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안 광야로 도망간 모세. ⓒGetty Images

1.

금년 일년 동안 출애굽기를 한 장 한 장 읽어가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출애굽기 1장을 읽으면서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했습니다. 출애굽의 구원역사를 이야기할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대. 홍해바다를 갈라서 이집트 군대를 몰살시키시고,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대. 우리도 그렇게 구원하실거야~’ 하는 식의 이야기를 흔히 합니다. 틀리지 않았습니다. 정확합니다.

그러나 조금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기계적인 것이 아닙니다. 뚝딱 공식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공장에서 미리 다 만들어서 포장되어 나온 것을 누구라도 받아가기만 하면 되는 그런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구원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나에게는 구원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가 구원이기 때문에 만나를 주신 것입니다. 홍해바다를 가르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이 되기 때문에 홍해를 가르신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이스라엘에게 구원이 되기 때문에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무작정 ‘나도 만나를 먹어야지, 나도 가나안에 들어가야지, 내 앞에도 홍해가 갈라졌으면~’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전혀 모르는 사람의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고민할 때, 제일 근본적인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에게는 어떤 구원이 필요한가?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가? 내가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는 말입니다. 이 물음은 당연하게 ‘하나님이 누구인가?’ 하는 고민과 엮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나의 싱크로(synchro-), 조율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알고 하나님을 알아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안다는 말입니다.

출애굽 이전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았더니, 이들은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노예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더 깊이 들여다보았더니 어땠습니까? 그저 한없이 불쌍하고 힘없고 나약하고 형편없는 사람들이었나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강하고 힘있고 유능하고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이집트의 파라오가 두려워서 견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억압했습니다. 무서우니까요. 두려우니까요. ‘이 사람들이 자기 힘을 깨닫고 그 힘을 떨치기 시작하면 상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의 구원역사를 제대로 아는 첫단추는 ‘하나님이 불쌍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한다는 것은, ‘나는 마치 이스라엘이 노예생활 하듯이 힘들고 어렵고 지치고 불쌍하니까 주님, 나를 구원해주십시오’ 하는 그런 하소연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 나는 주님의 은혜로,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이렇게나 강하고 힘있고 유능하고 대단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나를 부러워하고 나를 견제하고 나를 억누르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힘으로 당당하게 맞서보겠습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출애굽기를 계속 읽어갈 때, 우리 마음 속에는 근본적인 물음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나는 누구지? 하나님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드셨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지?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모습이 뭐지?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구원하실까?’ 이 물음을 계속 품고 올해 우리의 신앙을 성숙시켜가 봅시다.

2.

오늘 출애굽기 2장 말씀에는 드디어 모세가 등장합니다. 출애굽의 영웅이지요. 하지만 오늘 모세의 모습 속에는 영웅적인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출애굽의 영웅이 되는 것은 3장 이후의 일입니다.

모세의 삶을 세 단계로 흔히 구분합니다. 첫 단계는 파라오의 궁궐에서 살던 시절입니다. 파라오가 어린 남자 아이들을 다 죽이려고 했죠. 모세의 부모는 어린 모세를 차마 죽일 수 없으니 갈대 상자를 구해다가 아기를 눕히고 강물에 띄워 보냅니다. 어떻게라도 살길이 생기기를 바라고서 말이지요. 마침 파라오의 딸이 갈대 상자에 둥둥 떠가는 어린 모세를 구해내서는 히브리 사람인줄 알고서도 자기 아들로 삼아 키웁니다. 그렇게 모세는 파라오의 왕실에서 히브리사람으로써 동시에 파라오의 가족으로써 살게 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사는 시절입니다. 궁궐에서 부러울 것없이 살던 모세가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히브리 사람을 괴롭히는 이집트 사람을 몰래 죽여버린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히브리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말리려는데, 그 사람이 대드는 겁니다. ‘네가 뭔데 참견이냐? 지도자냐? 재판관이냐? 어제는 이집트 사람을 때려죽이더니 이번에는 나를 죽이려고 그러느냐?’ 모세는 당황스러웠겠지요. 파라오도 이 사건들을 전해 듣고는 모세를 죽이려고 합니다. 모세는 어쩔 수 없이 미디안 땅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아내를 만나고 아이도 낳고 살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가 불타는 가시떨기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어 살게 되는 시절입니다.

오늘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삶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흔히들 그리스도인들을 두고 ‘길 위의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참 절묘한 표현입니다.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빌3:13). 어디로 가는지도 몰라도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저 떠나는 사람들입니다(히11:8).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정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머물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머물곳을 허투루 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머물러라’ 하는 곳이 아니면 결코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생각한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러주시는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호불호에 따라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에 따라 머무는 것입니다.

