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노니아 - 공동의 절정”(요한 15:1-27) - 이병일 목사


여름과 겨울이 되면 각 교회마다 수련회로 바빠집니다. 수련회를 바꾸어 부를 수 있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양회, MT, 모꼬지, 힘몰이, 들살이, 모둠살이 등등. 이 모든 말들은 “함께” 무엇인가를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평상시의 교회생활에서는 개인적인 것을 충분히 추구할 수 있지만 함께 먹고 마시며 뒹굴 수 있는 시간은 부족합니다. 특히 며칠 동안 한 솥밥을 먹는 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흔히 하느님 나라를 비유할 때에 ‘밥상공동체’를 떠올립니다. 우리 문화와 전통에서도 함께 밥을 먹는 행위가 중요하듯이 유대의 개별적 율법 단화들 중에서 식사에 관한 규정이 67%(2/3)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음식을 정결하게 준비하고 보관하고 기르는 법 등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밥상과 예수님의 밥상은 전혀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유대의 식사법은 성결을 위한 것으로써 그들만의 동질성만을 전제하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배타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밥상은 여러 종류의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먹고 마시는 다양성을 전제로 하면서 소외되고 해방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밥상공동체가 하느님 나라의 상징인 것은 소외되고 추방된 사람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초청이 필요했던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에게서 밥상공동체가 상징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자리가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밥상이 공동체에서 중요한 이유는 음식이 생명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밥상을 함께 했다는 것은 모두가 함께 먹고, 함께 생명을 유지하며, 함께 세상을 누리자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함께 밥을 먹으면서 공동체적 유대와 연대를 가질 수 있으며, 서로 동화되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질긴 운명의 끈으로 묶인 가족을 다른 말로 ‘식구(食口)’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밥상공동체는 오늘의 화두인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의 시작이요, 기초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친교, 협력, 교제, 합동, 참석, 참여, 구제, 원조”를 의미하며, 근본적으로 “함께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을 향하여 마지막 설교를 하시는데, 이를 ‘고별설교’(요한 13:31-17:26)라고 하며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흔히 ‘포도나무 비유’라고 알려진 요한복음 15장은 고별설교의 중간에 있으며, 코이노니아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것이라 함은 그 대상과 목적, 과정과 결과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본문의 전반부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머물러 있어라”(μένω)이고, 코이노니아의 의미를 잘 드러내는 말입니다. 즉 함께 생각하고 함께 활동하며, 생각을 나누고 뜻을 모아서 함께 행동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뿌리와 줄기에 붙어 있어야 한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듯이, 예수님이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듯이, 우리도 하느님과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무아경에 빠진 신비적 합일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종교나 마찬가지이지만 기독교 전통에서도 예수님의 고난을 명상하고, 자기 자신을 고통에 내어주면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려는 종파가 있습니다. 지금 남한의 교회와 교인들의 상당수가 그러한 유형의 신앙생활에 빠져 있습니다. 몇 년 전에 극장가를 휩쓸었던 영화 “The Passion of Christ”에 매몰되어, 많은 교인들이 영화 속에서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자기의 모습으로 바꾸어 눈물을 흘렸다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소극적인 존재의 형태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존재의 방식입니다. 즉 그분의 뜻대로 그분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고난을 명상하고 하느님과 신비적 합일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그 궁극적인 목적은 그분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존재 방식입니다. 하느님과 사귐을 가지고 예수님과 친교를 나누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 목적은 하느님의 뜻을 펼치는 것이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예수님과의 사귐을 일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사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아들과 사귀도록 초청받은 사람들입니다(고후 1:9). 예수님과의 사귐은 복음에의 참여와 믿음의 교제가 수반됩니다(고전 9:23; 빌립 1:5).

교회는 “주의 만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함께 잔을 마시고 떡을 떼는 사람들과 하나 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님과의 사귐에 참여하는 것이고, 잔과 떡을 나누는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는 것입니다. 떡과 잔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용서의 축복이 수반된 내적인 친교에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따라서 같은 잔(同杯)을 마심으로써 같은 무리(同輩)가 된 사람들을 “동배”라고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으로 주로 사용하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집사나 장로 등의 직분을 부르거나 형제 자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천도교에서는 '함께 덕을 쌓는다'고 하는 의미를 살려서 同德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교회에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사귐은 믿음(빌레 17)과 섬김(고후 8:23)의 협력 안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를 포함합니다.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 되게 하는 살아 있는 끈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과의 사귐으로 시작된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인들 간에 사귐으로 완성될 것입니다(요일 3:2,24; 4:13).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2, 17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 간의 코이노니아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예수님의 제자 됨의 증거이며, 하느님의 자녀 됨의 표현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은 배려와 관심으로 표현됩니다. 교회 공동체 속에서 보다 더 연약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챙겨주는 것, 여러 모습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마음을 쏟거나 남몰래 도움을 주는 것, 그 이전에 곤경에 처한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것, 하루에 한 사람씩이라도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것, 이렇게 잔잔한 일상 속에서 함께 움직이는 코이노니아가 우리 교회를 더욱 아름답고 건강하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더욱 끈끈한 정을 나누는 공동체를 위해서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쉬우면서도 어렵고, 어려울 것 같으면서도 해 보면 쉽고 재미있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 주보의 앞면에는 “예배와 친교”라고 크게 적혀 있습니다. 이제 친교가 코이노니아라는 것은 다 아시죠. 우리 교회는 예배나 모임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특별한 일 외에는 주일에 한 번 교우들과 만나게 되는데, 교회에 왔다가 예배드리고 밥 먹고 바로 집으로 가지 마시고, 적어도 서너 시까지는 교회에서 서로의 삶과 고민을 나누면서 코이노니아를 하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분들은 모두 남아서 차를 마시며 대화하면서 정을 나누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조금씩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교회의 코이노니아는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참되게 따르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세상을 향해, 세상 속에서 계속됩니다. 세상과의 코이노니아는 빛의 자녀로서 세상 속에서 진실을 폭로하면서(에베 5:11)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27절). 예수님이 세상 속에서 우리를 택하였지만, 다시 세상 속으로 파송하였고 세상에서 세움을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 중에는 “거룩하다”와 “거룩할 聖” 자가 있습니다. 성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 성도, 성전, 성례전, 성만찬 등등. “거룩하다”는 어원적으로 “분리되었다, 구별되었다”라는 의미이며, 일반적인 세상으로부터 선별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다시 세상으로 파송되었다는 것은 그 분리는 다시 들어가기 위한 분리인 것입니다. 한자에서 거룩할 성(聖) 자를 파자하면 귀와 입을 크게 열라는 뜻입니다. 즉 세상에서 들을 것은 모두 듣고, 세상을 향해 해야 할 말은 확실하게 하라는 뜻이죠.

지금 남한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해결하기 위한 운동을 비롯해서 하느님의 평화와 창조질서를 위협하는 세력들의 숨은 의도를 드러내고 폭로하여 새날을 꿈꾸며 움직이는 것이 세상과의 코이노니아입니다.


한 하느님, 같은 예수님을 믿는 하나의 신앙으로 시작되는 우리의 코이노니아는 같은 무리에 속한 이들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 하고, 기쁨을 서로 나누는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곤경에 처한 이웃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눌 때에 우리의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하느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같은 잔을 마신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는 공동의 절정에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있으며, 그 속에서 하느님 나라는 소리없이 자라납니다.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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