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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 속에 계신 하나님창조의 사람들(출 1:15-21)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3.09.03 04:15
▲ 「Pharaoh and the Midwives」 (from the Golden Haggadah, Catalonia, early 14th century) ⓒBritish Library

1.

카오스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카오스라는 말은 혼돈, 무질서를 뜻합니다. 세상이 일정한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더 자세히 살펴봤더니 실제로는 그 양상이 너무도 복잡하고 불규칙하다는 겁니다. 자연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정한 법칙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문제들, 예측 불가능하고 불규칙적인 것들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상이변이나,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자연현상들이 생겨납니다. 어떤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혼돈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바로 그 불규칙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것들을 탐구해 봤더니, 우리의 눈에는 무질서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그 안에 일정한 질서가 존재하더라는 것입니다. 질서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혼돈, 무질서, 카오스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질서가 있더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 질서를 미처 몰랐던 것일 뿐입니다. 질서, 법칙이라는 것은 인간의 이해의 범위 안에서의 질서이고 법칙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질서이고,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해내지 못하는 것은 무질서고 무법칙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카오스 이론을 통해서 우리의 눈에 혼돈으로 보이고 무질서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실은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는 더 높은 수준의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를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삶의 지평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 우리의 지혜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 우리의 영성의 범위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을 우리는 이제껏 부정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몰랐을 뿐,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을 뿐, 실은 우리 인식의 범위를 넘어선 곳에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섭리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태껏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세상이 이 모양이냐? 하나님이 역사한다더니 하나님이 역사하는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섭리는 거짓이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해 봐라. 설명할 수 없다!’라고 말해 왔는데, 사실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부재와 하나님의 무능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무능력과 인간의 부족함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바라보면, 풀리지 않던 문제들을 풀어가는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2.

우리는 요셉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습니다. 형들에게 미움받고 이집트로 팔려 가고, 그곳에서 총리대신까지 되고, 마침내는 온 가족을 살려내는 요셉 이야기는 참 파란만장합니다.

그런데 요셉도 죽고 오랜 세월이 흘러가자, 상황이 바뀝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이집트를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새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탐탁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도 아닌 것들이 강해지고 많아지니까 적대시합니다. 반역이라도 하지 않을까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강제노동에 동원하고 그들의 힘을 억압합니다. 이전의 평온한 삶은 온데간데없어졌습니다. 심지어는 태어나는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라고까지 합니다. 생명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무질서와 대혼돈의 세상이 이스라엘 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질서와 혼돈의 상황에서 무질서와 혼돈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대 제국 파라오 앞에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맞섭니다. 이들은 파라오를 대적할만한 힘과 권세가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산파들이었습니다. 아이낳는 것을 도와주는 평범한 아줌마들입니다. 생명을 파괴하는 무질서와 혼돈이 덮쳐와서 완전히 지배하는 것 같았는데,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힘없는 산파들이 어떻게 위대한 파라오를 거역하고 감히 맞설 수 있었을까요? 17절 말씀은 이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다고 말합니다. 생명의 주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파라오가 지배하는 혼돈과 무질서의 세상 속에서 이 산파들은 새로운 질서를 보았던 것입니다.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아낸 이 산파들로 인해서, 진정한 변화와 희망이 질서정연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움직임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파라오의 생명말살정책은 보잘것없는 산파 여인들로 인해 붕괴되고 맙니다. 이제 혼돈과 무질서를 초월하고 뛰어넘어서 드디어 새로운 질서,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로 돌파해 들어가는 것이지요.

3.

창세기 1장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창조 자체가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서 새로운 질서와 조화를 만들어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이 혼돈과 흑암, 공허함을 미워하고 증오하면서 마치 심판하시듯이 없애버리시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혼돈과 공허함, 어둠 속으로 속으로 들어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걱정하지마, 내가 너에게 새 질서를 줄게, 너를 밝게 해줄게’ 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말을 걸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저 하늘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혼돈과 무질서를 멀리서 바라보시면서 ‘어우, 저기 어지럽다. 더럽다. 혼란스럽다. 깨끗하게 치워버려야 겠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와 혼돈의 중심으로 들어오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온갖 슬픔과 고통에서 한발 떨어져 하늘 위에만 머물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고통과 아픔의 중심부로 들어오셔서 그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예민하게 반응하시고 함께 경험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경험하는 무질서와 혼돈 안으로 직접 들어오십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창조의 질서를 세우시고 그 무질서와 혼돈을 바로 잡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질서와 혼돈은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새로운 질서와 구원을 가능케 하는 긍정적인 의미가 혼돈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혼돈과 무질서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아뢰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신앙인들은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운 이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무질서와 혼돈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는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가 있다는 것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종말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종말신앙은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요한계시록이 그리는 것처럼, 최후의 전쟁이 일어나서 하나님과 사탄이 대 결투를 벌이고,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 다 심판받고,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도 사탄에게 고생당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다 죽은 뒤에 천국에서 다시 잘 살자는 게 아닙니다. 혼돈과 무질서의 세상으로 우리 생명이 그렇게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그 역사를 믿는 신앙을 통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종말신앙입니다. ‘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4.

