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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짊어질 십자가제자의 길(사 5:1-7; 눅 14:25-35)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09.08 00:55
▲ 자기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의 제자가 소금입니다. ⓒFreepik

코로나 이후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요? 질병을 극복하고 인간의 능력을 자랑하게 될 희망의 시대일까요? 이와 함께 인공지능의 극대화와 산업의 탈탄소화 달성으로 기후위기도 극복하는 그런 장미빛 시대가 올까요? 대단히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 일일지라도 우리의 아이들 세대가 그러한 시댸를 맞이할 수 있기를 빕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노력하면서 코로나로 대표되는 새로운 질병과 함께 기후위기 가운데 사는 불안한 시대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비록 그러한 시대가 온다 해도 그 시대는 곧 세계 자원의 고갈이라는 근본적 문제에 부딪힐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세계는 마침내 현재와 같은 인간의 생활양식과 인구를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마치 낮과 밤이 교차하며 공존하듯 언제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 문제와 노력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양식이 바뀌고 관계 맺는 방식이 변해도 사람의 존재는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그럴 것입니다. 특히 위기의 시대에 더 긴밀하고 더 따뜻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더욱더 요청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전망 속에서 위의 본문들에 근거해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본문은 예수의 제자가 되면서 무엇을 계산하거나 무엇을 예상했냐는 문제를 던집니다. 본문은 망대를 예로 들었지만 무엇을 건축하든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지 않고 건축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공사를 끝까지 진행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로 전쟁을 들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상대에게 대응할 힘이 부족하면 전쟁보다는 화친할 방법을 모색하기 마련입니다. 비유 자체가 적절하지 않을 수 있어도 그것이 말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면서 제자로서 끝까지 살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이 자기에게 있는지 살펴보았느냐는 것입니다.

그 무엇이란게 무엇인지요? 능력이나 열정이나 의지 같은 그런 것인가요? 본문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예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합니다. 비유를 참조하면 그것은 자기 십자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따를 것인지 또 따를 수 있는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럼 자기 십자가란 무엇입니까? 본문은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하나는 가족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입니다. 뜻밖이라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의 그리스도인들은 소수였고 박해당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박해의 내용들 가운데에는 재산 몰수도 있었고 처형도 있었습니다. 자기 소유를 모두 버리거나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재산몰수나 처형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면 그에게 재산과 목숨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겠습니까? 늘 걱정이 되고 늘 불안하게 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미워한다거나 버려야 한다는 것은 그로부터 자유로지는 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삶이란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재산이나 목숨은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면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산이나 목숨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위험과 이 장애물을 안고 가기로 결단해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고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이를 자기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위험을 미리 생각해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던 시대입니다.

가족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같은 시대에 가족의 일원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고 하면 피해받을 수 있기에 지지하거나 응원하기보다 반대하고 심하면 박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이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다른 가족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미워하지 않으면이란 말은 말 그대로 미워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반대와 박해를 무릅쓰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는 이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금도 가족들의 반대와 박해가 있는 경우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 상태를 감수하고 견디는 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기 십자가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가족, 목숨 또는 소유처럼 자기에게 속해 있어서 떨쳐버릴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다 살펴보고도 그것들을 모두 넘어설 수 있게 하는 ‘보물’을 예수에게서 발견할 때 우리는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참으로 그런 분입니다.

소금의 비유가 이 대목에 나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을 소금에 비유한다면,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지지 않으려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는 맛을 잃은 소금에 비유될 것입니다. 소유에 얽매이거나 가족 등의 박해에 타협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는 제자로서의 자격을 잃고 말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의 제자가 소금 곧 이 세상을 살 맛나게 하는 소금입니다.

우리 시대에 우리가 짊어져야 할 우리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현대는 교회에 박해 대신 기후, 인권, 환경, 평화, 난민, 소수자 등 많은 과제들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제들을 붙들고 씨름하지 않으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 운동을 거부하는 맛 잃은 소금이 될 것입니다. 이런 과제들이 우리가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우리와 교회가 되기를 빕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정성을 기울여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정의와 공의가 시행되는 아름다운 삶의 자리가 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정의와 공의가 이루어낸 평화의 노래가 아니라 폭력에 시달린 사람들의 아우성과 억압에 지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소유욕이 폭력을 낳고 불의와 불공정으로 맛을 잃은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이스라엘에 대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분노하시고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부당하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날의 교회가 되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 시대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 소유욕을 채우고 자기만 살찌우며 세상의 고통과 울부짖음을 외면하면 하나님은 이런 교회를 이스라엘처럼 심판하시지 않겠습니까?

이 시대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이 시대가 부여하는 교회의 과제들을 수행하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이 시대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 이 세상을 살 맛나는 세상이 되게 하는 우리이기를 빕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빕니다.
하나님 나라 운동을 확장시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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