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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선을 행합시다선함으로 드러내는 소망(베드로전서 3:13-17)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3.05.07 03:46
▲ Jan Styka, 「St. Peter Preaching the Gospel in the Catacombs」 (c.1900) ⓒWikipedia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베드로의 편지

부활절 다섯째 주일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살아있는 믿음을 품으시고, 그 믿음 안에서 소망을 간직하며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날마다 우리를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베드로전서의 본문은 제가 스스로 신앙에 대해서 고민하게 될 때 읽는 말씀입니다. 일부러 이 본문을 찾아 읽는다기보다 이 본문이 눈에 확 들어오곤 합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신앙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본문입니다.

우선 베드로전서에 관한 대략적인 설명부터 드리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베드로전서의 처음과 마지막 인사말은 이 편지를 베드로가 적었다고 말하고, 또 그렇게 읽어가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베드로가 적었다고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가장 단순한 의구심은 지식이 전혀 없던 베드로가 어떻게 헬라어로 된 편지를 작성할 수 있었으며, 70인역 성경을 인용할 수 있었냐는 점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일부 학자들은 베드로가 대필가 혹은 필사가를 통해 편지를 작성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편지의 큰 줄기만을 이야기했거나,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을 했고, 이를 헬라 지식이 있던 대필가가 글을 완성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런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편지를 대신 적는 대필가가 있었고, 베드로는 글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당연히 대필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를 베드로의 편지로 보기 어려운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에 담긴 신앙과 그에 따른 지침이 사도 바울의 신앙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의 신앙은 이렇게까지 흡사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유대계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가 극단적인 유대계 그리스도교인들과는 조금 달랐을 수도 있지만, 그가 전하는 신앙이 사도 바울과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의 신앙이 사도 바울과 같았다면 갈라디아서 2장에 나오는 두 사람의 다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신앙을 닮아있는 이 편지는 누군가가 어떤 목적에서인지 베드로를 작성자로 기록해놓고 있지만, 베드로나 다른 사도가 아닌 조금 더 후대의 사람이 적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전한 신앙이 좀 더 영향을 미치던 지역에 속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베드로가 적었을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베드로가 어떤 인물인지를 따져보는 것은 이 편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편지는 사도 바울의 신앙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편지와 함께 읽어가는 편이 더 도움이 됩니다.

선을 행함으로

베드로전서는 고난 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한 편지이고, 신앙의 지침을 전달하기 위한 편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이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를 구성하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신앙의 지침들을 통해 성도들이 고난을 헤쳐가길 권면합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에서도 이러한 점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 고난 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한 글입니다. 하지만 이 글은 선을 행하라는 권면에서 시작됩니다.

13절은 선을 행하는 이를 해할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이는 우리나라 속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와 같이 유대인들에게 흔하게 알려져 있던 표현으로 보입니다. 구약 외경인 집회서 7장 1절은 “악을 저지르지 마라. 그러면 악이 너를 결코 덮치지 못하리라.”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선을 행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베드로전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13절을 바꿔 생각해본다면, 지금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그들이 선을 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됩니다.

그래서 14절은 지금의 고난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성도들이 선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하여 고난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의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듯이 성도들도 의를 위해 살아가기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들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복이 허락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은 부활이라는 결과가 있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자신들의 고난에 대해 두려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또 근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고난의 끝에는 구원과 복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이들은 그리스도를 마음속 깊이 품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미 그리스도를 품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제 베드로전서는 세상과 자유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고난과 근심이 없는 어떠한 곳, 세속적인 세상과 단절된 어떠한 곳에서 이루어지지 않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속한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질문을 받게 됩니다. 당신들이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질문에 대답하며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누군가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끊임없는 선행으로 인함입니다. 고통과 근심 가운데에도 선을 행하는 이들을 향해서 어떤 이들은 질문을 던집니다. 아마 이런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소망을 품고 있기에 이런 삶을 살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하는 소수입니다.

아마도 대다수의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오히려 그들의 선행을 욕하고 비방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선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적의를 가졌던 이들에게 부끄러움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선을 행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에 동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그 누군가를 위해서입니다. 나를 비방하던 이들, 욕하던 이들을 부끄럽게 만드는게 목적이 아니라, 질문을 던질 몇몇 사람과 함께 구원의 길을 걷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이 선한 행동인가

선한 행동이라고 하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는 있지만, 그래도 어찌보면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이것이 의를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의 선행이라고 하면 더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생각하는 의로움이 다릅니다. 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의롭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의로움에 맞는 행동을 합니다. 그런 행동이 선이라고 생각하진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자신의 행동을 악하다고 생각하진 않으며 행동합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이 세상에서 다른 이들에게 악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의로움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의 선함은 누군가에겐 악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가장 단순한 예로,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악하다고 생각하면서 바라볼 것입니다.

그저 선을 행한다고 말했을 때, 특히나 의를 위하여 선을 행한다고 말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는 몇 가지의 지침을 말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바로 앞에도 이러한 지침이 나타나 있습니다.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라.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라.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고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라. 화평을 구하여 그것을 따르라.

9-10절에 나타난 지침은 말과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누군가를 향해서 상대방이 상처받을 수 있는 말을 내뱉는 행위는 악한 행위입니다. 8절과 11절은 결국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며 화목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9-10절의 말씀과 연결되면서 선한 말로 화평을 이루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람들은 때로 자신이 선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말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가장 흔한 예가 명절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누군가에게 던지는 그런 이야기들일 것입니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빨리 결혼해야 한다. 빨리 아이를 가져야 한다. 이런 말들이 악한 말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것이 압박이고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사랑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사도 바울의 서신과 유사합니다. 그래서 1장 21-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믿음과 소망을 주셨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기에 그분을 믿으며 그 안에서 소망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세상에서 실천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소망은 더욱더 커져갑니다. 베드로전서에 나타난 선행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선행은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야 바르게 실천됩니다. 나만의 의로움에 따른 선행이 아니라 상대방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이해하며 실천하는 행동이기에 참으로 선한 행동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선행은 다른 이들에게까지 우리의 소망을 전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인이 품는 소망은 선한 행실 속에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선을 행할수록 우리 안의 소망은 더욱 커지고 확고해집니다. 우리의 소망이 굳건해질수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욱 큰 은혜를 내리시고 복을 허락하십니다.

비록 우리 삶에 고난이 있고 근심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품은 소망으로 인해 극복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며 선을 행할 수 있기에 고난은 극복되고 근심은 사라지게 됩니다.

사랑하며 선을 행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 행위 속에서 그리스도가 주신 소망을 세상에 전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소망 안에서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그 사랑을 날마다 실천할 수 있도록 더욱 큰 사랑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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