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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삶을 삶답게 누리려면(누가복음 12:13~21)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 승인 2023.10.04 01:19

오늘 우리는 이른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로 알려진 성서 본문말씀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비유라기보다는 생생한 하나의 예를 통해 삶의 태도를 일깨워 주는 지혜의 말씀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이 서술되어 있고(13~15), 그 다음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16~21).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부탁했습니다. 자기가 유산을 물려받은 게 있는데, 형에게 잘 타일러서 그 유산을 분배하게 해달라는 부탁입니다. 우선 이 사람은 아마도 부자였을 것입니다. 물려받은 유산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가난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런 청을 예수님께 드린 데에는 유산 상속에 관한 당시 유대의 관습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물려받은 유산은 형제가 공동으로 관리해도 되고, 서로 분배해도 되었습니다. 유일한 선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형제끼리 합의해서 결정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청한 것을 보면, 형은 분배를 원치 않았던 것 같고 자기는 분배를 원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의견이 달라 분쟁이 발생할 경우 랍비에게 판결을 의뢰하는 것이 당시 유대의 관습이었습니다. 상속받은 재산의 분할을 바라는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 분쟁을 해결해 주실 만한 분이라는 기대를 안고 요청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퉁명스럽습니다. 당신이 그런 문제를 심판하는 재판관이거나 분배인은 아니라는 답입니다. 사회적 관습상 존경받는 이가 해 줄 수 있는 일일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에 관심 없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본문말씀은 일관된 관심사를 주제로 하는 12장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2장 서두는 한 영혼의 소중함과 더불어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말씀입니다(4~12). 그 중대한 관심사를 제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에 물려받은 재산의 분할을 두고 고심하는 사람의 요청을 받았으니 예수님께서 마땅치 않아 하신 것은 당연했습니다. 억울함을 당한 이가 호소하는 경우였다면 예수님의 태도는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누릴 것을 충분히 누리고 있을 법한 사람이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요청하는 상황이니, 그런 문제에 당신을 끼어들지 말게 하라는 뜻으로 대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12:15). 그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형제간 분쟁의 조정을 요청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일말의 공정하고 정의로운 분배의 지혜를 구하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삶의 필요를 충족할 만큼 물질을 소유하고 있는 이가 더 많은 분배를 기대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탐욕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삶의 정도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정의의 차원에서 이런 문제의 해법은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소유권의 절대성이 보장되고 그것으로 맘껏 투자하여 자신의 재산을 증식하는 것이 결코 악덕으로 간주되지 않는 오늘의 현실에서 볼 때, 예수님의 말씀은 그 현실에서 매우 동떨어진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인간의 삶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 삶을 진정으로 삶답게 살 수 있는지를 일깨워 주는 성서의 일관된 진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삶의 마땅한 도리를 새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늘의 물질적인 경제생활이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 또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지는 말씀으로 당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뜻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어떤 부자가 땅에서 거둔 소출이 많아 그것을 쌓아두는 문제로 골몰합니다. 결국 작은 곳간을 헐고 더 큰 곳간을 지어 거기에 자신의 부를 축적합니다.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을 강구한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확고부동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 물질로 자신이 충분히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12:1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숨을 거두어 가고 맙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12:20) 이렇게 이야기한 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위해서 재물을 쌓아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12:21).

자기만을 위해 부를 축적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선포입니다. 이 부자가 어리석은 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지상에서의 자기 삶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자기만의 욕구 충족을 위한 부의 축적이 옳지 않으며, 부란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그것은 이웃을 위하여 함께 나누어져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 것입니다.

이것은 부가 가지고 있는 속성 자체를 일깨워줍니다. 부가 자기만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정당하지 않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그 안에 이웃의 몫이 포함되어 있다는, 성서의 일관된 가르침을 환기해 주고 있습니다.

▲ Frans II Francken, 「Death and the Rich Man」 (1610) ⓒGalerie Lowet de Wotrenge, Antwerp, Belgium

본문말씀의 뜻은 12장 안에서 이어지는 말씀(12:22~34)에서 더욱 구체화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은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소중하다. 하늘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보아라.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에게야 어떻게 하겠느냐?’ 이렇게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소중함과 그 신비를 일깨워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그 말씀 말미에 덧붙여진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12:32~34)

하나님께 인색하지 않고 부요하다는 것(12:21),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12:33)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일깨워 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소유를 팔아 선을 베푸는 것(12:33)을 뜻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마땅히 함께 누리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만의 욕망 충족이 아니라 함께 누리는 삶을 지향하라는 뜻입니다.

본문말씀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삶을 삶답게 누리는지, 그 삶을 보장하는 경제생활의 원칙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일깨워 주는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이에 관한 풍요로운 상상력을 제공하는 아주 쫄깃쫄깃한(?)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본문말씀의 의미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풍요로운 한가위 명절 연휴 가운데 드리는 오늘 예배에서는 자제하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시 음미하며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대개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일텐데, 우리 사회가 계속 환기해도 좋은 이야기입니다.

조선중기부터 300년 동안 부를 누린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든 한 집안이 200년 이상 부유한 지위를 누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르네상스의 후원자였던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정도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부를 누린 집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부자집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부귀를 누린 데에는 그 가문만의 독특한 철칙 곧 가훈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원칙은, 벼슬은 진사 이상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반 신분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정도의 벼슬만 누릴 뿐 더 이상의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재산은 만석 이상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땅이 많은 부자에게 풍년이 들면 그 수확량이 얼마든지 만석을 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최부자집은 만석 이상이 넘을 것 같으면 소작료를 줄이는 방식으로 상한선을 지켰습니다. 조선시대 통상 소작료가 7할이었던 데 반해 최부자집의 소작료는 4할까지 낮추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애초 부를 일으킨 것도 병작제, 곧 반 5할을 소작료로 받는 조건으로 소작인들과 땅을 개간하는 방식을 통해서였다고 합니다.

세 번째 원칙은, 흉년에는 땅을 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흉년이면 땅을 늘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도, 다른 사람들의 불리한 조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은 것입니다. 네 번째 원칙은,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으로 찾아오는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할 뿐 아니라 넘쳐나면 인근 소작농 집으로 쌀을 들려 보내 대접하게 하고, 대신 과객을 대접하는 소작농들에게는 소작료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 원칙은, 며느리들은 시집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근검의 가풍을 익히도록 한 것입니다. 여섯 번째 원칙은,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심을 잃거나 사람이 없으면 부도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운 원칙이었습니다. 덕분에 최부자집은 민란 중에도 해를 입은 적이 없고, 일제 때에는 독립운동 자금을 대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해방 후에는 그 자산으로 대학을 설립했습니다.

무슨 혁명적인 발상은 아니지만, 당대의 상식을 거스르면서도 훈훈한 이야기 아닙니까?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 시대의 의인 <어른 김장하> 이야기가 큰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진주에서 한약방을 60년 운영하면서 조용히 지역사회에서 베푸는 삶을 살아온 분 이야기입니다. ‘돈이라는 게 똥하고 비슷해서 모아두면 냄새가 나지만, 밭에 적당히 뿌려주면 좋은 거름이 된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살아가면 된다.’ 수 없이 베풀면서도 티 내지 않고, 이런 소신으로 살아온 삶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고 받아들인다면, 오늘 우리의 구체적인 삶 가운데서 실현할 방도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말씀의 진실을 삶 가운데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을까요?

우리의 믿음이 자기만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악착같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보다는 함께 누리며 그 가운데 여유와 평화를 즐기는 삶의 원동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가로막는 세력에 분노하고 저항할지언정, 내 곁의 형제자매를 적으로 돌리지 않는 삶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chm189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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