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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른후트 보물 중 보물, 로중 <그 말씀>에 대하여헤른후트에서 온 편지 (11)
홍명희 선교사 | 승인 2022.09.02 00:02
▲ 말씀을 뽑는 그릇 ⓒ홍명희

내 생일에 초대했던 분들 가운데, 한 할아버지가 계셨다. 그는 내가 급히 자동차를 쓸 일이 생기면 차를 빌려주시곤 했었다. 연약하지만 기도 가운데 사시는 그를 보면서 ‘참 모라비안의 후예답다’고 느꼈었다. 선물을 가져오셨는데 손안에 들어가는 작은 고서였다. 180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로중(Losung)이었는데, 의미 있을 것 같다며 가져오신 것이다.

처음에 출간되었던 오리지널 판은 아니지만, 그 책을 그대로 재연해서 만든 것이라서 아주 귀한 것이었다. 내가 이곳 헤른후트에 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닌, 이러한 보물들을 하나씩 캐내는 것이 아닐까! 이 작은 마을에서 가장 귀한 보물 1호가 로중이 아닐까 싶다.

지난 5월 3일에는 전 교우가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말씀을 뽑아 3년 뒤의 로중을 날짜대로 정하는 예식이 있었다. 약 1시간을 뽑았는데, 두 달 치를 완성했다. 두 사람씩 세 조를 이루어 한쪽에서는 큰 은그릇에 손을 넣어 번호를 뽑고, 다른 쪽에서는 그 번호에 정해져 있는 말씀을 읽었다. 나머지 한 팀은 그것을 손으로 적으면서 완성했다. 지루해 보일 수 있는 과정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들 그리고 3년 뒤에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갔다. 

로중의 시작은 1728년 5월 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젠도르프는 말씀을 듣고 돌아가는 성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매일매일 말씀으로 든든히 서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을 가졌다. 그래서 매일 아침 그들이 읽고 힘을 낼 수 있는 말씀을 골라 적으면, 한 형제가 그것을 맡아 마을의 집마다 찾아가 전달했다. 각 집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진젠도르프가 다음 말씀을 또 전달하게 했다.

그 당시 대략 30에서 50가구 정도가 마을에 살기 시작할 때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진젠도르프는 선교사로, 망명으로 헤른후트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서 1731년에는 일 년 치 책으로 묶어 출간하였고, 얼마 안 가서 독일 전역과 유럽 전반에 배포되었다. 선교지에도 가져가서 그곳 사람들에게도 읽혀야 했으므로 빠르게 여러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약 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달되고 있다. 

▲ 한국어를 포함한 전세계 로중책들 ⓒ홍명희

처음 독일의 다른 지역에 살 때, 로중이 성도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주일 설교도 로중에 의지해서 선포된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온 나라의 성도들이 같은 말씀을 읽기에, 서로 나누기도 좋고 함께 하는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탄절이 되어갈 때도 로중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서둘러 내년의 말씀인 로중을 사거나 서로 선물을 주기도 한다. 엘스벳이 내게도 늘 물어보곤 하였는데, 한 해는 디아코니아에서 많이 주었다며 내 것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우리는 언젠가 이 로중을 만들어낸다는 헤른후트에 꼭 한번 같이 가자고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아예 이곳으로 이사 와서 살고 있는 것이 친구들에게는 또한 신기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말씀의 통일이 독일 뿐 아니라, 세계 60여 국에서 읽히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한국에서는 홍주민 박사가 <그 말씀>으로 매해 번역하여 출간하고 있고, 이곳에서는 한국어판을 수입하여 올해에도 이곳을 방문한 분들에게 백여 권이 안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올해는 우크라이나어 번역을 새롭게 출간하게 되었다.

헤른후트 사람들은 왜 의지에 의해서 결정되는 말씀이 아닌, 뽑기(losen)에 의미를 두게 되었을까? 뽑기라는 행위는 내 의지와 결정을 포기하는 전적인 믿음의 행위라고 본 것이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그 당시 헤른후트 사람들은 이를 전적인 믿음의 사건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번은 선교사가 현지에서 결혼할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청해 왔다. 헤른후트 공동체에서는 자매들이 둘러앉아 이틀에 결쳐 뽑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뽑힌 자매를 선교지로 보내었고, 그들 또한 만족한 결혼을 했다고 전해진다.

어느덧 이런 뽑기의 비중은 공동체 내에서 점차 작아졌지만, 여전히 말씀만은 아직도 뽑기에 의해 그날에 필요한 말씀을 정하고 있다. 

▲ 말씀을 뽑는 그릇 ⓒ홍명희

교우들이 함께 모여 로중에 관한 간증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 인생에서 로중의 신비로움 같은 고백 시간이었다. 예를 들어 자기가 결혼 한 날 받은 말씀이, 수십 년이 지나 아들이 결혼할 때도 같은 말씀이었다든지, 여행을 갈까 말까 망설이는 중에, 말씀에 용기를 얻어 갔다는 이야기 등등 수도 없는 간증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 또한 로중의 은혜를 매일매일 받고 있다.

어제는 선교사 자녀 세 명이 왔다. 한국 아이들이었다. 어제 로중을 펼치니, 시편 118:15-16이 나왔다. 그리고 그에 맞는 신약도 내가 좋아하는 누가복음 1:46이었다. 사실, 비자를 신청하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때는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일 년마다 이곳의 사명을 위해 비자를 연장받고 있는데, 잘 통과될지 여러 가지가 걱정된다.

그러나 말씀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늘 승리를 예상하니, 주 안에서 기뻐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 또한 이 말씀에 순종하여, 기쁜 하루를 선포했다. 종알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종일 다녔다. 교회와 교회의 박물관도 보여주고, 성에도 가고, 별 공장에도 갔다. 진젠도르프 집 뒤에 있는 정원을 바라보며 밥도 먹었다. 아이들은 헤른후트가 좋다고 난리였다.

말씀을 읽고 결단을 내리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기에 아침에 읽은 말씀을 다시 한번 오후에 펼쳐 본다. 얼마나 빨리 말씀이 잊히는지 놀랍다. 말씀이 더욱 내 삶에 운행하시도록 마음을 모은다.

홍명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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