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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삶이 아닌 것부터 지워나가자생명의 샘(시36:7-9, 렘2:13)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3.05.01 23:49
ⓒKelly Sikkema

1.

부활절기를 보내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신앙의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찬양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는 부활한 삶을 살고 있는가? 부활하기 위해서 죽고 없어져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 속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 고민을 하지 못하면, 부활은 그저 멋진 쇼에 불과하고 허망한 자랑거리에 불과합니다.

쇼는 아무리 그럴듯해도, 쇼가 끝나고 모든 무대의 막이 내려가면 모두들 제각기 갈길로 흩어져 버릴 뿐입니다. 내 삶 속으로 들어와 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허망한 자랑은 자기 자신을 부풀리고 자기 스스로의 열등감을 포장할 뿐입니다. 침튀기며 자랑하던 그 시간이 지나고,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간이 돌아오면, 그저 부끄럽고 한없이 초라할 뿐입니다.

수없이 많은 부활절을 지내면서도, 우리의 삶이 여기 이대로인 이유는, 예수님만 계속 부활하고 우리는 부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더이상 부활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많이 부활하셨습니다. 이미 2천년전 한번 부활하신 것으로 완전하고 완벽합니다. 부활의 반복은 더 안하셔도 됩니다. 그런데도 매년마다 고난받고 부활하는 일을 계속 반복하시는 것은 왜입니까? 바로 우리가 부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은커녕 십자가 근처에도 못가기 때문입니다.

어떤 수학선생님이 그러더래요. “얘들아, 내가 너희들 가르쳐 주느라고 내 실력만 계속 는다. 가르쳐 준 걸 열심히 따라하고, 모르는 건 물어보고, 해야 되는데, 그냥 멍하니 내가 푸는 것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너희들 수학실력은 하나도 안 늘고, 맨날 나만 계속 실력이 는다.” 예수님만 지금 계속 고난 당하고 죽고 부활하고, 우리는 바라보기만 하고, 예수님만 계속 실력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부활절에는 선생님이 시범 보이는 건 그만하고, 이제 우리가 직접 문제 풀어봅시다. 우리 삶의 문제를 풀어봅시다. 뭐 틀릴 수도 있겠지요. 맨날 정답 맞출 수 있나요? 하지만 그렇게 실수하고 잘못하고 해 봐야 실력이 느는 거 아닙니까? 감나무 밑에서 익은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다. 머리를 긁적거려 가면서, 고개를 갸웃거려 가면서, 내 삶의 문제를 풀어보기 위해서, 올바른 답을 찾아내는 그 환희를 맛보기 위해서, 내 문제 속으로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걱정할 거 없습니다. 최고의 선생님이 지금 우리 옆에 계십니다.

그럼 어떤 문제를 풀어볼까요? 처음부터 어려운 거 할 수 없습니다. 쉬운 것부터, 그러나 기초가 되는 것부터 하나 하나 시작해야 합니다.

2.

학교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뭘 모르는지 그 자체를 모른다’는 겁니다.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막막해요. 팔짱을 끼고 책상을 스윽 쳐다봅니다. 뭘 해야지? 공부 잘하는 학생은 자기가 뭘 모르는지 뭐가 부족한지 다 알아요. 그래서 책상에 앉기 전부터 계획이 딱 있어요. ‘처음에는 이걸 공부하고, 그 다음에 이걸 하고,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해야지...’ 합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좋은 신앙 가지고 싶은데, 신앙의 우등생 되고 싶은데, 하나님 말씀대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삶을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잘 몰라요. 성경책도 읽어보고, 예배 설교도 듣고 하는데, 그 때는 좀 끄덕끄덕 하지만, 막상 내 삶의 책상 앞에 앉으면 막막해요. 뭘 해야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괜히 연필도 깎아놓고, 새 공책도 사 오고, 책상 정리도 깨끗하게 하고, 간식도 준비해 놓고, 그런데 막상 공부는 뭘 할지 모르겠는거죠.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부 전문가 선생님이 나와서 코치를 해주는데요. 뭐라고 했을까요? 예, 일단 하나부터 시작하라는 겁니다. 뭐든지 하나를 붙잡고 시작해야 모르는 게 보인다는 겁니다. 한 번에 갑자기 우등생이 될 수 없습니다. 신앙도 한 번에 갑자기 그리스도의 경지에 올라설 수 없습니다. 베드로도 수없이 무너졌습니다. 수없이 실패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하나를 하나하나 했기 때문에 결국에 그리스도의 경지로 한 발 한 발 올라갈 수 있었던 겁니다. 바울도 그렇습니다. 한 번에 갑자기 위대한 성인이 된 것 아닙니다. 눈 앞에 보이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하기 시작했고 그 작은 걸음들이 모여서 마침내 위대한 사도가 된 것입니다.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에게, 이게 뭐야?’ 하는 어설픈 것이라도, 성실한 마음을 가지고, 충실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해 나가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행동해 보기 시작하면, 그때에 비로소 나에게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차츰차츰 드러나고,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는 엄청난 역사가 그 꺼풀을 벗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신앙의 우등생이 되어갑니다. 뭐가 부족하고 뭐를 잘하고 있는지, 뭐를 더해야 하고 어디에 힘써야 하는지, 책상 앞에 앉기도 전에 공부할 것을 준비하는 학생처럼, 아직 닥치지도 않은 내 삶의 미래가 훤히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나를 통해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환히 보이는 겁니다.

