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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방문한 미하일 벨커의 신앙과 신학성만찬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을 중심으로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3.11.04 02:56
▲ 한신대 신학대학원 채플실 강연 사진

1. 신학 사유 방법의 두 가지: bottom-up & top-down

2023년 10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세계적인 조직신학자 미하일 벨커(Michael Welker, 1947~ ) 교수가 방한했습니다. 20일 과천소망교회(담임 장현승 목사)에서 개최된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 주최 ‘제13회 해외석학초청 학술강좌’에서는 ‘성령과 창조(Spirit and Creation)’를 주제로, 24일에는 한신대 신학대학원(원장 전철 목사) 채플실에서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영: 계시신학과 자연신학의 대화’를 주제로 강연하였습니다. 칼 바르트 신학의 전통에 서 있고 몰트만의 제자로 알려져 있으며 독일 튀빙엔 대학의 조직신학자 크리스토프 슈베벨 교수와 함께 독일 개혁신학의 차세대 주자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조직신학의 주제들 뿐 아니라, 학제간 연구, 즉 자연과학과 신학과의 대화 혹은 기타 사회과학과 신학과의 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온 신학자입니다. 특히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이자 과학신학자인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 1930~2021) 교수와 과학 신학에 대한 많은 공동 연구를 시도하였습니다.

폴킹혼은 자신의 학문 방식은 ‘바닥에서-위로 사고(bottom-up)’하는 접근 방식인데, 벨커의 ‘위에서-바닥으로 사고(top-down)’하는 방식에 많은 공감을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 사건, 곧 성육신의 종교로서 그리스도교 신학의 사유를 펼치는 신학방법론입니다. 곧 하나님의 본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된 말씀으로 실현되는 역사로서의 계시를 말합니다.

이렇게 과학신학자 폴킹혼의 bottom-up사고와 조직신학자로서 벨커의 top-down사고의 접점인 성육신, 곧 역사적 계시로서 성찬과 2,000년 기독교 전통의 전례로서 영의 몸, -바울의 인간학에 기초한- 에 대한 두 신학자의 대화와 탐구는 과학 신학이 나가야 할 방향을 잘 보여줍니다.

다시 벨커 교수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벨커 교수는 먼저 학문간 대화의 방식에 관해 연구를 하다가, 물리학과의 구체적인 대화를 시도합니다. 곧 창조, 종말, 부활에 관한 자연과학적 이해입니다. 이후 생물학과의 대화를 시도했으며, 최근에는 인지에 관한 과학 신학적 접근으로 나아갑니다. 한국에 방문하여 정재승 KAIST교수와 대담을 했는데(10월 27일), 정교수가 자신은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를 사용해 의사결정 과정 중에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며 이러한 뇌과학에서 얻은 연구 성과와 통찰을 인공지능 연구에 적용한다.”라고 말하자, 벨커 교수는 자신도 인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앞으로 신학에서 인지의 과정이 어떻게 뇌과학과 대화할 수 있는지 벨커 교수의 연구가 궁금합니다.

이번에 한국에 방문하여 벨커 교수는 조직신학자로서 조직신학의 맛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삼위일체론과 성령론, 그리고 성찬과 예배에 관해 중요한 통찰을 주었습니다. 사실 과학은 관찰 가능한 양(量)을 중요시합니다(이것은 양자역학의 파동함수가 확률을 말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과학은 이렇게 관찰 가능한 공리나, 반박 불가한 원리로 기초를 세우고 사유를 발전시키는 것입니다(bottom-up). 그러나 신학은 신의 계시로부터 시작하죠(top-down)? 그렇다면 이 두 방식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요? 벨커 교수는 ‘영적 몸(spiritual body)’을 제시합니다. 먼저 영적 몸에 관한 벨커 교수의 말입니다.

