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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믿고 잡솨봐”밥으로 오신 예수(누가복음 2:10-12), 주현절 첫째 주일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3.01.10 01:09
▲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양식으로 예수님. ⓒGetty Image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1.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이번 주간 참 많이 추웠죠? 저는 ‘추웠다’는 기억 뿐인데요. 아침에 출근길에 아이들한테 물어보니까 둘째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추운 줄은 몰랐는데 너무 재밌었다’고, 눈이 와서 너무 좋았대요. ‘그랬구나~ 나도 추운 줄 모르고 마냥 즐거워할 때가 있었는데...’ 여러분도 그러셨죠? 그런데 어느덧 즐거운 줄은 모르고 추운 줄만 아는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즐거움을, 추움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즐거움을 우리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사실 우리 입맛에 맞는 좋은 일만 생기는 것 아니잖아요. 겨울이 되면 눈이 오고 즐거움도 있지만, 그와 함께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는 우리를 편치 않게 하는 추위도 함께 있죠. 중요하 것은 우리의 시선의 초점이 어디에 가 있는가 하는 거죠.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에게 ‘눈’이라고 하는 즐거움을 주셨는데 그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춥네, 또 눈 왔네. 눈 쓸어야 되겠네’ 하면서 투정부리고 있지는 않나요? 저도 아침에 계속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 ‘추워서 차 시동이 안 걸리면 어떡하지? 교육관 화장실에 물이 얼었으면 어떡하지?’ 계속 이런 생각만 들었던 겁니다.

물론 그런 불편한 일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를 귀찮게 합니다만, 그런 것만은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잖아요. 그 기쁨과 즐거움을 먼저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주현절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시간입니다. 주현절 동안은 주님의 생애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대림절과 성탄절 때 이야기했습니다만, 다시 주님의 탄생부터 묵상해 봅시다.

주님의 탄생 이야기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보면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습니다만 비슷한 뉘앙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는데,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환영하지 못하고 기껏 하나님 알지도 못하는 저 동방의 박사들이 경배하더라.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들에서 덜덜 떨던 목자들이 경배하더라. 하나님이 이 땅에 왔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왔는데, 이 세상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쫓겨나서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겨우 돌아왔다더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그런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표현되어 있고요. 요한복음에는 직설적으로 적어놨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왔는데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더라. 그를 주님으로 맞아들이지 못하더라.’ 환영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예요.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환영받았던 때가 딱 한 번 있었는데요. 우리가 종려주일 때 기억하는 예루살렘 입성 사건입니다. 그때 환영받았습니다. 사람들이 ‘호산나. 호산나’ 하면서 주님을 환영했는데, 사실 그때도 본질을 꿰뚫어 보면 예수님이 진짜 환영받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오해하고 환영했던 것이죠.

어떻게 오해했느냐?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기뻐하는 것, 이 양반이 채워주겠지’ 하는 그런 마음으로 가득 차서 환영했던 거죠. 그러나 예수님의 진심이 알려지는 순간,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주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하고 진짜 복음을 주시는 순간, 고개를 돌리고 등을 돌리고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3.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보니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이 호적 등록을 하러 고향으로 가는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고향에 갔더니 수많은 사람이 모였겠죠. 수많은 사람이 모이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숙소가 없습니다. 머물 곳이 없어요. 그래서 마굿간으로 들어가 말 구유에 아기 예수를 눕혔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이 마굿간 말구유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주셨습니까? 왕의 보좌 위에 멋지게 영광스럽게 오신 게 아니라 저 낮고 낮은 말 구유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말구유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밥으로 오셨다’는 상징으로 많이 이해했습니다. 여물통, 밥그릇에 왔다는 겁니다. 말이 밥 먹는 그 여물통에 주님을 모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는데 밥으로 주셨다는 겁니다. ‘예수를 먹고, 이 예수를 취하고, 은혜를 구원을 입어라. 우리에게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 우리의 삶의 근원이 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를 통해서 우리를 먹이신다. 예수를 통해서 우리를 살리신다. 나를 살려주는 모든 것이 실은 예수 그리스도다. 내가 먹는 밥이, 내가 입고 사는 옷이, 내가 누워 자는 집이, 나와 함께하는 모든 이웃이, 사랑 나누며 즐거워하는 이 모든 세상이, 실은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에게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겁니다.

