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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냐? 막대기냐?출애굽기 강해 4(출애굽기 4:1-5)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4.02.18 03:28
▲ 우리는 늘 선택의 상황에 놓인다. 결국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가 문제이다. ⓒGetty Images

1.

불타는 가시떨기 앞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드디어 인생의 제3막을 시작합니다. 모세의 인생 120년을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집트 왕실에서 공주의 아들로 살던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살던 40년, 그리고 마지막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던 40년입니다.

한 인물의 삶이 정확하게 40년 주기로 나눠진다는 것이 이상하지요? 아마도 성경은 40이라고하는 상징적인 숫자를 사용해서, 모세의 삶이 하나하나 완성되어가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첫 40년의 세월을 모세는 이집트 왕실에서 공주의 아들로 살았습니다. 왕가의 일원으로 살면서 특권을 누리는 삶이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히브리인으로써의 정체성을 고민했을 것입니다. 왕실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배운 것도 많았을 테니, 자유의 가치, 평등, 인권의 가치를 놓고 깊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이집트로부터의 해방과 백성의 미래를 고심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히브리 백성의 현실을 외면하고 살면, 개인의 안락한 삶이 보장될 것이 보였기에, 현실적인 고민도 했을 것입니다. 개인의 헛된 행복에 유혹받기도 했을 것입니다. 히브리인이라는 낙인을 지우고 이집트 왕실에 정착해볼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 40년의 세월도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이집트에서 도망친 후 광야에 정착하여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양떼를 먹이며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세상사는 삶이 뭐 별거냐? 이렇게 소박하게 조촐하게 만족을 느끼며 살면 되는 거지.’ 자위했을런지도 모릅니다.

모세의 40년은 한 개인의 40년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 모두가 경험하는 일생의 고민들입니다. 한편으로는 원대한 꿈을 품고, 세상에 나아가 온 힘을 다해 이상을 쫓으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진리라고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야 할 진짜 삶이라고, 그렇게 믿으며 온 삶을 쏟아붓습니다. 이것이 내 인생의 목표라고, 이것이 내가 이루어야 할 꿈이라고 그렇게 세상에 도전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세상의 치열한 경쟁과 다툼을 벗어나 유유자적하며 소박한 삶으로 만족하기도 합니다. 마음을 다스리며 평안에 이르기 위해 수양하며 그렇게 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때론 느슨하게 달려갑니다. 인생의 수많은 선배들이 스승들이 올바른 목표를 정하라고, 그 목표를 향해 열심을 내라고 조언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목표를 찾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열심을 내고 온 힘을 다 할 수 있는지, 격려하고 다독이고 채찍질하고 훈계합니다. 과연 우리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2.

그런데 성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모세의 40년의 그것도 두 번이나 반복되는 40년의 세월들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헛되다니요? 모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데요? 히브리 백성을 괴롭히던 이집트인을 때려죽일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히브리인에게 오히려 원망을 살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수많은 양 떼들을, 장인의 양 떼까지 성심성의껏 돌봅니다. 심지어는 갓난아기 때부터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입니다. 갈대상자에 담겨서 강물 위를 떠가던 사람입니다. 이집트 왕실에서 히브리인으로써 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치열한 삶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삶이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이상을 마음속에 품었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최대한 치열하게 노력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철저하게 인간의 치열함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공로에 불과합니다.

지난 주 함께 나눈 말씀을 기억해 봅시다. 우리 인간의 삶이 하나님 앞에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것이 언제인가요? ‘하나님, 내가 이만큼이나 대단한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만큼이나 치열하게 노력했습니다.’ 이런 자랑이 가능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이 의미 있어지려면, 우리 삶이 하나님과 소통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열쇠입니다. 2장 23절의 말씀과 3장 7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된 일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고된 일 때문에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렀다. 하나님이 그들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의 종살이를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셨다(출2:23).”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출3:7).”

모세가 인간사 40년을 두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부르짖고 나서입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 보겠다고 치열하게 몸부림치던 시절을 지나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뢰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어서입니다. 그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비로소 들으셨을 때, 모세에게 찾아오시고 모세에게 진짜 의미 있는 삶을 열어 주십니다.

3.

이제 오늘의 고민을 시작해 봅시다. 우리 인생의 헛된 고민들 다 내려놓고, 대단한 목표, 대단한 결심 그런 것들 다 치워버리고, 하나님 앞에 아뢰고 고하고 부르짖는 것이야말로 진짜 의미 있는 삶의 시작인 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 목소리를 듣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알아주십니다. 그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계획하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 인생은 여전히 힘들고 괴롭습니까? 허무한 인간사 40년을 다 보내고, 새로운 구원사 40년의 인생이 시작되었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새 삶을 살고 있는데, 왜 여전히 우리의 삶은 이 모양입니까? 혹시 나는 아직 구원 못 받은 겁니까? 혹시 하나님이 나는 외면하고 계신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부르짖은 우리 인생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삶의 모습을 똑똑히 보시고, 우리 음성을 제대로 들으시고, 우리를 분명히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새로운 능력도 주시고, 조력자도 주시고, 현실의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사람들 앞에서 권위 있게 해주십니다.

