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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빼미>, 과거와 현재 세대가 다음 세대의 발목을 잡다!최병학 목사의 인문학으로 영화읽기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12.20 22:16
▲ 영화 포스터

1.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철학자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미네르바는 그리스 신화의 지혜의 여신 ‘아테나’이고 올빼미는 미네르바 여신의 상징 새입니다. 곧 지혜를 의미합니다. 왜 그럴까요? 지혜는 사건이 번잡하게 일어나는 시간에는 가만히 있다가 사건이 마무리되고 조용해지면 그때서야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안태진 감독의 영화 <올빼미>(2022)는 시각장애인이지만 뛰어난 침술 실력을 지닌 주인공 경수(류준열 분)가 어의 이형익(최무성 분)에게 그 재주를 인정받아 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경수가 궁에 들어갔을 때, 때마침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8년 만에 귀국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인조 임금은 정체 모를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둠 속에서는 희미하게 볼 수 있는(주맹증, 낮에는 안보이고 밤에는 보이는) 경수가 이형익이 ‘소현세자’를 죽이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제 진실을 알리려는 경수와 그를 돕는 최대감, 그리고 소현세자의 죽음, 그 진실을 막으려는 이형익과 그를 사주한 인조 임금의 대결로 치닫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맹증인 올빼미 경수는 오늘 우리에게도 시대의 지혜를 알려 줍니다. 이것은 인조실록에서 시작됩니다.

영화는 인조실록 46권, 인조 23년 6월 27일 무인 1번째 기사 ‘소현세자의 졸곡제를 행하다’에서 상상의 나래를 폅니다. 졸곡제는 소현세자가 죽은 후 삼 개월이 지나 지내는 제사입니다. 그 기록입니다.

“소현세자의 졸곡제(卒哭祭)를 행하였다. 전일 세자가 심양에 있을 때 집을 지어 단확(丹艧)을 발라서 단장하고, 또 포로로 잡혀간 조선 사람들을 모집하여 둔전(屯田)을 경작해서 곡식을 쌓아 두고는 그것으로 진기한 물품과 무역을 하느라 관소(館所)의 문이 마치 시장 같았으므로, 상이 그 사실을 듣고 불평스럽게 여겼다. 그런데 상의 행희(幸姬) 조 소용(趙昭容)은 전일부터 세자 및 세자빈과 본디 서로 좋지 않았던 터라, 밤낮으로 상의 앞에서 참소하여 세자 내외에게 죄악을 얽어 만들어서, 저주를 했다느니 대역부도의 행위를 했다느니 하는 말로 빈궁을 모함하였다.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鮮血)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幎目)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藥物)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외인(外人)들은 아는 자가 없었고, 상도 알지 못하였다. 당시 종실 진원군(珍原君) 이세완(李世完)의 아내는 곧 인렬왕후(仁烈王后)의 서제(庶弟)였기 때문에, 세완이 내척(內戚)으로서 세자의 염습(斂襲)에 참여했다가 그 이상한 것을 보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다.”(1)

그전 기록인 인조실록 46권, 인조 23년 4월 26일 무인 1번째 기사 “왕세자의 졸기”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기록합니다.

