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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 어떤 직제들이 있었나? 디다케(3)채수일의 ‘기고만장’(基古萬張)(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 3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4.02.26 02:47

이 원고와 영상은 ‘사이너머’ 연구소에 진행하고 있는 채수일 교수의 ‘기고만장: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입니다. 기독교 고전을 독자들과 함께 읽고 우리 시대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입니다. 영상과 원고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채수일 교수님과 사이너머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 오늘은 ‘디다케’를 중심으로 초대교회 안에는 어떤 직제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직제가 있습니다. 크게 나누면 목사, 장로, 권사, 집사, 혹은 안수 여부에 따라 안수집사와 서리집사 등으로 나누기도 하지요. 그리고 장로나 권사는 선출되고, 집사는 위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기가 정해진 교회도 있지만 안수 받은 직제는 대부분은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디다케’에 의하면 주후 100년 경 시리아 지역 교회들 안에는 세 부류의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아 이 교회 저 교회로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던 ‘떠돌이 은사자들’,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한 지역 교회에 정착한 ‘붙박이 은사자’들, 그리고 성도들이 뽑은 지역 교회 책임자들이 다른 부류입니다.

‘떠돌이 지도자들’, ‘떠돌다가 정착한 지도자들’은 ‘지역에서 선출된 책임자’들보다 높은 지위를 인정받았는데, 이들은 보통 ‘사도’, ‘예언자’, ‘교사’라고 불렸고, ‘지역에서 선출된 책임자’들은 ‘감독’, ‘봉사자’로 불렸습니다.(1)

그런데 지역에서 민주적 절차로 지도자들을 선출한 것은 당시 시대적 배경, 가부장적이고 계급과 신분이 엄격하게 분리된 사회였음을 고려할 때, 참으로 놀랍고 흥미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2)

그러나 이런 민주적 전통은 후에 기독교가 국가 종교로 공인되고, 로마 제국의 법과 전통을 수용함으로써 성직자들의 신분이 상승하면서 달라졌습니다. 교황은 황제, 주교는 영주, 사제는 기사와 같은 봉건주의적 신분으로 변한 것이지요.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 이후, 많은 개신교 안에서는 직분자들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되는 전통이 형성되었습니다. 물론 직제도 각 지역의 문화적, 토착 종교적 전통의 영향으로 다양해졌습니다. 한국 개신교회의 경우, 교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직제의 다양성과 민주적 선출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2천 년 전의 초대교회에는 ‘감독’, ‘장로’, ‘집사’, 세 직제만 있었고, 공동체 안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되었고, 하는 일이 달랐을 뿐, 계급화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성인으로 추앙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도 갑자기 교인들이 추천해서 그 자리에서 사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교회 안에서의 직책이 계급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가 무슨 계급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권력관계가 된 것이지요. 그래서 웃지 못할 농담이 펴져 있는데요, 서울 강남에 있는 대형교회들은 목사 때문에 비웃음꺼리가 되고, 강북에 있는 큰 교회들은 장로 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목사청빙, 장로와 권사선출을 둘러싸고 교회 안에서 파벌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도 직제를 무슨 대단한 권력이나 권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4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직책을 주신 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엡 4,11-13)

교회 안의 직제는 오직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분란에 빠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자기 몸을 세우려는 인간적 욕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직분을 맡아 교회에서 봉사하는 목적은 그리스도를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되는 데 있다는 말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주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복이야 참으로 많겠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될 수 있는 복보다 더 큰 복이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요?

직분자들이 직분을 권리나 권력으로 생각하고 악용하는 교회에는 언제나 분란이 그치지 않을 것이지만, 직분을 자기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봉사로 생각하는 직분자들이 있는 교회에는 평화가 넘칠 것입니다.

미주

(1)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디다케⟫, 정양모 역주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1993), 77.
(2)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디다케⟫, 96-97.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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