우리가 성경 이야기를 읽을 때는 그 결론을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아, 하나님이 이끌어 가셨구나. 하나님이 역사하셨구나’ 이렇게 쉽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무지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건들 속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중에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활동이나 목적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혼돈 속에 있는 사람은 새 질서를 발견할 겨를리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실패를 했다거나, 갑작스럽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만났다거나,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에 걸렸다거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쓸어버린 재해를 만났다거나 이런 일들을 경험할 때, 우리는 무질서와 혼란의 한 가운데서 낙심하고 절망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희망이 보이지 않고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 질서가 미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그렇습니다. 절망의 역사에서 우리는 낙심합니다. 새 질서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 옛 질서가, 아직은 옛 질서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옛 질서 안에 속박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천근만근 무거운 짐이고 두려운 공포이며 대단한 위세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무질서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무질서를 만들어내고 혼돈이 지배해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무질서를 질서로 세우시고 새로운 창조를 통해 희망을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그것은 ‘믿음’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새질서를 믿고, 그 새질서로 인도하시는 손길을 믿고, 그 믿음을 현실로 살아내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히브리 산파들이 오늘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도 아주 작은 하나님의 질서를 놓치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고 신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새로운 창조의 사역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무질서는 질서로 바뀌고 절망은 희망으로, 죽음은 생명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5.

그래서 창조를 소망하고 새 질서를 소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우리들은 마냥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이 혼돈이라고, 이 세상이 없어져야 할, 변화되어야 할 옛 질서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은, 새 세상을 직접 창조할 그 길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 혼돈의 세상으로 끌어들여서, 하나님이 이 안에 들어오시고 하나님이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하셔셔 변화를 질서를 창조를 이루어내시라고 하나님께 강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를 읽어 보면, 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이건 비밀인데요. 당신들에게만 말해줄게요. 우리는 마지막 때에 죽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변화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입니다. 혼돈의 끝은 이 세상 무질서의 끝은 우리의 죽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혼돈을 이겨내고 그 무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를 찾아내고 그 질서를 위해서 그 질서를 향해서 새로운 창조의 삶을 살아가면, 우리는 지금의 삶을 초월해서 새로운 삶으로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무질서와 혼돈을 향해 당당히 외칩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사망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옛 질서 속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아끌고,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를 옭아매던 그 사슬이 어디 갔느냐? ‘너희들 다 죽는다!’ 하고 우리를 협박하던 그 권세가 그 위세가 어디 갔느냐? 이제 하나님의 새 질서가 통치하는 세상 속에서 사망아, 죽음아, 권세야! 너희들이야말로 참 초라하구나.’

우리가 옛 질서를 초월해서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살게 될 때,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게 될 때,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서 새로운 삶 영원한 삶 영생을 누리게 될 때, 옛날을 돌아보면서 ‘저 별것도 아닌 것이 우리를 힘들게 했구나. 저 별것도 아닌 것 때문에 우리가 쩔쩔매고 맘고생 했었구나.’ 하면서 웃게 된다는 것입니다.

6.

오늘 우리는 창조절을 보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우리와 상관없는 저 멀리 우주에서 이루어지는 꿈결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이곳,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우리가 신음하고 있는 우리가 아파하고 있는 우리가 슬퍼하고 있는 바로 그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우리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알아서 이루시지 않습니다. 파라오의 위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히브리 산파들처럼, 죽음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바울처럼, 하나님의 질서를 발견하고 신뢰하고 믿으며 끝까지 이겨내고 견뎌내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금도 함께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을 한번 찬찬히 바라봅시다. 초라하지요? 별것 없지요? 아무것도 내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없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이 우리에게 있을 때, 그 믿음이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는 새 질서를 만들어가는 창조의 사람들이 됩니다. 오늘 창조의 사람들로 거듭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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