2. 과학과 신학의 접촉점인 영적 몸

“모든 피조물은 새 하늘과 새 땅, 새 피조 세계를 위해 세워지고 준비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영적 몸을 갖도록 부르고, 인간은 바르트에 의하면 ‘영적 영혼’(spiritual soul)과 ‘영혼이 깃든 몸’(besouled body) 뿐 아니라, ‘영적 몸’도 갖도록 제정됐다. 부활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히 저 너머의 세계와 관련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형태를 획득하고 믿음과 사랑과 희망 안에서 우리의 존재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 영적 몸은 ‘성만찬 제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역사적 계시로서 성찬은 2,000년 기독교 전통의 전례로서 예배와 함께 우리의 반박 불가한 신앙 원리의 기초입니다. 그렇다면 이 신앙 원리(bottom으로서)에 나타난 계시 신앙(up으로서)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바로 성찬의 조직신학적 이해입니다. 여기서 벨커 교수의 조직신학자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벨커 교수의 말입니다.

“물질과 정신,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 보이는 물질 세계, 육체와 영혼, 의식과 무의식, 주관과 객관과 같은 이원론적 사고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정신과 영체에 대한 이야기는 설 자리가 미약합니다. 그것은 믿을 수 없는 환상에 대해 말하는 것 같습니다. 수년간의 신학과 자연과학 간의 토론과 부활에 대한 성경의 증언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통해 생물학적 현실과 육체적, 영적 현실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지속 가능한 통찰이 개발되었습니다. 성만찬의 제도와 기념에 관한 성서적 전통과 2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교회적 관습에서 지적, 영적 복합체에 대한 풍부하고 생생한 예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찬 제도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의 창조의 선물로서 성찬’,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는 것으로서 성찬’, ‘성령 하나님의 새 창조로서의 성찬’으로 이해됩니다. 벨커 교수의 말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창조의 선물로서 성찬’에 관한 언급입니다.

3. 영적 몸의 구현 성찬의 삼위일체론적 이해

“주의 만찬은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일반 식사나 축제 식사와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식사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또한 주의 만찬은 어떤 음식으로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빵과 포도주라는 창조의 선물로 기념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로 중요한 점입니다. 창조의 선물 -이것은 자연의 선물일 뿐만 아니라, 자연과 문화가 함께 작용해야 하는 선물- 입니다. 곡식과 포도의 자연적인 성장과 인간의 정교한 협력이 함께 어우러져야만 이러한 창조의 은사를 우리 가운데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창조의 선물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좋은 이유입니다(성체성사). 우리는 성장과 번성, 파종과 수확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의 질서에 대해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는 것으로서 성찬’에 관해서는 로마법(정치와 법)과 유대 율법(종교와 법)에 의해, 나아가 대중의 도덕과 여론의 박수 속에 못 박힌 예수를 언급합니다. 물론 제자들의 배신은 덤입니다. 이렇게 전반적인 죄의 힘 아래 있는 세상에서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창조의 부정입니다. 자연과의 부조화입니다. 관계의 파괴입니다. 벨커 교수의 말을 들어 볼까요?

“십자가 죽음의 심연에 대한 기억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우리에게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에게 죄의 힘 아래서 길을 잃은 세상을 인식하도록 강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시 억압적인 세계 강국이었던 로마의 세계 권력 정치의 이름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는 실제로 정치 및 군사적 세계 강대국과 긴장과 갈등 관계에 있는 지배적인 유대 종교의 이름으로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예수는 로마법과 모세의 율법에 따라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그는 대중의 도덕과 여론의 박수 속에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다 외쳐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마 27:22-23; 막 15:13-14; 눅 23:18-23; 요 18:40)!’ 그러나 정치, 종교, 법, 대중의 도덕, 여론의 거대한 권력만이 무죄한 예수를 배신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를 배신하고 부인하고 버립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전능성은 이러한 십자가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새롭고 선한 것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재창조, 혹은 새 창조입니다. 벨커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에게 엄청난 자율적 능력(autonomous power)과 그에 상응하는 심각한 책임을 부여하셨다. 하나님의 전능성은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새롭고 선한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이다.”

이러한 새 창조 역시 성만찬에 나타납니다. 따라서 세번째로 ‘성부 하나님의 창조의 선물로서 성만찬’에 관한 것을 살펴볼까요? 이것은 그리스도의 생명과 영에 참여하고 예수의 몸의 지체가 되고 영생에 참여하며 새 창조의 구성 요소가 됩니다. 이렇게 성찬을 통해 진리와 정의,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며 유한하고 일시적인 세상에서 구원의 길로 나가는 것입니다. 벨커 교수의 말입니다.

