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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자리참으로 거룩한 일(누가복음서 10:38-42)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3.10.08 05:12
▲ Johannes (Jan) Vermeer,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 (c. 1654 and c. 1656) ⓒWikipedia

1.

추석명절 잘 보내셨나요? 이번 한가위 명절은 무려 일주일이나 쉬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우리 모두가 마음껏 쉬고 놀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고단한 피로를 풀었으면 합니다.

이 좋은 명절에 사랑도 듬뿍 나누고, 선물도 듬뿍 나누고, 장도 듬뿍 보고 일가친척들 만나서 이야기도 듬뿍 나누시기 바랍니다. 경제적인 낭비, 허례허식을 하지 마시고, 즐거운 사랑의 낭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한 자매의 집에 들어가십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라는 자매가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언니인 마르다는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셨으니, 여러 가지 접대할 것을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예수님만 오셨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우르르 몰려왔지요. 음식도 차려야 하고, 집안정리도 해야 하고, 아주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가 안보입니다. 할 일이 많은데, 같이 해도 모자랄 판에, 어디 갔는지 안보입니다. 가만 보니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예수님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속에서 천불이 납니다.

‘뭐야? 나는 일하는 사람이고, 지는 고상하게 말씀 듣고 앉아있는 거야?’ 참다가 참다가 얼마나 속이 터졌으면 예수님한테까지 말을 했을까요? ‘예수님, 내 동생이 저렇게 말씀만 듣고 있어도 됩니까? 가서 일 좀 하라고 말해주십시오.’

사실 이 말은 마리아에 대한 원망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원망이기도 합니다. 종교에 대한 도전이고, 신앙에 대한 도전입니다.

‘예수님이 한번 판결해 주십시오. 뭐가 옳은 일입니까? 하나님 믿는다고 내 할 일 팽개쳐 두고 있으면 그게 좋습니까? 직장에도 안 가고, 집안일도 안 하고, 학생이 공부도 때려치고, 부모가 아이도 돌보지 않고, 성경만 보고 찬양만 하고 기도만 줄창 하고 있으면, 그게 옳습니까?’

우리는 깊이 고민해 봐야 해요. 거룩함이 거룩한 모습만을 띠고 존재합니까? 거룩하게 예배하고, 거룩하게 말씀 읽고, 거룩하게 찬양하고, 거룩하게 기도하면, 그것만 거룩입니까? 

자기 할 일 팽개치고, 자기 삶을 망가뜨리고,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가 파괴되고, 정의가 사라지고, 평화가 사라지는데, 골방에 들어가서 나만 그저 거룩한 척 그렇게만 살면 됩니까? 그런 종교, 그런 믿음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이 말씀 듣고 또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성경보고 찬양하고 기도하는게 잘못 됐다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일이 있는데, ‘성경보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있으니 됐지~’ 하고 성경만 보고, 찬양만 하고 기도만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은 나가서 일해야 할 때다’ 말씀하시는데 할 일은 하나도 안 하고서 ‘나는 성경 봤으니까 괜찮은 거 아니에요? 성경 보느라 일 못 한거는 괜찮지요?’ 그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3.

오늘날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신랄한 비판입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중세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 신앙 속에 거룩한 영성을 지켜온 수도원 전통이 있습니다. 수도원 전통이 믿음의 높은 경지를 보여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수도원이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비판받아온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들만 거룩하고 자기들만 고상해서, 세상에서 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책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전쟁이 일어나고, 정의가 사라지고, 평화가 깨지는데 혼자 골방에서 거룩한 체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랬습니다. 유신이 선포되고, 광주에서 학살이 일어나고, 민주가 죽어가고 독재가 횡횡할 때, 70년대 80년대 일부 교회는 역사는 그러든지 말든지, 사회는 병들어가든지 말든지, 백성이 죽어나가든지 말든지, 교회에 모여서 ‘주여, 주여’ 하면서 너도나도 복 받는다고 난리였어요. 그렇게 백만명 모이는 교회가 생기고 삼박자로 사박자로 은혜의 기쁨의 춤을 췄어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해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지도 않고, 세상 속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을 팽개쳐 놓고, 두 눈 꼭 감고 ‘나는 복되다. 나는 구원받았다.’ 혼자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일에 교회가 나서면 안 된다고 단도리를 합니다. 우리는 여기 교회당 안에서 복받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오해해서 ‘마리아처럼 살아야 해’ 하고는 말씀 앞에만 모여듭니다. 그 말씀이 그 말씀의 내용이 ‘세상으로 나아가라’ 하고 명령하고 있는데도, 그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만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어요. ‘여기가 좋사오니~’

이 말씀 앞뒤에 무슨 말씀이 있는지 보세요. 바로 앞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입니다. “예배드리러 가는 것 좋다. 거룩한 일이다. 그런데 아픈 사람은 왜 안 살렸냐? 사람 죽는 거 지나치고서 예배드리러 가면 그게 거룩이냐?”

