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주님께서?

▲ Robert Leinweber, 「Moses and Aaron meet Pharaoh」 ⓒGetty Images

오늘 사순절 첫째 주일입니다. 지난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절 40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부활절을 앞두고 40일 동안 기도하면서 부활절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왜 40일이겠습니까? 기독교 전통에서는 40이라는 숫자를 완전한 숫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한 것도 40년이고, 예수님이 광야에서 기도하신 것도 40일이었죠. 그래서 완전하고 충분한 시간동안을 기도하고 묵상하기 위해서 40일을 정한 것입니다. 주일날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축제의 날이기 때문에, 근심하고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주일날은 빼고 40일을 계산합니다. 그렇게 세어보면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는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이라고 부릅니다. 머리에 이마에 재를 바르고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회하고 회개할 일이 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서 기도했습니다. 바로 그 전통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우리 개신교에서는 특별히 예식을 하지 않습니다만, 로마 가톨릭이나 성공회에서는 재의 수요일에 실제로 이마에 재를 바르는 참회 의식을 합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태운 재를 이마를 바릅니다. 그리고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성경구절을 읽으면서 인간의 유한함을 깊이 묵상합니다.

사순절 기간에는 인간의 유한함을 묵상함과 함께,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묵상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고난을 묵상합니다.

참 훌륭한 신앙입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오히려 잘못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 얼마나 아프셨나? 우리 예수님 얼마나 힘드셨나? 우리 예수님 얼마나 고통스러우셨나? 하는 생각에 깊이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게 뭐가 잘못됐나?’ 싶지요?

물론 잘못된 건 없습니다. 다만 사순절의 묵상이 예수님의 고난에만 집중되어버리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힘드셨나? 예수님이 얼마나 고난당하셨나? 하고 그 ‘수난’과 ‘고통’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고통과 수난을 감당하실 만큼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가? 하는 그 ‘사랑’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얼마나 대단한가가 아니라, 그 대단한 고난을 감당할 만큼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가를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신앙이 바르게 성장합니다.

사순절 묵상집을 만들어 나누어드렸습니다. 이번 사순절 묵상집은 예전 묵상집과 조금 다릅니다. 미리 내용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말씀을 읽고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그런 묵상집이 아닙니다. 제목부터가 ‘사순절을 즐깁시다’입니다. 사순절을 즐기다니요? 이상하지요? 재를 뒤집어쓰고 슬픔에 잠겨 있어야 할 사순절에 즐기다니요?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고난만 기억하는 사순절이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 뒤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사순절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행복한 삶을 기억하는 사순절이 되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행복한 삶을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일상에 짓눌려 살아가지 말고, 우리를 힘들게 하던 여러 가지 스트레스에 묶여 있지 말고, 하나님 주신 행복을 회복해 보자는 것입니다. 내일부터 묵상집을 가지고 하루하루 읽어가면서 나에게 허락하신 삶의 기쁨을 되찾아보는 사순절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모세가 드디어 결심을 세우고 이집트로 돌아와 파라오를 만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약하고 부족한 모습으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모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능력을 주시고, 모세를 도와 함께 할 능력 있는 사람도 보내주셨는데도, 머뭇거리면서 주저하던 모세가 드디어 결심을 세웁니다. 모세가 스스로 내적 결심을 하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아마도 모세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새롭게 하고, 마음을 굳건히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을 불러 모으고, 아론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받은 이적을 행하여 보여줍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두 그를 믿고, 엎드려 주님께 경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만 간 것이 아닙니다. 이집트의 파라오 앞에 당당하게 섭니다. 파라오가 누굽니까? 이집트의 왕입니다. 황제입니다. 말 한마디면 사람도 손쉽게 죽였다 살렸다 하는 권세자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만큼이나 가장 센 자가 파라오입니다. 그런 파라오 앞에 섰습니다. 허탄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하라 하신 것을 제대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해서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순종해서 했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순조롭게 이끌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파라오가 넙죽 엎드려 벌벌 떨면서 ‘네, 주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주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쳐들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나님 주신 땅으로 행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말씀을 보니 오히려 모든 일이 거꾸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오히려 일은 잘 못되어버립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어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기는커녕, 중노동을 더 엄하게 시킵니다. 벽돌을 만드는데 쓰는 지푸라기를 제공해주지 않고 알아서 구해와라 합니다. 작업반장들을 다그쳐서 벽돌 만드는 일을 재촉합니다. 모세를 믿고 따랐던 백성들은 이제 오히려 모세를 미워하게 됩니다. ‘가만히 잘 살고 있는데, 괜히 당신 때문에 우리 신세를 더 망쳐버렸다’고 원망합니다. 모세 역시 하나님 앞에 하소연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실 생각을 하고 계신 것 맞습니까?”

