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좋은 편을 택했다는 착각대접하는 자, 예배하는 자(골로새서 1:15-28; 누가복음서 10:38-42)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3.07.16 12:48
▲ Jan Breugel the Younger and Peter Paul Rubens,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 (1628) ⓒWikipedia

 

1.

오늘 누가복음을 보면 ‘더 좋은 편을 택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초청하여 집으로 모신 마르다와 마리아는 서로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모처럼 모신 주님을 대접하기 위해 몸과 마음이 다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동생 마리아는 마르다의 바쁜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느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마르다가 그 모습을 보고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내 동생 좀 뭐라고 해요. 일은 하나도 안 하고 나 혼자만 일하잖아요.” 그러자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마르다야, 왜 니가 이래라 저래라 하니? 마리아는 좋은 것을 선택했다. 놔둬라.” 마라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고 하십니다. 

왜 마리아가 택한 것이 좋은 것일까요? 일 안 하고 쉬니까 좋은 걸까요?

예수를 모신 자의 마음자세가 문제입니다. ‘마르다’라는 이름이 심상치 않은데 이 이름의 뜻은 ‘여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반면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아래 앉았다는 것은 스승의 말을 듣는 ‘제자’의 모습입니다.

한 집에서 같은 분을 모셨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손님처럼 대접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제자가 되어 섬기고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나를 대접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나에게서 배우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인의 마음을 가진 마르다는 준비할 것이 많아서 분주합니다. 준비할 것이 많아서 마음이 들떠 있는 것입니다. 산만합니다. 주님께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들었다고 했습니다. 억지로 들은 것이 아니라 사모하며 들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일은 생각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기왕에 예수님을 모셨으면, 늘 먹는 식사야 어찌 되건 간에 상관없지요, 주의 말씀을 듣는 일이 더 좋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마리아가 선택한 좋은 것은, 내 마음속에 내가 주인되는 삶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인 되는 삶을 선택한 겁니다. 누가 내 삶의 주인인지를 선택했다는 거에요. 하나님을 내 주인으로 선택했다는 겁니다. 그 마음이 좋은 마음이라는 겁니다.

제자의 마음은 오로지 주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에 집중하는 마음입니다. 스스로 주인이 되어 분주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로 주인 되게 하고, 주인 되신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구할 수 없는 영원한 양식, 바로 그 말씀을 먹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이는 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2.

교회는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를 주인으로, 으뜸으로 삼을 때 온전해집니다. 머리가 없으면 복잡하고도 복잡한 수많은 지체들이 서로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마르다가 자기가 주인이 되겠다고 나서니까, 마리아의 일을 간섭하게 되요. 마리아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해요. ‘너, 거기서 뭐해. 빨리 이거이거 파도 좀 다듬고 해야지, 뭐하는 거야?’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서 지금 말씀을 가르치시는 중인데, 그 현장에 마르다가 ‘나도 주인이다’ 하고 나타나니까 어그러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다들 그렇게 저마다 마르다가 되어서, 자기가 주도권을 쥐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요?

사실 교회는 많은 일로 분주한 곳입니다. 얼마나 일이 많은지 몰라요. 교사로 아이들 가르쳐야지요, 청소도 해야지요, 밥도 주방봉사도 해야지요, 친교하고 인사도 나눠야지요, 차량봉사도 해야지요, 예배 준비도 해야지요, 교회 관리도 해야지요, 회의도 해야지요, 성경학교도 있지요, 노회 외부 행사도 있지요... 어디나 일손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물론 다 해야만 할 일이고, 다 좋은 일입니다. 마르다가 예수님께로 와서 불평을 한 까닭이 그것입니다. 마르다가 하는 일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기 일에 분주하느라 정작 머리 되시는 주님의 일을 제쳐놓은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자기 일을 최선으로 삼다보니, 이 일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일인줄도 모르고, 예배를 제쳐놓고 이 일에 몰두해 버리는 겁니다. 

마르다는 어떻습니까? 자기가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르다의 생각일 뿐입니다. 주님을 주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오히려 자기가 주인되어서 자기 뜻에 합당한 일로 분주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이라고 고백하면서 정작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는 소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일하는 것 잠깐 멈추고 여기 와서 내 말을 들어라’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마르다는 오히려 ‘예수님, 제가 얼른 식사 준비할 테니까, 그냥 앉아서 좀 기다리세요’ 하고 자기 말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보여 주신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그 십자가의 구원사건을 믿을 때, 우리는 잘못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믿어 안 믿어?’ 하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 절대 아니에요.

‘믿으면 믿고, 안 믿으면 안 믿는거지. 뭐가 복잡합니까?’ 묻기도 하겠지만, 아닙니다. 신앙은 실로 복잡합니다. 한 순간에 이쪽 저쪽으로 정해지는 일이 아닙니다.

구원이 뭡니까? 복음이 뭡니까?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바로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자체가 구원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어떤 사실이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하는,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진리, 존재, 그 섭리.. 바로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안에 잡힌 바 되어서, 하나님의 의지대로 하나님의 역사하심 대로 이 세상이 구원받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구원으로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나도 역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안에 사로잡혀있어서, 그 구원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게 믿음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그런 간단한 이분법이 아닙니다. 삶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복잡한 삶의 숙제에요.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이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삶인가? 아니면, 저렇게 해야 하는가? 뭐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가?”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고민하는 거에요.

