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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밝 변찬린, 포스트-종교운동의 씨앗을 틔우다한밝과 새밝 그리고 동방 르네상스의 문명설계도 ⑴
이호재 원장(자하원) | 승인 2022.06.24 00:41

『선(禪), 그 밭에서 주은 이삭들』은 한밝 변찬린(1934–1985, 이하 한밝 선생이라고 함)의 유고인 ’선(禪), 그 밭에서 주은 이삭들‘의 유고와 1972년 출간된 『선방연가(禪房戀歌)』와 합본으로 1988년에 소량 출간되었으나 곧 절판되었다. 유고는 세간의 주목을 전혀 받지 못한 희귀본인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의 단행본 저술인 『선방연가(禪房戀歌)』는 ’양잿물 사건‘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쓴 유언시집으로 그의 초기 사상을 알 수 있는 원천이다. 또한 그의 주저로 알려진 『성경의 원리』 4부작은 문명의 전환기에 새 종교가 가야 할 길을 예시한 경전해설서이다. 그러나 한밝 선생의 사상을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선(禪), 그 밭에서 주은 이삭들』은 반드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 필독서이다.

한밝 선생, 사상적 돌파구를 마련했다

한밝 선생은 한국이 낳은 문명사가, 종교연구가, 성서학자, 종교개혁가 등의 다양한 이미지를 가진 세계적인 사상가라 할 수 있다. 낡은 문명을 비판하고 새 문명의 패러다임의 기틀을 제시한 사유체계와 이를 포스트 문명개혁으로 전개한 종교운동은 한계에 봉착한 현대 문명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는 유효한 사상을 담지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종교적 심성을 바탕으로 단절된 동서사유의 회통과 포스트 종교운동을 통해 동방의 나라 한국의 세계사적 사명을 제시한다. 동시에 새밝이라는 새 문명의 구현자의 동참을 내세워 분단 이데올로기를 극복한 통일한국이 새 문명국가의 표본으로서, 새로운 인류역사를 창조하자며 ‘구도유언록’을 저술한다.

한밝 선생이 동방문명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기 위한 방대한 사유체계를 짧은 해제에서 전면적으로 언급하기는 지면의 한계가 있다. 이 글에서는 그가 태어난 시대적 배경과 그의 삶, 그리고 책의 주요 내용을 중심으로 동방 르네상스의 기본 설계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데 집중하여 서술하기로 한다.(1)

변찬린의 생애와 책의 저술배경

그는 1934년 9월 18일 함주군(咸州郡) 흥남면(興南面) 천기리(天機里)에서 부친 변성명(邊星明), 모친 김성숙(金星淑)의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역사적 인물은 땅의 영험을 안고 태어난다는 인걸지령(人傑地靈)이란 말이 있듯이 돌이켜 보면 그의 저술과 발언은 ‘천기누설(天機漏洩)’이란 말처럼 천기리에서 태어나 천기를 누설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대주주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전통적인 유학을 학습하면서 어릴 때부터 흥남의 천재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부터 다니던 장로교 계통의 교회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재건교회로 알려져 있다. 청소년 시절부터 한국의 종교적 심성에 뿌리를 두고 외래사상을 창조적으로 수용하여야 한다는 종교적 고민을 안고 구도의 길에 나선다. 그는 훤칠한 키에 미남형으로 기골이 장대한 대장부였으며, 억센 함경도 사투리에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를 가졌다.

한밝 선생의 삶은 민족사적으로 한민족의 수난, 전쟁과 분단을 경험하는 정점에서 전개된다. 세계 이데올로기가 양극화된 연장선상에서 형성된 분단조국에서 남한과 북한의 두 체제를 몸소 경험하였다. 또한 남한의 경제적인 빈익빈과 부익부의 현상을 목격하며 늘 불우하고 가난한 자리에서 삶을 영위하였다.

한편 종교사상적으로 한국의 종교지형은 일제 강점기 이후 전통종교의 붕괴로 인하여 해방 후 종교시장이 전면적으로 재편되는 각축장이었다. 사대주의와 식민주의에 바탕을 둔 외래종교인 천주교와 개신교는 서구신학의 테두리에서 종교시장을 장악해 나가는 반면에 민족종교는 종교시장 재편과정에서 종교성을 그다지 발휘하지 못한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한 교계지도자가 중심이 된 그리스도교계가 권력과 결탁하여 교세를 확장하는 모습에 비판의식을 가진다.

특히 한국 교회의 기복신앙과 대중신학자의 식민주의적 신학태도,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종교 계통의 성서적 ‘이단’의 발흥, 그리고 전혀 ‘한국적’이지 않은 토착화신학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참 종교’가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한다.

이런 역사적 자의식을 바탕으로 그는 종교와 신학, 철학과 역사, 과학과 예술 등을 폭넓게 공부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선맥(僊脈)과 무맥(巫脈), 유교, 불교, 도교 등 전통적 종교와 동학(천도교),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등 민족종교, 그리고 서양에서 전래된 천주교와 개신교 등을 포함한 다양한 종교에 대한 깊이 있는 교차적인 경험을 한다.

