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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서 영성에로 전환을 촉구한 세속인들의 사도가신이 길희성 교수의 서거를 애도하며
김경재 명예교수(한신대) | 승인 2023.09.11 00:20
▲ 고 길희성 교수 ⓒ화면 갈무리

고(故) 길희성 교수는 길잃은 21세기 세속인들을 위한 구원의 사도

노학자 부부가 70대 이후 노년기에 자신들이 살던 아파트를 팔아 강화도에 심도학사(尋道學舍)라고 이름 붙인 ‘공부와 명상의 집’을 짓고, 영성신학을 이끄시던 종교신학계의 석학 길희성 교수가 9월 8일 새벽 80세를 일기로 소천하셨다. 필자는 그 분의 학자로서 일생과 종교인으로서의 헌신적인 실천적 삶을 우러러보면서 한국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는 깊은 관심과 조의를 표해야 마땅하리라고 생각한다.

가신이 길희성 교수는 철학, 종교학, 신학을 두루 통섭한 우리 시대에 드문 대학자이셨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길희성 교수는 일찍이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신 후, 예일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석사를 마친 후 하버드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서학문의 세계를 깊고 넓게 섭렵하셨다. 종교신학 전공학자로서 그가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추대된 이유이다. 생애 대부분을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에서 교수와 은퇴 후 명예교수로서 봉직하면서 22권의 역작들을 생산하여 한국 사회에 쏟아내셨다.

길희성 교수는 인도철학, 불교사상, 가톨릭의 영성신학,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현대 개신교 신학에 정통하신 제1급의 학자이셨다. 그의 학문적 넓이와 깊이가 크고 파격적이라고 할 만큼 주체적이고 창조적이어서 역설 같지만 한국 개신교 신학계는 그분의 학문적 열정과 열매를 도외시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폴 틸리히를 20세기 ‘지성인의 사도’라고 말하는 것에 비유하여 필자는 길희성 교수를 삶의 의미를 잃고 헤매는 ‘21세기 세속인들의 사도’라고 말하고 싶다.

현대는 “종교에서 영성으로 전환 시대”:
《마이스터 엑카르트 영성신학》과 《영적 휴머니즘》을 중심으로

그가 남긴 22권의 자작물 중에서 2권을 추천하라면 필자는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사상》과 《영적 휴머니즘》을 주저 없이 들고 싶다. 길희성 교수가 후반기에 특히 강조하는 점은, 현대는 전통적 종교가 큰 위력을 발휘하던 시대가 지났고 이제 영성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 종교에서 영성에로!>가 그의 모토라고 할 수 있다. 종교학자가 종교시대의 종언을 말한다니 이게 무슨 뜻인가? 자가당착 아닌가?

물론 당분간 전통 기독교를 포함하여 기존의 세계적 종교들은 존속할 것이고 이런 저런 모양으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제도적 종교들은 마치 금은 보석상자를 창고에 넣고 보존·관리하면서 현대인들에게 기념품을 팔거나 나누어주는 ‘종교 진리 박물관’이나 극단적으로 말하면 ‘종교기업체’같이 굳어졌다고 본다. 거기엔 샘솟는 듯한 생기와 역동성이 없다. 거룩한 경전, 교리 신조, 성직 질서, 교권과 정통 신학 체계가 더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점차로 종교 인구는 감소하고 다시 복원을 꿈꾸는 대형 집회 호시절은 쉽게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은 그 이유가 코로나 팬데믹 같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겠지만, 길희성은 시대정신 자체가 종교를 넘어 영성에 관심이 있을 뿐이고 종교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대담한 시대감각을 갖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두 권의 대표적 책 중에서 앞의 책 《마이스터 엑카르트 영성사상》은 13세기 성 프란시스와 동시대 살았던 중세 후기 가톨릭 신학자요, 영성지도자요, 신비가이며 교회개혁자였던 엑카르트를 연구한 책이다. 저자가 이 책을 중요시한 이유는 특히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신학계는 물론이요, 현대사조 자체가 ‘신앙과 이성’의 분리 또는 갈등을 겪으며 각각 제 갈 길을 걷기 때문에, 세계관과 인간 이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특히 서구 계몽주의 시대 이후, 세계는 신을 잃었고 신은 세계를 잃었다. 새로운 자연과학의 발달과 인간 이성의 성숙함에 따라, 기존의 자연/초자연의 이중구조 세계관과 초월적 유신론 신관이 신뢰를 잃어간 것은 당연하지만, 무신론자가 되고 기계적 세계관과 인간관을 갖는 것이 무슨 큰 지식인들의 ‘전리품’이나 되는 양 착각하고 교만해진 결과는 오늘날 심각한 지구생명계의 종말 위협으로까지 곁길로 빠졌다고 길희성은 본다.

