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 빈콜리 산피에트로 성당에 보존되어 있는 ‘성 베드로의 쇠사슬’. 이 사슬은 2급 유물로 취급된다. ⓒWikipedia

성유물(聖遺物, holy relics)이란

종교에서 성유물(聖遺物, holy relics)은 흔히 교조나 성인의 유골이나 그 잔해를 가리키지만, 기독교(가톨릭) 전통에서는 성혈(聖血: the Holy Blood) 혹은 보혈(寶血: the Precious Blood)로 부르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물론이고 성모 마리아의 젖 즉 성유(聖乳: the Holy Milk)도 귀중한 성유물로 공경의 대상이며 커다란 구원론적 의미가 부여된다. 물론 개신교는 성유물을 인정하지 않기에 성유물 공경과 관련 신심은 가톨릭 신앙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몸 밖으로 유출된 체액은 – 특히 현 코로나19 시국에서 – 일반적으로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 즉 ‘아브젝트’로 접촉이 기피된다는 점에서, 성혈과 성유로 대표되는 ‘성스러운 체액’은 다른 성유물과는 확연히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필자의 문제의식은 많은 성유물 중에서도 왜 하필이면 성혈과 성유와 같은 체액에 커다란 구원론적 의미와 힘이 부여되고 신자들로부터 신심과 공경을 끌어내는가이다. 다시 말해, 보통은 기피의 대상인 체액이 어떤 조건에서 성스러운 물질로의 새로운 위상을 얻어 순례와 기도/명상의 대상이 되고 궁극적으로 구원을 약속하는 매개물로 기능하는가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각각 유출된 체액이나 분비물이 지닌 속성 그리고 이에 대한 혐오나 기피를 다루는 아브젝트(abject)와 아브젝시옹(abjection) 이론에 필자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성스러운 체액’을 설명하는 데 관련 이론을 접목하는 시도를 하게 하였다. 한편 ‘성스러운 체액’이라 해도 이에 대한 반응이나 수용방식은 체액의 원천이나 종류/상태, 이를 접한 개인의 신앙, 가치관, 사회적 위치 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특히 비주류 종교집단에서 관련 ‘기적’이 일어났을 때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에 이에 대한 반응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에서 물질 그 자체가 성스러움을 담보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본 글에서는 우선 가톨릭교회에서 성유물인 성혈(聖血)과 성유(聖乳)에게 어떠한 종교적 의미와 초자연적 힘이 상정되고, 관련 신행은 어떻게 발전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성혈이나 성유에 대한 신학적/교리적 논의 보다는 신자들의 믿음과 실천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어서 ‘성스러운 체액’의 특성에 주목하여 어떻게 이들 체액이 신자들에게 강렬한 심리적·감각적 반응과 함께 종교적 메시지나 의미를 전달하는 힘을 가지는가를 아브젝트/아브젝시옹 이론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였다.

더 나아가 본 글에서는 중세 후기 종교미술에 주목하여 예수와 마리아의 이미지에 왜 아브젝트-피, 젖, 상처 등-가 적극적으로 차용되며, 이는 또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논의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아브젝트/아브젝시옹 이론이 최근 주로 여성학과 예술비평을 중심으로 담론이 활발히 생산되고 있다면, 종교연구에도 관련 개념이나 이론을 적용하여 특정 종교현상을 분석·설명하는데 있어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위함이다.

성유물로서 성스러운 체액

성유물이나 성물은 종교의 물질적 토대를 연구하는 ‘물질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로, 이들은 역사적으로 해당 종교의 확산과 신앙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1) 그러나 성유물은 단지 교리나 신앙의 매개체가 아니라 종종 비일상적이고 초월적인 힘이 상정됨으로써 자신의 독립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기독교(가톨릭) 전통에서 성물의 범위는 넓어, 비정형적 형태의 성혈이나 성유(聖乳)로부터 고정적인 형태의 성인의 유골이나 그의 소지품은 물론이고 성화(聖畫)나 성상(聖像) 같은 인간이 만든 공예품/예술품(artefact)도 포함한다.(2) 가톨릭교회는 성유물을 세 등급으로 나누는데, 1급 유물은 성인이나 순교자의 물리적 유해이며, 2급 유물은 성인이 소지했거나 자주 사용한 물품, 3급 유물은 1급 또는 2급 유물과 접촉한 모든 물품을 가리킨다.

그러나 예수와 성모 마리아, 사도들과 관련된 귀중한 성유물에는 이러한 등급이 매겨지지 않았으며, 이 중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성유물의 대부분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관련된 것으로 이들 유물 대다수가 예수의 피와 관련이 있다. 특히 예수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에 커다란 구원의 힘이 상정되는 것은 이 피야말로 예수가 지상에 유일하게 남긴 자신의 육체적 물질인 동시에, 인류의 구원을 위한 그의 희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혈은 기독교 성유물 중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으로 성혈에 대한 공경은 기독교 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신심 중 하나이다. 이런 맥락에서 혹자는 성혈이 없었다면 교회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그 존재 이유가 부족하다고 말한다.(3)

여기서 언급할 것은 중세 유럽에서 활발하던 성혈 신심은 각기 다른 두 가지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즉 ① 성만찬/성체의 피, 그리고 ② ‘성혈 유물(blood relic)’에 토대한 신심이 그것이다. 물론 이 두 전통은 중세를 거치면서 서로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성만찬의 피와 관련된 신심은 다양한 방법으로 고양되었는데, 특히 축성된 성체나 성혈에 일어나는 성체 기적은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의 빌즈낙(Wilsnack)의 사례처럼 집중적인 대중적 관심을 받으며 해당 지역을 유명 순례지로 발전시킨다.(4) 그러나 이 장에서는 물질종교의 관점에서 기독교의 중요 성유물인 성스러운 체액과 이와 관련된 신심을 다루기에, 성만찬과 관련된 성혈 신심은 오직 부차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우혜란 연구원(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woohairan@hotmai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