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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스라엘 칠천명은?(왕상 19:9-18 히 4:12-16 막 10:1-12)창조절 여덟째 주일/이단경계주일(10월22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3.10.20 02:07

1. 인에비터블 컬트(Inevitable Cult)

오늘은 창조절 여덟째주일이자 이단경계주일입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출판되는 책이 있습니다. 다음해 소비 트렌드를 보여주는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2024』(미래의창, 2023)입니다. 작년부터는 이 책과 비슷한 형태로 한국교회의 트렌드를 살펴본 책이 나왔습니다. 올해도 출판이 되었는데, 『한국교회 트렌드2024』(규장, 2023)입니다.

▲ 『트렌드 코리아2024』와 『한국교회 트렌드2024』 표지

이 책은 교인과 교회, 그리고 목회자의 영역에서 2024년 트렌드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먼저, 교인(개인의 영역)은 ‘② 외로운 크리스천(Loneliness in Church)’이 등장하고 있으며, ‘③ OTT 크리스천(OTT Christian)’인 스마트폰 하나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등장했다고 분석합니다. 특히 다음세대인 ‘④ 밈 제너레이션(Meme Generation)’을 위한 사역을 ‘옴니-채널(Omni-Channel)’로 진행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이것은 온-오프 모두(Omni) 구축하여 교회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지금 교회를 떠나는 ‘⑤ 약한 고리 3040(3040 Millennials)’을 그들의 자녀와 더불어 붙잡을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교회의 영역에서는 문제점 몇 가지를 제시합니다. ‘⑥ 교회 거버넌스(Bottom-up Community)’를 통해 교회의 ‘의사결정시스템’인 거버넌스의 보수성,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특성을 비판합니다. 또한 이단의 발흥인 ‘⑩ 인에비터블 컬트(Inevitable Cult)’를 고민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 번째로 목회자는 ‘⑧ 어시스턴트 포비아(Assistant Phobia)’와 같이 목회를 기피하는 현상이 비단 부교역자뿐 아니라, 담임 교역자에게도 해당이 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대안을 제시합니다. 어떻게 ‘① 교회 리빌딩(Rebuilding Church)’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소그룹의 활성화인 ‘⑦ 처치 인 처치(Church in Church)’와 ‘⑨ 다시 선교적 교회(Re-missional Church)’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코로나 상황 이후 다시 한국교회는 일어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기서 ‘인에비터블 컬트’는 ‘피할 수 이단의 등장’을 뜻합니다. 2023년 3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소망을 주어야 할 종교가 오히려 사람들의 인생을 파괴하고 짓밟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나는 신이다>에 소개된 단체들은 정통 기독교단에서 소위 ‘이단’으로 규정된 단체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사실 2023년 올 한 해, 이단 문제는 한국교회가 주목하고 대비해야 할 거대한 목회 트렌드로 급부상했습니다. 하지만 이단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준비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가만히 보면, 한국 사회에는 이단을 인식하는 전형적인 공식이 있습니다. 이단으로 큰 충격을 받고 그 피해가 일파만파 퍼진 후에야 비로소 그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2020년 2월, 31번째 코로나19 확진자로 인해 대구 경북지역에 신천지를 중심으로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확산한 사건입니다.

이러한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은 이전부터 한국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왔지만, 한국교회의 대응은 안일했고 이단의 기세는 날로 번창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단은 앞으로도 계속 한국교회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미치는 주요한 트렌드로 계속 자리 잡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단경계주일 말씀으로 이단들의 시험에 관한 말씀입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말씀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는 내용입니다. 모세의 말로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단은 말씀으로 시험합니다. 따라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기에, 이렇게 죄 없으신 큰 대제사장 예수님을 믿는 도리를 굳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예수 중심, 말씀 중심의 믿음 위에 바로 서야만 이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를 오늘 구약 성경이 잘 보여줍니다. 비록 갈멜산에서 승리했지만, 아합과 이세벨의 위협으로 겁을 먹고 도망친 엘리야에게 나타난 하나님께서 엘리야가 시험을 이기고 사명을 감당하도록 인도합니다. 이렇게 이단과 거짓의 위협과 시험에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능력으로 이겨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2. 예수께 시험하여 묻되!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막 10:1-4)

지난주 말씀에 바리새인들의 부정적인 악한 영향력, 곧 ‘죄의 영향력’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시험했다고 말씀드렸죠? 이들은 오병이어, 칠병이어 기적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예수님께 표적을 구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도 이들을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드렸죠? 이단은 한두 번 상대한 후는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요단강 건너편까지 예수님을 따라와서 예수님을 말씀으로 시험합니다. 이혼에 관한 말씀이죠?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서 아내를 버리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막 10:5-12)

예수님의 답변 핵심이 무엇인가요? 말씀의 원칙에 충실히 하라고 하시죠?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고, 이들이 결혼하여 짝이 되는 순간 하나님께서 짝지어 준 것이니 나누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누어지는 경우(이혼)가 발생하죠? 그래서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라고 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완악함으로 말씀의 융통성을 이야기한 모세와 달리, 창조 질서의 본질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시험은 이렇게 본질을 변형시킬 때 오는 것입니다. 이단이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 있고 활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 본질에 충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서신서 말씀을 볼까요?

