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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죽은 사람들출애굽기 강해 6(출애굽기 6:6-9)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4.03.03 03:29
▲ Levantine Asiatics making bricks (Illustration from N. D. G. Davies, Paintings from the Tomb of Rekh-Mi-Rēˁ [New York: Metropolitan Museum of Art, 1935], pl. 17)

1.

데자뷰라는 말이 있지요? 기시감이라고도 말하는데요, 이미 한 번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처음 가본 곳인데 예전에 와본 적이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지금 일어나는 일이 예전에 똑같이 일어났던 일이 다시 반복된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꿈속에서 본 거 같은데? 그런 느낌 말이지요. 그럴 때 데자뷔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어? 이 구절 읽어본 것 같은데? 어? 이 말씀 여기 말고 다른 데에도 나왔던 것 같은데?’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출애굽기 6장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느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우리는 불타는 가시떨기 앞에서 모세와 마주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곧 나다’ 하고 스스로를 밝혀주셨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주십니다. 이스라엘을 해방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입이 둔하여 말을 잘 못한다’고 도망치려고 합니다. 그런 모세에게 아론을 보내서 대언자를 삼아주셨습니다.

바로 그 내용이 데자뷔처럼 출애굽기 6장에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쓴 성경 저자가 깜빡하고 앞에 쓴 이야기를 그대로 다시 썼을까요? 아니면 똑같은 이야기를 한 번 더 써야만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요?

성경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다는 말을 흔히 합니다. 그럼에도 성경을 쓴 것은 우리 인간이기 때문에 생겨날 수밖에 없는 실수일까요?

2.

이 이상한 반복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는 9절 말씀에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와 같이 전하였으나, 그들은 무거운 노동에 지치고 기가 죽어서, 모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4장 30절 31절 말씀과 비교해 봅시다. “아론이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일러주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그들을 믿었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굽어살피시고 그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셨다는 말을 듣고,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같은 말씀을 전했는데 처음 이야기를 들었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고 믿고 경배했습니다(출 4:30-31). 그런데 두 번째 같은 말씀을 전했을 때는 모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출6:9). 이 두 가지 전혀 다른 반응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다. 뭘까요?

예. 맞습니다. ‘내 백성을 해방 시켜라’ 하는 모세의 말을 듣고 바로가 어떻게 합니까? 오히려 강제노동을 더 심하게 하고 억압했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벌을 내리면 좋겠다’고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저주합니다. 모세와 아론의 말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던 백성들이, 힘들어지니까 이제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도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지도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바로 그런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같은 말씀을 전하고 계신 겁니다. ‘내가 너희의 주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희를 해방시키겠다. 내가 너희에게 은총을 내리겠다.’ 그런데 역시 백성들은 듣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왜, 왜!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듣지 않는가?’를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왜,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가?
왜, 백성들은 하나님의 신뢰하지 않는가?
왜,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지 않는가?
어떨 때, 우리는 하나님께 등 돌리는가?
어째서 우리는 하나님께 엎드리지 않는가?
왜 하나님의 말씀이 시시하고 지루한가?
왜 하나님의 비전이 초라해 보이는가?
하나님을 왜 사모하지 않는가?

3.

오늘 말씀은 단순히 3장, 4장 이야기의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똑같은 비전을 제시해주고, 하나님이 똑같은 은혜를 약속하시고, 하나님이 똑같이 역사하시는데 왜 우리는 어떨 때는 믿고 경배하고, 어떨 때는 믿지 않고 원망하냐는 겁니다. 바로 그 이유를 알려주시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9절 말씀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뭐라고 쓰여있습니까? “그들은 무거운 노동에 지치고 기가 죽어서, 모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전도 제시해 주시고, 소망도 주시고, 과연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기적도 행해 주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아요. 왜? 지치고 기가 죽어서!

어떨 때 우리가 하나님을 떠납니까? 어떨 때 우리가 하나님께 실망합니까? 어떨 때 우리 신앙생활이 나약해집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홀히 하시고, 은혜를 많이 주시던 거 줄여서 조금 주시고, 기도도 잘 안 들어 주시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실망합니까? 아니면 우리의 믿음이 나약해져서 그렇습니까? 기도발(?)이 약해지고 성경통독을 좀 덜해서 그렇습니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럴 때도 있겠지만,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해답은 그게 아닙니다. ‘지치고 기가 죽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쳤다는 겁니다. 우리의 신앙이 나약해진게 아니라, 우리의 기가 죽었다는 겁니다.

왜 지치고 왜 기가 죽었습니까? 노동 때문입니다. 삶이 힘들게 했어요. 삶이 힘들어 지쳤습니다. 삶이 힘들어서 기가 죽었습니다. 어떤 삶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삶이 힘들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을 살다가, 그 광야를 걸어가다가 힘들었다는 말이 아니에요. 자기 멋대로 사는 그 삶이 괴로웠다는 거에요.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다가, 그리스도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느라 지쳤다는 말이 아니에요. 복음대로 살려다 보니까 바울처럼 세상이 괴롭혀서 그래서 기가 죽었다는 말이 아니에요.

