가 심각합니다. 믿지 않는 부모님들의 걱정으로, 또 비대면 예배 등으로 교회학교 예배가 위축되었고, 그 가운데 어린이, 청소년들의 신앙교육도 부실해졌습니다. 그러나 어린이와 청소년은 한국 사회는 물론, 교회의 미래입니다. 따라서 예수님도 그것을 아시고, 오늘 복음서 본문 말씀에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포만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교회 교육의 대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북미 유학생 수련회 코스타(KOSTA) 강사로 널리 알려진 박수웅 장로님이 있습니다. ‘마취과 전문의’에서 상한 영혼, 상한 가정을 치유하는 사역자로 가정사역자로 청년 또는 청소년 사역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청소년 사역을 위해 박수웅 장로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하고 성공한 아이로 키우는 것, 이를 위해선 지력, 체력, 정신력, 정서력, 관계력, 영력, 관리력을 가르치라!” 교회 교육의 대안으로 일곱 가지 ‘힘(力)’을 이야기하는데,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볼까요?

“첫째, ‘지력’을 키우려면 부모는 공부를 통한 지식뿐만 아니라, 삶에서 얻는 지혜, 현장에서 얻는 경험을 더하도록 자녀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둘째, ‘체력’은 건물로 치면 일종의 뼈대와 같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체력 향상을 위해 훈련시켜야 한다. 셋째, ‘정신력’은 고난과 역경이 찾아올 때, 이겨낼 수 있는 내적 힘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꼭 남겨 줘야 할 중요한 유산은 아무리 써도 사라지지 않을 무형의 정신력이다. 넷째, ‘정서력’은 마음의 힘, 마음 상태를 말한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기분과 정서를 모니터링하고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이다. 다섯째 ‘관계력’은 인간관계 능력, 즉 사회 집단 속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이다. 리더십, 협동심, 동료 의식 등이 관계력에 들어가는 요소이다. 여섯째 영적인 실력인 ‘영력’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어릴 때부터 성경 말씀을 따라 인생을 경영하고 관리하여야 한다. 일곱째, ‘관리력’은 시간 관리, 돈 관리, 물질 관리, 정욕 관리 등이다.”

부모에 관해서도 박수웅 장로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모는 하나님이 자녀에게 심어 놓으신 달란트, 은사, 재능들을 잘 발견해서 마땅히 가야 할 사명의 길(부모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실천하는 것)을 가도록 지도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불가능할 것 같은 교육에 관해 박수웅 장로는 “일곱 가지 실력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을 키우라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갖도록 노력하는 사람을 키우라는 것, 독수리로 태어난 우리 자녀들이 장차 하늘을 날 수 있도록 날개에 힘을 실어주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교회교육주일과 어린이・청소년주일을 맞아, 자녀에게 하나님의 청지기인 부모가 욕심을 버리고, 자녀의 달란트를 찾아서 잘 양육하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는 아직 약하고 작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주일부터 말씀드린 언더도그, 오버도그의 맥락에서 어린아이들은 언더도그죠? 이렇게 예수님 말씀대로 그 당시 가장 약하고 작은 자들인 어린아이들이 천국을 소유합니다.

오늘 어린이・청소년주일을 맞아 우리 사회의 가장 작고 연약한 자들을 다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바로 갈릴리의 사람들입니다. 소외된 자, 넘어진 자, 병든 자, 아픔이 있는 자, 어린아이들입니다. 이렇게 부활 신앙의 주체는 약하고 가장 작은 자로부터 시작됩니다. 구약 말씀을 볼까요? 우리가 잘 아는 기드온 사사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3. 극히 약하고 가장 작은 자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삿 6:11-12)

▲ 타작마당(사진 위)과 예루살렘 정원 무덤에 있는 포도주틀(우리나라 재래식 화장실 모양과 같음)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들 몰래 밀을 타작한다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십니다. 사실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한다는 것은 약간 이상합니다. 벼도 그렇고 밀도 바람이 통하는 넓은 공간에서 타작해야 합니다. 따라서 밀을 포도주를 짜는 포도주 틀에서 타작한다는 것은 숨어서 타작한다는 것입니다. 미디안 사람 몰래 타작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때는 이렇게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침략에 속수무책이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본문 앞부분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파종한 후에는, 늘 언제나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 그리고 동방 사람들이 올라와서 토지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않고 양과 소, 나귀도 남김없이 싹 쓸어갔습니다(삿 6:3-4). 추수가 아니라, 씨 뿌린 다음에 쳐들어와서 싹 제거했다는 말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조선의 추수한 쌀을 싹 거두어 갔지만, 미디안 사람들은 파종한 후에 채 자라기도 전에, 추수하기도 전에 다 없애버렸다는 것입니다. 잔인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디안 사람들의 모습이 메뚜기 떼와 같았다고 합니다(삿 6:5).

