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있다는 착각

▲ Gustave Dore, 「The Vision of The Valley of The Dry Bones」 (1866) ⓒWikipedia

에스겔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포로가 되어 살던 시절의 예언자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의 바로 다음 세대를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사야나 예레미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의 예언을 합니다. 에스겔서를 가만히 읽어보면, 요한계시록을 보는 듯합니다. 여러 가지 환상과 비유, 그리고 묵시와 계시가 해석하기 어려운 상징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에스겔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 상상의 허구의 인물이라고도 말합니다. 포로기의 억압상황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묵시적으로 문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에스겔이 실존했느냐 아니면 허구의 인물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을 밝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에스겔은 긴 예언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서 살던 이스라엘이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모든 민족들도 함께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긴긴 멸망의 예언이 침울하고 지루하게 이어집니다.

그리고는 이제 드디어 소망의 메시지가 전해지기 시작합니다. 온 세계로 흩어져 버렸던 백성들을 이제 드디어 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들을 불러 모으면서 맑은 물로 정결하게 하시고 모든 더러운 죄악을 씻어주신다고 하십니다. 돌 같이 굳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셔서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만들어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영이 우리 안에 가득하게 될 때, 바로 그 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겁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계약은 단순히 약속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그리고 출애굽한 백성들과 맺은 언약, 그것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하고 결단하고 교회에 나오고 등록하고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새로운 영, 새로운 마음, 하나님의 영이 우리 존재 속에 가득하게 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생물학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 헤켈(Ernst Haeckel)이라는 학자가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하나의 생물 종이 최초로 이 세상에 출현했던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진화의 전체 과정이 그대로, 한 생명체의 성장에 그대로 반복된다고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태초의 인류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진화과정이, 한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어른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학설은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되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고 억측이 있어서 생물학계에서는 아직도 물음표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오히려 과학의 분야에서가 아니라, 인문학에서 더 큰 시사점을 줍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 발전한 사상과 철학이 한 개인의 사유 속에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녹아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의 신화적인 시대의 이야기에서부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족장시대를 거쳐서, 출애굽과 사사시대,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시대를 거쳐 바벨론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지루하고도 꼼꼼하게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그 역사 속에서 꾸준하고도 진득하게 진행되어온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기록이고 그 구원을 깨달아가고 믿어가는 신앙의 기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계획되어지고 성장하고 실현되는지, 어리석은 우리는 그 구원을 어떻게 하나하나 알아가고 믿어가고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과 인간의 응답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 속에서 그대로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는 개인의 역사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깨닫고 응답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오늘 에스겔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영, 하나님의 영에 대한 약속은 그 옛날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에피소드 하나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신앙의 여정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과연 내가, 그 현실을 붙들어서 나의 현실로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해야 합니다. 이 물음이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인 것입니다.

에스겔이 성령에 이끌려서 한 골짜기로 가는데, 그 골짜기에는 바짝 말라버린 뼈들이 즐비합니다. 이미 죽어서 다 썩었고, 썩다 못해 바짝 말라버린 뼈들입니다.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 뼈들을 앞에 놓고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이 뼈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겠느냐?’ 하나마나한 물음 아닙니까? 어떻게 뼈가 다시 살아납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뼈가 서로 서로 들어맞아 연결되고, 뼈에 힘줄이 뻗치고, 살이 입혀지고, 가죽이 덮이고 사람이 되어 살아납니다. 그리고는 제 발로 일어섭니다. 하나 둘 정도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큰 군대가 생겨납니다.

그런데 이 기적 속에 가장 중요한 하나의 열쇠가 있습니다. 이 뼈들이 그냥 살아나는게 아닙니다. 그냥 지들이 알아서 착착착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뼈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하나님이 주신 생기가 불어넣어 질 때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서 너희가 살 수 있게 하겠다.” 37장 14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어야 비로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은 ‘죽은 뼈도 살아난다 대단하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꾸로에요. ‘살아있는 것 같은 너희도 나의 영이 없으면,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죽은 것이다. 마른 뼈에 불과하다’ 하는 겁니다. ‘와, 우리 하나님 기적을 행하셨다’ 하고 마냥 좋아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는가’를 돌아보며 두려워하라는 거에요.

지금껏 우리는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없으면 우리는 죽어있는 것과 같습니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습니다.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위에 힘줄이 있고, 살덩이가 있고, 가죽으로 덮여 있을 뿐입니다. 움직이는 몸뚱아리에 불과합니다. 죽은 몸입니다.

그런 죽은 몸을 가지고 나는 살아있다고 억지를 부리는 겁니다. 잘 살고 있다고 고집부리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내리시는 겁니다. 멸망시키고 온 세상으로 뿔뿔이 흩어버리십니다. 생기 없는 육체가 죽어지고 부수어져서 마른 뼈가 되어서 온 땅에 흩어져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 없는 그런 존재들을 온 세상으로 뿔뿔이 흩어 버리는 겁니다.

