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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실패먹고 죽는 빵, 영원히 사는 빵(요 6:53-58)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2.05.01 23:16
▲ 한 번의 달콤한 성공에 취해 사는 인생을 성공한 인생이라 부르지 않는다. ⓒGetty Image

1.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추석을 기억하십니까? 추석 명절을 잘 보내셨나요? 저는 잘 보냈습니다. 요즈음에는 예전처럼 온 가족 일가친지가 다 모여서 떠들썩하게 잔치처럼 보내지 않죠. 문화가 바뀌어 가는 중입니다. 특별히 코로나로 인해서 그런 변화에 강제력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쌓여온 전통이라는 디엔에이가 우리에게 있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모이지도 못하고 상다리가 휘어지지도 않아도, 추석은 느긋하고 풍요롭고 여유롭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말이 있죠. 추석의 정서를 참 잘 표현한 말입니다.

물론 농경사회에서 가을걷이 때 느끼는 그 흡족한 풍요로움을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한 해의 모든 수고와 노동의 결실을 맞이하는 그 감격은 정말 대단했을 것입니다. 특별히 장마나 홍수, 혹은 가뭄으로 인해서 절망을 맛보았던 경험이 있다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가을이 되어서 열매가 곡식이 많으니까 좋다’ 하고, 눈앞의 풍요로움에만 도취된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인생의 온갖 역경을 경험하고 이제는 삶의 이치에 통달한 원숙한 나이가 되어서 고백하는 말입니다. 풍요로움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수고와 노고를 기억하는, 특별히 인생의 좌절과 실패와 온갖 역경들을 기억하는, 수준 높은 지혜자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인간이 성장하는 데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마찬가지인데요, 성장을 위해서는 실패와 좌절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성장의 근본 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동교육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이것입니다. ‘어린이가 실패경험을 많이 하면 할수록 마음이 건강하게 성장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릴 때 인생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사소한 일에서 많이 실패할 수 있도록 해주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를 키울 때 거꾸로 생각합니다. 실패하지 않도록, 좌절하지 않도록, 이리저리 옆에서 다 도와줍니다. 혹시라도 실패해서 마음 상할까 봐, 울까 봐, 기 살려 준다고 … 그렇죠? 부모 된 입장에서 좋은 것만 주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 거꾸로라는 겁니다. 오히려 실패를 해보는 게 좋습니다. 실패의 경험이 없는 아이의 삶에 문제가 생깁니다.

크게 두 가지 딜레마에 빠집니다.

첫째는 인생이란 완벽할 수 없어서, 언제가 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실패를 직면하게 되는데, 그렇게 직면한 실패를 처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생 자체가 끝나버린 것처럼, 절망하고 주저앉아버린다는 겁니다.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서 실패를 경험해 보고, 우왕~! 하고 인생 끝난 듯이 울어봤어야 합니다. ‘아, 안 되는 일이 있구나, 내 맘 같지 않구나.’ 그리고 격려를 받았어야 합니다. ‘아, 다시 하면 되는구나, 실패했다고 끝나는 거 아니구나, 한번 울고 일어서면 되는구나’ 하는 그 마음의 단단함을 키웠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한 겁니다.

수많은 실패를 딛고 쌓아 올린 땀과 눈물의 인생탑만이 굳건하게 설 수 있는 것이죠. 실패로 인해서 보기에 멋지지는 않더라도 말입니다. 반대로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쌓아 올린 인생탑은,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내실 없는 허깨비와 같습니다. 한 번의 실패로 금이 가면 와르르 무너져 버리지요. 금 간 것을 스스로 어루만지면서 다시 메워가는 법을 못 배웠으니까요. 한 번의 실패로 절망해 버리고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낙인찍어버립니다. 한 번의 실패로 인해서 패배자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못 배웠으니까요.

그래서 두 번째 딜레마가 생겨납니다. 실패 자체를 두려워한 나머지, 도전 자체를 하지 않는 겁니다. 실패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아예 그 실패의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겁니다.

인생의 성공이 처음에는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순기능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공만 하다 보면, ‘너는 성공하는 아이야. 너는 항상 백 점 맞는 모범생이야’ 하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옥조여오는 족쇄처럼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성공해야만 해, 성공하지 못하면 나는 실패자야. 실패자가 되면 끝이야’ 하고 말이죠.

소위 공부 잘한다고 하는 어린이들을 놓고 실험을 했답니다. 책이 많은 도서관에 가서, 몇 시까지 시간을 정해놓고는 그때까지 책을 몇 권을 읽어라! 하는 미션을 준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만큼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조금은 버거운, 빠듯한 숙제를 일부러 내 준 겁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떤 아이들은 정말 모범생답게 숙제를 다 마쳤습니다. 짧은 시간인데도 정해준 양만큼의 책을 읽었습니다. 반면에 모범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숙제를 다 마치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희들 도대체 무슨 책을 읽었냐?’ 하고 그 읽은 책을 확인해 봤더니,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빠듯하고 어려운 숙제를 용케도 잘 한 아이들 중에는 이런 아이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자기 수준과는 전혀 맞지 않는 유치원 어린이용 그림책을 읽은 겁니다. 또 이미 봤던 책을 다시 읽은 겁니다. 빨리빨리 읽고 권수를 채우려고 했던 겁니다. ‘책을 읽는다’고 하는 본질적인 내용을 포기하면서까지, 선생님이 내준 미션을 성공해야만 한다는 표면적인 성공이 중요했던 겁니다.

반대로 숙제를 마치지 못한 아이들 중에는 이런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두껍고 어려운 책이지만 흥미로운 책을 찾아서 독파한 겁니다. 선생님이 내 준 미션을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미션 실패를 무릅쓰고서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한 겁니다.

