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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다양한 아시아 영화작품이 선보여지길최병학 목사의 제29회 BIFF 참관기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3.10.14 14:29

1.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되다!

▲ 제28회 BIFF 개막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1996년 제1회를 시작으로 2023년 제29회를 맞이한, 대한민국 최대의 비경쟁 영화제입니다. 현재는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원래는 남포동에서 시작되었지만, 이후 해운대로 옮겨 매년 10월 초에 개최되어 10일간 진행합니다. 올해는 10월 4일(수)부터 13일(금)까지 열립니다. 처음 만들어질 당시, 문공부 기획관리실에 있던 김동호 당시 집행위원장이 영화진흥공사장에 취임하면서 작지만 권위 있는 영화제를 만들자는 취지로 추진되어, 중앙대 이용관 교수, 부산예대 김지석 교수, 영화평론가 전양준 등의 주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초청 영화들은 장르에 구애되지 않고 다양하게 선정한다는 것이 BIFF가 내세우는 상징성입니다. 즉 할리우드 제작 영화에서부터 칸·베를린·선댄스영화제 수상작, 애니메이션 외에도 독립영화, 예술영화, 단편영화 등의 영화들도 초청의 대상입니다. 물론 아시아 영화가 중심이긴 합니다.

개·폐막작을 제외한 모든 영화는 2회 상영이 기본이며 개막일에는 개막작 이외엔 상영하지 않습니다. 야외 상영은 하루에 한 번,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20시에 상영합니다. 프로그램 섹션을 보면 ‘아이콘’에서 거장의 신작을, ‘아시아영화의 창’을 통해서는 아시아 영화의 경향을 소개하며, ‘한국영화의 오늘’ 프로그램의 ‘스페셜 프리미어’로 주류 한국 영화를 소개합니다.

물론 ‘월드 시네마’에서는 비아시아권 영화의 흐름을 소개하고, ‘뉴 커런츠’에서는 아시아 지역 신인 감독의 신작을 소개하며 ‘와이드 앵글’에서는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소개합니다. 특히 ‘오픈 시네마’에서는 화제작을 소개합니다. 2023년 올해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으로 ‘주윤발의 영웅본색’,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인도네시아영화의 르네상스’를 소개합니다.

2. 다양한 영화를 보자, 이번엔 인도네시아 영화!

올해는 특별기획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 영화의 르네상스’를 소개합니다. 인도네시아 영화는 최근 흥미로운 영화들을 다수 배출하며 강력한 모멘텀(운동량)을 형성하고 최근 아시아 영화산업의 주역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올해 소개되는 푸르바 네가라 감독의 <자바섬으로의 순례>(2016)는 주인공인 90세 할머니 음바 스리가 1940년대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 때 징집된 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할머니가 원하는 것은 사후에 남편의 무덤 옆에 묻히는 것입니다. 할머니의 여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고 그들로부터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놀라운 요소들이 드러나며 점차 긴장이 고조됩니다. 영화는 공산주의나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동인도 회사) 같은 민감한 문제를 매우 캐주얼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이 남도록 다루고 있습니다.

▲ 푸르바 네가라 감독의 <자바섬으로의 순례>(2016)

인도네시아의 과거 문제에 관한 성찰이 담긴 작품입니다. 할머니는 여러 마을을 순례하면서 인도네시아의 독립 투쟁과 실향의 역사를 마주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영화입니다. 음악과 죽음을 앞둔 할머니의 모습이,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과거가 너무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슬픕니다.

헐리우드 영화(뿐 아니라, 중국, 일본, 한국, 프랑스, 인도 영화도!)가 아니라, 이런 인도네시아 영화, 방글라데시 영화, 아프리카 나라 영화, 이라크 영화, 팔레스틴 영화, 중앙아시아 영화가 대한민국 영화관에서 매일 상영되는 그 날이 놀라운 문화혁명이 일어나는 세상이며, 제대로 된 가치관을 정립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3. 빔 벤더스와 안젤름 키퍼의 만남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독일의 조형 예술가인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입니다. 이번에 동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아이콘’ 섹션에 빔 벤더스 감독의 <빔 벤더스의 안젤름 3D>(2023)이 상영되었습니다.

