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ter Paul Rubens, 「Christ on the Cross」 (1620) ⓒWikipedia

바울의 믿음으로 의롭게 됨은 문명 속의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탐구로서 최고봉을 이룬다. 바울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우주론적 차원, 인류학적 차원, 영적 차원 그리고 사회적 차원이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킨다.

에덴에서 발생한 아담과 하와의 자기 신성화 욕구에서 비롯한 죽음의 출현이 인류 문명에 내재한 그리고 인간에게 내재한 죽음의 형상의 본성임을 간파하였다. 따라서 모세로 대표되는 법적 조치는 인간의 외적인 행위를 처벌할 뿐 인간을 선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런데도 인간의 구원에서 법적 정의의 요구를 간과할 수 없다. 법체제는 인류 문명에 주어진 하느님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대중적 복음주의에서 말하는 십자가의 피로 죄를 씻는다는 표현은 바울에게는 적절한 것이 아니다. 법체제와 죄의 실제성을 도외시하는 것은 바울에게 없는 것이다. 죄의 사실성과 그에 대한 법적 심판은 하느님이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입법자로서 하느님은 자신이 제정한 법을 준수하시기 때문이다.

이 난국을 해소하는 것이 영적 차원의 사건이다. 동시에 우주적 사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으나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 모든 믿는 이들의 첫 번째 열매가 되신 분이다. (롬1:1)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이들은 영적 실재를 경험하여 자기의 죽음으로 의롭다고 함을 얻고 죄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법률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성결의 영은 영적인 하느님의 자녀들의 출현으로 새로운 우주를 창조한다. 모든 만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영적으로 새로운 창조물인 예수 안의 인간은 생사를 영적으로 초월한 존재로서 자신의 사회적 실존 안에서 거룩하고 선한 행위의 주체가 된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선한 열매들이 나타난다. (롬 12장) 바울은 그럼으로써 인간의 구원에 요청되는 영적, 법적, 사회적, 우주적 차원의 인류학을 완성하는 것이다.

바울에게 구원은 성결의 영의 지배와 신자의 믿음의 결속을 통해 이루어진다. 바울에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구약 예언의 역사적 예시에서 시작하여 아브라함의 믿음 곧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믿는 것이 하느님에게 의롭게 여겨지는 피동적 믿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죽음과 성결의 영으로 부활하는 적극적 참여로서의 믿음으로 이어진다. 믿음은 구원을 이루는 결속이며 그것은 의인을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끌어 간다.

축의 시대 이후 인류 문명의 내재적 모순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고 본 사람은 붓다가 유일한 사람이었다. 붓다는 인간의 욕망 체계의 무의식적 작동이 문명 안에서 파괴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본 첫 번째 사람이었다.

성경은 인류 문명을 자연의 창조주 하느님을 통해 반추하여 왔다. 구약성경은 자연과 균형을 이루는 법체제를 통해 인류사회를 구원하려 하였다. 그러나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는 처절한 실패를 보여주고 인류 문명의 보편적 실패의 거울로 기록된다. 바울은 이를 포괄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 불멸하는 생명의 창조를 보았다. 그리고 그 창조 안에서 인간의 내적 구원과 외적 변화의 열매의 가능성을 열었다.

박종현(전 관동대 교수)  cuch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