4.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밥으로 오셔서 우리를 먹여 살리시고 우리를 마침내 구원하신다.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 참 좋은 고백입니다. 참 좋은 성찰입니다. 그런데요. 이런 성찰의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이냐면 ‘그리스도가 누군가?’ 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에만 멈춥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 제가 항상 이야기 말씀드리죠? 신앙의 성찰은 ‘하나님이 누구냐? ‘하나님은 이런 분이구나’ 하고 끝나면 안 됩니다. ‘그런 하나님이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 신앙의 성찰의 끝은 항상 ‘나’를 향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나님 대단하네.’ 그렇게 끝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는 고백은 ‘하나님 역시 최고야. 하나님이 최고의 능력을 가지신 진짜 신이지’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라고 하는 것이 나와 무슨 관계를 갖느냐?’ 그 성찰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죠.

‘예수님이 우리에게 밥으로 오셨다. 나를 먹이신다.’ 하는 이야기가 ‘예수님 나를 먹여주시니  감사하다’로 끝나선 안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이야기로 넘어가야 됩니다. 나의 밥으로 오시는 예수! 나를 먹이시는 예수! 그러면 나는 내가 먹어야만 하는 그 밥을 잘 먹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밥으로 나의 주식으로 잘 먹고 소화하고 있는가? 그게 더 중요하지 않겠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식당에 가면 무조건 밥 먹기 전에 사진을 찍습니다. 멋있는 레스토랑 가서도 찍고, 국밥집 가서도 찍고, 커피 마시기 전에도 찍습니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는 인터넷 SNS에 올립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뭡니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내 앞에 있다’ 하는 게 중요합니까? 아니면 ‘그 음식을 내가 먹었다’ 하는 게 중요합니까?

그 음식을 내가 먹는 게 중요하잖아요. 정작 중요한 건 그 뒤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생명의 밥으로 오신 사건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를 밥으로 주셔서 우리에게 먹을 양식으로 주셔서 아름다운 식탁 만들어 주셨다’ 하고 끝나버리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밥이 나에게 주어졌다. 대단하지? 아, 감사하다’ 하고 SNS 인스타에 페이스북에 올리고 거기서 끝이에요. 그 뒤에 내가 그 밥을 얼마나 잘 먹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나누지 않죠. 실은 그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아주 맛있는 음식을 잘 차려놓고 먹지는 않고서 사진만 찍습니다. 그리고는 ‘이게 내 밥이야 나 이런 거 먹고 살아’ 하고 자랑만 합니다. 자랑만 하고서는 그 식탁 옆으로 밀쳐놓고 먹지 않습니다. 우리 그런 신앙 살고 있지 않습니까?

밥이라고 이야기했으니까 밥 얘기로 해봅시다. 우리 편식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먹고 싶은 것 그런 것만 찾아다니지 않습니까? 아니면 눈에 그럴 듯 해 보이는 것, 다른 사람이 보고 ‘우와 저 사람은 저런 밥을 먹고 살아? 저런 식사를 해? 우리는 맨날 집에서 된장찌개 김치찌개 먹는데 저 사람은 대단하네!’ 할 법한 것만 찾아다니지 않습니까? 밥이 우리에게 그런 용도입니까?

5.