“왕세자가 창경궁 환경당(歡慶堂)에서 죽었다. 세자는 자질이 영민하고 총명하였으나 기국과 도량은 넓지 못했다. 일찍이 정묘호란 때 호남에서 군사를 무군(撫軍)할 적에 대궐에 진상하는 물품을 절감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제거하려고 힘썼다. 또 병자호란 때에는 부왕을 모시고 남한산성에 들어갔는데, 도적 청나라 사람들이 우리에게 세자를 인질로 삼겠다고 협박하자, 삼사가 극력 반대하였고 상도 차마 허락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세자가 즉시 자청하기를, ‘진실로 사직을 편안히 하고 군부를 보호할 수만 있다면 신이 어찌 그곳에 가기를 꺼리겠습니까.’ 하였다. 그들에게 체포되어 서쪽으로 갈 적에는 몹시 황급한 때였지만 말과 얼굴빛이 조금도 변함없었고, 모시고 따르던 신하들을 대우하는 데도 은혜와 예의가 모두 지극하였으며, 무릇 질병이 있거나 곤액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그때마다 힘을 다하여 구제하였다. 그러나 세자가 심양에 있은 지 이미 오래되어서는 모든 행동을 일체 청나라 사람이 하는 대로만 따라서 하고 사냥하는 군마 사이에 출입하다 보니, 가깝게 지내는 자는 모두가 무부(武夫)와 노비들이었다. 학문을 강론하는 일은 전혀 폐지하고 오직 화리(貨利)만을 일삼았으며, 또 토목 공사와 구마(狗馬)나 애완(愛玩)하는 것을 일삼았기 때문에 적국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크게 인망을 잃었다. 이는 대체로 그때의 궁관(宮官) 무리 중에 혹 궁관답지 못한 자가 있어 보도하는 도리를 잃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세자가 10년 동안 타국에 있으면서 온갖 고생을 두루 맛보고 본국에 돌아온 지 겨우 수개월 만에 병이 들었는데, 의관들 또한 함부로 침을 놓고 약을 쓰다가 끝내 죽기에 이르렀으므로 온 나라 사람들이 슬프게 여겼다. 세자의 향년은 34세인데, 3남 3녀를 두었다.”(2)

인조실록의 기록은 이렇게 소현세자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지만, 소현세자는 베이징에서 만난 천주교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ohann Adam Schall von Bell, 1591~1666)(3) 등과 서구 문명을 접하고는 반청 노선보다 대청 실용주의로 전환하였습니다. 따라서 소현세자는 인질 생활을 하면서 오랫동안 청나라와 조선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청나라가 조선을 핍박하지 못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함께 끌려와 재판을 받은 반청파 김상헌 등과 조선 백성 보호에 많은 힘을 쓰기도 했습니다. 몽골어를 배우고 서역 원정에 출전한 적도 있습니다.

▲ 청에서 서양 학문을 배우는 소현세자와 아담 샬

청에서 돌아온 소현세자는 천주교와 서양 과학을 통해 조선을 발전시키고자 하였지만, 인조와 조정 대신들, 곧 주전(主戰)파는 세자를 감시하고 박대하였습니다. 야사에 따르면, 소현세자와 동생 봉림대군이 청나라에서 돌아오기 전, 청의 황제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하나씩 주었는데, 소현세자는 황제의 벼루인 용연(龍硯)을 청했고, 봉림대군은 볼모로 잡혀 온 백성들과 함께 갈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조선으로 돌아와 인조를 만난 두 아들은 자신들이 받은 선물에 대해 답합니다. 봉림대군이 백성들을 데리고 온 것을 칭찬했던 인조는 소현세자가 받아온 벼루는 집어 던집니다. 그리고 “용연석!”이라고 외쳤는데, 이 말이 ‘요년석’ 또는 ‘요녀석’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 용연석을 소현세자에게 던지는 인조

자, 이제 역사에서 일어나고 영화에서 재해석한 소현세자의 죽음을 주맹증 경수의 눈을 통해, 또한 미네르바의 올빼미의 눈으로도 지혜롭게 해석해 볼까요? 먼저는 ‘세월호’와 ‘10・29 이태원 참사’로 진행되는 ‘자녀살해’의 시대 문화입니다. 

사실 이제까지의 전통은 상징적인 부친살해(라캉의 ‘상징계’ 해체)를 통해 부모 세대를 뛰어넘고 새로운 자녀 세대가 역사를 새롭게 이끌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계속 주도권을 쥐려는, 꼰대인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를 살해하는 자녀살해라는 키워드로 영화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문화 현상이 앙티 오이디푸스, 곧 부친살해를 넘어, 자녀살해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며 그 상징적인 의미는 과거와 현재가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영화에서 나온바, 혁명은 촛불이 꺼진 다음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두 가지 해석을 하나씩 살펴볼까요? 먼저 자녀살해입니다.