그는 학연과 지연, 사회적 명예와 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었고 본인 스스로 소외시켰던 구도자 그 자체였다. 한밝 선생은 1965년, 32세가 되던 해부터 은밀한 구도의 공간에서 검은 대학노트에 쓴 글이 바로 이 책이다. 그가 사망하기 3년 전인 1982년에 『성경의 원리 (하)』 후기에 “누구 한 사람도 이해하는 자 없이 고단히 행하는 길목마다 진한 각혈의 장미꽃 아름답게 피워 처절하도록 눈부신 화환을 엮어 저는 아버지의 제단에 바쳤습니다”라고 말하며 “자강불식(自强不息), 오늘도 저는 홀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좋은 길동무를 만나 외롭지 않게 하십시오”라고 말하듯이 그의 삶은 철저히 불우하고 처절하고 고독하였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깨달음의 높이와 열린 신앙의 깊이로 맺은 구도의 열매를 창조적인 소통언어로 구도의 반려인 미래의 구도자인 새밝에게 당부하는 지침서를 쓰는 외에 다른 방법이 있었을 리가 없다. 그의 구도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증언해 줄 수 있는 목격자가 없는 상태에서 그가 32세부터 사망하기 3년 전까지 쓴 이 책은 그의 사상체계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유일한 책이다.

▲ 『성경의 원리』 4부작 초판본

<변찬린의 단행본의 집필기간과 초판출간 연도>

이런 구도의 과정에서 그리스도교 신종교 계통으로부터 사주를 받은 지인에 의해 발생한 ‘양잿물 사건’은 그의 삶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킨다. “하루에도 죽음의 문턱을 서너 번 들락거리는” 상황에서 구사일생으로 생명은 건졌지만 ‘산송장’이 된다. 불의의 사건으로 그는 기도가 막혀 물 한 방울을 넘기지 못해 남은 생애 동안 관을 통해 주입하는 이유식으로 연명하는 육체적인 고통 속에 유언시집인 『선방연가(禪房戀歌)』(1972)를 출간한다.(2)

▲ 『禪房戀歌』, 함석헌 친필 제자(題字)

청년시절 세계경전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원대한 학문 계획은 ‘양잿물 사건’으로 수포로 돌아간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한 상황에서 신체적 위협마저 느끼는 불안을 안고 그는 『성경의 원리』 집필에 사활을 건다. 그의 종교적 여정은 오히려 ‘양잿물 사건’ 이후에 세상에 포착된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은 다석 유영모, 신천 함석헌, 법정, 김범부, 증산진법회 회장인 배용덕, 장병길 교수(서울대), 최순직 목사, 정역연구의 대가 이정호, 시인 이열 등이 대표적이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픈’ 구도자로서 그는 필요한 말 이외에는 본인의 의중을 누구에게나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성경강의〉에서도 경전해석 외에 잡다한 사적인 발언은 거의 들을 수 없다. 그의 저술과 〈성경강의 테이프〉에는 종교현장에 대해 다양하고 정확한 종교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구체적인 발언이 많이 있다.

1970년을 전후하여 그는 함석헌의 배려로 서대문구 종교친우회의 단칸방에 기거하며 별도의 성경모임을 가진다. 이 소모임은 얼마 지나지 않아 45명 이상이 확대되자 세력 확장을 두려워하던 어떤 종교단체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는 아픔까지 겪었다. 그러나 이 성경소모임이 토대가 되어 종교개혁을 표방한 새 교회가 1977년 4월 18일(음력 3월 1일)에 창립되었고, 두 차례에 걸쳐 기성 교회와의 연합운동으로 확산되었으나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채 1983년에 막을 내린다.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변찬린은 죽기 6개월 전까지 『요한계시록 신해』의 집필에 전력하며 1985년 2월에 마지막 유고를 남긴다. 그는 1985년 8월에 검은 구름이 잔뜩 낀 날, 검푸른 동해 바다에 유골이 뿌려졌다.

한밝 선생의 일생은 사회적인 잣대로 평가할 ‘그 무엇’을 어느 것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고독한 종교인이었다. 그러나 깨달음의 높이와 믿음의 깊이로 구도자의 품위를 잃지 않는 성실함으로 목숨을 건 신화적 삶을 살았다. ‘산송장’으로 포스트-종교운동의 씨앗이 될 『성경의 원리』 4부작이라는 역사적 저술을 남긴다. 그리고 종교운동을 통해 동방 르네상스의 주인공인 역사의 민중을 일깨우려는 예언적 선지자의 외침을 고스란히 새밝에게 남긴다.

바로 이 책이다.

미주

(1) 구체적인 변찬린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고할 것: 이호재, 『한밝 변찬린(한국종교사상가)』, 문사철, 2017.; 이호재, 『포스트종교운동: 자본신앙과 건물종교를 넘어』, 문사철, 2018.

(2) 『선방연가(禪房戀歌)』(1972)도 희귀절판본이다. 6월 경에 개정신판으로 출간 예정.

이호재 원장(자하원)  injich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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