오늘 4장의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들고 있던 막대기를 땅에 던져 보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지니 뱀으로 변합니다. 이번에는 그 뱀 꼬리를 맨손으로 잡아 보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뱀 꼬리를 잡자 뱀이 다시 막대기가 됩니다.

한가지 능력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맨손을 품속에 넣어보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손을 품에 넣어보니 그 손이 순식간에 나병에 걸려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시 품속에 넣었다 빼 보니 제 살로 돌아옵니다. 손뿐이 아닙니다. 나일강 물을 퍼다가 마른 땅에 부어보면 피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평범한 사람이 가질 수 없는 신적 능력을, 세 가지씩이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행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능력이 나에게 있으면 못할 게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확실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 있는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모세는 주저합니다. 오히려 한발 물러섭니다. “주님, 저는 말솜씨가 없습니다.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딥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무슨 말이냐? 네 입을 만든 게 나고, 네 혀를 지은 게 나다. 너에게 할 말을 가르쳐 주겠다.’ 모세는 또다시 물러섭니다. “주님,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 주세요.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또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래? 네 형 아론이랑 같이 가라. 말을 못하면 아론이 하면 된다. 너는 내가 가라는 길을 가라.’

모세의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제가 뭘까요? 우리가 인생이 힘들고 괴로운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새 삶을 살면서 왜 여전히 우리의 삶은 이 모양일까요? 아직 구원 못 받은 걸까요? 혹시 하나님이 외면하고 계신 걸까요?

4.

아닙니다. 문제는 모세에게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는 겁니다.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자질의 문제도 아니고 자격의 문제도 아닙니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뱀을 붙들면, 무섭더라도 그 꼬리를 붙잡으면, 그저 아무것도 아닌 막대기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 손이 나병에 걸려 엉망이 되었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품에 손을 넣으면 새살이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저 더러운 강물 한 바가지에 불과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땅에 부으면 생명을 지닌 피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못합니까? 그런데 왜 안 합니까? 하나님이 할 말 다 알려주신다는데 내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말 잘하는 사람 보내주신다는데도 왜 주저합니까? 문제가 뭡니까?

문제는 믿음입니다. 이게 뱀인지 막대기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나의 믿음입니다. 내가 나병에 걸려 죽을 목숨인지 아니면 새살이 돋아 살 목숨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나의 믿음입니다. 내가 지닌 이 물이 더러운 강물에 불과한지 아니면 생명의 근원 되는 피인지는 나의 믿음이 결정합니다. 내 삶이 주저하며 한발한발 계속 뒤로 물러설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 주시는 비전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나의 믿음입니다. 나에게 주신 능력을 권위 있게 사용할지, 아니면 능력은 있으나 뒷전에 숨기고 아무 것도 못하고 살지 결정하는 것은 나의 믿음입니다. 내 곁에 나를 돕는 이웃들과 함께 힘을 합하여 살아갈지, 아니면 혼자 고립되어서 외롭게 살아갈지 결정하는 것은 나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이제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공을 넘기고 우리가 행동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향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나의 믿음, 내 믿음, 내 신앙이 믿을 만한가? 내 믿음을 내가 믿을 수 있는가? 내가 과연 하나님 주신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가? 40년을 두 번이나 살아내고도 하나님 주신 새로운 삶 앞에서 망설이고 주저앉아 버릴지, 모든 것은 내 믿음이 결정합니다.

무섭고 두렵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 뱀을 움켜쥐면 됩니다. 그러면 그 뱀은 더 이상 뱀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막대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내 길을 막아서지 못하고 내 발꿈치를 물어뜯지 못합니다. 나를 두렵게 하고 힘들게 하는 뱀일랑 그저 하나님을 믿고 움켜쥐어 버리면 됩니다. 

절망적이고 눈물 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 품에 안기면 됩니다. 그러면 나를 괴롭히던 나병은 씻은 듯이 낫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흰 눈처럼 그저 녹아 없어져 버립니다. 육신의 연약함과 병고와 질병이 나를 죽이지 못합니다. 내 육신은 죽더라도 나를 절망하게 못합니다. 하나님 품 안에서 품는 소망을 앗아가지 못합니다. 삶의 온갖 어려움과 괴롬들이 나를 사로잡지 못합니다. 나를 절망하게 하는 어려움들은 그저 주님 품 안에 안겨버리면 됩니다.

여러분 앞에 뭐가 있습니까? 뱀입니까? 막대기입니까? 뱀이 또아리를 틀고 위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그저 막대기 하나 놓여있을 뿐입니까? 하나님 왜 나를 외면하셔서 이리도 힘들게 살게 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고 보살피셔서 모든 순간 나와 함께 하십니까? 우리의 고백은 뭡니까? 그 고백을 바꾸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은 어렵지 않습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 나를 향한 믿음, 그 믿음으로 담대하게 한발한발 살아가는 담백한 삶. 그것이 정답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 또아리를 틀고 나를 위협하는 온갖 뱀들을 마주합니다. 두려워 주저하고 돌아서지 말고, 믿음으로 손을 내밀어 막대기인 양 그냥 집어 들어 버리기 바랍니다. 그렇게 내 갈 길을 도와주는 지팡이로 삼아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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