<파리, 텍사스>(1984), <베를린 천사의 시>(1987), 세계 사진계의 거장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사진을 분석한 다큐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2014), 그리고 최근 <퍼펙트 데이즈>(2023)로 유명한 빔 벤더스 감독은 독일 최고의 화가이자 조형 예술가인 안젤름 키퍼의 작품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3D 다큐멘터리를 연출했습니다.

카메라는 아카이브 영상과 유년기 재현 장면을 통해 안젤름의 삶과 예술적 여정을 서서히 관통합니다. 벤더스는 파리와 프랑스 남부에 있는 안젤름의 작업실과 베네치아 팔라죠 광장에서 열리는 전시회로 관객을 인도하고 관객은 그곳에서 실제 크기의 폭격기 조각품, 수십 미터 높이의 파노라마, 탑처럼 높은 석조조형물을 마치 현실처럼 맞닥뜨립니다.

안젤름의 웅장한 작품은 히틀러 시대부터 베를린 폐허까지 이어지는, 가장 어두웠던 독일 역사에 대한 도발적 성찰입니다. 이 영화는 한 예술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넘어 상상을 초월하는 경이로운 시네마적 경험이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보이듯, 키퍼의 작품은 첫인상이 무겁습니다. 작품 앞에 서면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잘 몰라도,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감각부터 느껴지는 아우라까지 그 주제가 심오하고 어둡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상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키퍼는 작품의 소재로 납이나 콘크리트, 흙, 말린 식물, 유리, 철조망, 책, 낫 등 일반적이지 않은 오브제를 사용합니다. 거대한 작품의 크기와 어두운 색채에서 오는 중압감도 고스란히 관람자와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작품에서 느껴지는 무게는 키퍼의  삶에서 비롯됐습니다. 

‘1945년생 독일 미술가’

이 단 한 줄의 정보가 안젤름 키퍼와 그의 작품을 설명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빔 벤더스 감독의 영상은 그것을 잘 포착하였습니다.

▲ <너의 잿빛 머리칼, 슐라미트>(1981)

그림은 안젤름 키퍼의 1981년 작품 <너의 잿빛 머리칼, 슐라미트>입니다. 시인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그림에 보이는 금빛 지푸라기는 독일인, 잿빛 지푸라기는 홀로코스트로 죽음을 맞은 유대인을 상징하며, 지푸라기들이 뒤엉킨 모습을 통해 독일의 불편한 현대사를 담고 있습니다. 예술가도 이렇게 역사를 청산하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요?

4. 역시 고레에다 히로가즈

봄날의 나른함, 잔잔한 호수, 모닥불을 쐬는 듯한 따스함 그리고 공허한 마음의 빈 공간을 가득 채워주는 첫눈 오는 날의 느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음악이 故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입니다.

▲ <괴물> 포스터와 영화의 한 장면

그의 작품 ‘Aqua(물)’이 엔딩을 장식하며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고레에다 히로가즈 감독의 영화 <괴물>(2023)이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거장 감독의 신작 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제작 가운데 감독이나 배우가 영화를 직접 소개하고 관객과의 만남을 갖는 섹션)’에 소개되었습니다. 국내 개봉은 11월입니다. 이 영화는 사카모토의 음악과 반대로 공허한 마음의 빈 공간을 더욱 공허하게 만듭니다.

히로가즈 감독의 영화는 ‘차분한 색채감’과 ‘서정적인 느낌’, ‘인물들 간의 연대’와 ‘가족’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큰 줄기로, 일본 내에서 벌어진 이슈를 사소한 우리의 일상 세계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그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게 되면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그만큼 관객을 감독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는 유연함이 빛을 발합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괴물>은 3개의 플롯, 혹은 시선으로 구성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시작은 건물의 화재입니다. 화재를 바라보는 세 시선으로 영화가 구성되는 것입니다. 첫 플롯의 시선은 초등학교 5학년생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 분)의 어머니 사오리(안도 사쿠라 분)입니다. 아들 미나토의 이상 행동에 무슨 일이 있는지를 묻지만, 대답이 없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학교로 갑니다. 이유인즉슨, 미나토가 담임교사인 호리(나가야마 에이타 분)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듣고 구타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학교 문제를 엿보게 만듭니다. 그러나 학교는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지 않고 형식적인 사과만 반복합니다. 사오리는 분노합니다. 이렇게 히로가즈 감독은 <어느 가족>(2018)을 통해 문을 연 ‘가족’에 대한 화두를 <괴물>을 통해 가족과 ‘학교’의 결합으로 패러다임 전환합니다.