3.

제 상상입니다만, 모세는 이집트 왕실에서 공주의 아들로 살면서 가슴속에 웅장한 꿈을 품었을 것입니다. 개인의 복락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서 민족의 삶에 대해 고민했을 것입니다. 이집트로부터의 해방과 백성의 미래를 고심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거꾸로 히브리 백성의 현실은 외면하고,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고민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히브리인이라는 낙인을 지우고 이집트 왕실에 잘 정착할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어떤 목표점을 향해 갔는지는 모르지만, 모세가 자기 힘으로 자기 능력으로 이루려고 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집트 사람을 때려 죽였고, 히브리인들을 말리려 합니다. 파라오가 죽이려 할 때에도, 자기 발로 도망칩니다.

모세는 인생의 나그네길에서 하나님과 동행함이 없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슴에 품었던 원대한 꿈이 사그라들었는지, 혹은 먼 훗날을 기약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양떼를 먹이는 모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속에서 행복을 추구했는지 모릅니다만, 그 행복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행복이 아닙니다. ‘이렇게 살면 되었지’ 하고 자기 스스로 납득해버린 행복에 불과합니다.

모세는 아들을 낳고 게르솜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 하며 한탄일까 자족일까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깁니다.

왕실에서 대단한 거대담론을 논의하든지 미디안 광야에서 소소한 삶에 만족하든지, 어떤 삶을 살더라도 우리에게는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가 붙드는 의미를 통해서 나라는 존재가 의미를 갖게 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의 마음 속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갈등이 있고, 목표가 있습니다. 성취하느냐 실패하느냐가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향해 나아갔느냐가 가치를 결정합니다. ‘나그네적’ 용어로 말하자면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디로 가라 하셨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어디로 가고 싶다고 아뢰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어떤 응답 받았느냐는 말입니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 하나님과 깊이 이야기 나누었느냐는 말입니다. 정의가 어떻고, 평화가 어떻고... 얼마나 대단하고 의미있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런 가치가 그런 목표점이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나눈 결론이냐는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을 쳐 죽이고 히브리인을 해방시키자!” 좋습니다. 압제당하는 히브리인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요. 그런데 그 결론이 하나님과의 긴밀한 소통에서 나온 결론 맞습니까? “히브리백성 사이에서 내가 현명한 중재자가 되고 재판관이 되어야겠다!” 좋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훌륭한 지도자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지요. 그런데 그 생각이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 맞습니까? “일상의 소박한 삶 속에서 행복을 찾고, 평안을 누리며 살아야겠다!” 아름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그렇게 일상의 복을 누리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내 삶을 결정한 것이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한 응답 맞습니까?

나그네되어 나그네길을 걸어가는데, 그 걸음의 향방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걸음이라면, 아무리 가나안을 향해 간들 우리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아무리 광야를 40년 아니라 400년을 방황해도 우리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홍해가 아니라 태평양이 갈라져도 우리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매일매일 만나를 배터지게 먹어도 우리가 먹은 것은 그저 칼로리덩이리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목도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을 구원으로 경험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4.

23절에서 25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집트의 왕이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된 일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고된 일 때문에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렀다. 하나님이 그들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의 종살이를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셨다.”

모세가 불타는 가시떨기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일은 바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과 하나님의 들으심이 일어난 후에, 인간과 하나님의 싱크로, 조율, 공감, 공명, 화합, 하나됨이 있은 후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멍하니 아무 생각 없는 이들을 구원하신 것도 아니고, 다만 애걸복걸하는 이들을 구원하신 것도 아닙니다. 자기 생각에만 빠져서 스스로의 의로움에 취한 사람을 들어 쓰지 않으십니다. 다음 주에 함께 나누겠지만, 미리 3장 1절을 읽어볼까요.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모세가 언제 하나님을 만납니까? 모세가 언제 소명을 받고, 언제 진짜 나그네길을 걷게 됩니까?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하나님 언제 응답하십니까? ‘백성들이 탄식하며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와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 마음대로 만드시는게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철저히 우리의 탄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길을 간다는 것은 가고 싶은 길을 무조건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포기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히 아뢰고, 그 아룀으로 응답하실 때, 온전히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나그네입니까? 제 갈 길 알아서 척척 잘 가는 그런 나그네입니까? 갈 바를 모르고 헤매는 나그네입니까? 갈 곳은 아는데 힘없어서 주저앉은 나그네입니까?

하나님과 소통하는 나그네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아뢰는 나그네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응답받는 나그네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나를 향한 약속을 기억하시고, 나를 위한 길을 예비해 주실 것입니다. 그 길에서 나에게만 허락된 소중한 구원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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