뒷이야기는 뭡니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십니다. 주기도문의 핵심이 뭡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살겠다는 결단과 각오 아닙니까?

‘마리아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진짜로 하시는 말씀은, 마리아의 삶과 마르다의 삶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일에만 염려하여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만 들떠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팽개쳐 놓아서는 안 됩니다. 마리아의 삶과 마르다의 삶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42절에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삶이 하나 되지 못하고 많은 부분으로 분리되어서, 이런 일 저런 일로 분주하고 힘들고 혼란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이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주님의 일이라고 말입니다. 세상일과 영적일이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육신의 일과 영혼의 일이 다른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로 이루어진 온전한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루신 성육신의 본질입니다.

4.

그러면 사회에 나가서 거리에 나가서 피켓들고 시위하고 데모하라는 겁니까? 아니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런 일들도 물론 있겠지만, 육신의 일과 영혼의 일은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 영혼의 일이요, 교회 밖으로 나가면 육신의 일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시키는 일은 육신의 일이요, 내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 더 깊은 곳에서 해야만 한다 싶은 것이 영혼의 일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합니다. 좋아하는 일만 합니다. 문제는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이, 겉으로 보기에 거룩해 보이고 영적으로 보이면 문제가 생깁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칭찬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해도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신앙생활 잘 한다고 오해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기도를 너무 좋아하는 집사님이 있다고 합시다. 훌륭하지요? 그런데 가만 보니까 모든 일에 기도만 하고 앉았어요. 예배 시간에 찬양 부르는 순서인데, 혼자 앉아서 계속 기도해요. 처음에는 ‘아, 하나님께 기도할 게 정말 많은가보다. 다 못해서 저러나 보다’ 해요.

어느날 ‘다같이 교회 청소합시다~!’ 하고 모였는데 혼자 구석에 가서 기도하고 있어요. 기도하는 거니까 누가 뭐라고도 못해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날만이 아니에요, 매사에 기도만 해요. 그렇다고 일하기 싫어서 가짜로 기도하는 척 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로 진실 되게 간절히 기도해요. 기도는 진짜로 진심 100%에요.

자, 이 집사님에게, 문제 있습니까? 없습니까? 기도를 잘하는 믿음의 종이라고 칭찬해야 할까요? 아니면 ‘집사님 우리 이야기 좀 할까요?’ 하고 조심스럽게 권면의 시간을 가져야 할까요? ‘집사님, 기도하시는 것 참 좋은데, 집사님의 그 기도, 육신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매우 조심스럽게 권면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마리아는 좋은 것을 택하였다. 아무도 뺏어가지 못한다.’ 이 말씀이 과연 칭찬일까요? ‘마리아 쟤는 자기 좋은 것만 할라 그런다. 그런데 좋은 거를 하니까 누가 뭐라고도 못하고 참 그렇다. 그지?’ 마르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말씀이에요.

마르다야 너도 문제고 마리아도 문제다. 다 똑같다.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네. 문제는 주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 그 일들이 하나 되어야 하지 않겠어? 

5.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만 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뭐를 시키십니까? 음성으로 들려주시나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시키시는 일이 뭔지를 알아내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그런데 한편으로 ‘저거 해야되는데~’ 하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그게 바로 주님이 시키시는 일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마리아는 잠시 예수님 발치를 떠나 주방에 갔다 와야 합니다. 마르다도 주방일을 놓고 잠시 예수님 발치에 앉아야 합니다. 서로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눈 흘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기 싫은 일을 해 봐야 돼요. 성경을 아무리 잘 읽어도, 기도가 잘 안되면 기도를 해봐야 해요. 기도를 아무리 잘 해도, 찬양을 부르지 못하는 사람은 찬양을 불러보려고 노력해야 해요.

‘성경 읽으니 됐지’가 아니에요. ‘기도하니 됐잖아?’가 아니에요. ‘대신 찬양하면 돼’ 그렇지 않아요. 내 마음에 껄끄러운 것, 잘 안되는 것, 내키지 않은 것. 그런 것들 앞에 제대로 직면해 봐야 해요. 그렇게 순종을 배워봐야 해요.

감사의 계절을 보내면서 우리가 더 큰 감사로 나아가려면, 지금 내가 싫어하는 일이 뭔가? 내가 잘 안 하려고 하는 게 뭘까? 이걸 제대로 직면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내가 피하고 도망치고 껄끄러워하던 게 뭐였지? 골방에서 내 모습을 살펴야 합니다.

내가 잘하는 것도 돌아봐야 해요. 하나님의 명령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좋아서, 내 공로를 쌓고 있는가? 그래야 우리 안에 마리아와 마르다가 하나될 수 있어요.

6.

오늘 말씀의 제목은 ‘참으로 거룩한 일’입니다. 진짜 거룩한 일은 거룩하게 보이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내 마음의 소원이 내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는 일, 그것이 진짜 거룩한 일일 것입니다. 그 거룩한 일들로 우리 삶을 채워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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