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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복저주가 축복으로(민수기 23:7-9)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3.01.15 02:07
▲ John Linnell, 「The Prophet Balaam and the Angel」 (1859) ⓒWikipedia
7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8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9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들어가는 말

주현절 둘째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생각하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들려주셨고, 어떤 삶을 사셨는지 생각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를 지내시는 가운데 예수님에 대해 더 깊이 바라보시길 바라며, 예수님과 조금씩 닮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올해 저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하는 삶,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복 받으며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이러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민수기에 나타난 발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에 나타난 복은 어떠한 형태를 갖춘 복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발람 설화

민수기에 나타난 발람 이야기가 생소하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유명하고 중요하게 전해졌던 이야기로 보입니다. 오경 안에서 민수기 외에 신명기에도 발람의 이야기가 나타나고 있고, 오경 외에도 여호수아, 느헤미야, 미가에 발람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특이한 점은 발람 이야기가 신약성경 세 군데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베드로후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에 발람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이런 점을 보았을 때, 발람에 관한 이야기는 예수님 시대를 지나 초대 교회 시대에까지도 유대인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명했던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민수기에 따르면 발람은 유프라테스 상류에 가까이 있었던 도시 브돌에 거주하던 사람으로 브올의 아들 발람이라 불립니다. 발람을 예언자라 불러야 할지 점술가라 불러야 할지 애매한 측면이 있지만, 그가 복을 빌면 복이 임하고 저주하면 저주를 받게 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런 능력은 먼 도시에까지도 알려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가나안 땅을 하나 둘 점령하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기 위해 발람에게 사신을 보냈고 그를 모압 땅으로 초청하게 됩니다.

사실 발람 이야기는 민간에서 전승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많이 변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민수기 본문에서는 출애굽 이후 가나안 점령 시기에 있었던 사건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가나안 점령기가 아닌 모압과 이스라엘이 국경을 맞대고 있던 시기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초청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부탁했다면 이 사건은 출애굽 직후에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최소 형태의 국가를 이룬 이후에 벌어진 사건일 것입니다.

발람의 예언 자체도 문체나 중복되는 내용들로 인해 서로 다른 전승이 존재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또 민수기 31장이나 여호수아 13장의 경우에는 발람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무언가 악한 일을 했고, 그렇기에 죽임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합니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발람 이야기는 이 전승의 내용을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발람 이야기가 최소한 미가의 예언 이전에 출애굽과 연결된 형태로 완성되어 구전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 구약시대에는 발람 이야기가 저주가 축복으로 변한 사건으로 전해지고 있었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저주가 축복으로

발람 이야기가 어떤 형태에서 출발해서 어떤 방식으로 전해져왔는지를 따져보는 일도 의미는 있겠지만,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점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다른 지역의 예언가 혹은 점술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발람이라는 인물이 정확히 어떤 시기에 존재했던 사람인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살아가던 시대에 상당히 유명했던 사람이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발람 이야기를 처음 전했던 사람들이 그저 발람이라는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차용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따랐다는 사실은 발람 설화가 만들어지고 전해질 이유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발람은 본래 하나님께 능력을 받아서 어떤 힘을 사용하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던 사람도 아닙니다. 자신의 지역인 유프라테스 상류 지역의 어떤 신을 섬기며 때로는 복을 빌어주고 때로는 저주를 내리던 사람입니다.

발람 이야기에서 우리가 먼저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사람들을 위해서 그 어떤 존재라도 들어 쓰실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어쩌면 적대적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때로 그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시다는 사실입니다.

발람은 발락의 요청에 따라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모압 땅으로 이동했습니다. 그가 발락의 요청을 거절했다는 긴 이야기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발람과 당나귀의 이야기를 보자면, 그는 분명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인물로 사용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발람 이야기의 두 번째 중요한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를 향하려고 했던 저주조차도 축복으로 바꾸신다는 점입니다. 내 삶에 저주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혹은 그런 이야기들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축복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전에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복은 나를 힘들게 만들고 어렵게 만드는 일들을 오히려 기회로, 또는 더 큰 기쁨으로 나아가는 길로 만드시는 반전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발람 이야기는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삶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한 치 앞의 미래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달라야 합니다. 분명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떤 상황에 맞닥뜨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을 선한 길로 바꿔주시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품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주조차도 축복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복 받을만한 삶을 살아오셨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충만히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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