그걸 예언이라고 하는 겁니다. 예언은 미래에 일어나는 일을 비디오 보듯이 보고 아는 그런 게 아닙니다. ‘몇 월 며칠에 무슨 일이 있을 거야. 너 물 조심해, 물가에 가지마.’ 예언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 삶을 하나하나 살아가기 시작할 때, 아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런 일이구나, 하는 것을 차츰차츰 알게 되고, 그래서 점차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이 예상되고, 하나님을 통해 만들어지는 세상의 모습이, 그 미래가 보이는 겁니다. 그것이 예언입니다. 예언은 그래서 신기한 초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꿈꾸게 되는 미래입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이 말하듯이 ‘주님의 빛을 받아서 환히 열린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숙제 같은 그런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나를 위해서 내 삶을 위해서 내 인생을 위해서 뭐를 할 수 있나?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요즈음 티비 뉴스를 보면 넘쳐나는 사건사고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학대하기도 하구요, 정인이 사건도 있구요, 어린이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길거리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도 갑자기 폭력을 행사합니다. 이유도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요만한 꼬투리라도 이유가 있기만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중국에서 나왔다면서? 너 아시아 사람이지? 하고 증오를 퍼붓습니다. 뭐 동성애자들? 하나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놈들! 하고는 증오를 퍼붓습니다.

선거도 그렇습니다. 제대로 된 정책과 비전을 가지고 경쟁하지 않습니다. 상대편을 향한 증오와 비난만 난무합니다. 유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확고한 신념과 이념을 가지고 내가 지지해야 할 사람이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미움의 대상이 누군가? 증오의 대상이 누군가? 누구에게 화풀이해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분노의 시대, 증오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화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생계를 위한 범죄가 아닌, 증오범죄가 판을 칩니다. 이념의 대립, 가치의 대립이 아닙니다. 무엇이 옳은가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긍정적인 대결이 아닙니다. 싸움 그 자체를 위한 편가르기일 뿐입니다. 우리, 왜 이렇게 됐습니까?

오은영 박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육아전문가로 활동하는 의사선생님입니다. 어린이 심리학 박사님입니다. 저도 종종 오 박사님이 출연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는데요. 볼 때마다 많은 것을 배웁니다.

한번은 이런 말을 합니다. 소위 문제가 있는 아이를 둔 부모에게,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될까요? 고민하고 상담을 신청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내 화는 내가 처리해야 됩니다. 내 화를 아이에게 풀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잘못한 것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잘못입니다. 화가 나는 것은 나의 문제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내가 할 일입니다. 아이에게 그 화를 던져버리면 안 됩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분이 종교가 어떤지는 모릅니다만, 신앙의 진리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증오의 시대, 분노의 시대, 비난의 시대, 그 원인과 해결책은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이 나의 문제이고, 무엇이 너의 문제인가를 아는 겁니다. 나의 문제는 내가 해결하고, 너의 문제로 돌리지 않는 겁니다. 내가 고민하고 내가 해결해야할 내 숙제를, 밖으로 내뱉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누구도 내 화를 받아줘야할 의무는 없습니다. 내 화를, 내 감정의 쓰레기를 맡아야 할 의무가 그 누구에게도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에게도 내 쓰레기를 던져버리면 안 됩니다. 내 쓰레기는 내가 처리한다.