두 번째 플롯은 호리의 시선에서 이어집니다. 사건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성실한 교사인 호리는 아이들을 성심성의껏 챙기려 하지만 오해가 생깁니다. 어느날 호시카와를 못살게 구는 친구들을 향해 미나토는 분노를 표출하고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호리의 팔꿈치와 미나토의 코가 부딪칩니다. 호리는 이 일에 대해 미나토의 어머니에게 설명하고 사과하려 하지만 학교 측은 “그러면 학교가 불리해진다.”며 말립니다. 호리는 미나토와 호시카와의 관계를 오해하고 아이들 사이에선 호리를 비방하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집니다.

결국 호리 선생님은 학교 시스템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결과가 중요하지.”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생각했지만, 학부모와 학교, 그리고 사회가 선생님을 외면한 것입니다.

세 번째 플롯은 미나토의 이야기입니다. 결국 영화는 겁쟁이 같은 껍질을 깨고 나와 진짜 자신을 스스로 바라볼 수 있게 된 미나토의 성장 이야기입니다. 미나토는 부모에게는 학대를, 친구들에게는 따돌림을 당하는 급우 호시카와(히이라기 히나타 분)를 바라보는 마음이 복잡합니다. 관심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미나토는 이러한 관심이 자신이 괴물이 되는 것이며 뇌가 돼지의 뇌로 바뀌는 것이라 생각하며 갈등합니다. 영화는 2차 성징 이전의 아이들에게 이것이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소품들(물통, 신발, 물감)을 통해 잘 보여줍니다.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밤늦게까지 미나토가 집에 돌아 오지 않자, 사오리는 미나토를 찾아 나섰습니다. 산속에 있는 버려진 터널에서 미나토를 발견합니다. 사오리는 “괴물이 누구게?”라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미나토를 차에 태워 가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미나토가 결혼하고 가족을 꾸릴 때까지 아빠와 엄마는 너를 잘 키우기로 약속했다, 아주 평범한 가족이면 된다.” 그러자 미나토는 갑자기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립니다(이후 사오리는 미나토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뇌CT를 촬영했지만, 아무 문제 없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히로가즈 감독은 이 영화를 소개하며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영화”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열린 시각으로 다양한 정체성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일본 사회를 꼬집고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됩니다.

요리의 아버지는 요리에게 “너는 괴물이야. 너의 뇌는 돼지의 뇌로 바뀌었어.”라고 혐오하며 폭력을 행사합니다. 결국 요리에겐 버려진 기차가 유일한 안식처이며 요리에 관심을 주는 미나토가 사랑의 대상입니다. 이 기차는 더러운 유리로 바깥 세계와 단절된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참된 안식을 누립니다.

영화의 마지막입니다. 아이들은 아름답게 부서지는 햇빛 속에서 자연과 어우러져 뛰어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카메라가 쫓아가며 영화는 끝납니다(폭풍으로 인한 산사태로, 가차로 가는 터널길이 막힌 상태를 보아, 이것은 슬픈 엔딩입니다). 세상이, 아니 가족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아이들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 가운데, ‘돼지의 뇌’와 ‘괴물’이 상징하는 것은 동성애입니다. 따라서 동성애를 자각하는 뇌를 돼지의 뇌로, 그리고 이런 이들을 어른들은 괴물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아이들은 자신의 뇌가 돼지의 뇌로 바뀌어 괴물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진짜 괴물은 요리의 아버지, 학교 그리고 마을 사람 모두가 괴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성소수자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괴물>은 역시 고레에다 히로가즈가 영화계의 거물임을 잘 보여줍니다(11월 국내 개봉을 기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영화제가 되기 위해서는 아시아의 다양한 영화들을 조금 더 소개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팔레스타인 영화, 이라크 영화들이 좀 더 소개되었으면 합니다. 아프리카 영화도 비록 아시아가 아니지만, 특별프로그램으로 소개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렇게 귀한 영화들이 영화제에서만 상영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형 영화관을 통해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작업이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결국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열린 시각으로 다양한 정체성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화를 통해 간접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할 것입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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