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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예수님의 삶을 살아내는 것내 이름으로 구하면(요16:16-24)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2.07.24 21:52
▲ 「Jesus’ Prayer in the Garden of Gethsemane」 (리투아니 제마이치시 칼바라자 성당에서 제작되었다.) ⓒGetty Image

1. 기도와 응답

기도와 간구에 대한 말씀들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마7:7).”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서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약1:6).”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마6:8).”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마21:22).”

이 말씀들의 중심에는 ‘하나님은 확실히 주신다’는 약속과 ‘믿고 의심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하니 믿고 간구하면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제 삶을 돌아봅시다. 다 이루어지셨습니까? 간구한 것마다 다 성취되었습니까? 아니라고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거짓이었거나, 우리가 제대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하나님이 거짓을 약속하실 리 없으니, 우리는 항상 ‘우리의 믿음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믿고,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과연 이것이 기도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결론일까요?

오늘 요한복음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다.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될 것이다(요16:23-24).” 앞서 읽은 말씀들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 사이에 ‘예수의 이름’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2.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교리적으로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 역사를 기억하고 확증하는 말씀입니다만, 오늘 말씀 속에서는 그런 의미가 아닐 것입니다.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가? 기도가 이루어진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아들의 삶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의 삶이 무엇인가? 하는 우리 신앙의 본질을 지칭하는 말이 ‘예수의 이름’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요한복음 16:16-24의 말씀은 참 이해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조금 있으면 못 본다고 했다가 다시 조금 있으면 본다고 합니다. 보지 못하면 근심하고 슬퍼하지만 보게 되면 마음이 기쁠 것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이 말씀은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전부인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너희가 지금은 근심하고 걱정하고 고통 속에 있지만, 그것이 결국은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날에는 우리가 주님께 묻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날이 되어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날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주님께 질문한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이해하기 불가능해서 주님께 계속 질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에게 주신다고 했는데 왜 안 주시나요? 약속하셨는데 왜 안 이루어 주시나요? 나에게 기쁨 주신다고 했는데 왜 지금 고통스러운가요?’ 계속 묻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되면 묻지 않게 됩니다. 모든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나서 드디어 ‘예수의 이름’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았다.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다 주실 것이다.’

예수의 이름에 무슨 힘이 있길래, 무슨 능력이 있길래, 주문 따위가 결코 아닐 텐데, 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하실까요? 오늘 우리의 고민의 주제입니다.

3. 이름과 존재의 합일

초등학교 교실을 상상해 봅시다.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습니다. 한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말합니다. “야, 조용히 해!” 그러자 다른 친구들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네가 뭔데 우리한테 조용히 하라 마라야?” “선생님이 그러셨거든!” 다들 아무 말도 못합니다.

사극을 보면 관복을 잘 차려입은 관리가 두루마리를 펴들고 근엄하게 외칩니다. “어명이오!” 그러면 영의정, 좌의정 하는 높은 양반들도 어명을 들고 온 하급 관리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이렇게 이름은 그 존재를 상징합니다. 그 이름만으로 권위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그 존재를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마음, 그 사람이 하는 행동,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과 일치될 때뿐입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우가 호랑이의 이름을 그 위세를 뒤집어쓴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가짜 권위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요? 호랑이를 뒤에 업은 여우가 평생 언제까지라도 호랑이의 위세를 제 것인 양 사용할 수 있을까요? 곧 들통 나지 않을까요? 들통 나게 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호랑이를 등에 업고 있어서 호랑이의 권위인 듯 보이나, 그 하는 짓이 호랑이와 다르게 여우 짓을 계속하게 되면, 다른 동물들은 곧 알아차리게 됩니다. ‘호랑이 탈을 쓴 여우로구나.’

‘어명이오!’ 하고 외치면, 처음에는 누구나 그 앞에 조아리고 복종합니다. 그런데 어명이라고 외쳤는데 그 어명의 내용이 임금께서 하실만한 명령이 아니라면,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그 신하는 속으로 의심할 것입니다. ‘우리 임금이 이러실 리가 없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말은, 예수의 이름을 빌려서 하나님께 청원한다는 말은, 예수님과 똑같은 마음, 예수님과 똑같은 생각, 예수님과 똑같은 열정, 예수님과 똑같은 소원으로 하나님께 간구한다는 말입니다. 말로 늘어놓는 기도만이 아니라 예수님과 똑같은 삶으로 살면서 간구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주문처럼 습관처럼 되뇌지만, 그 기도의 내용이 예수님이 바라실 기도가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소원과 예수님의 열정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다만 ‘나’라고 하는 한 인간의 마음으로만 가득 차 있는 기도라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실까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했으니 하나님이 들으셔야만 하는 걸까요?

