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 오늘은 초대교회의 ‘단식’ 전통을 ‘디다케’(열두 사도들의 가르침)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디다케’에 의하면 세례를 받기 전에 수세자는 물론 세례를 베푸는 사람도 미리 단식을 해야 했고, 성도들도 가능하다면 단식을 하도록 요청받았다고 합니다. 초대 교회의 이런 관행은 세월이 흐르면서 수세자 혼자 단식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미주 1)

금식이 세례와 관계되어 실천되었다는 것은 세례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것이라는 신학적 의미와도 관계된 것으로 보입니다. 세례를 회개를 통하여 죽음에서 생명에로 거듭나는 영적 행위로 이해한다면, 세례 전의 단식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거듭나는 육체적 행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식 혹은 금식은 독일의 여성신학자 도로테 죌레(Dorothee Soelle, 1929-2003)가 말한 것처럼, 몸과 영혼을 온전히 비움으로써 살아서 죽음을 경험하는 겸손을 배우는 1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3세기 초, 로마 교회의 문헌으로 알려진 히뽈리뚜스의 ‘사도전승’에도 기독교인들은(과부와 동정녀들) 자주 단식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라는 권면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금식은 아주 초기부터 중요한 교회전통이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미주 2)

종교적 의미에서 단식, 혹은 금식은 ‘애도’(사사기 20,26; 삼상 31,13; 삼하 1,12)와 ‘통회’(이사야서 58,5)의 표징이었습니다. 다윗은 죽은 아들을 살리려고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서 금식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삼하 12,22; 역대지하 20,3; 에스라기 8,21)와 응답을 구하는(다니엘서 9,3) 행위였습니다. 에스더 이야기는 단식이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건 결단과 관계된 것임을 보여줍니다(에스더기 4,16). 스가랴서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매달 일정한 날에 금식을 정기적으로 실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스가랴서 7,3-5; 8,19).

이런 전통은 예수님 시대에도 계속되었고, 예수님도 광야에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밤낮 사십 일을 금식하셨다고 합니다(마태 4,1-2). 예수님은 왜 40일 동안 금식하셨을까요? 단순히 유대교 전통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애도와 통회의 의미였다면, 무엇을 위한 애도이며 무엇에 대한 통회였을까요?

성서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인데,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의 고뇌와 함께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면서 자비를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금식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비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배고픔의 고통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그래서 악마는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보라’고 시험합니다(마 4,3-4). 거부하기 힘든 시험이지요. 그러나 역설적으로 배고픔은 악마의 시험의 하나이지만, 동시에 악마의 시험을 이기는 길이라는 것을 예수님의 시험 이야기는 보여줍니다. 비록 금식으로 육체는 힘이 없지만, 기적이라는 종교권력을(마 4,5-7),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이라는 정치권력을(마 4,8-10) 거부할 수 있는 힘도 금식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악한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셨을 때에도, 악한 귀신은 ‘기도와 금식으로 쫓아내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쫓아낼 수 없다’(막 9, 29)고 말씀하셨습니다. 금식이 기도와 결합되었을 때, 악한 귀신도 쫓아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단식은 ‘투쟁’(hunger strike)의 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1918년부터 1948년까지 십 수 차례 단식투쟁)와 이롬 샤르밀라(인권운동가로 16년간 단식투쟁 지속, 강제로 영양을 공급받으면서 투쟁을 이어오다가 2016년 8월에 단식을 종료), 북아일랜드의 바비 샌즈와 동료 수감자들의 단식(1981년 대규모 사망), 이태원 참사(2022년 10월 29일) 진상규명을 위한 희생자(159명 사망, 196명 부상) 유가족들의 단식, ‘노랑봉투법’ 입법 촉구를 위한 단식은 ‘애도와 통회’만이 아니라, 투쟁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단식 투쟁은 투쟁의 대상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사람 자신에게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비폭력 저항이고, 결국 힘없는 사람들의 투쟁방식입니다. 단식투쟁은 양심과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힘으로 양심을 짓누르는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투쟁이지요. 그래서 단식은 설령 권력을 가진 오만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들을 움직이지는 못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을 감동시킬 것이고, 하나님은 그에 응답하신다는 것이 성서의 증언입니다.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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