“주의 만찬을 거행할 때, 우리는 창조의 좋은 선물에 대한 감사(성체성사)에서 우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기억(Anamnesis)을 거쳐 성령의 부름(Epiclesis)으로 인도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창조의 선물인 빵과 포도주는 ‘새로운 창조’의 선물이 됩니다. 주의 만찬에서 우리는 상징적으로(상징적으로) 영양을 공급받아 육체가 강화될 뿐만 아니라, 정의와 상호 수용, 이웃 사랑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도록 격려받습니다. 주의 만찬을 축하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영에 참여하고, 그분의 몸의 지체가 되어 새 창조의 구성 요소가 되며, 영생에 참여하는 지분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성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구현하고, 그분 안에서 살고, 그분을 통해 유익한 방식으로 빛을 발하는 공동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이 지속적으로 빛나는 자기 현현이 바로 부활의 증언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것은 ‘정의의 영’, ‘자유의 영’, ‘진리의 영’, ‘이웃 사랑의 영’, ‘평화의 영’으로 달리 불려질 수 있습니다. 이를 기존 형이상학적, 지성적 영의 이해를 넘어 ‘다극양태적 영(multimodal spirit)’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벨커 교수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하나님은 ‘갈등으로 가득 찬 이 악명 높은 피조계’(this notoriously conflict-laden creation)를 선하다고, 즉 ‘생명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세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유한성, 덧없음, 고통과 괴로움, 무력감, 무관심, 악의, 폭력, 변덕스러움 등으로 점철된 이 세상에 영과 말씀을 통해 들어오신다.”

결국 성찬을 거행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친교의 기초가 모범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벨커 교수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최종적으로 이렇게 정리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연의 선물뿐만 아니라 자연과 문화의 선한 상호 작용의 힘, 즉 창조의 선물을 주셔서 우리 가운데서 일상적인 음식과 축제의 음료의 기초가 되는 빵과 포도주를 가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창조의 유한성, 연약함, 상실감을 열어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르셨던 창조주의 선하심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용서,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힘과 같은 창조의 선한 힘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몫을 얻게 됩니다. 성령을 통해 이러한 은사와 능력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창조의 선한 힘과 새로운 피조물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 및 삼위일체 하나님과 끊을 수 없는 친교를 맺게 됩니다.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인과 기독교 교회의 존재와 정체성을 강력하게 형성합니다.”

이렇게 벨커 교수는 삼위일체 하나님, 곧 ‘성부의 창조’, ‘성자의 고난’, ‘성령의 재창조로서 진리, 정의, 자유, 이웃사랑, 평화, 구원의 길’로 파악합니다.

벨커 교수는 신앙과 과학의 만남을 삼위일체론과 성령론, 그리고 성찬과 예배에 중심을 잡고 과학의 공리나, 반박 불가한 원리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성만찬에 나타난 성령의 능력으로 진리, 정의, 자유, 이웃사랑, 평화를 통한 구원의 능력, 연대의 힘, 그리고 새로운 세상의 비전을 꿈꾸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영적 몸(spiritual body)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놀라운 신학적 사유입니다.

벨커 교수는 자신을 ‘성서적 신학(Biblical Theology)’에 기반한 신학자라고 자주 고백했습니다. 성경과 계시신학에 기초한 벨커 교수의 신앙과 신학에 감동하며 존경을 표합니다. 한국개신교의 토양이 척박해서 성경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며, 또 신학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걱정입니다. 교회는 올바른 성경 말씀 위에 제대로 된 신학(교의학) 위에 서야 질적으로 건강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다른 종교, 과학, 인문학과의 건강한 대화가 이뤄질 것입니다. 벨커 교수의 당부를 마지막으로 옮깁니다. 그리스도교 안에 나타난 계시와 신성한 힘에 기초한 대화의 조건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신의 계시나 신성한 힘의 작용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집니다. 이러한 신성한 힘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서로 공유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의 유한성, 연약함, 폭력, 악의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눈을 뜨게 되나요?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이웃을 사랑하고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려는 의지는 어떻게 자신의 사회 공동체와 그 너머에서 상징적이고 실제적인 방식으로 깨어나고 강화될 수 있을까요?”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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