밥으로 오신 예수 차원으로 보자면, 얼마나 좋은 음식이 나에게 차려졌는가? 얼마나 그럴 듯한 음식이 내 앞에 차려졌는가? 이 음식을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자랑할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그 음식을 내가 얼마나 잘 먹을 것인가? 내가 얼마나 잘 먹고 잘 소화해낼 것인가? 그게 우리가 진짜 고민하고 진짜 성찰해야 할 주제이죠. 예수가 보여주신 그 모든 구원의 차원을 우리가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얼마나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모든 차원’이라고 말씀드렸어요. 예수가 보여주신 수많은 것들 중에서, 내가 내 마음대로 골라서 ‘그래, 이건 정말 좋지. 정말 감사해’ 하며 이건 먹고 저건 먹는데, 싫다고 옆으로 밀어놓는 것도 있다는 겁니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내가 좋아하는 반찬만 먹고 그걸로만 배 불리고는, 꼭 먹어야 되는 김치는 절대 안 먹겠다고 옆으로 싹 밀어놓고, 콩나물은 저 뒤로 밀쳐놓고는 ‘엄마가 맛있게 밥 잘 차려줬어요. 잘 먹고 배불러요. 그래서 잘 크고 있어요’ 합니다.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신앙도 똑같지 않나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차려주신 그 훌륭한 한상 앞에서, 밥상 한번 쓱 살펴보고 내가 원하는 것 내 마음에 드는 것 내 입맛에 맞는 것만 쏙쏙 골라 먹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요것만 더 달라고 저것만 더 달라고, 먹고 싶은 반찬만 더 먹겠다고 그러는 겁니다. 제 좋은 걸로만 배를 채우죠. 그리고는 잘 먹었다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니에요.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준 모든 것을 온전하게 다 골고루 먹을 수 있겠느냐?’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차려주신 이 음식을 내가 거절하지 않고 내가 싫어하지 않고 안 먹겠다고 하지 않고 얼마나 내가 잘 먹을 수 있는가? 주님은 그것을 보고 계시는 거죠.

잘 하는 것을 계속 잘하는 것 훌륭합니다. 좋아하는 것은 계속할 수 있어요. 그러나 잘하는 것만 좋아하는 것만 계속한다고,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칭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어디에 가 있습니까? 우리가 잘 못하던 것, 그러나 잘 했으면 하시는 것, 주님은 바로 그것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잘 못 하고 있는 것을 한 발 한 발 한 번 한 번, 못함에도 불구하고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내 마음이 거기로 가고 있는가? 주님은 그것을 보고 계시죠.

6.

주님은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일단 한번 먹어봐. 일단 입에 넣어봐. 어떻게? 감사로. 입에 넣고 한번 씹어봐. 한번 삼켜봐. 그게 내 속에 들어가서 어떻게 되는지 한번 봐.일단 한번 사랑해봐. 일단 한번 이렇게 살아 봐.’

입에 넣기만 하면 될까요? 아니요. 노력해야 돼요. 어떻게 노력합니까? 소화해내려고 열심히 씹어야 돼요. 나의 인간적인 열심이 들어가야 돼요. 마음으로 심리적으로 내 감정적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것을 감사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돼요. ‘주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구나.’ 나의 감정을 앞에 내세우지 말고요. 나의 호불호를 앞에 내세우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감사하게 받겠다고 하는 그 마음을 먼저 내세워 보는 거죠. 그리고 나의 감정 나의 생각을 뒷전으로 밀어보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렇게 살아봐라 라고 말씀하셨으니까 그것을 받아들여보는 거죠.

엄마가 아빠가 ‘김치 한번 먹어봐. 이거 좋은 거니까 너한테 주는 거야. 겉보기에 시뻘겋고 이상하다고 싫어하지 말고 한 번 그냥 받아들여 봐.’ 우리가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듯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죠. 한번 받아들여보는 거예요.

입에 억지로 넣은 아이가 씹으려고 안 하고 입만 어정쩡하게 벌리고 있어요. 씹지 않고 말이죠. 일단 입에 넣었으면 한번 씹어 먹어보라는 거죠. 나에게 닥친 것 받아들이고, 내 마음에 안 들고 내 취향에 안 맞고 내 호불호의 다르지만 일단 그 일에 매진해 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내 안으로 들어간 주님의 은혜가 나에게 임하신 주님의 은혜가 나를 온전히 세워주신다는 거죠.

씹고 삼키고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삼킨 음식이 어떻게 됩니까? 위 속으로 들어가고 이런 작용을 하잖아요. 위가 꿀렁꿀렁 해 가지고 다 소화를 시키고 위액도 소화 효소도 나오고 장으로 들어가고 소장을 지나고 대장을 지나고 배출이 되잖아요.