3. 대제사장,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 4:12-14)

히브리서 말씀에 의하면,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도리를 굳게 잡는 것이 바로 이단을 이기는 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승리하는 길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입니다. 따라서 은혜의 보좌로 나가기 위해 예수님께 나가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

지난 2023년 10월 7일 토요일 안식일 날,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Hamas, 이슬람 저항 운동)가 이스라엘 지역을 폭격하자, 이스라엘도 가자 지구에 보복 폭력을 하여 현재 제5차 중동전쟁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이스라엘을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과 동일시하여 이슬람 저항 세력인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인을 증오하고 혐오하는데, 이 둘을 잘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마흐디 압둘 하디의 『팔레스타인 현대사』(서경문화사, 2018)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전 세계 팔레스타인인 1,210만 명 가운데 65%인 790만 명이 난민이다. 난민들은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영토인 서안(약 300만 명)과 가자지구(약 230만 명), 그리고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 주변 아랍국가들의 난민촌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거의 절반은 국적이 없다. 사방이 높이 6m 분리 장벽으로 둘러싸인 ‘세계 최대 감옥’인 가자지구 주민 230만 명 중 70%는 이스라엘에 집을 빼앗기고 쫓겨난 난민들이다.”

▲ 1차 중동전쟁 당시 팔레스타인 난민과 2023년 10월 18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알아흘리아랍 병원 공습 사진, 이로 인해 대규모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다. 팔레스타인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끔찍한 학살”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스라엘은 “이슬라믹지하드(하마스와 협력하는 무장단체)의 오폭”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 75년 동안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와 약속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현재 ‘제2의 나크바’가 시작된 것입니다. 대재앙이란 뜻의 아랍어 나크바는 이스라엘이 건국된 다음 날인 1948년 5월 15일, 7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그들의 고향에서 추방된 사건입니다. 따라서 성서의 난민(떠돌이)이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히브리 난민들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이제는 반대로 난민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뛰어난 머리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로마와 결탁하여 십자가에 처형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 교인들 대부분이 빠져드는 이단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전 세계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시온산에 제3 성전을 세우고, 이를 계기로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며, 신자들이 휴거되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재림한다.”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말씀에 기초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약-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전쟁이 아마겟돈 전쟁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차후 이란, 사우디, 중국, 러시아와 이스라엘과 미국이 성전(聖戰)을 펼칠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휴거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구약 예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믿기에, 참된 이스라엘이자 아브라함의 자손은 바로 유대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핵심은 유대교인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핍박을 받자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하는 이들에게 유대교보다 우월한 그리스도교에 대한 변증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큰 대제사장으로 고백하며 구약 전통을 넘어서는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 이스라엘은 오늘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우리 크리스천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헷갈리면 안 됩니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의 폭격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들, 여성들, 그리고 고향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진정 우리의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이단도 잘 구별해야 하겠지만, 참 이스라엘과 거짓 이스라엘도 잘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제물로 희생하여 세상이 화목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대제사장의 사역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잘 보았습니다. 말씀을 찾아볼까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린도후서 5:17-19)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로 화목하지 않고, 전쟁을 일삼는 자가 마귀요, 혐오와 미움을 퍼뜨리는 자가 사탄입니다. 그렇다면 마귀와 사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오늘 구약 말씀을 엘리야 시대에 이단이자 사탄, 마귀인 아합과 그 부인 이세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4.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 율리우스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다>와 세미한 소리 가운데 엘리야에게 임하시는 하나님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 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9-10)

갈멜산에서 바알 숭배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 아합과 이세벨에 의해 목숨의 위협을 느낀 엘리야는 살길을 찾아 도망가게 됩니다. 유대 땅 브엘세바로, 광야로, 마침내 40 주야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릅니다. 그곳 굴에서 두려워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를 보여줍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 19:11-12)

하나님은 갈멜산에서와 같이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 불 가운데 계시지 않고, 세미한 소리로 엘리야에게 임하십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다시 한번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며 하나님께 고합니다.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 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13-1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5-18)

비록 세미하지만 광대한 음성으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세 가지 사명을 주십니다. 첫째, “여기 있지 말고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으로 가라.” 여기는 하나님의 산 호렙입니다. 여기 머물지 말고 목숨의 위협을 느껴 도망 온 그 길로 가되,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광야는 고독한 영성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 사명을 받고 광야의 영성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 옛날 로마의 박해를 피해 도망가던 베드로에게 나타나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물음에, “로마로!”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듯합니다.

둘째,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 잘 아시겠지만, 나중에 예후와 하사엘은 안과 밖에서 아합과 이세벨을 공격합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예후의 혁명으로 부패하고 타락했으며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겼던 아합 왕조는 무너지게 됩니다(왕하 9:36, 10:17).

셋째,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왕하 2:9) 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은 엘리야의 놀라운 역사를 잇도록 하십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곳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길을 돌이켜 광야의 영성을 회복하며 사명의 불씨를 되살려야 합니다. 예후 혁명과 같은 새 역사의 기초를 일구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뛰어난 제자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인을 남겨두실 것이며(왕하 19:18) 마침내 엘리야처럼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왕하 2: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가운데 남아있는 칠천 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참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따라 참 이스라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인과 교회와 목회자의 위기 시대에 이단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안팎으로 힘든 이 시기에 오직 예수, 오직 말씀으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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