내가 선택한 삶, 내가 꿈꾸는 삶, 내가 바라는 삶, 내가 원하는 삶, 그 삶이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까 지쳤습니다. 그 삶이 내 뜻대로 안 되니까 기가 죽었습니다. 그렇게 지치고 기가 죽어서, 진짜 중요한 하나님을 놓쳐버렸어요.

헛된 목표를 향해 온 힘을 쏟다가 맘대로 안 되니까 지쳤어요. ‘아이, 힘드네.’
헛된 욕심을 채워보려고 하다가 뜻대로 안 되니까 맘이 상했어요. ‘에이, 맘대로 안 되네.’
헛된 권세를 얻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기가 죽었어요. ‘역시 어쩔 수 없나 봐.’

소위 잘난 인생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다가, 그렇게 노력하다가 잘 안되면, 포기해야지요. 뭐를요? 잘못된 목표를 포기해야지요. 잘못된 길을 포기해야지요. 그리고 진짜 인생으로 돌아와야지요. 그런데 아니라는 거에요. 거꾸로예요. 오히려 하나님을 포기해버렸다는 거에요.

우리들이 이 모양이라는 거에요. 잘못된 길을 가다가 힘들고 지치고 기가 죽으면, 그 잘못된 길을 포기해야 되는데, 오히려 힘들었다고 기가 죽었다고 ‘에이, 나 그냥 내 인생 아무렇게나 살래! 하나님이고 뭐고 신앙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해 버린다는 거에요. 그렇게 우리가 어리석다는 거에요. 오늘 성서가 폭로하고 있는 우리의 어리석은 모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신앙대로 안 살아서 그럴까요? 아니에요. 신앙 없는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 신앙인들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서 그렇게 살아요. 거짓된 신앙목표를 두고 열심히 기도해요. 그런데 지쳐요. 내 맘대로 안 돼요. 기도의 응답이 없어요. 당연하지요. 말도 안 되는 것 열심히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다 들어주시던가요? 아니죠.

기도하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내가 바라는 삶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내 비전이 막히고 내 소망이 좌절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기도를 돌아봐야지요. ‘왜 하나님이 응답해주지 않으실까? 내가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의 바람이 뭔가 달랐나? 하나님의 마음은 내 생각과 다른가?’ 그렇게 생각해야지요. 내 비전이 막히면, 내 소망이 좌절되면, 내가 그리던 비전을 돌아보고 내가 원하던 소망을 되돌아봐야지요. 그게 진실된 신앙인의 마음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나를 돌아보지 않고, 무턱대고 하나님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다 덮어씌웁니다. ‘하나님 그럴 줄 몰랐어요. 하나님이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 있어요? 내가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데, 내가 얼마나 신앙생활 열심히 했는데, 왜 나를 지치게 합니까? 왜 내가 기가 죽게 놔주십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무슨 소리냐? 내가 얼마나 너에게 힘을 줬는데! 너는 헛힘만 쓰던걸? 진짜로 힘써야 할 데다 힘을 안 쓰고 엉뚱한 데서 헛발질만 하던걸? 다시 잘 봐라. 지치고 기가 죽을 수가 없다. 내가 너에게 준 힘을 봐라. 내가 너에게 허락한 능력을 봐라. 네 앞에 놓여진 그 비전을 봐라. 너에게 허락된 은혜를 은총을 봐라! 지치기만 하는 삶에서 돌이켜라, 기가 죽기만 하는 그런 삶을 이제 포기해라.’

열 가지 재앙이 누구를 향한 것이라고 말씀드렸나요?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한 이집트 사람들을 향한 징벌인가요? 맞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사람만을 향한 것일까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비전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제 멋대로 제 맘대로 하나님의 뜻을 난도질하고, 하나님을 오해하는 신앙인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죠.

‘아직도 모르느냐? 아직도 지쳤느냐? 아직도 기가 죽었느냐? 그래서 포기하겠느냐? 지금 그 삶이 힘들다고 은혜의 길을 가보지도 않고 포기하겠느냐? 지금 기가 죽었다고 축복의 길을 살아보지도 않고 거절하겠느냐?’ 하나님은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까지 끝없이 계속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겁니다.

4.

사순절에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기도하면 안 됩니다. 나 지친 것만 보고, 나 기죽은 것만 보고 ‘하나님 나를 힘 나게 해주세요, 하나님 내 기를 살려주세요’ 그렇게만 기도하면 안 됩니다.

왜 지쳤는지 왜 기가 죽었는지를 기도해야 돼요. 왜 지친 나에게 힘주지 않으시는지 왜 기죽은 나를 기살려주지 않으시는지를 기도해야 돼요. 지칠 수밖에 없는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도해야 합니다. 기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이 지침과 기죽음이 하나님의 길을 갈 때 하나님 주시는 은총의 고난인지, 아니면 내 멋대로 살아가는 내 오만한 삶의 결과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나면 하나님이 주신 삶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광야길을 가고, 예수님이 초대하시는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은 힘들지만 지치지 않습니다. 고되지만 기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힘들고 고됨이 우리에게 은혜가 됩니다.

우리 모두 더 이상 지쳐있지 맙시다. 기죽어 살지 맙시다. 사순절을 보내며 간절히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가 나를 살리는 기도 나에게 힘이 되는 기도가 되길 바랍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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