우상이 뭡니까? 우리 ‘우상숭배하면 안 된다’고 하죠? ‘하나님만 섬기자’ 그러죠? 그런데 우상이 뭡니까? 하나님 아닌 다른 신입니까? 부처가 우상이고, 알라가 우상입니까? 왜 갑자기 우상 얘기를 하냐구요? 이게 다 우상입니다. 성경은 우상을 뭐라고 말합니까? 성경이 말하는 우상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만들었다. 손으로 새겼다. 자기가 새겨 만들고, 자기가 부어만들었다. 자기 생각대로 만들었다...’ 어떤 우상이라는 존재가 있는게 아닙니다. ‘바알이라는 신이 있는데 그게 우상이야. 아세라라는 애가 있는데 걔가 우상이야.’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우상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 내가 내 스스로 만들어낸 것, 그것이 우상입니다. 우상이 바로 내 마음의 쓰레기다. 그 쓰레기를 잘 처리하는 것이 신앙이고, 그 쓰레기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증오범죄가 난무하는 요즈음, 그것은 단순한 마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대사회의 스트레스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영의 문제입니다.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처리할 지 모르고, 그 쓰레기에 오히려 사로잡혀 사는 삶.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오해하는 삶. 사회가 나를 스트레스 받게 했으니 그 스트레스를 표출하는게 정당하다는 마음의 유혹, 그 변명, 그것이 우상입니다. 그 증오와 비난을 정당화하기 위해 궁리해내는 온갖 이유들 또한 우상일 뿐입니다. 왜요? 내 마음에서 솟아나는, 내 마음이 만들어낸 고안해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4.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 그것 가지고는 우리는 우상을 만들 뿐입니다. 증오와 비난과 원망의 고리를 이어갈 뿐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예,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것, 그것이 필요합니다. 그게 뭡니까? 나의 밖에서부터 나의 안으로 뚫고 들어오는 힘, 전혀 몰랐던 해결책, 바로 하나님의 빛입니다. 생명의 샘입니다.

예레미야 2장을 보면, 예레미야가 이렇게 한탄합니다. “참으로 나의 백성이 두 가지 악을 저질렀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전혀 물이 고이지 않는, 물이 새는 웅덩이를 파서, 그것을 샘으로 삼은 것이다." 예레미야 2장 13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내가 판 웅덩이를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생수의 근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썩어가는 웅덩이를 버리고, 주님이 주신 생명의 샘을 취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으로는 나를 살릴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 내 의지로 내 도덕으로 내 판단으로... 기껏해야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합의로, 우리의 법으로, 우리의 심판으로, 감시와 견제로... 내 안에서, 우리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내려고만 하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밖에서 오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빛은 하늘에서 뚫고 들어옵니다. 생명의 샘은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옵니다. 나를 넘어선 곳에서 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힘이고,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생명의 샘이다. 그것만이 우리의 삶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 증오의 시대를 잠재울 수 있습니다. 원망의 시대, 분노의 시대를 위로할 수 있습지다.

그것을 어떻게 받습니까? 오직 하나님이 주십니다. 우리는 그저 달라고 엎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 삶의 경계에 서서, 내 마음의 경계에 서서, 내 영혼의 경계에 서서, 그 경계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 경계에 갇혀서 내 안에서 넘쳐나는 쓰레기를 부둥켜 안고 고민하지 말고, 경계선 밖으로 내버려야 한다. 내 안에서 썩어가는 물만 계속 들이키지 말고, 밖에 있는 생수를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 영이 그 경계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 경계선 알량한 조그만 세계를 들여다 봐야 합니다. 멀찍이서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렇게 우리는 미래를 봐야 합니다.

우리 맨 처음에 무슨 이야기 했지요? 예, 공부하는 이야기 했지요? 그러면서 뭐라고 했나요? 하나하나 해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무슨 공부를 할까요? 지금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 영이 경계 밖으로 나와 봅시다. 그리고 바라봅시다. 내 안의 분노를, 내 증오를,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내 영혼의 쓰레기들을...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 하나 밖으로 던져 봅시다. 좁은 그 경계속에서 우리끼리 치고박고 서로에게 던지지 말고, 부끄럽지만 살며시 주님 앞에 내려놔 봅시다. 그것이 주님 앞에 엎드리는 일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빛을 받는 일이고, 그것이 생명의 생수를 마시는 일입니다. 그것이 예언의 삶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부활의 계절을 살아가면서, 증오의 시대, 분노의 시대, 비난의 시대에 매몰되어 버리지 말고, 내 영혼의 썩어져가는 쓰레기들을 붙들고 어쩔줄 몰라하면서 울부짖지 말고, 밖을 바라보고, 주님의 빛을 영접하고, 주님의 생명수를 마십시다. 그렇게 부활의 길로 걸어가 봅시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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