아무튼 이러한 메뚜기 떼와 같은 미디안의 습격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파종도, 추수도 할 수 없어서 산에서 웅덩이와 굴을 파고 산성을 만들어 살았다고 합니다(삿 6:2).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 몰래 타작을 한다고 합니다. 파종을 끝내고 잘 가꾸어서 드디어 추수하고 타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록 절망의 상황이지만, 인내로 미래를 준비하는 기드온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기드온을 “큰 용사여!”라고 부릅니다. 고난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숨어서 일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나타나십니다. 그러자 이제야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에게 기드온은 따져 묻습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주셨나이다 하니”(삿 6:13)

기드온이 불평합니다. 애굽에서 우리 조상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시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망의 권세가 판을 치는데, 도대체 하나님 당신은 어디 계시다가 이제야 나타났느냐고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삿 6:14).”

여기 ‘이 너의 힘’은 무엇일까요? 공동번역은 ‘너에게 있는 그 힘’이라고 합니다. 바로 고난과 역경 가운데도 포기하지 않는 기드온의 준비성입니다.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인내와 준비성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기드온이 물었던 그 구원 사건, 곧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오히려 기드온에게 맡깁니다. 그러자 기드온이 황당해합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입니다.

물론 인내로 미래를 준비하기는 했지만, 사실 기드온은 작고 나약합니다. 보잘 것 없습니다. 가문이 그렇고, 지파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삿 6:14-15)” 기드온은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냐고 반문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삿 6:16).”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가장 작은 자, 가장 약한 자도 가장 큰 일, 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할 때 가능합니다. 오늘 서신서 말씀인 히브리서 말씀이 그렇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그런데 말씀에 보니, 예수님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자, ‘대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길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도라는 의미와 우리 죄를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대제사장이라는 의미입니다. 공동번역은 함께 묶어서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우리 신앙의 대사제”라고 번역합니다. 결국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인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사실 히브리서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많은 유대인 성도들이 핍박 때문에 다시 유대교로 되돌아가고 싶어 할 때, 그들을 권면하고자 히브리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시련으로 인해 약할 때,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단계로 ‘정진해 나가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권고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면 약하고 작은이들이라도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아무튼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 곧 예수님을 유대교, 곧 구약의 상징적인 인물들과 비교하는데, ‘천사’, ‘모세’, ‘아론 제사장’과 비교합니다. 그리고 ‘율법’과도 비교합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이유는 천사들이 그리스도를 섬기기 때문입니다. 모세보다 뛰어나신 이유는 모세가 그리스도로 인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론 제사장보다 뛰어나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는 한 번에 완전한 제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율법보다 뛰어나신 이유는 더 나은 새 연약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유대교에서는 많은 것을 잃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와의 비교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하셨으니,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 3:2-6)

따라서 만물을 지으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집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소망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으라는 것입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이전부터 침체한 한국교회 상황이 더 심각해졌습니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오늘 교회교육주일을 맞아, 먼저 부모된 우리가 신앙의 올바른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성경적 믿음으로 교회를 바로 세우고,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그리스도인을 통해 이 땅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회복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국교회의 미래인 ‘다음 세대’는 멀리 있는 이들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함께하는 가족 공동체 안에서 양육되고 성장하는 자녀들이 바로 다음 세대입니다. 따라서 말씀 안에서 심령을 새롭게 하고 성령 충만을 받아, 우리 기성세대의 신앙이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 신앙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부활 신앙의 주체는 어린아이들, 기드온과 같이 극히 약하고 가장 작은 자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이들이 바로 부활 신앙의 주체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다음 세대를 위해 늘 기도하며, 또한 언더도그, 약자들을 위해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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