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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나누면 모두가 넉넉해집니다선을 행할 때(고후 9:5-8)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10.09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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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창조절 여섯째 주일입니다. 이번 주일 저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 중 연보에 관해 적은 내용입니다. 어려운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구제 헌금을 모으는 일에 관한 내용입니다.

연보는 헬라어로 하플로테스(ἁπλοτες)인데, ‘순수한’, ‘단순한’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조금 더 발전해서 ‘사심이 없는 선행’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듯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7절에서 인색함이나 억지로 연보를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누군가 어려운 이들을 돕는 구제가 필요하다는 점은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행하지 못해서 문제인 것이지, 남을 돕는 일이 중요한 일이고, 성경이 이를 우리에게 요구한다는 점은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때로는 열심히 구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우리를 돌아보며 이런 말씀을 나눌 필요도 있겠습니다만, 오늘 저는 구제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보다도 오늘 본문에 나타난 두 가지 사항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5절에 나타난 내용을 바탕으로 고린도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둘째는 8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내용, 구제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넘치게 하신다는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

연보의 문제는 오늘 본문 뿐만 아니라 바로 앞 장인 8장에서도 길게 다뤄집니다. 내용은 9장의 본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로마서 15장을 보면,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해 연보했다는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또 갈라디아서 2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났을 때, 그들이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점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지금 고린도 교회에 요구하는 연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요청에 의한 연보였을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에 따르면 고린도 교회는 편지가 기록되기 1년 전에 연보에 동참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그들은 상당히 흔쾌히 연보에 동참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의 결정에 감격하여 이를 마게도냐와 아가야에서 자랑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연보 모금 상황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 성도들과 함께 고린도 교회로 갔는데, 그들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을까봐 걱정합니다. 그래서 8장을 보면 디도를 먼저 고린도 교회로 보냈다고 말합니다. 9장 5절에서는 형제들을 보냈다고 말하는데, 아마 디도를 포함한 몇몇 사람을 고린도 교회로 먼저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로마서 15장 26절에는 고린도 교회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연보했다고만 말합니다. 어쩌면 고린도 교회는 로마서 작성 이후에 연보를 보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1년 전 자신들의 결정과는 다르게 연보에 동참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왜 자신들의 결정을 번복하며 이런 일을 했을까요? 오늘 본문의 내용만을 보고 생각해보자면, 물질에 대한 욕심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던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인색한 마음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8장 13절을 보면, 이 연보가 너희를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균등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2014년에 송파에서 세 모녀가 자살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올해에도 수원에서 세 모녀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올해에 완도 실종 가족 사망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부모에 의한 자녀 살해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지만, 결국 모두 금전적인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국가에서는 복지 정책을 더욱 확장하려고 뭔가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국가에서 복지 정책을 확장하려고 할 때면, 결국 세금이 들어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나타납니다. 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왜 내 세금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하냐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왜 우리 돈을 손해 보면서까지 어려운 이들과 나눠야 하냐는 이야기가 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구제를 무턱대고 반대할 수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고린도 교회에서는 연보를 반대하기 위한 그럴싸한 이유가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이 연보를 모아서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고린도전후서를 보면 고린도 교회에는 언제나 사도 바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갖은 이유를 대며 사도 바울에 반대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다”, 또 16절을 보면,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한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에 반대하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돈을 탈취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고린도 교회 안에 상당히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연보에 동참하지 않을 너무도 좋은 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식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에 기부금을 내면 기부금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결국 다 직원들 월급이나 상여금으로 쓰인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너무 많이 퍼져있습니다. 

작년 국제식량계획(WFP) 사무총장 데이비드 비즐리가 일론 머스크의 재산 2%만으로도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일론 머스크가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명확하게 공개하고, 어떻게 해결할지 설명할 수 있다면 주식을 팔아서 기부하겠다고 말한 사건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내 돈이 어떻게 사용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기부에 동참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어떤 선행도 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그저 선행에 동참하지 않기 위한 핑계일 지도 모릅니다. 물론 누군가의 기부금 혹은 헌금을 착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잘못된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구제를 위한 헌금 뿐만 아니라 모든 선행에 이유를 붙일 때 우리는 어떤 선행도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넉넉함으로 선행을 하는 일은 이를 받은 이들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선행은 우리가 느끼는 감사를 남에게 전하는 일입니다. 나에게 감사하도록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선행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그 감사의 마음을 품을 때, 그곳이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물질적 풍요함을 주시는가?

둘째로 살펴볼 점은 선행을 하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풍족하게 채워주신다는 점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의 이야기는 구제를 위한 헌금이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은 금전적인 채워주심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그렇게 이야기했을 리는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는 사도 바울이 겪었던 고난이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몇 번이나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또 11장 27절을 보면,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 역시도 금전적으로 풍족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선행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금전적으로 풍족히 채워주신다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는 힘을 받지 못하는 말입니다. 자신도 채움 받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금전적으로 채움 받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금전적인 풍요의 약속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베풀면 그만큼 하나님께서 재산을 더 넉넉하게 채워주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의 넉넉함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마음이 각박해질 때, 우리는 어떤 선행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마음에 나 자신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찰 때, 우리는 남을 생각할 수 없게 됩니다. 연보의 헬라어 단어가 ‘한 가지 마음으로 집중한다’는 의미를 갖기에 단순함, 순수함의 뜻이 되는것인데, 그 한 가지가 나 자신에게만 집중된다면, 우리는 어떤 선행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채워주시는 것은 나에게로만 마음이 집중되지 않게 하시는 일입니다. 마음의 넉넉함을 주셔서 남을 바라볼 수 있게 하십니다.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어려움을 생각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어려움을 놔두지 못하고 선함을 그들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요즘같이 물가는 계속해서 치솟고, 경제도 어려운 상황에서 남을 생각하며 돕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질적 도움뿐만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선행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일 자체가 어려운 시기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시기이기에 남을 생각하며 돕고 감사를 나누는 일이 필요합니다. 코로나 이후로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합니다. 코로나도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보다도 지금 시대가 우울한 사람을 늘려가는 시대로 보입니다. 이 우울함은 남을 볼 수 없게 만듭니다. 나 자신 속에 스스로를 가두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이런 시대일수록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 선을 나누며 감사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언제나 넉넉히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기쁨으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와 같이 인색함으로 가득차서 선행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만들며 선행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또 선행을 할 때 내게 물질적 풍요가 보장된다는 그런 잘못된 생각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우리의 마음을 채우시고 풍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약할 때에 강함 주시는 하나님의 힘을 믿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 우리에게도 언제나 넉넉함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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