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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함 속에 이루어가는 평범한 삶의 복그들이 바란 복(레위기 26:6-9)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3.03.12 05:14
▲ El Greco, 「Mount Sinai」 (1570-72) ⓒWikipedia
6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7 너희의 원수들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8 또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9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한 내 언약을 이행하리라

들어가는 말

사순절 셋째 주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기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펼쳐져 갈 줄 믿습니다.

이번 주일에도 저희는 성경에 나타난 복에 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어떤 방식으로 섭리하시며, 우리의 삶에 어떻게 도움을 주시는지 우리는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말씀을 통해서 그 단편적인 모습이라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저희는 레위기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하는데, 레위기에서 복을 받게 되는 기본 전제는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지켜 행함입니다. 현재 우리는 레위기에 나타난 모든 율법 조항을 지키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 규정들도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오경에 담긴 율법 조항들을 현대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를 전부 전해드리기엔 설교 시간이 부족할 듯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는 복의 전제가 되는 율법 준수의 문제는 다루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에게 복이 내린다는 전제는 어쩌면 우리에게 당연한 부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대로 살았을 때 우리가 무엇을 얻게 된다고 레위기가 전하는지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시대 상황

레위기는 긴 율법 조항의 마지막에 오늘 본문을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랐을 때 받을 복과 그렇지 않았을 때 받게 될 저주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26장과 매우 흡사한 내용은 신명기 28장 이후에도 나타납니다. 신명기의 경우 그리심산에서 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가 선포하였다는 이야기도 나타납니다.

오경에 나타난 율법 조항들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은 언약, 계약이라고 본다면, 그 마지막 부분에 복과 저주의 내용이 담긴 점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고대 문서들에서 계약 체결문 마지막에 계약 이행과 불이행에 따른 복과 저주를 기록하는 것은 흔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나 신명기도 그러한 맥락에 따라 율법 조항 마지막 부분에 이행과 불이행에 따른 복과 저주의 내용을 담아놓았습니다. 레위기와 신명기 두 본문이 복과 저주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고 형식적인 면에서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두 본문의 관계를 따져보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큰 틀에서 본다면 복과 저주의 선포라는 점이나 복과 저주의 내용 중 일부는 두 본문이 똑같지만, 본문을 자세하게 살펴본다면, 두 본문은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간단하게 보자면, 문체에 있어서도 두 본문의 차이가 있습니다.

유사하면서도 상이한 두 본문의 존재는 복과 저주에 관한 어떤 형태의 전승이 존재했고 그것이 두 가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에 남아있는 형태가 이것뿐이어서 그렇지, 복과 저주의 선포는 고대로부터 흔하게 사용되어 오던 계약 방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레위기 26장에는 네 가지의 복과 다섯 가지의 저주가 나타납니다. 저주의 개수가 복의 개수보다 많이 나타나는 점도 주변 지역의 다른 계약 문서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합니다.

레위기나 신명기에 나타난 복과 저주는 단순하게 보자면 흔히 말할 수 있는 복과 저주일 수 있습니다. 복의 내용은 결국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내용이고, 저주는 모든 것을 잃게 되리라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은 농경 사회였기 때문에 농사에 관한 복과 저주가 담긴 점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주의 내용을 살펴보면 단순히 농사를 망치게 되리라는 내용에 그치지 않습니다. 대적의 손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는 상황,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게 되리라는 저주도 나타납니다. 또 나라를 잃고 적대자의 나라에 끌려가게 되는 상황까지 나타납니다.

게다가 40절 이하에는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그에 따른 심판을 달갑게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내용이 나타납니다. 저주받은 상태로부터의 회복이라는 주제는 복과 저주가 나열된 목록에 포함되기엔 어색한 내용입니다.

이런 구절들을 본다면, 레위기 26장의 본문은 고대 사회에 만들어진 복과 저주에 관한 글을 그대로 옮겼다기보다 바벨론 포로기 상황이 전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나 느부갓네살에 의한 3년간의 포위 전쟁으로 황폐해진 남왕국 유다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아마도 레위기 26장은 바벨론 포로 초기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입니다. 레위기 26장에 사용된 많은 단어가 구약성경 안에서 오직 에스겔에만 나타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줍니다.