4. 다시 예수의 이름으로

주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다.” 이 말씀에 우리가 반박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데요. 아브라함, 모세, 다윗… 몇 천 년 동안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주님은 고개를 가로 저으십니다. “아니다. 너희는 헛된 기도를 했다. 간구하기는 했으나, 너희 마음에 합당한 기도를 했을 뿐이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당한 그런 간구를 한 번이라도 했느냐? 진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했느냐?”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것은 두려운 명령입니다. 기도 뒤에 아무 때나 주문처럼 붙이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내 기도의 모든 내용이 예수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이 내 바람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내 원이 되어야 합니다. 간절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간절한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예수님이 하실 기도를 내 입으로 할 뿐입니다. 그렇게 기도의 순간, 온전히 나는 사라지고, 예수님만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기도를 마친 후에 감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상상해 봅시다. 우리가 조선시대 벼슬아치가 되었습니다. 임금님의 명을 받들고 사신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이제 막 두루마리를 열고 어명을 전달할 참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요? ‘내로라하는 대단한 대감들이 내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구나’ 하고 우쭐할까요? 아니면, 나라의 지존인 임금님의 말씀을 내가 전한다는 생각에 두렵고 떨리는 한편, 임금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해야겠다는 각오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을까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이 바로 이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 기도 안에 나의 사사로운 생각, 나의 욕심, 인간적인 욕망이 혹시라도 들어갈까 단속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혹시라도 들어가지 않게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 마음이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인가? 이 기도가 이 땅에서 실현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가 기뻐하고 즐거워하실까?’

‘어명이오!’를 외쳤던 사신이 임금님의 명령과 상관없는 자기주장을 늘어놓으면 임금님과 상관없는 가짜 사신인 것이 들통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했으나, 예수님의 마음과 상관없는 기도를 늘어놓으면, 가짜 기도인 것이 들통 납니다.

우리는 ‘구하는 모든 것을 다 주겠다’ 하신 약속의 뒷 구절만 기억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얻기 위한 수단처럼 ‘예수의 이름’을 내 기도에 부적처럼 붙입니다. 그리고는 ‘이제 다 주시겠지’ 하고 웃으며 기다립니다. 그러나 천만에요. ‘어명이요!’ 당차게 외쳤지만, 임금님의 명령과는 관계없는 자기주장만을 늘어놓은 가짜 사신은 함부로 어명을 사칭한 죄로 의금부에 끌려가 처형당할 것입니다. 주님께로부터 ‘너희는 지금껏 한 번도 구하지 않았다’ 하는 말씀을 들을 뿐입니다.

5. 기도의 기쁨

예수님은 이어서 ‘구하는 대로 다 주겠다’ 약속하십니다. 다 주시는데, ‘내 이름으로’ 주겠다 하십니다. 예수께서 원하는 모습으로, 예수께서 원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기도의 응답이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 계신 하늘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공간에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바로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내 뜻대로 마음껏 살다가 마침내 하늘에서도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뜻이 나와 상관없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나의 땅에 내 삶 속에 오롯이 임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갸우뚱하고 질문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들어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안 들어주시죠? 이루어진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안 이루어지죠? 나에게 기쁨 주신다고 했는데, 왜 기쁨이 없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못할 때, 우리는 납득하지 못합니다.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날이 오면, 내 기도가 예수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게 되면, 내가 바라는 것이 나의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바람이게 되면, 비로소 우리에게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이렇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 주겠다’ 하지 않으시고, ‘내가 원하는 것 주겠다’ 하십니다. ‘너는 싫어했던 것 주겠다’ 하십니다. 그러나 억지로 그러지 않으십니다. ‘내가 주는 것을 싫어했던 너의 마음을 바꾸어 주겠다. 나의 뜻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바꾸어 주겠다’ 하십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참된 기도의 응답이란, 기도의 기쁨이란 이것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면 근심이고 슬픔이고 아픔일 뿐입니다.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 없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내 마음을 돌아보는 순간, 내 기도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고 바라시는 것인가 성찰하는 순간, 마침내 주님의 마음을 나 또한 마음속 깊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는 순간, 주님이 주시는 가장 큰 은혜가 우리의 삶에 가득 넘치게 될 것입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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