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 오늘은 ‘낙태’에 대한 ‘디다케’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2022년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한 미국 미시시피 주 법에 대한 위헌 심판에서 찬성 6, 반대 3으로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보편적 낙태권’을 보장한 판례를 49년 만에 뒤집었습니다. 이로써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절반 이상이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거나 극도로 제한할 것으로 예상된 가운데, 낙태 금지를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임신중단 권리가 헌법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반발도 심각했습니다. 마치 낙태법을 둘러싸고 미국 사회가 양분되었다는 인상을 주었지요. 판결이 있던 하루 내내 시위로 시끄러웠고, 이례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특별 연설을 통해 해당 판결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2019년 낙태를 금지한 형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낙태죄는 헌법정신에 위배된 법률이라고 판결한 것이지요. 그러나 후속 입법이 미뤄지면서 입법 공백이 3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21대 국회에서는 현재 국회에 발의된 낙태법 개정안이 여러 건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발의됐지만, 아직 관련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낙태에 대한 논쟁은 그동안 형법상의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과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거나 단속 및 처벌을 강화하자는 종교계의 입장이 대립해왔습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최저출생율이 종교계의 이런 입장을 더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계의 이런 주장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고통 받는 여성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것이지요. 게다가 신생아를 유기하거나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들도 무조건적인 낙태금지를 재고하게 합니다.

그러나 종교, 특히 보수적인 기독교회는 전통적으로 낙태가 교회법적으로 죄라는 입장을 유지해왔습니다. 임신이 되는 순간부터 태아를 하나의 생명으로 인정하고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지금부터 1900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디다케’에 의하면 당시에도 ‘낙태’가 행해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디다케’는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나누어, 무엇이 생명에 이르고, 무엇이 죽음에 이르는 길인지 제시합니다. 그런데 ‘죽음의 길’에 이르는 죄들을 ‘디다케’는 ‘살인, 간음, 정욕, 음행, 도둑질, 우상숭배, 마술, 요술, 강탈, 위증, 위선, 표리부동, 교활, 오만, 악행, 거만, 욕심, 음담패설, 질투, 불손, 교만, 자만, 두려워하지 않음’이라고 제시하면서, 죄악에 물든 사람들도 멀리하라고 권면하는데, 그 가운데 ‘유아 살해자들과 하느님의 작품을 낙태시키는 자들’이 언급됩니다.(1)

‘생명의 길’로 이르는 두 번째 계명 가운데도 ‘낙태로 아이를 살인하지 말라고, 갓난아이를 죽이지도 말라’는 계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2)

교회는 낙태를 살인으로 규정하고 죄로 여긴다는 입장의 가장 오래된 근거가 바로 여기 ‘디다케’에서 제시된 것이지요. 정양모 교수님은 초대 교회의 낙태금지가 유대교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이고, 초대교회는 처음부터 낙태를 금지했음에 틀림없다고 합니다.(3)

낙태 문제는 교회 전통의 도덕적 규범이 현실과 충돌할 때, 선택하기가 곤란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결정권 사이의 갈등만이 아니라, 임신중지의 여러 사회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성경과 전통의 입장에 서서 낙태금지주장만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것도, 낙태를 죄로 규정하여 범법자로 만드는 것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래 전, 아프리카의 기독교인들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 그토록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 이미 태어나서 굶어죽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위선이 아닐 수 없다고.

그렇다면, 서로 충돌하는 윤리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요? 전통에 순종하는 길? 아니면,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 그리고 인간은 그래서 용서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을 갖는 것, 이것이 제가 깨달은 길입니다.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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