바벨론에 의한 침략 전쟁을 겪었던 이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후에 작성한 본문일 것입니다. 물론 그 기반이 되는 고대의 전승도 존재했을 것입니다. 이 본문이 포로 초기에 기록되었을 것이라 보는 이유는 유다 민족의 바벨론 포로 생활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서 관직을 얻을 수 있었다면, 느헤미야나 그의 집안은 이미 바벨론 시기부터 어느 정도의 입지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나 에스라에 나타난 상황도 그렇지만, 에스더를 보더라도 고레스 칙령 이후 유다로 돌아오지 않은 이들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만큼 그곳에서의 삶이 나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레위기 26장의 본문은 포로 생활을 하나의 형벌로 표현합니다. 포로 초기 그들은 나라를 잃었고 땅을 잃었고 타지에 끌려와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자체가 그들에게는 형벌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포로 2세대, 3세대에게 바벨론 생활은 크게 형별로 느껴지진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바란 복

오늘 본문이 바벨론 포로기를 전제하고 있으며 저주의 내용이 자신들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면, 받게 될 복은 자신들이 받길 바라던 내용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도우셔서 자신들에게 주시길 바랐던 내용일 것입니다.

그런데 4절에 나타난 복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철따라 비가 내리고 땅은 산물을 내고 나무를 열매를 맺으리라는 복입니다. 여기에는 더 많은 소출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습니다. 물론 5절에는 평소 이상의 소출이 복으로 나타나긴 합니다.

5절이 평소보다 많은 소출을 복으로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5-6절이 제시하는 복은 많은 양의 소출보다는 안전에 있습니다.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는 것, 누울 때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는 것이 5-6절이 제시하는 복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복은 신명기 28장에 나타난 복과는 상당히 느낌이 다릅니다. 신명기 28장의 경우, 토지의 소산과 가축, 광주리와 그릇에 복이 있으리라고 말합니다. 더 많은 소산과 더 많은 음식을 누리게 되리라는 복입니다. 그리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어디에서건 복을 받으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레위기 26장에 나타난 복은 많은 소산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늬앙스도 있지만, 그보다 안전하게 경작하고 안전하게 소산을 얻게 되리라는데 중점이 놓여 있습니다. 즉 아무런 위협 없이 평범한 농경 생활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이 오늘 본문이 말하는 복입니다.

레위기 26장이 제시하는 복, 결국 이를 작성하고 있던 이들이 바라던 복은 평범한 삶입니다. 다른 나라의 위협이 없는 상태, 자연에 의한 재해가 발생하지 않는 상태, 자신의 밭에서 농사 지은 만큼 수확하여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오늘 본문의 복입니다.

하나님 뜻에 따른 평범한 삶

얼마전 TV에서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를 보고 있었는데, 인천음주뺑소니 사망 사고 내용이 나왔습니다. 30대의 배달 라이더가 좌회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음주운전을 한 차가 정면을 받으면서 오토바이 배달부가 사망한 사고입니다.

패널로 나와있던 어떤 사람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저도 이 영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토바이 배달기사들 신호위반도 자주 하는데, 왜 저렇게 착하게 신호대기하고 있다가 이런 사고를 당하게 됐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아마 지금 사회의 가장 잘못된 면일 것입니다. 악을 행한 사람, 음주운전을 한 사람이 잘못된 것이고, 그의 악함을 비판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을 바라보면서 차라리 피해자도 나쁜 짓을 했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잘못된 생각입니다.

악이 존재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더욱 선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저 악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나도 악을 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더 글로리’의 복수 이야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악을 행한 이들에게 똑같이 악으로 되돌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한 삶을 살아가도록 말씀을 내려주셨습니다. 그 선한 삶의 결과는 우리가 바라는 바처럼 대단한 무엇인가를 누리는 삶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의 연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레위기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선한 이들이 이룬 그 평범한 하루하루의 삶이 복이라고 말합니다. 악에게 침해당하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음이 복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의 서두에 얘기드렸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땀 흘린 만큼의 소산을 얻으며, 그것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혹은 그것을 잃게 될까 염려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삶이 되실 줄 믿습니다. 그것이 레위기를 기록한 이들이 바라던 복이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복입니다. 이런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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