2. 세월호, 10・29,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부친살해)에서 자녀살해로

소현세자는 지금의 ‘MZ세대’입니다. ‘라떼는’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 인조에게 청나라의 신문물을 통해 조선을 변화시키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인조는 명에 대한 명분, 혹은 삼전도의 굴욕과 열등감으로 인해 이러한 변화의 요청을 변화를 부르짖는 메신저를 살해하는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바로 자녀살해입니다. 구완와사로 일그러진 인조의 얼굴에서 지금 나라를 살리고, 백성을 지키는 리더가 아니라, 그저 자기 자리 하나 보전하려고 아등바등하는 기성세대의 치졸하고 비루한 얼굴이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국문학자 김영희는 『한국 구전 서사의 부친살해』(월인, 2013)에서 한국 구전 서사의 전통을 ‘부친살해’ 모티프로 변주되는 양상을 고찰하고 이와 같은 서사적 전통이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때가 되면 자식은 독립하고 부모는 자식을 놓아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자녀가 경제적인 이유로 부모를 떠나지 않고, 또한 부모 역시 자식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 안에 내재한 심리는 결국 ‘분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며 나아가 ‘불안전한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김이경 독서 칼럼니스트는 책의 논평에서 이것을 이렇게 풀어줍니다.

“부모에게 자식은 자신의 존재 증명이며 또 다른 자기다. 그래서 자식이 자신의 말을 거역하고 떠나려 할 때 부모는 자기 존재가 부정당하는 고통을 느낀다. 한편, 아이에게 부모는 안전과 안락을 제공하는 울타리다. 자식은 그들과의 동일시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보한다. 그러나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언제든 버려질 수 있기에 그 존재는 위태로우며 그래서 자식은 독립을, 자신이 주인인 새 세계를 꿈꾼다.”

수많은 신화에 ‘부친살해’와 ‘자식 살해’라는 주제가 존재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일찍이 프로이트는 ‘부친살해’야 말로, 문명의 원천이며, 아버지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서 하나의 사회적 주체로 서기 위한 자녀의 통과의례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자녀는 정신적 ‘부친살해’ 없이 심리적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김영희는 놀랍게도 한국의 전통 서사에는 ‘부친살해’ 전통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자녀살해’가 더 자주 발견된다고 합니다.

▲ 크로노스의 우라노스 살해와 오이디푸스의 라이오스 왕 살해

그리스 신화에 보면 크로노스나 제우스는 모두 자신의 부친을 살해하는 전통을 답습합니다. 이것이 그리스 비극의 오이디푸스에게 나타나 아버지를 살해하고 부정하는 것으로 서양 문명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것으로 진화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 서사는 오히려 부친살해가 아니라 ‘부친탐색’으로 나아갑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그렇습니다. 아버지 해모스가 죽고 유아부인과 함께 금와왕의 부여 왕국에서 자란 주몽은 이복형들의 미움으로 쫓기고 도망 다니며 마침내 스스로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독립하되, 부친살해가 아니라, 부친탐색으로 새 길을 연 것입니다.

더욱이 한국의 전통 서사는 부친탐색을 넘어 ‘자녀살해’라는 능동적인 모습으로 나아갑니다. 전해 내려오는 구전 서사에 따르면, 부모를 위해 자녀를 죽이는 수많은 효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실수로 손자를 삶아 먹은 시부모를 감싸 효부상을 받은 며느리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효’를 내세워 엽기적인 자식 살해를 옹호하고 권장하는 이런 이야기에 내재 된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요?