내 뱃속에 들어간 것, 여러분 위장을 여러분이 움직이십니까? 밥을 먹었으니 내가 위를 움직여야지~ 하고 위를 이렇게 이렇게 스스로 꿈틀꿈틀 움직이십니까? 장을 내가 이렇게 저렇게 조절하나요? ‘소화시켜야지~’ 하고 장을 꿈틀꿈틀 여러분이 움직이시나요? 아니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죠. 내 안에 있는 나의 힘이, 그러나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나의 능력이, 굳이 비유해보자면 성령의 힘이 내 안에 내주하고 계셔서 나의 능력으로 화하고 계신 것이죠.

하나님이 내가 무엇을 삼키기만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것 먹을 것 나에게 좋은 것 그것을 내가 입에 넣고 열심히 씹어서 삼키기만 하면, 내 안에 들어와서 나의 힘이 되어 주신 성령께서 움직이십니다. 내가 내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성령께서 이미 나에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성령이 움직이셔서 영양분을 내 안에 내 존재 안에 쫙 퍼트려준다는 거죠.

성령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이 나에게 차려주신 것, 하나님이 ‘너 이렇게 먹고 살아봐’ 하고 내 앞에 차려주신 그 밥상을, 내가 기쁨으로 집어들고 내 입에 넣고 인간적인 노력으로 씹어 삼키기만 하면, 그 뒤에 일어나는 그것이 나를 살리고 그것이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나를 살려주는 그 일은, 내 안에 들어와 계신 성령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 이루어주신다는 거죠.

7.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밥입니다. 밥과 관련된 성경 말씀이 창세기에도 나오고요. 베드로의 환상 중에도 나와요. 창세기에 보니까 세상을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세상의 모든 것 너희에게 음식으로 주었다. 너희가 다 먹어라.’ 그 얘기는 ‘뭐든지 네 마음대로 다 먹어도 돼’ 라는 허용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무의 말씀이기도 해요. ‘너에게 먹을 것을 먹으라고 준 것이니, 사양하지 말고 먹어라’ 하는 이야기죠.

베드로의 환상 중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드로가 환상 중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보자기에 쌓인 음식을 봐요. 그런데 그 음식을 보니까, 율법상으로 ‘아, 이건 먹으면 안 돼. 더러운 거야. 부정 탄 거야.’ 그런데 하나님이 계속 음식을 내려줘요. ‘먹어라. 먹어라. 먹어라.왜, 네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거절하는가?’ 하나님 계속 말씀하시는 거죠. ‘거절하지 말아라.’ 하나님 나에게 주시는 일, 내 앞에 닥친 사람, 내가 만나야 되는 사람, 내가 해야만 하는 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삶 앞에서 거절하지 말아라.

주님께서 분명히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어요. 제자들에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말씀하셨어요. ‘내가 가는 이 길을 너희도 갈 수 있느냐?’ 오늘 ‘밥의 언어’로 바꿔볼게요. ‘너희들에게 차려준 이 밥상 잘 먹을 수 있겠느냐? 잘 먹을 자신이 있느냐? 소화할 자신이 있느냐? ‘못 먹겠네요’ 하고 밀쳐두지 않고 다 먹을 수 있겠느냐? 한 발 더 나아가서 그런 음식 너희도 차려줄 수 있겠느냐? 다른 사람에게 음식만 차려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너희도 음식이 되어서 먹혀줄 수 있겠느냐?’ 우리에게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우리 깊은 고민해야 됩니다. 깊은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 나에게 음식으로 오셔서 나를 살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나에게 차려주신 이 밥상 거절하지 않고 먹겠습니다. 그렇게 나도 온 세상 앞에 아름다운 밥상이 되어 보겠습니다.’

한순간의 기도로 정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우리 안에 끊이지 않고 그 고민이 우리 앞에 끊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되지 않는 그 길을 내 안에 이미 들어와서 내주하고 계신 성령께서 나를 인도해 가시고 나를 견인해 가셔서 마침내 하나님 기뻐하시는, 밥상 잘 먹고 밥 잘 먹고 힘 불끈불끈 내서 열심히 일하는 주님의 일꾼으로 우리를 삼아주실 줄 믿습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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