“너희들은 죽었다. 살아있지 않다. 그 안에 생기가 없다. 참 영이 없다. 육체를 가지고 있을 뿐, 그 안에 있어야 할 영이 없다. 그 영을 되찾을 때, 다시 살게 된다. 그 영이 함께 할 때, 마른 뼈가 살아나 건장한 사람이 되어서 군대처럼 일어나듯이,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살게 된다.” 하나님은 오늘 이 말씀을 우리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체험을 할 때, 베드로가 고백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우리는 아무런 희망도 찾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죽어버렸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도 없고, 하나님에 대한 소망도 없이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령이 오시니 이제 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마지막 날에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줄 텐데, 그러면 자녀들이 예언하게 되고,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게 되고, 나이든 사람들은 꿈을 꾸게 될 것이다.”

마지막 날은 바로 죽음의 날입니다. 모든 것이 끝나는 심판의 날입니다. 해와 달이 어둠이 되고 피가 되는 날입니다. 오직 죽음만이 만연한 마른 뼈의 날입니다. 바로 그 날에, 마지막 날, 죽음의 날에, 하나님의 영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환상을 보고 예언을 하고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실존하지 않는 것, 상상하지 못했던 것, 꿈만 꾸던 것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이제껏 존재하지 않던 새 세상이 창조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종말의 예언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의 예언입니다.

마른 뼈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시는 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던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인간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던 모습을 기억하게 합니다. 심판의 날, 파괴의 날, 죽음의 날이, 하나님의 영과 하나 되는 순간, 하나님의 영을 내 안에 받아들이는 순간,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는 순간, 심판의 날이 창조의 날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날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삶이 새로 시작하는 새 역사의 시작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두고 ‘죽음’이라고 부르지 않고, ‘부활’이라고 부릅니다. 그 죽음 속에 비로소 새로운 탄생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종말 속에서 새로운 창조를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령강림의 계절을 지내는 중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우리에게 약속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임한 그 성령사건을 기억하면서,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기를 간절히 고대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는 성령이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는 정말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그 성령, 그 영, 그 마음 그것을 바라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과는 상관없는 ‘우리가 원하는’ 욕심, 욕망, 탐욕, 그런 것 이루어주는 미신적인, 부적 같은, 도깨비방망이 같은, 그런 만능열쇠를 갖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까? 성령충만을 말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감격, 이런 것은 하나도 없고, 눈에 보이는 그럴듯한 이적과 기적, 체험만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것은 우리의 근본적인 삶의 태도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하시면서, 회개는 단순히 마음속으로 참회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삶의 태도를 온전히 바꾸는 것이 회개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바란다고 하면서, 성령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성령체험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성령이 하시는 일과 상관없는 기적에 열광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 사회에 정의가 이루어져야 하고 평화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의를 이루고 평화를 이루는 일에 두 손 놓고 있는 것 아닙니까? 억압이 없어야 하고, 착취가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억압과 착취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두 눈 감고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예전 삶을 그대로 두고, 나는 하나도 바뀌지 않으면서, ‘성령은 왜 나를 만나주지 않느냐’고, ‘왜 성령은 나를 외면 하냐’고, ‘하나님의 약속은 모두 거짓말 아니냐’고 교만한 삿대질을 해대는 것 아닙니까?

성령은 죽음의 골짜기에서 우리에게 옵니다. 마른 뼈가 널려있는 곳에서 생기가 돕니다. 죽음의 날, 심판의 날에 비로소 창조의 영으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피해가고 심판을 이겨내면 성령이 오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 할 죽음을 올바르게 죽고, 받아야 할 심판을 받아서, 우리 옛 사람이 모두 사라진 그 때, 우리의 못난 존재가 완전히 멸망을 고하는 그 때, 그 때 비로소 창조의 영으로 성령이 우리를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라.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마셔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마시는 것이 그 사람 스스로의 뱃속에서 솟아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목마른 나는 그대로 있고, 그런 나를 밖에서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 와서, 주님을 나의 중심에 모셔서, 나를 주님으로 채워서, 나에게서 주님이 솟아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서 주님의 뜻이 펼쳐져야 하고, 나를 통해서 주님의 일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뱃속에서 주님의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두려운 말씀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주님의 성령은, 아무나 주님께로 우르르 몰려들어서, 공짜로 나누어주는 사은품처럼 그렇게 주머니 속에 넣고 탐욕스럽게 웃으며 돌아가는, 그런 은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성령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로 와서 주님을 믿고 주님의 사람이 되면, 내 배를, 내 심장을, 내 손을, 내 발을, 내 입을, 내 지식을, 내 지혜를, 내 생각을, 내 마음을, 내 영을, 내 모든 존재를 주님께 내어드려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내 모든 것을 주님의 성령에 내어드려야 합니다. 내 모든 것을 주님이 사용하시게 바쳐야 합니다. 그렇게 내 모든 존재가 주님 것이 되고, 내 모든 존재 속에서 주님의 영이 솟아나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은 두려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말씀을 특별히 큰 소리로 외치고 계십니다. 명절의 마지막 날, 축제의 마지막 날, 하나님의 구원을 다함께 기념하고 기뻐하는 유월절 그 날, 그러나 참 구원을 외면하고 참 생명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죽음의 날, 그 날에 주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십니다. ‘제발, 나에게로 와라. 제발, 나를 믿어라. 제발, 그 모든 것, 헛된 것 다 내려놓고 주님 앞에 엎드리자. 주님 주시는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자.’

오늘 창립기념주일로 예배드리는 지금, 예수님의 이 간절한 외침을 우리가 듣기를 바랍니다. 그 음성 듣고 주님의 영을 사모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응답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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