김영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이야기들은 기존 질서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부친살해’ 서사가 ‘공동체의 미래 주체를 만드는’ 것과 달리 ‘자식 살해’는 ‘공동체의 과거에 고착된 주체를 생산한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많은 인조 임금이 자녀살해의 길로 나섭니다. 공동체의 미래 주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미래를 암살하는 것입니다. 세월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10・29 이태원 참사가 그렇습니다. 해마다 수능으로 인해 150여 명의 아이가 자살하는 이 시대는 기성세대가 자녀 세대, 곧 다음 세대를 물에서도 죽이고, 땅에서도 죽이고, 마침내 판타지 같은 미래를 미끼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죽이는 시대입니다. MZ세대들에게 기성세대는 믿고 의지할 어른, 선생(先生)이 아니라, 암살자와 핍박자입니다.

가만히 보면, 경수에게 처음에는 큰 힘이 되었지만, 마침내 인조와 결탁한 영의정 최대감도 결국은 믿을 수 없습니다. 왕과 대적하기는 하지만, 청에 기꺼이 무릎을 꿇고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면 무능한 왕과 어떤 거래도 마다하지 않기에 끝까지 믿을 사람이 못 됩니다. 지금 고통받고 있는 MZ세대들에게는 야당도 믿을 것이 못 된다는 말이겠죠? 이들 또한 딛고 올라가야 할 윗세대입니다.

따라서 루쉰의 말대로,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올라가라.”라는 말이 오늘 이 땅 혁명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결국 ‘MZ 민초’들은 하늘의 별을 통해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제 ‘2017년 촛불혁명의 거짓 모순’을 끝내고 촛불을 끄는 것으로 진정한 혁명의 시작을 알립니다.

3. 혁명은 촛불이 꺼진 다음에 일어난다!

촛불혁명의 모순이라뇨? 사실 2022년 말 현재, 정치, 경제의 위기를 생각할 때, 먼저 정치의 위기는 검찰 공화국이 수립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경제 위기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자원 공급망 교란 및 미국의 신용화폐 과잉 공급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악화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강원돈 교수(한신대 은퇴)는 오늘의 정치 위기와 경제 불안을 기득권 체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강원돈 교수의 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 세력은 재벌, 금융, 관료, 검찰, 경찰, 언론, 학계, 종교계로 구성된 이익동맹이고, 그 기득권 동맹의 헤게모니 담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이데올로기 기구는 극우 언론이고, 그 동맹의 이익을 조정하고 수호하는 역할을 맡은 정치적 기구는 검찰이다.”

그렇다면 기득권 세력이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금융 자본의 지배 아래서 서열화된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이익을 자본 분파들과 자본 옹호 세력들에 적절히 분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노동자와 서민의 자리는 없죠!

만일 이러한 기득권 동맹의 문법을 거스르는 자가 있다면, 그가 설사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는 그 기득권 동맹에서 축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가 국정농단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탄핵을 길을 걸어간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저는 촛불혁명이 이뤄낸 성과라 잘못 생각했습니다). 강원돈 교수의 말입니다.

“검찰은 선택적 수사와 기소, ‘인디언 기우제’를 연상시키는 먼지떨이 방식의 수사 등을 통해 자신이 어떤 이익을 지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한 검찰 권력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자가 대통령 직책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의 정치가 공공성을 최대로 구현하는 정치라기보다,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계산하는 정치로 퇴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 위기와 경제 불안이 겹쳐서 나타나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는 아내에게 놀아나는 ‘그’를 봅니다. 바지도 제대로 못 입는 ‘동네 바보형’으로 그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게 신기루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거기에 놀아날 때(진보 유튜버들의 희망 고문에 다시는 속지 맙시다!), 정치는 물론 경제는 이렇게 소리 없이 아래 여섯 가지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강원돈 교수의 말입니다. 괄호는 저의 넋두리입니다.