간단한 실험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실패라고 하는 내 눈앞에 보이는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보다 더 풍요로운 삶의 행복을 위해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 눈앞에 있는 작은 성공에 발이 묶여,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이 옛말 속에서, 우리 앞에 놓인 삶의 축복에 감사할 줄도 알면서, 동시에는 삶에서 겪게 되는 온갖 시련과 고난 또한 겸허하게 기쁨으로 맞이할 줄도 아는, 그런 풍요로움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3.

지난 주일에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말 그대로 기적입니다.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 아마도 이만 명은 너끈히 되었을 사람들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배불리 먹고 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면, 이 오병이어의 참된 뜻을 왜곡하게 됩니다. 기적에 집중하고, 기적에 환호하게 됩니다.

오병이어의 참뜻은, 기적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내 존재의 상태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판단해서, ‘주님, 저희가 가진 것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뿐입니다’ 하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역시 주님이 기적을 베풀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힘이 없네요’ 하고서 좌절하고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힘이 없으니까 주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세요’ 하고서 주님께만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병이어의 핵심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주님의 명령 앞에서, 반항하지도 않고, 거절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만용을 부리지도 않고, 헛된 희망에 소망을 두지도 않고, 진실된 모습으로 주님께 엎드렸다는 겁니다. 그 이후에 일어난 기적은 주님의 선택이었죠.

그렇게 엎드릴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요? 첫째로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힘입니다. 다시 말하면 실패할 줄 아는 힘입니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면서 실패하지 않겠다고 기를 쓰고 버티지 않습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알량한 성공만을 붙잡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힘이 있을 때, 새로운 희망을 소망하는 힘도 생깁니다. 지금 가진 행복, 내가 아는 행복으로만 만족하지 않습니다. 안주하지 않습니다.

참된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지금의 나를 맹신하지 않을 때뿐입니다. 나의 지성을 맹신하지 않을 때, 나의 신앙을 맹신하지 않을 때, 지금의 나의 삶의 알량한 성공에 취하지 않을 때,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의 차원이 보입니다. 나의 이성과 판단이 확실치 않을 수 있음을 의심하고, 보다 확실한 진리를 추구하게 됩니다. 나의 신앙이 불완전할 수 있음을 의심하고, 보다 철저한 신앙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의 지성이 하나님의 신앙이, 하나님의 지평이 내 앞에 열립니다. 그것이 기적입니다.

4.

오병이어 사건이 있고 다음날의 이야기입니다. 몇 사람들이 배를 타고서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갈릴리 바닷가를 찾아보고, 가버나움까지 와서 결국 예수님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당신들 나를 왜 찾아왔습니까? 빵 먹고 배불러서 온 것 아닙니까? 그 빵 또 먹고 싶어서 온 것 아닙니까?’

6장 15절을 보면, 어제 기적이 있고 나서 바로 그 날에, 사람들이 벌써 예수님을 데려다가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으로 몰래 도망가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또 찾아온 겁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들의 속마음을 간파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기적을 보고 있구나! 기적 말고, 그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을 감동시켰던 그 마음을 알아야 하는데! 기적만 보고 있구나!’

기적을 일으키는 마음,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삶에 기적을 행하시도록 인도하는, 우리의 순전한 마음, 그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 마음이 없으면, 혹시 우리 삶에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 순간뿐입니다. 물이 아무리 포도주가 되어도 그 포도주 마시고서 ‘아, 좋다. 취한다’ 하고서 그만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아니라 오만 명 오백만 명이 먹어도, ‘아, 배부르다. 좋다’ 하고 배 두드리고서 그만일 것입니다. 기껏 원한다는 것이 ‘또 먹었으면 좋겠다. 또 마셨으면 좋겠다’ 할 뿐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그런 삶이 아닙니다.

주님이 진짜로 우리에게 주시고 싶었던 것은 그런 포도주, 그런 빵이 아닙니다. 주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 하십니다. ‘성만찬의 의례, 의식을 정성껏 잘 지켜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면서 보여주셨던 그 마음, 가나의 혼인잔치에서의 마리아의 마음, 오병이어를 앞에 둔 제자들의 어린이의 마음, 바로 그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 그렇지만 온전히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깨닫는 마음, 그래서 주님 앞에 부족한 나의 진짜 모습을 들고 나와서 엎드리는 마음, ‘이 마음을 어떻게 할까요?’ 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 마침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일러주시는 대로 묵묵히 한 발 한 발, 할 수 있는 만큼 살아내는 그 삶.

5.

그 마음과 삶이 우리에게 있다면, 주님께서 그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 더도 말도 덜도 말고 한가위 같은 그런 삶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풍성한 한가위 같은 축복을 앞에 두고, ‘이것으로 족합니다’ 하면서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골고다의 십자가를 앞에 두고도 ‘주님의 은혜가 내게 넘칩니다’ 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해 풍성했던 추석 잔치상을 떠올려 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차려놓고 즐거워했습니까? 주님께서 기적이라도 베푸신 듯,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나 넘쳐나는 그런 양식이었나요? 그 양식의 넘쳐남이 기뻤었나요? 그러나 사실 그 많은 음식이란, 먹어도 먹어도 그저 죽음에 이를 뿐인 그런 음식 아니었나요?

이제 우리의 영혼의 잔치상을 차려야 할 때입니다. 배불리 먹어도 죽음에 이를 뿐인 그런 음식 말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셔서 마침내 내 안에 주님이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게 되는 그런 생명의 양식으로, 소박하지만 넘쳐나게 우리 영혼의 상을 차려봅시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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