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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넷째주일, 기이한 빛에 들어가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라!(슥 1:7-17 벧전 2:1-10 막 4:21-25)대림절 넷째 주일(12월18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12.15 22:56

1. 성모영보

대림절 넷째주일입니다. 오늘은 ‘천사들의 초’를 밝힙니다. 천사가 성모 마리아에게 전해준 메시아 나심의 ‘수태 소식’으로, 고통 받는 이 땅 모든 피조물과 많은 이들에게 참 평화와 기쁨이 넘치게 된 것을 기념합니다. 마침내 그리스도의 영광이 이 불의한 땅과 사망의 골짜기에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오늘은 천사들의 초인 흰색 초를 밝힙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受胎告知)’ 한 것을 ‘성모영보(聖母領報, Annunciatio)’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과 세 본문 말씀과 연결하여 보면 ‘기이한 빛’에 관한 소식입니다. 이때 성모 마리아가 취한 다섯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곧 ‘놀람, 사색, 반문, 순종, 은총’입니다.

▲ 성모영보

누가복음 말씀을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과 정혼 한 마리아를 찾아옵니다. 이때 마리아는 ① ‘놀랍니다’. 그리고 천사가 말한 “은혜를 받은 자”라는 말에 대해 ② ‘생각합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③ ‘반문’합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그러자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실 것”이라 말합니다. 마침내 마리아는 말씀에 ④ ‘순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⑤ ‘은총’에 관해 찬양합니다(눅 1:26~55).

성모 마리아에게 임한 성모영보가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도 알려졌습니다.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아기 예수께서 오신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마리아처럼 이 놀라운 소식에, 깊이 생각하고 질문하고 마침내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렇게 아기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의 빛을 감출 수 없습니다. 따라서 복음서 말씀에서 등불을 등경 위에 둠으로 예수께서 오셔서 만드실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밝히 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그 빛을 감춥니다. 결국 예수님의 빛은 그들에게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는 바위가 됩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결국 다시 은혜를 베푸시어 모든 이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구약 스가랴 선지자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신다는 은혜로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이렇게 만왕의 왕이요, 만세의 주이신 아기 예수께서 온 땅 모든 피조물과 만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십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2 등경 위 등불, 기이한 빛

“예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등불을 가져다가 됫박 아래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놓지 않느냐? 감추어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막 4:21-23)

마가복음 4장은 ‘비유장’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비유로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는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를 말씀드렸죠?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실천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등경 위의 등불 비유입니다. 사람들은 등불을 말(됫박) 아래나 평상(침상)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둡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납니다. 그 등불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의 진리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생명의 외침입니다. 따라서 그 진리를 소유한 자는 더 받을 것이지만, 진리를 소유하지 못한 자는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입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또 말씀하셨다. ‘내 말을 마음에 새겨들어라. 너희가 남에게 달아주면 달아주는 만큼 받을 뿐만 아니라, 덤까지 얹어 받을 것이다.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막 4:24-25)

이렇게 우리는 진리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화(聖化)’라고 부릅니다. 오늘 서신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말씀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에 관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먼저 개인 생활에 관한 내용을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의 성화 방법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먼저 베드로 사도는 구원에 이르는 길에 관해 설명합니다.

3.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1-3)

갓난아기처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 구원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단서를 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림절에 오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베드로는 이렇게 소개합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4-5)

사람들에게는 버린 돌이나,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보배로운 산 돌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우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과 성화를 통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됩니다.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 2:6-8)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베드로는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순종하는 이들은 예수님을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εἰς τὸ θαυμαστὸν αὐτοῦ φῶς)’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9-10)

베드로는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긍휼을 얻어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 아름다운 덕을 선포합니다. 여기서 ‘기이한 빛(다우마스톤 포스)’은 신에 대하여 사용되는 말로, 놀랍고 이상한 빛을 뜻합니다. 이 불의한 땅과 사망의 골짜기에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4. 베드로 행전의 아름다운 덕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긍휼을 얻어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 아름다운 덕을 선포합니다. 지금 우리 개신교의 경전은 66권이지만, 초대교회 교인들이 읽었던 다른 많은 성서가 있습니다. 이것을 원초적 성서인 ‘제2의 성서’라고 합니다. 경전이 아니기에, 조심스럽지만, 완전한 것(경전)과 불완전한 것(아포크리파, 비경전)을 비교하여, 완전한 것이 왜 완전한 것인지 깨닫고, 그것을 더욱 아끼게 되기 때문에 제2 성서는 중요합니다. 그 가운데 베드로행전이 있습니다. 잠시 내용을 살펴볼까요?