첫째, 정부와 시장의 신자유주의적 역할 분담이다. 기업이 혁신과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중심이고, 정부는 기업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긴축정책이다. 정부는 재정 건전성의 교리에 따라 재정 준칙을 법제화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 의료, 주택 공급 등을 위한 정부 지출을 최소화고(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를 손본다고 하죠?) 사회적 서비스와 급여는 시장에서 낙오한 사람들에게 선별적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기본소득은 이제 물 건너갔나요!).

셋째, 규제 철폐이다. 정부는 민간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업 규제를 대대적으로 철폐하고, 노동시장을 한층 더 유연화하고, 노동시간 규제와 최저임금 제도를 탄력화해야 한다는 것이다(지금 주 92시간 노동시간 개편을 추진하고 있죠?).

넷째, 노골적인 감세 정책이다. 자본소득세, 자산소득세, 자본이득세 등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재벌 부자 감세는 이미 시작되었죠!).

다섯째, 금융시장 정책이다. 디지털 빅테크 기업이 플랫폼 네트워크에 기반을 두고 지급 결제 사업을 펼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법제를 정비하고, 가상화폐 거래시장을 제도화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금융시장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조치다. 그러한 법제를 통해 앞으로 등장할 디지털 금융 자이언트들은 기존의 신용화폐 제도와 ‘그림자 금융’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금융 수탈이 한층 더 체계적으로 벌어지게 할 것이다.

여섯째, 값싼 에너지 공급 정책이다. ‘깨끗하고 저렴한’ 원자력 발전을 중심으로 해서 에너지 믹스를 구축하여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비용 절약의 가상 아래서 자본 친화적인 환경정책을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다.

2023년은 앞으로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다가올 것입니다. 이제 워밍업 한 검찰 정권이 기득권 카르텔(여기에 MZ세대가 보기에, 아쉽게도 그 자신 카르텔의 수호자인기도 한 한동훈이 보기에 운동권 카르텔도 들어가겠죠?)과 본격적으로 결탁해 우리 서민들이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지옥을 선사할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바로 어리석은 우리들의 선택 때문에!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사람들은 물론 경수 역시 인조 임금이 소현세자를 죽인 범인지만, “왕이 범인이나, 왕을 가둘 수는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궁에는 갈 수 있는 길, 없는 길이 있”듯이, 왕의 길과 백성의 길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친 왕은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내가 왕이다.” 그 누군가가 손바닥에 ‘왕(王)’자를 써놓고 대선 후보 토론회에 참석했죠?

▲ 진짜 혁명은 촛불혁명이 아니라, 촛불이 꺼진 다음 시작된다!

그러나 본 것을 말하지 않으면 모두가 미친 왕에 의해 죽습니다. 미천한 것들일수록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경수가 사도세자에게 “세자께서 올곧게 사셔서 아픈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확대경(돋보기)을 경수에게 선물하며 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눈을 감고 살지 말고 그럴수록 눈을 더 크게 뜨고 살아야 한다.” 지금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백성들이여! 고개를 들어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의 별을 보라!”

따라서 혁명은 하위직 관리들과 경수와 같은 민초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촛불이 꺼질 때, 혁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2017년 촛불혁명은 거짓 혁명이었습니다. 그것은 기득권 카르텔이 자신의 수하 하나를 자른 것이었습니다. 그 춤판에 들러리를 선 것입니다. 따라서 2023년의 혁명은 촛불을 끄고 시작해야 합니다. 촛불을 끄면 세상이 밝히 보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별이 보입니다. 별이 보이지 않는 이 재난(disaster)(4)의 상황을 끝내기 위해 우리는 모두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지혜로워야 할 것입니다.