우리의 삶도 비슷합니다. 모세와 같이 나약하고 허약하던 우리가, 그렇게도 하나님 앞에 부족하고 못나기만 하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굳건하게 해서 하나님만을 믿고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도 주셔서 세상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는 이웃들도 허락해주셨습니다. 삶의 비전도 새롭게 보여주셔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서 새로운 생명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이 삶이 녹록치 않습니다. 만만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도 주시고 비전도 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우리 믿음도 든든한데, 좀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노예생활에서 해방되기는커녕 종살이가 더 힘들어집니다. 그나마 지푸라기는 충분히 있었는데 이제는 지푸라기까지 찾아 헤매야 합니다. 채찍질이 더 가혹해집니다. 만사형통은 고사하고 삐걱거리기만 합니다. 하는 일은 어긋나기만 하고, 삶에 고난이 닥쳐옵니다. 육신에도 병마가 찾아옵니다. 고달프고 힘이 듭니다. 하나님 앞에 원망만 늘어갑니다.

기도하는데, 성경도 열심히 읽고 묵상하는데, 매일 찬양하며 경배하는데, 헌금 생활도 열심히 하는데 왜 우리 삶이 형통하지 않을까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담대하게 파라오 앞에까지 섰으면 뭔가 대단한 구원역사가 짠! 하고 펼쳐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도대체 이런 당황스러운 전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계속 믿는 게 맞습니까? 언제까지 믿어야 합니까?

우리가 출애굽기를 처음 읽는 게 아니죠? 이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다들 알고 계시죠? 어떻게 되나요? 예,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죠. 재앙이 계속되는데도 파라오는 정신 차리지 못하고 계속 고집을 부리지요. 그러다가 마지막 유월절, 이집트의 모든 장자가 죽는 재앙을 만나고서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줍니다. 그렇게 한 번 놓아주고서도 다시 쫓아왔다가 홍해바다 속에 빠져서 몰살되고 말죠.

우리는 열 가지 이야기를 읽을 때, 하나님께서 이집트를 벌하신 이야기로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으로 이집트를 치시는데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반항하다가 호되게 당하는 이야기로 읽습니다. ‘통쾌하다. 쌤통이다. 어디 우리 하나님 앞에서 까불어? 그러다가 혼나지!’ 하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이어질 열 가지 재앙 이야기를 오늘 5장의 말씀과 연결 지어서 새롭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결단한 모세,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로워진 모세, 그 능력 가지고 과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세, 그의 앞에 펼쳐진 세상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탄탄대로일 것만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이 더 거칠게 반항하고 더 매섭게 대항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내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이들도 나에게 등 돌리고 나를 배신하고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나를 외면하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는 것입니다.

열 가지 재앙은 정신 차리지 못하는 이집트를 향하신 징벌이 아닙니다. 정신 못 차리는 이집트 파라오에게 너 아직도 정신 못 차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만큼 하나님 믿었는데 왜 내 뜻대로 안 되냐고, 왜 우리가 힘들어해야 하냐고, 왜 하나님 이렇게도 힘이 없냐고, 한탄하고 원망하는 우리 믿는자들을 향한 이적입니다. 힘든 현실에만 눈이 팔려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섭리를 바라보지 못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래도 모르겠어? 이래도 모르겠어? 아직도 모르겠어? … 이적이 하나하나 늘어갈수록 파라오의 고집이, 그 업보가 쌓여가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의 죄악이 쌓여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실 수가 있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었는데, 하나님 앞에 얼마나 헌신했는데...’ 하나님은 이미 물을 피로 변하게 하시며 이집트를 심판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 뭐 하시는 거야?’ 온 이집트에 개구리가 이가 파리가 메뚜기가 들끓게 하시는데도 우리는 원망만 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시는 거야?’ 이집트에 피부병을 보내시고 우박을 보내시는데 우리는 여전히 힘들다고 괴롭다고 칭얼거리고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힘든 것도 모르시나? 그렇게 기도를 하는 데도 왜 응답을 안 해주시지?’ 온 세상을 암흑으로 덮으시는데도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 우리가 잘못 생각했나? 하나님 믿어봐야 소용없는 거 아니야?’

이집트에 재앙이 하나씩 내릴 때마다, 우리는 통쾌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엄청난 섭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신하고 투정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깊이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나 일하고 계신데, 나는 우리는 그저 불평하고만 있었구나.’

하나님 주시는 구원은 나의 결심으로 내적 결단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에 믿기만 하면 생명세상 막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다. 평화의 세상, 정의의 세상, 우리가 결심만 하면, ‘이제부터 평화롭게 살아야지!’ 하면 되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과 직접 맞닥뜨려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결심대로 호락호락하게 따라주지 않는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맞서 싸워 이뤄낸 은혜야말로 진짜 은혜입니다. 나약한 우리가 강건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싸우지 않고, 아픔을 겪지 않고, 고생하지 않고도 얻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그 모든 아픔을 이겨내고 싸워내고 쟁취한 것이 진짜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세상에 엄청난 일을 하고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하나님의 길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겪게 된 모세의 좌절을 보면서,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을 아무리 잘 믿는다 해도 똑같은 고난과 아픔이 닥치게 됨을 깨달을 수 있기 바랍니다.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인 줄 깨닫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착실히 하고 계심을 깨닫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러실 수는 없어!’ 원망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러실 리가 없지!’ 신뢰하는 신앙을 살아내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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