베드로행전 33장에는 집정관 아그립바의 첩 네 명, 즉 아그리피나, 니카리아, 에우페미아, 도리스가 순결에 관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는 회개하여 아그립바와 함께 더 이상 동침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따라서 아그립바는 당황하고 분개하여 “나는 베드로를 산 채로 태워 죽이겠다.”라고 말합니다.

34장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황제의 친구인 알비누스에게 대단한 미모의 크산티페라는 아내가 있었는데, 그녀 역시 다른 귀부인들과 함께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남편과 동침을 거부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알비누스가 야수처럼 격분해서 베드로를 죽이려고 덤벼들었습니다. 이렇게 로마에서는 대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아그립바와 알비누스는 베드로를 죽이려고 공모합니다.

▲ 카라바조 <성 베드로의 순교>(166~1601)

따라서 35장에서 이 공모를 알게 된 크산티페가 베드로에게 알려주어 로마를 떠나라고 권고합니다. 마침내 베드로는 혼자 로마를 떠납니다. 로마 성문을 벗어나자, 베드로는 로마로 들어가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쿼바디스, 도미네?(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려고 로마로 가는 길이다.”라고 답합니다. 그제야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로마로 돌아갔습니다. 아마도 기이한 빛에 인도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38장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최초의 사람은 머리를 아래로 해서 추락했는데, 그것은 출생의 모습이었소. 그래서 우주의 모든 것이 뒤바뀌어서 오른쪽이 왼쪽으로, 왼쪽이 오른쪽으로, 추한 것이 아름다운 것으로, 악한 것이 선한 것으로 보이게 되었소. 내가 거꾸로 매달린 것은 최초의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최초의 잘못을 버리고 회개하시오. 성령은 ‘그리스도는 말씀이고 하느님의 소리다.’라고 말했소. 십자가의 수직 기둥인 나무는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리고 가로지른 나무는 소리, 즉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리고 못은 사람들의 회개와 참회입니다.”

베드로행전 마지막 41장입니다. 베드로가 죽은 이후, 네로 황제는 베드로의 가르침을 받은 형제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밤에 어떤 사람이 네로를 때리면서 “네로야, 너는 그리스도의 하인들을 박해하지 마라. 그들로부터 손을 떼라.’라고 말하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죽은 뒤부터 네로는 그 형제들을 내버려 두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베드로 사도는 기이한 빛에 들어가 죽은 후에도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스가랴 말씀 역시 기이한 빛을 이야기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5.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다리오 왕 제이 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내가 말하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슥 1:7-9a)

스가랴가 환상을 봅니다. 기이한 빛입니다.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서 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묻는 스가랴에게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니,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하더라.”(슥 1:9b-11)

하나님의 명령으로 온 땅을 두루 다녀 보러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땅을 돌아본 결과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유다 백성을 70년 동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게 하셨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슥 1:12-15)

사실 스가랴서는 8개의 환상(1~8장)과 그리스도의 재림(9~11)과 초림에 관한 예언(12~14)으로 구성된 아주 난해한 묵시문학입니다. 이사야서를 제1 이사야(1~39장, 예루살렘 이사야), 제2 이사야(40~55장, 바벨론 포로기 이사야), 제3 이사야(56~66, 다시 예루살렘 이사야)로 나눈 것처럼, 스가랴서도 제1, 2, 3 스가랴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1 스가랴는 바벨론 포로 말기(B.C. 539), 포로로 잡혀간 유대민족의 회복에 관한 이야기이며 제2 스가랴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B.C. 336-323)에 의해 페르시아가 멸망한 시대를 반영하고, 제3 스가랴는 다니엘서와 비슷한 상황으로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B.C 215년경~164년)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시대가 다른 세 개의 예언이 하나로 편집된 것입니다.

제1 스가랴의 배경을 살펴보면, 페르시아 초기 유대인의 귀환 시기로 왕족인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라는 두 인물에게 메시아 대망을 반영합니다. 스룹바벨은 포로로 잡혀가 사망한 여호야긴 왕의 손자(대상 3:17~19)입니다. 따라서 다시 건설되는 이스라엘은 다윗의 후손이 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열망이 깃들어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이제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슥 1:16-17)

사실 스가랴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재건의 중단으로 인하여 혼돈과 분열에 빠지게 된 상황을 반영합니다. 따라서 스가랴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금 성전재건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데 말씀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미래 성전의 영광을 보이면서 백성들이 고통 속에서도 성전을 재건할 수 있다는 확신과 용기를 심어주었습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면 스가랴는 성전재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결국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 태어날 메시아를 통한 새로운 세상의 기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 사도처럼 기이한 빛에 들어가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기이한 빛을 통하여 오실 메시아가 통치할 새로운 세상의 비전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빛을 등경 위에 두어 세상 모든 사람이 깨닫도록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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