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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과 회복, 그리고 사명 2: 다 나와 같이 되기를!(창 4:1-16 행 26:19-29 막 14:3-9)사순절 둘째 주일(3월5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3.03.02 23:12

1. 선악과 사건의 사적 소유로 인한 공동체 파괴 현상

오늘은 사순절 둘째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도 지난주 말씀처럼 타락과 회복, 그리고 사명에 관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타락에 관해서는 인류의 첫 형제 살인 사건인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이고, 구원에 관한 말씀은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명의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 사도 바울의 사명 이야기입니다. 결박된 것 외에는 모두가 다 바울 자신과 같이 예수님을 믿기를 바라는 사명자의 모습입니다. 먼저 구약 말씀부터 볼까요?

▲ <가인과 아벨의 희생제사> 마리오토 알베르티넬리(1510)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창 4:1-5) 

실낙원 이후,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낳습니다. 그들은 각각 농경민과 유목민의 대표자가 됩니다. 이들이 장성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가인의 안색이 변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았을까요?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해석을 제공하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소개했던 판스하이크&미헬의 책, 『신은 성서를 쓰지 않았다』(시공사, 2022)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경쟁과 불평등의 문제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곧 경쟁에서 진 가인, 죄를 범하고 공동체에서 쫓겨난 가인의 구제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조금 신선하고 일리 있는 해석입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 볼까요?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통해 당시를 지배한 사회적 혼돈을 일별할 수 있다. 사유재산을 바탕으로 새로 등장한 사회에는 경쟁, 불평등, 폭력이 난무했다. 사람들은 말 그대로 그런 사회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모든 일이 지나치게 빨리 일어나 인간의 정서가 자연선택을 통해 적응해나갈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새로운 규범은 오래전에 자리 잡은 타고난 감정과 충동에 걸맞지 않았다. 대신 ‘힘이 권력을 만든다’라는 말이 재기에 성공하면서 마치 고전 그리스 비극에서처럼 과거의 원칙과 새로운 원칙이 맞부딪쳤다. 이런 부조화의 결과는 대혼란이었다.”

무슨 말인가요? 선악과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적 소유가 발생했고, 이로 말미암아 인류의 일기장에는 차별과 불평등, 경쟁과 폭력이 난무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힘이 권력을 만들어 사람 간에, 남녀 간에 차별이 생기고 공동체가 파괴되고 위기가 생긴 것을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3-7)

사유재산을 기초로 차별과 불평등의 사회일지라도, 폭력과 경쟁 등의 죄를 다스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미 선악과 원죄를 통해 가인으로 대표되는 농경민 인간은 죄를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결국 공동체는 파괴됩니다. 가인은 아벨을 쳐죽입니다.

▲ 아벨을 쳐죽이는 가인(16세기 그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 4:8-12)

가장 중요한 공동체인 가족 관계가 파탄이 났습니다. 결국 파괴된 공동체로 인하여 가인 역시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가인을 보살피십니다. 말씀을 볼까요?

2. 가인에게 준 표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창 4:13-16)

판스하이크&미헬에 의하면, 성서는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적절한 곳에 배치했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 선악과 사건 뒤에 배치했다는 뜻입니다. 사실 형제간 갈등은 사적 소유가 인정되는 정착 생활의 필연적 결과입니다. 지금도 그렇지 않나요? 부모의 재산과 자녀 상속의 문제는 형제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도 야곱과 에서의 장자권 이야기, 요셉을 시기한 형제들의 이야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물론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도 같은 상황입니다.

이렇게 수렵・채집 시대의 평등하고 조화로웠던 과거의 가족 관계(아벨로 상징되는 시대입니다)가 농경시대(아벨을 죽인 가인의 시대입니다)로 접어들면서 파탄이 납니다. 따라서 인류의 일기장에는 이러한 분열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졌습니다. 결국 놋 땅으로 쫓겨난 가인은 낙원에서도 멀어졌습니다. 가인이 정착한 놋 땅은 ‘유리하다, 방황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판스하이크&미헬에 의하면 극악무도한 가인의 행동은 그의 개인적 결함, 즉 무절제한 천성 때문이 아니라, 조화롭지 않은 사회적 상황이 촉발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불평등에 기초한 공동체의 파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동체가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표를 준비하셨습니다. 가인의 죽임을 면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비록 사적 소유로 인해(선악과 사건을 뜻합니다) 인류사에 불평등과 폭력, 차별과 경쟁이 등장했다고 해서 그 인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거두어 주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입니다. 따라서 가인의 표는 공동체의 경쟁, 불평등, 폭력에 대한 대안입니다.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복음서는 가인의 표를 넘어 ‘예수 십자가의 표’를 우리 인류에게 보여 주십니다. 이제 타락을 넘어 사랑의 새 세상을 건설하라는 사명의 말씀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3. 향유를 부은 여인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막 14:3-5)

▲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부은 여인을 사람들이 책망합니다. 1데나리온이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여인이 예수님께 부은 향유의 값인 300데나리온은 노동자의 1년 연봉에 해당합니다. 그 정도 금액이면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는 금액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막 14:6-9)

무슨 말씀인가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사실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언제든지 원하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기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길을 따른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가능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바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의미를 이해하고, 알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울의 십자가 신학도 여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말씀에서 바울은 신임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의 믿음을 증거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4.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 앞의 바울, “다 나와 같이 되기를!”