미주

(1) 戊寅/行昭顯世子卒哭祭。初, 世子在瀋陽時, 作室塗以丹雘, 又募東人之被俘者, 屯田積粟, 貿換異物, 館門如市, 上聞之不平。上之幸姬趙昭容自前日, 素不悅於世子及嬪, 日夜媒孽於上前, 以詛呪不道之說, 構誣嬪宮。世子東還未幾, 得疾數日而薨, 擧體盡黑, 七竅皆出鮮血, 以玄幎覆其半面, 傍人不能辨, 其色有類中毒之人, 而外人莫有知者, 上亦不之知也。時, 宗室珎原君 世完之妻, 仁烈王后之孽弟也。世完以內戚, 與於襲斂, 見其異常, 出語於人。

(2) 戊寅/王世子卒于昌慶宮 歡慶堂。世子姿質英明, 而器量不弘。曾在丁卯之難, 撫軍湖南, 節損供御, 務祛弊瘼。及丙子之變, 陪大駕入南漢城, 淸賊脅我以世子爲質, 三司力爭之, 上亦不忍。世子卽自請曰: "苟安社稷, 而保君父, 臣何憚行?" 及被拘而西也, 蒼皇之際, 不變辭色, 接遇陪從諸臣, 恩禮俱至, 凡有疾病、困厄者, 輒盡力拯濟焉。世子旣久處瀋陽, 一聽淸人所爲, 出入於田獵、戎馬之間, 所親狎者皆武夫、厮卒。專廢講學, 惟事貨利, 且以土木之役、狗馬之玩爲事, 貽譏敵國, 大失人望。蓋其時宮官輩, 或匪其人, 失輔導之道而然也。世子十年異域, 備嘗險艱, 東還纔數月而遘疾, 醫官等亦妄施鍼藥, 終至不救, 國人悲之。世子年三十四, 有三子三女。

(3) 요한 아담 샬 폰 벨은 독일인 예수회 신부이자 선교사이다. 마테오 리치의 요청으로 중국으로 파견되어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중국에서 벼슬을 한 몇 안 되는 외국인이다. 1591년 신성 로마 제국 쾰른 선제후국의 쾰른에서 태어났으며, 1611년 예수회에 입회해 천문과 역법 등을 공부했다. 한편 마테오 리치는 명나라에서 선교하던 중, 명나라가 농업 중심 사회라 천문과 역법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회에 “천문과 역법 등을 잘 아는 선교사를 보내 달라.”라고 요청했다. 그리하여 1622년에 아담 샬이 명나라로 건너갔다. 이후 명나라가 멸망한 후 청나라가 시작되었을 때도 그 재능을 인정받아 벼슬을 얻고 신임을 얻는다. 순치제 때에는 벼슬이 3품에 이르렀으며 삼궤구고두(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으로, 신하가 주군을 알현할 때 행해야 하는 만주족의 예법)도 면제받는 특혜를 얻었다. 1664년 아담 샬은 새 황제인 강희제에게 향후 2백 년간 쓸 수 있는 역서를 올렸는데, 이것이 발목을 잡았다. 역법사 양광선(楊光先, 1597~1669)은 “이 역서는 청나라가 오직 2백 년밖에 유지될 수 없음을 뜻한다.”라며 그를 탄핵했다. 결국 구왈기야 오보이에게 사형을 선고받고 다른 예수회 선교사들과 함께 감옥에 갇히지만, 이듬해 석방되었다. 그러나 노쇠한 데다가 중풍에 걸려 있었던 아담 샬은 1666년 75세를 일기로 선종하고 만다. 소현세자와의 관계는 소현세자가 북경에 머물렀던 1644년 9월부터 11월까지 2달여 동안 아담 샬과 교류하며 친교를 맺었으며, 천주교를 조선에 전하기 위해 아담 샬에게 부탁해 천주교 신자인 환관과 궁녀들을 조선으로 데려갔다고 전해진다.

(4) disaster(재난)는 그리스어로 ‘별(aster)’이 ‘없는(dis)’ 상태를 가리킨다.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별을 보고 항로를 찾던 선원들에게 별이 사라진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은 사회는 극심한 혼돈과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 실제로 큰 재난(災難)을 당한 사회가 그런 모습을 보인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팎으로 재난의 상황에 부닥쳐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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