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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질문에 여전히 대답하지 못하는 교회본회퍼와 반유대주의 (3)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3.05.23 15:19
▲ The gates of the Nazi concentration camp at Auschwitz, Poland (1965) ⓒKeystone/Getty Images

3.

본회퍼는 ‘독일 그리스도인’이 국가권력의 반유대주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신학적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데, 본회퍼의 이런 태도는 그가 1933년 6월에 발표한 ‘유대인 문제에 직면한 교회’(Die Kirche vor der Judenfrage)에서 다시 구체화된다.(1)

본회퍼가 제기한 두 개의 질문

유대인들이 그들의 종교적 소속성과 관계없이 그들의 인종적 소속성 때문에 국가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는 역사상 처음 있는 현실에 직면해 교회는 두 가지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 하나는 교회가 어떻게 국가의 행위를 판단해야 하며, 그런 판단으로부터 어떤 과제가 제기되는가라는 질문이며, 다른 하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세례 받은 유대-그리스도인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본회퍼는 이 두 질문을 제기하면서 이 질문은 오직 올바른 교회 개념에 의해서만 대답되어질 수 있다고 전제한다. 본회퍼와 ‘독일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국가권력에 대한 태도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종교개혁교회는 국가를 하느님 없는 세계 안에서 하느님의 질서를 유지하는 기관으로서 긍정한다. 다시 말해 인간적 시각에서 볼 때, 좋은 혹은 나쁜 질서를 만드는 국가의 기능을 인정하며, 하느님 없는 세계의 무질서 가운데서 하느님의 질서유지의 뜻에 그 기능이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국가의 행동에 대한 교회의 판단은 도덕주의를 넘어서 있으며, 인본주의와도 구별된다. 이것은 복음의 공간과 율법의 공간을 과격하게 분리시킨 종교개혁자의 입장에 상응한다. 국가의 행동은 교회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회퍼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 오직 복음으로부터만 살고 국가의 행동의 본질을 아는 교회는 결코 국가권력의 도구가 되지 않으며, 인도주의의 이상에 따라 국가권력을 비판한다.(2)

물론 교회는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행동을 할 수는 없다. 유대인 문제에 있어서도 교회는 국가를 직접적으로 말씀에 예속시킬 수 없으며, 국가에게 특정한 행동양식을 요청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가 국가의 정치적 행동에 무관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교회는 국가의 행동이 정당한 국가적 행동인지, 다시 말해서 국가가 질서와 권리를 보장하는지 아니면 무질서와 권리박탈을 조장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특히 국가가 권력으로 질서와 권리를 보호하는 기능이 위협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는 더욱 그런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국가가 질서와 권리를 보장하는 행동을 할 때에만 교회는 정치적으로 직접적인 저항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기준은 국가가 질서와 권리를 보장하는지, 않는지에 있다.

다시 말해 교회는 국가가 질서와 권리를 ‘너무 적게’(Zuwenig) 보장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Zuviel) 질서와 권리를 주장할 때 발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너무 적게’는 특정한 인간집단이 권한을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하며, ‘지나치게’는 국가가 교회의 선포와 신앙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교회는 국가에 대하여 세 가지 행동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국가의 행동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 즉 국가의 책임성에 대하여 질문하기. 둘째, 국가행동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교회는 희생자들이 교회공동체에 속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을 돌볼 의무가 있다. 세 번째 가능성은 자동차 바퀴에 깔린 희생자들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자동차 자체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야말로 교회의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이며, 국가가 질서와 권리를 보장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볼 때 가능한 일이다.(3)

‘너무 적게’는 특정 집단의 권리를 박탈하는데서, ‘지나치게’는 교회의 본질과 선포가 국가에 의해 침해받는데서, 다시 말해 세례 받은 유대-그리스도인을 교회 공동체로부터 강제적으로 축출하는 데서 구체화되었고, 그래서 본회퍼는 나치의 반유대주의를 ‘신앙고백 상황’(statu confessionis)의 문제로 규정했던 것이다.(4)

유대교는 그리스도의 교회 입장에서 볼 때, 결코 인종적 개념이 아니라 종교적 개념이다. 생물학적으로도 의심스러운 유대 민족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율법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에, 사람이 유대교인이 되는 것은 율법을 수용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유대-그리스도인도 종교적 개념이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다. 유대-그리스도교에 속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교적으로 세례를 받은 유대인이 아니다. 유대-그리스도인은 교회적 의미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순종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오늘 독일 그리스도인이 유대인을 교회 공동체 안에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유대인과 독일인이 하느님의 말씀 아래 함께 서 있는 곳이 교회라고 선포하는 것이 교회의 과제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교회가 교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5)

본회퍼에게 유대인 문제는 교회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기준, 곧 신학적 문제이며 신앙고백의 문제였다. ‘독일 그리스도인’은 독일 민족주의 운동에 적응하는 경향을 보였고, 이에 대해 본회퍼는 ‘국가사회주의는 이단이며, 국가를 신격화하는 것이고, 인종적 교만’이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악마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타협적인 투쟁은 마침내 그를 폭력적 저항에로 이끌었고, 이러한 비타협적 급진성이야말로 본회퍼 신학의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하겠다.(6)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을 하지 못하는 교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반유대주의는 그리스도교 세계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충격을 주었다. 신학자들은 과연 ‘아우슈비츠 이후에 신학한다는 것’이 가능한지를 물었다.(7)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교인이었다는 지극히 자명한 사실조차 애써 무시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구조화해온 역사에 대한 신학적, 역사적 반성은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대가를 치룬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리스도교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하여 모순된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억압받고 추방당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억압하고 추방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의 희생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된 것이다. 서구 그리스도교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 반유대주의의 비극적 역사에 책임을 함께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무조건 침묵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교의 반유대주의는 신학적, 종교적 원인에 의해서만 유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정치적 원인 등 오래되고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갈등구조를 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선교적 전망을 얻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갈등과 억압과 저항의 역사에 의해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는 것이 대화와 증언의 전제이다. 우월감이나 피해의식 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평화와 공생을 지향하는 종교들이 지켜야 할 태도이다. 본회퍼가 나치의 반유대주의를 신학의 문제, 신앙고백의 문제로 보았듯이, 인권 역시 신앙고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형상이 종교적인 이유에서든, 어떤 이유에서든 침해받는다는 것은 바로 신앙고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본회퍼를 기리면서 그에게서 다시 배울 수 있는 것은, ‘급진적 제자직’은 언제나 신앙고백에서 가능하다는 것, 특히 인간이 종교적 소속성 때문에 차별받고 억압받는 현실에서 그들 편에 서는 것이야말로 급진적 제자직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미주

(1) Der Vormarsch 3(1933), Heft 6(Juni), 171-176에 게재. 초고는 1933년 4월 15일에 완성되었다.
(2) Eberhard Bethge u.a(Hg.), Dietrich Bonhoeffer Werke, 12, Berlin 1932-1933, Guetersloh 1997, 350-351.
(3) Eberhard Bethge, 같은 책, 353.
(4) 같은 책, 354.
(5) 같은 책, 358.
(6) 호르스트 게오르그 펠만, 급진적 제자직: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신학사상’, 1995년 겨울, 22.
(7) 전후 대부분의 독일 신학자들의 신학적, 실존적 질문이었다. 특히 도로테 죌레와 요한 밥티스트 멧츠의 신학은 세계 고난 안에서 하나님을 질문하는 것을 신학적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위르겐 몰트만(편), 나는 어떻게 변하였는가, 이신건 역, 한들 1998 참조.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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