▲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그리고 바울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행 26:19-23)

그러자 이러한 신앙의 논리가 당시 로마의 철학과 상식과 달라, 총독 베스도는 바울이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행 26:24-26)

따라서 바울은 유대교 신앙을 알고 있는 아그립바 왕에서 호소합니다. 아그립바 왕은 그 당시 베스도 총독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 있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행 26:27-29)

바울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부활을 증거합니다. 이렇게 인류의 타락과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사건의 증거자입니다. 사명자입니다. 모두가 다 결박된 것 외에는 바울 자신과 같이 예수를 믿게 되기를 바라는 복음 전도자였던 것입니다.

5. 교회는 제도가 되기 직전까지이며, 목사는 괴물입니다!

 『목사가 목사에게: 단 한 사람에게 보내는 마음의 편지』(IVP, 2023)는 15명의 목회자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써 내려간 편지글 모음집입니다. 가정과 교회, 소명과 성품, 설교와 목양, 재물과 욕망, 관계와 독서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흔들리는 인생길을 걷는 이들이 무엇을 바라보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따스한 위로와 조언을 건네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 서문에서 김영봉 목사(미국 와싱톤사귐의 교회)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물량적인 성공을 이룬 목회자가 아니면 실패자로 간주되었다. 교인들도 큰 교회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이것은 ‘천민자본주의’에서 배양된 성공 바이러스가 교회까지 전염시켰고, 복음은 물량적 성공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왜곡된 증거이다.”

말씀대로, 복음대로 증거하고 살면 되는데, “그렇게 하면 교회 현장에서 통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듣고, 현장에서 통하게 하려면 복음을 ‘어느 정도’ 왜곡시켜도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정도’가 함정이라는 사실을 늦게서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김영봉 목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의 본질을 내어주고 성공과 성장을 향해 질주한 우리 교회는 짧은 시간 동안 세계가 놀랄 만한 물량적 성장을 이루었다. 한때, 세계 10대 교회 중 절반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겼다.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난 지금, 그것은 ‘악마의 거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습니다. 그 결과 목회자의 관심사가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 자신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있지 않고 물량적 성장과 성공에의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서서히 침몰하는 항공모함과 같은 형국”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코로나가 가져온 것이 아니라, 이미 한국교회 안에 성공주의 신학이 자리잡게 되면서부터 잉태된 씨앗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요? 김영봉 목사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성장주의로 인해 생겨난 병폐들을 함께 매장해야 교회는 건강한 생명력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일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기에 ‘우리가 하는 목회’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만 진정한 갱신과 부흥이 일어날 수 있다.”

왜 죽어야 하나요? 조정민 목사(베이직 교회)가 고(故) 하용조(온누리 교회) 목사에게 쓴 편지 말미의 글에 잘 나와 있습니다. 새 신자의 질문에 하용조 목사의 대답인데, 조정민 목사는 이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새신자: “목사님, 교회가 무엇입니까?”
하용조 목사: “교회요… 교회는 제도가 되기 직전까지입니다.”
새신자: “그러면 목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용조 목사: “목사요…, 목사는…괴물입니다.”

책 제목이 ‘목사가 목사에게’입니다. 김영봉 목사는 괴물 같은 목사들에게 이렇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이 서간집에 수록된 글들은 이제는 죽을 때라는 고백이다. 우리가 하려고 했던 모든 일을 죽이자는 호소다. 우리의 인생 프로젝트가 되어 버린 목회를 무덤에 장사 지내자는 결단이다. 우리가 세운 모든 것들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도록 무너뜨리자는 기도다. 그럴 때 주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교회를 다시 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잘 죽어서 주님께서 교회를 다시 일으키시게 하자는 호소다. 교회의 화려한 회복에 대한 헛된 꿈을 내려놓고 거룩한 신부로 회복되기를 꿈꾸자는 외침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들은 교회에 대한 애가(哀歌)이며 또한 교회를 향한 애가(愛歌)다.”

타락한 한국교회의 회복은 김영봉 목사의 말대로 한국교회를 향한 애가(哀歌)가 애가(愛歌)로 바뀔 때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조직화한 교회가 무너져야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될 것이며, 목사가 죽어야 다시 교회다움을 회복할 것입니다. 살아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원죄로 인해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괴물 목사와 제도화와 기업이 되어버린 교회는 그 타락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모두 다 죽으면 됩니다.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십자가만 바라보면 됩니다. 그렇게 처음 받은 사명을 회복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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