그 고민의 해답을 쉽사리 찾을 수가 없어서, 하나님 앞에 쉬지 않고 기도하는 거에요.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 어디를 향하고 계실까? 예수님은 어떻게 살아가실까?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은 어떻게 결단하실까? 하나님은 어떤 선택을 하실까?’ 하나님의 선택을, 예수님의 결단을, 나는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믿는다는 것은 그렇게 복잡한 일이에요. 평생을 이랬다 저랬다 고민하는 일이에요. 내 마음을 끊임없이 다독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일입니다. 그 복잡한 일을 하려면 내 삶의 모든 순간을 주님 발 아래서, 내 삶을 성찰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 발 아래에서 말씀을 계속 들어야 되요.

우리는 그렇게 주의 말씀 앞에 엎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가 있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예배하는 자의 자리입니다. 주의 발아래 앉아 예배하는 이 자리가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구원의 자리에요. 그 자리에 엎드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4.

주를 떠나 분주한 것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한 때의 일입니다. 그러나 주의 발아래에 자리하고, 주의 발자취를 따르는 일은 평생에 걸친 일입니다. 내 생각을 따르면 한 때의 일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주의 생각을 따르면 평생의 사명을 따라 일하는 자가 됩니다.

그의 발아래 있는 것은 어디든지 주를 따라가겠다는 다짐의 표현입니다. 그가 가는 길이 나의 길이고, 그가 하는 일이 나의 일이 되리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마리아는 훗날 무덤에까지 주를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하나님 발아래 무릎 꿇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도 하나님의 발치에서 배웠습니다. 배운대로 가라고 하시는 그 길로 따라가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로 가셨고, 부활의 길로 가셨고, 하늘 위로 영광의 보좌로 가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 무릎 꿇지 않는 용기도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을 보세요. 다니엘은 왕의 권세에도 굴하지 않습니다.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세상 어떤 권세가 위협하고 협박해도, 세상 어떤 즐거움으로 유혹을 해도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 앞에만 무릎꿇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일만을 했습니다.

바울도 전에는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던 사람이었어요. 내가 율법을 잘 지키고, 내가 조상의 전통대로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헛됨을 알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를 만난 순간에 그랬습니다. 그는 여지없이 고꾸라졌고, 꼼짝없이 주께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주의 종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일생에 단 한 번 예수님을 만났을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그 순간 그는 예수님의 그 발아래 엎드러졌습니다. 주의 음성을 듣고 고꾸라지고, 주의 발아래 엎드리는 것 이것이 진정한 예배, 온전한 예배입니다. 바울은 단 한번 온전히 주께 예배했더니 그것이 바울로 주의 종이 되게 하고, 일꾼이 되게 하고, 고난조차도 기뻐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5.

참된 예배는 인생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바뀝니다. 하나님 발 아래 엎드리면 내가 바뀌어요. 바깥 어두운 곳에서 두려워하며, 근심하던 사람이, 평안과 기쁨이 있는 하나님의 동산으로 옮겨져요.

바울이, 다윗이, 모세가, 아브라함이, 야곱이, 요셉이... 이 사람들이 뭐 대단한 사람이어서 훌륭하게 산 게 아니에요. 주님의 발 아래에 엎드렸어요. 그렇게 주님을 예배했더니 그 삶이 주님의 말씀대로 바뀐 거예요.

성서를 꼼꼼히 읽어보세요. 이 훌륭한 분들도 잠깐씩 주님 발아래를 떠났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어떻게 되었는지 보세요. 주님 발아래를 떠나서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살았던 때를 보세요. 비참한 순간들을 경험합니다. 그렇게 다시 주님 발 아래로 찾아오게 됩니다. 그렇게 인생이 바뀝니다.

우리 모두 인생이 바뀌기를 바라잖아요. 지금 마음 속에 다들 품고 있는 간절한 일들이 있잖아요. 이렇게 그대로 살아도 괜찮습니까? 내가 주인되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바라는 대로, 그렇게 하나님께 요구하기만하고, 내 맘대로 해달라고만 징징대로, 그렇게 살아도 괜찮습니까? 아니잖아요.

주님 발 아래에서 주님의 말씀을 한번 들어봐야지요. 내 맘에 안 들고, 나에게 기쁨이 되지 않고, 때로는 섭섭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겠지만, 주님이 일러주시는 말씀을 들어봐야 하잖아요. 그 말씀 듣고 그렇게 한번 살아봐야지요. 그래야 우리 인생이 바뀌죠.

한번 엎드렸다고 끝나는 일도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들이 주님 발아래 엎드려서, 그렇게 꾸준히 참된 예배, 온전히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오신 주님께, 내가 주인이 되어서, ‘주님, 여기 잘 앉아 계세요. 제가 좋은 음식 해드릴게요’ 하면서 주님을 대접하기만 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어떻게 만난 주님인데요.

주님 발아래, 그 첫 자리를 놓치지 않고 앉아서 주님을 예배하는 사람,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