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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있는 사람은?하나님 나라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은(요13:1-17)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2.07.03 23:41
▲ Jesus washes his disciples’ feet, from Art in the Christian Tradition, a project of the Vanderbilt Divinity Library, Nashville, Tenn.

1.

오늘 읽은 말씀은 배반당하고 잡혀가시기 전에 마지막 만찬을 나누는 저녁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마태·마가·누가 세 복음서는 마지막 만찬 중에 있었던,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이야기, 우리가 성찬이라고 부르는 이야기를 중심사건으로 전하고 있는데, 오늘 요한복음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이야기입니다.

주보에 ‘금주의 말씀’이라고 네모 칸 안에 이번 주 설교본문 중에 핵심이 되는 말씀을 적어 놓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는 13장 8절 말씀을 적어놓았습니다. 오늘 예수님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4절의 말씀을 보면,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남을 섬기자”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말씀도 매우 중요한 핵심의 하나입니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오늘 이야기의 진짜 주제는 ‘관계’입니다. 설교 제목이 ‘내 곁에 있는 사람은?’이라고 되어 있지요. 나는 누구와 무슨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가? 예수님이 삶으로 보여주신 관계는 무엇인가? 나는 예수님과는 하나님과는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겁니다.

누군가를 섬긴다고 하는 것이, 자칫 섬김이라고 하는 ‘행위’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면, 그리고 ‘섬기는 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그 섬김의 본질이 훼손되어 버립니다.

10월 마지막 주일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그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것이 바로 근본 의미를 상실한 ‘행위’였습니다. 종교적인 행동들이 아무리 장엄하고 대단하고 위대해고,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대단한 행위들을 한다고 해도, 그 행위의 근본이 되는 마음가짐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그 행위를 의미 없는 행위입니다. 의미 없는 행위일 뿐 아니라, 거짓된 행위이고, 위선적인 행위이며,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행위가 됩니다.

2.

섬긴다고 하는 그 행위의 중심에 있어야 할 마음가짐, 그 마음이 뭐냐? 바로 8절 말씀에 그 핵심이 있는 겁니다. 오늘 주제가 뭐라고 했죠? 좀 전에 말씀드렸는데, 벌써 잊어버린 거 아니죠? “관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상관없다’는 말의 ‘상관’은 ‘메로스(μερος)’라는 말인데, 분배, 나눔, 일부분, 한 조각이라는 말입니다. 너와 내가 메로스를 함께 가진다, 서로의 몫을 나눠가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의 관계가 일대일의 관계가 아닌 겁니다.

커다란 일에 각자의 몫을 가지고 함께 동참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겨준다는 것은 예수님과 베드로만의 관계맺음이 아니에요. ‘내가 예수님이랑 얼마나 친한지 알아? 예수님이 내 발까지 닦아주셨어? 우리 그런 사이야!’ 이런 관계가 아닌 겁니다.

하나님께서 근본이 되어주시는 ‘하나님 나라’라는 특별한 사건, 그 사건에 예수님은 예수님의 몫을 가지고 그 몫에 따르는 일을 성실하게 하시고, 베드로는 베드로의 몫을 가지고 그 몫에 따르는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각자의 몫을 성실하게 맡아 감당할 때, 비로소 하나님 안에서 참된 관계가 맺어지는 겁니다.

베드로는 이런 관계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예수님의 손길을 거절합니다. 아마도 선생님이 자기 앞에 무릎 꿇고 발을 씻겨주신다는 것이 부담스러웠겠지요. 그런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런 부담을 지는 겁니다. 그런 부담을 지지 않으면 관계맺음이 불가능합니다. 아무런 부담 없는 소위 ‘쿨한 관계’는 없습니다. 그런 관계는 허깨비입니다. 진짜 관계는 부담스러워야 합니다. 마음의 짐을 지고 있어야 합니다. 억지스런 짐이 아니라, 사랑의 짐이죠.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부담입니다. 그 사랑으로 나를 섬기고 있다는 부담입니다. 그 사랑의 섬김이 황송해야 하고, 그 황송함이 마음속에 계속 남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갚을 기회가 있기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관계들은 어쩔 때는 나의 섬김으로, 어쩔 때는 내가 섬김 받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계산기를 두들겨서 정확하게 얼마 주고 얼마 받고 그렇게 끝낼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은 누군가 한편의 지나친 섬김도 경계하십니다. 일방적인 섬김도 제대로 된 관계가 아니라는 겁니다. 베드로가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 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또 냉정하게 거절하십니다. ‘아니다. 너는 발만 섬김 받으면 된다. 다른 데는 다 깨끗하다.’

예수님의 말씀은 ‘섬기되 서로 섬기라’는 겁니다. 한편만 일방적으로 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무작정 베풀고 퍼주고 하기만 하면 안 됩니다. 섬길 것은 섬기고, 섬김 받을 것은 섬김 받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상에 요구해야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이해가 안 되던 말씀이 있어요. 예수님의 말씀 중에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돌려대고,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주고, 그런 말씀 있잖아요. 이해가 안 됐어요. 어리석은 거잖아요. 제가 궁금한 건 이거였어요.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착하게 살면, 다른 사람들이 ‘야, 훌륭하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할까?” 아닐 거 같았어요. 오히려 예수님 믿는 사람들 이용해 먹을 거 같았어요. “저 사람들, 바보야. 그냥 맘대로 해도 돼. 어떻게 해도 저 사람들은 다 용서해줘.” 이럴 것 같은 겁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보같이 이용당하면서까지 그렇게 착해빠지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을 보여주면서, 말씀대로 살라고 세상에 당당하게 요구하라는 겁니다. 너희들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 세상에 외치라는 겁니다.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그게 오늘 말하는 관계맺음입니다.

3.

그러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관계, 메로스, 나의 몫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몫이라고 했죠? 원활한 인간관계의 몫인가요? 사람으로서의 인륜적 도리의 몫인가요? 선한 윤리적 몫인가요? 뭐라고 말씀드렸죠? 하나님 나라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나라에서 내가 차지할 몫이 무엇인가?

‘몫’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감당할 수 있고, 나는 무엇을 도움 받아야 하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부족한 것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잘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이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요구해야 하고, 무엇을 내주어야 하는가?

사도 바울이 지체의 비유를 든 것처럼 말이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 나라인데, 나는 어떤 지체여서, 어떤 힘을 보탤 수 있고, 보태야 하고, 그렇게 이룬 선에서 무엇을 누리는가?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 ‘몫’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관계’라는 주제가 다시 등장합니다. 서로의 몫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 몫을 잘 감당하려면, 우리가 서로 긴밀하게 관계 맺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나만의 관계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과 제대로의 관계를 맺으면, 예수님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 나아가 예수를 알지 못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 온 우주 세계와 하나님 안에서 긴밀한 관계가 맺어지는 겁니다.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내 신앙을 돌아보고 성찰하자’ 그랬습니다. 오늘의 성찰의 주제는 이렇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써 내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과 관계 맺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과 관계 맺지 못하는가? 혹은 오히려 피하고 있는가? 내가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은 어떠한가? 섬기는가? 섬김 받는가? 일방적으로 섬기고자 하는가? 섬김 받고자 하는가? 보다 근본적으로, 예수님과 나의 관계는 어떤가?

4.

그분 그리스도와 나는 어떤 관계인지?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 묵상이 한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써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또한 깊이 묵상하길 바랍니다. 그 관계 맺음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내 몫을 묵상하길 바랍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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