길희성 교수는 로마서 11장 31절 구절 “만물이 주(主)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롬11:31)는 성구를 기본 세계관 기초로 삼는다. 그것을 중세신비가 마이스터 엑하르는 “세계 만물이 신성(Gottheit)의 깊이로부터 출원(出願)하고 거기로 환원(還元)하며 창조주와 인간의 영성사이에 부정할 수 없는 근원적 일치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범재신론(panentheism) 창조론을 13세기 중세기 때에 이미 주장했던 것이다.

엑카르트 영성신학이 ‘돈과 권력’에 도취되어 정신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주는 치유 처방전은 철저한 초탈, 초연, 자기비움의 영성이다. 소유의 욕망, 지식의 욕망, 의지의 욕망, 그리고 마침내 자기자신이 자기의 존재론적 주체라고 착각하는 존재의 욕망마저도 초탈하여야 진정한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 엑카르트는 현대복음서 연구가들이 소위 ‘역사적 예수’를 재발견하고 강조하기 600년 전에, 이미 ‘역사적 예수’인 참사람 예수의 영성 알짬이 교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참사람-참 하나님이시다“는 양성교리의 근거라고 갈파했다.

말씀의 성육신은 나사렛 예수 안에서 유일무이하게 한번만 일어난 특별 계시사건이 아니라, 우리들 모든 인간 안에서 만물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보편적 성육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되어 일치를 이루시며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라고 말씀한 것 같이 모든 인간은 하나님 자녀들이요 독생자들이라는 것이다.

▲ 김경재 명예교수는 22권에 이르는 길희성 교수의 책들 중 《마이스터 엑카르트 영성신학》과 《영적 휴머니즘》을 그의 역작으로 꼽았다.

《영적 휴머니즘》은 현대 세속적 문명비판서요 정통종교와 신학의 난재극복

위에서 필자가 추천한 길희성 교수 역작 중 둘째번 책은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마지막 저술작품 《영적 휴머니즘》이다. 이 책 안에서 우리는 길희성 교수의 모든 철학과 신학과 종교학의 결정체를 본다. 저자 길희성 교수는 이책을 저술하느라고 그야말로 온힘을 다해 집필하였기에 기력이 탈진되고 건강이 급속도로 약해져서 타계하신 것 아닐까라고 생각이 든다. 정신노동도 육체노동 만큼 인간의 기력을 소진하기 때문이다.

이 책 《영적 휴머니즘》은 21세기 이후 통과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새로운 인간과, 세계관, 신관을 제시하는 상당히 혁명적 저술물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임마누엘 칸트가 계몽주의 시대 이성주의자들이 이성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고 모든 것의 재판관인양 우쭐되던 것에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인식불가능하다고 제한했던 신에 관한 물음과 인간의 영혼과 영성에 관해서 다시 깊이 성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학적 표현으로 하면 ‘형이상학적 진리’를 근대 이후 인간들은 포기하고, 인간의 수학적 이성에만 몰두하는 유물론적-생물학적 인간관에 갇혀버렸고, 자연은 ‘우연과 필연’으로 운동하는 기계같이 생각하였다. 보수신앙계 안에서는 이성, 진화론, 역사현실비판을 말하면 신앙의 탈선으로 간주하고, 과학과 종교 혹은 이성과 신앙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고 말았다. 맹목적 신앙을 좋은 신앙이라고 착각하기에 이르렀다.

길희성 교수는 자신이 평생 인류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과 종교적 영성가들을 연구한 결과, 그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표현이야 다양하지만, 시림은 본질적으로 ‘영적 존재’이며 ‘형이상학적 진리’ 곧 생명과 존재하는 것들의 궁극적 의미와 목적의 뿌리인 ‘신 혹은 궁극적 실재’는 존재론의 핵심이라는 것을 재발견하고 그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참 사람다운 삶, 영성적이고 자유롭고 창조적 삶을 살고간 예수 그리스도, 임재선사, 마이스터 엑카르트, 해월 최시형등을 대표적 사례로 들면서 그들을 눈여겨 보라고 현대인을 독려한다.

길희성 교수는 말한다:

“영적 휴머니즘이 요구하는 참 나는 가혹할 만큼 자기완성을 요구한다. … 세속적 휴머니즘의 이성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하기 어려운 높은 성인(聖人)의 경지를 우리 모두에게 요구한다.”

추모글을 쓰는 필자는 길희성 교수가 종교간 대화신학에 공헌한 학문적 공헌보다도 그 점이 더 중요한 주장이라고 느낀다. 이른바 라인홀드 니버 표현으로 말하면 ‘불가능한 가능성’이다.

▲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인간은 모두 죄인이고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았다는 ‘원죄론과 구원교리’에 안주하면서, 타락 할 때로 타락해 있는줄도 느끼지 못하는 오늘날 우리들 기독교인들의 ‘비본래적 존재의 평범성’에 경종을 울린다. 길희성 교수가 주고가는 마지막 말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루가 11:35)는 말씀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는 말씀이라고 본다. 그가 평생 믿은 그대로 길희성 교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다가, 이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으니, 모든 근심걱정 내려놓으시고 ‘영원한 빛과 사랑의 세계’ 곧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시기를 빈다.

김경재 명예교수(한신대)  soombat19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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